이야기는 현실을 재구성한다.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직업, 주변 환경을 통해 세상을 담아낸다. 그래서 스크린에 펼쳐지는 영상 곳곳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가 담긴다. 일상이 반복되는 사회를 비춘다. 삶의 갈림길에 선 문제들을 함께 관객에게 던진다. 그런 면에서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현실 문제와 이야기를 잘 버무려낸 영화다.

사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영미 문화권의 원작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기는 길목에서 한국 사회의 모습을 유쾌하게 그려냈다. 영화는 거리로 내몰린 지소의 가족 이야기다. 초등학생, 지소는 봉고차에서 먹고 자면서도 학교 때문에 선뜻 동네를 떠나지 못한다. '대한민국에선 이렇게 거지처럼 차에서 살아도 제대로 된 학교에 다녀야 되는 거 몰라?'라는 지소 엄마(강혜정 분)의 울분은 스크린에만 머물지 않는다. 관객석 넘어, 한국 사회의 교육 문제와 부동산 문제의 연결고리를 관통한다.

어른스럽지만 세상 물정을 모르는 지소와 채랑의 행동은 성인 관객으로 하여금 미소 짓게 한다. 이윽고 오늘날, 현실과 마주한 뒤 쓴웃음으로 번진다.

부재로 증명하는 존재, 아빠


지소의 아빠는 영화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인물이지만 한 번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우리 시대에 가정에서 소외되는 아버지의 상징적 모습이다.

영화는 이러한 '아빠'의 자리, 가족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경제적 문제를 책임지기 위해 잠시 가정을 떠나 있다. 영화 속 이야기로 미루어 짐작건대, 지소의 아버지는 자영업자다. 요식업에 종사한다. 가정의 경제적 문제는 떠 앉고 있다. 영화는 지소 아빠의 부재와 집의 부재를 동일시한다. 아빠가 사라짐과 동시에 집도 사라진 가운데 이야기가 시작된다.

<개를 훔지는 완벽한 방법>은 곳곳에서 이 시대의 아버지상을 묘사한다. 늦은 밤, 지소는 채랑의 집을 찾는다. 훔쳐야 할 개를 고른 소식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베란다 창밖에서 들여다보는 지소의 시선에는 오늘날, 보통의 가정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다. 매일 같이 야근의 연속이다. 일에 치여 산다. 퇴근하고 돌아와 눈만 붙이고 다시 집을 나서기 일쑤다. 가정에 시간을 쏟지 못한다. 그렇게 가족 구성원과 짐짓 멀어져 간다. 마음과는 달리 가정에서 불편한 존재가 되어간다.

채랑의 엄마가 던지는 '너, 채랑이 태권도 무슨 띠인지는 아냐?'라는 물음에 '노란 띠'라고 답하지만 애석하게도 틀렸다. '빨간 띠'라며 타박을 하는 채랑이 엄마의 목소리가 채랑의 방까지 울린다. 어딘가 낯설지 않은 이 풍경은 아이들이 몇 반인지도 모른 채 일에 치여 사는 아빠들을 향해 있다.

프렌디? 꿈 같은 이야기


프렌디, 친구라는 의미의 영단어, 프렌드(friend)와 아빠를 뜻하는 대디(daddy)의 합성어다. 친구 같은 아빠라는 의미로 기존의 가부장적이 틀에서 벗어나 자녀와 친밀하게 지내고,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아빠를 지칭한다.

2013년, MBC의 <아빠! 어디가?>를 시작으로 한동안 예능 프로그램의 화두는 아빠의 육아 참여였다. 프로그램의 인기에 힘입어 '프렌디'라는 개념이 넓게 퍼졌다. 많은 아빠가 프렌디를 꿈꾸지만, 경제적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실제 해당 프로그램에 나오는 출연진 대부분은 경제적으로 유복하다. 시간적 여유도 있다. 친구 같은 아빠가 꿈같은 이야기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현실은 영화 속 채랑의 학원비를 언급하며 '지금 우리 사정이...'라고 말하는 모습과 아빠의 경제적 능력만으로 가정을 꾸려나가기 버거워 일을 찾아 나선 지소의 엄마의 모습이 더 가까이 있다. 맞벌이해야 아이를 키우는 것이 가능한 오늘날 우리 시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비춘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먹고 입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렸다. 영화를 통해, 아이의 시선을 빌려 유쾌하게 세상의 문제를 진단하고 메시지를 던진다. 지소의 철없는 모습이 밉지 않은 이유는 스크린에 비친 모습의 당신의 얼굴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