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과 쿠바 대표팀의 평가전에서 승리하고 손아섭(왼쪽 세번째) 등 한국 선수들이 하이파이브하며 덕아웃으로 향하고 있다.

지난 26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과 쿠바 대표팀의 평가전에서 승리하고 손아섭(왼쪽 세번째) 등 한국 선수들이 하이파이브하며 덕아웃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06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많은 야구팬들은 큰 기대감을 보였다. 자국 리그의 인기에 비하여 국가대항전이 활성화되지 않은 야구라는 스포츠에서 축구의 월드컵같은 대회가 탄생한 것에 대하여 신선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평소 소속팀 경기외에는 보기 힘든 최고의 스타들을 대표팀에서 볼수 있는 재미와 한일전같은 빅 이벤트, 야구의 세계화라는 명분은 WBC의 희소성과 가치를 높여준 원동력이었다.

한국은 초대 WBC에서 4강, 2009년 2회 대회에서 준우승이라는 기대 이상의 호성적을 거뒀다. 주축 선수들이 메이저리거로 구성된 미국을 꺾고, 영원한 숙적 일본과 몇 차례나 엎치락뒤치락하는 명승부를 펼치던 장면은 팬들에게 전율을 일으켰다. 이미 국내에서 '국민스포츠'로서의 위상을 구가하는 야구 인기에 더불어, 스포츠 이벤트에도 강한 내셔널리즘이 작용하는 한국적인 정서가 결합되어 WBC 열풍은 그야말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최근 개막을 앞둔 2017 WBC를 바라보는 시각은 예전같지 않다. 이번 대회는 사상 최초로 1라운드가 국내에서 개최되는 데다 대회 개막이 어느덧 눈앞으로 다가왔는데도 WBC를 바라보는 팬들의 반응은 대체로 무덤덤한 분위기다. 물론 대회가 시작되면 대표팀을 응원은 하겠지만 결과가 어찌되든 그리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는듯한 분위기가 강하다.

야구팬들의 이러한 쿨해진 시선은 기본적으로 WBC의 가치에 대한 회의론에서 비롯된다. 출범 당시부터 WBC가 표방하던 '세계 최고의 야구 국가대항전'으로서의 의미가 퇴색한데 대한 불만이다.

야구팬들이라면 세계 각지에서 최고의 선수들이 나와 자국의 명예를 위하여 최선을 다해 경쟁하는 모습을 기대한다. 우리가 올림픽이나 월드컵에 열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상급 선수들 불참... 계륵이 된 WBC

하지만 WBC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상급 선수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불참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데 있다. 초대 대회때만 해도 미국이나 일본, 한국은 모두 메이저리거들을 총망라한 최정예 라인업을 꾸렸다. 그런데 대회를 거듭하며 WBC 참가국들은 점점 선수 구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상급 선수들이 WBC 출전을 꺼리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면서 대회 자체의 질적 가치가 하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현재 세계 최고의 선수들은 어쨌든 미국 메이저리거들이고, WBC 역시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주도하여 창설한 대회다. 하지만 참가국들은 정작 자국 메이저리거들의 차출이 어렵다고 볼멘소리를 하기 일쑤다. 심지어 메이저리그가 자국리그인 주최국 미국조차도 클레이튼 커쇼, 맥스 슈어저, 마이크 트라웃 등 가장 최고의 선수들은 대거 불참했다.

WBC에서 정상급 선수들의 차출이 어려운 이유로는 애매한 대회 개막 시기와 구단들의 비협조가 꼽힌다. WBC는 세계 각국의 프로리그가 개막하기 직전인 3월경에 열린다. 프로 구단들은 스프링캠프에서 한창 다음 시즌을 준비해야하는 시기다.

프로구단 입장에서 보면 아무런 혜택도 없는 WBC에 소속 선수들이 참가했다가 부상이나 컨디션 난조를 겪기라도 한다면 다음 시즌을 앞두고 큰 손해가 아닐 수 없다. 특히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경우, 소속 선수가 대표팀 출전의지를 보여도 구단이 강하게 만류하여 WBC 출전이 좌절되는 경우도 많았다. KBO리그의 경우도 국내 정서상 대놓고 WBC 차출을 반대하지는 못하지만 내심 구단들은 불만이 크다. 이러한 WBC 무용론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은 국내만이 아니라 다른 참가국들, 심지어는 주최국인 미국에서도 계속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국내 팬들 사이에서는 국가대항전마다 한국이 대회 운영이나 일정 등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당하기만 하는 상황에 불만이 많다. 미국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창설한 WBC나, 일본과 WBSC가 주도한 프리미어12 모두 주최국에 유리한 일정 편성이나 기형적인 대회 운영으로 뒷말이 많았지만 한국 야구계는 그라운드 밖에서 외교적인 역량을 거의 발휘하지 못하고 어쩔수 없이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모양새였다. 한마디로 이벤트성 국제대회에 지나치게 목을 매는 것이 정작 '남의 잔치를 빛내주는 들러리만 서는' 꼴이 아니냐는 비판이다.

한국야구는 지난 2013년 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사상 최초로 1라운드 탈락이라는 수모를 입었다. 1, 2회 대회의 영광 재현을 기대했던 방송국이나 스폰서 기업들은 중계권료와 마케팅에 엄청난 투자를 했으나 적지않은 손해를 봤다. 이번 대회는 2013년 대표팀보다도 전력적으로는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기대치가 낮아진 상황이다. 예년보다 대표팀에 대한 후원이 저조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기에 최근 사회적으로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 문제 등 어수선한 시국이 맞물리면서 WBC가 큰 화제로 떠오르지 못하는 것도 열기가 뜸한 이유로 거론된다. 메이저리거들의 대거 불참과 오승환-강정호 논란 등으로 WBC 대표팀을 바라보는 회의적인 시선도 늘어났다.

골수 팬들은 WBC 대표팀보다는 오히려 소속팀의 스프링캠프 일정과 차기 시즌 준비과정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아직도 국제대회 성적이 곧 국내 리그의 흥행과 직결된다는 인식과 달리, 2013년 WBC 1라운드 탈락에도 불구하고 KBO리그의 인기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대표팀은 대표팀이고, 리그는 리그라는 인식이 늘어난게 요즘 젊은 팬들의 분위기다.

팬들의 마음을 돌릴수 있을만한 감동이나 변화를 주지못하는 이상 WBC는 앞으로도 진정한 의미의 국가대항전이라기보다는 점점 계륵같은 이벤트로 전락하는 상황을 피할 수 없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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