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터 시티의 감독 클라우디오 라니에니와 주장 웨스 모건이 지난 7일(현지시각) 영국 킹파워 스타디움에서 열린 에버턴과의 경기가 끝난 후, 영국 프리미어 리그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레스터 시티의 감독 클라우디오 라니에니와 주장 웨스 모건이 지난 7일(현지시각) 영국 킹파워 스타디움에서 열린 에버턴과의 경기가 끝난 후, 영국 프리미어 리그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 연합뉴스/EPA


"Yesterday my dream died(어제 내 꿈이 죽었다.)"
by.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2006년, 봉준호 감독이 한강에 괴물이 나온다는 주제로 만든 영화 <괴물>은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후 박명천 감독이 후속작인 '괴물 2'를 제작한다고 밝히면서 또 한 번 많은 이들의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괴물 2'는 몇 년 동안 개봉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2016년,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의 레스터 시티는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프리미어리그 우승에 성공하면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2017년,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이 레스터 시티에서 경질됐다는 뉴스가 보도되면서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필자는 영화 <괴물>과 라니에리의 레스터 시티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레스터의 동화' 후속작은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레스터 시티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와있는 라니에리의 경질 소식

▲ 레스터 시티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와있는 라니에리의 경질 소식 ⓒ lcfc.com


비극으로 끝난 라니에리의 레스터 시티

아침에 눈을 떴다. 그리고 평소처럼 축구 기사를 읽기 위해서 SNS를 확인했다. 스크롤을 내리면서 보였던 기사는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이 레스터 시티에서 경질됐다는 소식이다. 내 눈을 의심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것은 모두 사실이었다.

레스터 시티는 지난 24일(한국시간) 구단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서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을 경질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성적 부진이 라니에리를 경질한 이유였다. 레스터 시티는 이번 시즌 5승 6무 14패로 리그 17위를 기록하고 있다. 강등권에 위치한 헐 시티와 승점은 불과 1점 차이다.

라니에리는 지난 시즌 레스터 시티를 이끌고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프리미어리그 우승에 성공했다. 많은 이들이 '레스터 동화'에 큰 감명을 받았다. 레스터 시티의 위상은 한 시즌 만에 높아졌다. 많은 이들이 레스터 동화의 후속작을 기대했다. 하지만 후속작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라니에리 작가가 레스터 동화에서 떠났기 때문이다.

라니에리파, 레스터 시티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

동화와 현실은 너무나도 달랐다. 동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사람들이 동화 같은 삶을 원하는 이유도 이것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현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는다. 때로는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비극적인 결말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라니에리도 이에 포함되었다.

레스터 시티는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하위권에 위치하던 구단이었다. 하지만 라니에리는 레스터 시티를 이끌고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축구팬들은 이것을 '레스터 동화'라고 부른다. 중요한 것은 동화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점이다. 더 이상 동화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레스터 시티는 불과 한 시즌 만에 제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라니에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강등권 앞에서 라니에리는 순식간에 영웅에서 역적으로 이미지가 바뀌었다. 그리고 경질이라는 비극으로 이야기는 끝이 났다.

하지만 사람들은 레스터 시티가 아닌 라니에리의 편을 들어줬다. 구단에게 역사상 처음으로 리그 우승컵을 안겨다 준 감독에게 한 시즌 부진했다고 무책임하게 경질했다는 것이다. 조세 무리뉴 감독은 라니에리를 상징하는 'CR'이 새겨진 옷을 입고 레스터 시티를 비판했다. 서형욱 해설위원도 "현대 축구와 로맨스의 이별"이라는 말을 기사 제목에 넣으면서 라니에리의 경질을 안타까워했다.

라니에리는 레스터 시티를 사랑했다. 그는 항상 레스터 시티를 가족처럼 생각했다. 라니에리는 경질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그 순간에도 레스터 시티를 계속 사랑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레스터 시티가 라니에리에게 이별을 통보한 것이었다. 라니에리의 프리미어리그 우승은 축구 역사의 한 장면으로 남게 될 것이다. 하지만 레스터 시티가 남게 될지는 의문이다. 먼 훗날 사람들은 레스터 시티가 아닌 라니에리를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레스터 시티파, 여기는 동화가 아니라 현실이다

라니에리의 업적은 위대하다. 하지만 여기는 동화가 아닌 현실이다. 축구는 실리 스포츠이다. 아무리 경기력이 좋다고 할지라도 골을 넣지 못한다면 결국 승리할 수가 없다. 성적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과거에 잘했다고 할지라도 현재에서 못한다면 결국 비판을 받게 된다. 이 부분에서 본다면 레스터 시티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자칫하면 우승한 지 한 시즌 만에 강등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라니에리는 이번 시즌 챔피언스 리그에서 16강 진출에 성공하면서 또 하나의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리그 상황은 정반대였다. 라니에리는 캉테의 대체자로 은디디, 아마티, 멘디를 영입했지만 공백을 채우는 데 실패했다. 또한 여러 번의 전술적 변화를 시도했지만 큰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결국 5승 6무 14패의 처참한 성적과 함께 17위를 기록하고 있는 레스터 시티는 강등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2년 전, 바르셀로나에게 트레블(챔피언스 리그, 프리메라리가, 코파 델 레이)를 안겨다 줬던 루이스 엔리케 감독은 현재 전술적인 문제도 있지만 성적 부진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맨체스터 시티에서 44년 만에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기록한 로베르토 만치니도 성적 부진으로 1년 만에 경질을 당했다. 레스터 시티의 입장에서 본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도 있다. 자칫 잘못하면 리그에서 우승한 지 1년 만에 강등될 수도 있다. 레스터 시티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그리고 그 지푸라기는 새로운 감독을 데려오는 것이다.

라니에리파 VS 레스터파, 과연 그 승자는?

레스터 시티는 '제2의 라니에리'를 찾고 있다. 현재 로베르토 만치니, 프랑크 데 부어, 거스 히딩크, 앨런 파듀 등이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레스터 시티의 감독으로 부임하려는 감독을 하겠다는 사람은 선뜻 나타나지 않고 있다. 만치니는 레스터 시티 감독으로 부임할 생각이 없다는 인터뷰를 했다. 거스 히딩크 역시도 나이 문제로 감독직을 수락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레스터 시티가 라니에리를 무책임하게 경질한 것으로 이미지가 굳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누가 옳을까? 라니에리? 아니면 레스터 시티? 정답은 간단하다. 레스터 시티의 앞으로의 모습을 지켜보면 된다. 만약 레스터 시티가 라니에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어떻게 될까? 라니에리의 업적은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레스터 시티가 비판을 받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다시 레스터 시티에 열광할 것이다. 반대로 레스터 시티가 계속해서 부진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레스터 시티는 평생 라니에리를 무책임하게 경질했다는 비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레스터 동화는 끝났다. 하지만 후속작이 곧 나올 예정이다. 물론 전혀 다른 내용으로 이야기는 시작될 것이다. 라니에리가 옳았는지, 아니면 레스터 시티가 옳았는지는 나중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레스터 동화의 후속작을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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