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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는 노동시장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졸업 후 안정적인 직장을 잡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은 사라진 지 오래다. 국가는 공기업을 매각했고, 대기업은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을 채용했다. 노동시장은 경직됐고, 저마다 공무원 아니면 전문직으로 눈길을 돌리게 되었다.

그러면서 갑자기 급부상한 직종이 있었으니, 바로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가 그랬다. 그러나 유망 직종이라는 기대와 달리 실제론 낮은 임금과 고된 노동으로 인식되어 요즘은 임상에 나가기를 꺼려하는 졸업생들이 많다고 한다.

필자는 1월 24일 오마이뉴스에 '6개월 기다려 입원, 3개월 후 쫓겨나는 아이들'이란 주제로 문헌고찰을 이용, 재활난민에 대한 글을 기고하였다. 오늘은 재활병원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심층적으로 다뤄보고자 한다. 이에, 금천 수 요양병원에서 전국 최초로 치료사 노동조합을 결성, 활동하고 있는 심희선 지부장과 김지윤 사무장을 2월 22일 강남의 한 중식당에서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노동조합 결성

노동조합이 결성된 것을 축하하고 있다.
▲ 노동조합 결성 노동조합이 결성된 것을 축하하고 있다.
ⓒ 김지윤 페이스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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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직업은 다름 아닌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이다. 주위 사람들은 전문직이며, 안정적인, 정년까지 할 수 있는 직업이라 얘기한다. 하지만 실제 이들을 포함한 많은 치료사들은 이런 인식에 강한 거부반응을 보인다. 불합리한 의료수가, 공장처럼 환자를 돌리는 시스템, 낮은 임금과 불합리한 처우. 이런 현실은 직접 겪어본 사람만 안다고 한다. 

심희선 지부장은 "노동조합 설립 전에는 이곳에서 근무하는 치료사의 근속 연수가 3,4년 밖에 되지 않았고, 대부분 5년차 이하" 였다며, "연차가 쌓여갈수록 높아지는 임금 때문에 권고사직을 제안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한 "하루에 13명의 중추신경계 환자를 치료하다보면 금방 지치고 피로가 쌓여 근골격계 질환에 노출되는 일이 많았다"고 했다. 이어 "몇 몇 치료사들이 이미 추간판 탈출증(디스크)과 골절을 비롯한 여러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심 지부장은 "열악한 상황을 개선, 치료사들이 오래 일할 수 있는 직장을 만들자고 여러 차례 병원에 의견을 전달했지만 묵살됐다"고 아쉬움을 표현했다. 그래서 "1년이 넘는 준비기간을 거쳐 30명의(당시 전 직원 130명) 뜻있는 치료사들이 2015년 4월, 역사적인 노동조합을 탄생시킨 것"이라고 힘주어 강조했다.

하지만 뜨거운 열정과 해냈다는 환호도 잠시. "일주일 후에 70여명의 다른 직원들이 또다른 노조를 출범시켰고,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소속인 이들은 소수노조라는 이유로 교섭에서 제외되었다"며 이 당시 상황을 떠올리던 심 지부장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물리치료, 작업치료사의 근무여건은 실제로 어떨까

이경숙 외 2명의 학술논문 '노인요양시설 물리치료사의 근골격계 통증과 직무만족도의 관련성 연구(2012)에서는 전체 대상자(173명)의 83.4%(146명)가 근골격계 통증을 느끼고 있다고 보고되었다. 또한 연봉은 2000~2500만원 미만이 가장 많았고, 일일 치료환자 수는 10명 이상 ~20명 미만이 가장 많았다. .

허윤정의 석사논문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의 감정노동이 우울에 미치는 영향(2015)' 에 따르면 전체 조사자 891명의 치료사 중에 약 24.7%인 220명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보고되었다.

이처럼 물리, 작업치료사의 근무 여건은 열악한 편이다. 그들은 육체노동자이며 동시에 감정노동자이다. 청년 시절엔 낮은 연봉으로 인해 미래를 꿈꾸기 어렵고, 연차가 높아질수록 이직의 기회가 오히려 줄어들어 다른 길을 모색해야하는 상황도 생긴다. 이것은, 치료의 질보다 행위별 수가제를 앞세워 양적 치료를 선호하는 의료기관의 생존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야 병원에선 돈벌이가 되니까. 따라서 환자 입장에선 양질의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결과를 살펴보았듯이 이러한 열악한 근무여건은 왜 우리나라가 '헬조선'으로 불리는지를 가늠케 하는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겠다. 전문직이며 안정적이라던 의료기사 직도 '헬조선'의 범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강남의 한 중식당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들은 하소연 하듯 말을 이어갔다.

한걸음 더 들어가는 인터뷰

(좌) 심희선지부장 (우)김지윤 사무장이
그들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 금천 수 병원 노동조합 간부. (좌) 심희선지부장 (우)김지윤 사무장이 그들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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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물리, 작업치료사가 되었나?

심희선 지부장(이하 '심') : "집안 살림이 그리 넉넉하지 못했어요. 빨리 돈을 벌어 독립하고 싶은 마음이 컸죠. 가족들에게 의지하기보다 내가 벌어 내가 헤쳐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선택한 직업인데, 진로를 선택할 때만 해도 굉장히 유망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김지윤 사무장(이하 '김') : "사실 점수에 맞춰서 대학에 입학했어요. 그리고 입학 당시엔 이쪽 계통이 유망하다고 했고요. 근데 지금 돌아보니 유망하다는 거에 따라서 진로를 결정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 학생 때 가졌던 치료사에 대한 느낌과, 지금의 느낌은 어떻게 다를까?

김: "이건 내가 얘기해야겠네요. 학생 때는 사실 아무것도 모르죠. 감도 안 왔어요. 근데 실제로 취업이 돼서 치료사로 일을 해보니 여러 가지 달라 보이더라고요. 하루에 13타임씩이나 환자 몸을 계속 만지니까 치료하는 게 노가다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주말에는 몸이 늘 아팠고, 나중에는 일하는 게 점점 두려워지더라고요. 그러다 허리디스크가 생겼어요. 직업자체를 어떻게 바꿔야하나 고민되더군요.

심: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직업에 대한 안정감이 없다는 것이죠."

- 지금이 첫 직장인가요? 두 번째 직장이라면 첫 직장에 대한 느낌은 어땠나요?

심: "지금의 병원이 첫 직장은 아니었어요 .첫 직장은 시골마을 요양병원이었는데, 치료사들 간에 사이도 좋고 일이 힘들지 않았어요. 여유가 있었어요. 하지만 치료를 한다는 느낌보다 돈벌이를 위해 존재하는 인원 같았습니다. 결국 현실에 안주하는 느낌이 싫어서 퇴사했어요."

김: "전 여기가 첫 직장입니다. 그럼 제 얘기를 해야겠네요. 1,2년 차 때는 이것이 사회생활이라 생각했어요. 왜 그런 말 있잖아요.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저는 그 말만 믿고 꾸역꾸역 버텼어요. 열심히 하면 병원이 알아줄 거라 생각했죠.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병원 시스템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다른 병원 친구들과 대화를 통해 무엇이 문제인지 알게 됐죠.

가령 저는 월, 금은 원래 휴가를 못 쓰는 줄 알았어요. 알고 봤더니 월, 금도 쓸 수 있는데 강제적으로 못쓰게 했던 거였어요. 정말 무지했음에 제 가슴을 쳤죠. 그때부터 깨달았어요. 하고 싶은 얘기, 정당한 얘기는 요구하자고요.  암튼 지금은 연차를 월, 금도 쓸 수 있게 됐어요. 저희는 매 달 과비를 걷어요. 그것도 마찬가지로 정당하게 얘기했더니 회비 내역서가 매달 붙더라고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바보같이 아무 말 못하고 충성하는 것. 이것처럼 미련한 게 없어요. 성인인데 할 말은 해야죠."

- 현 직장에서의 문제점으로 노동조합을 만들었는데 절망스러웠던 경험이 있다면?

심: "제 2 노조가 생기면서 우리가 소수노조라는 이유로 교섭권을 잃었을 때 화가 났어요. 근데 거기서 끝나지 않았어요. 저희 조합원들을 왕따 시키고, 괴롭히고, 결국은 몇몇 직원이 못 버티고 나가게 되었을 때,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한없이 부끄럽고 속상했습니다. 지부장인 저로선 지금도 분노가 치밀어요. 어떤 조합원들은 정신상담이 필요해보이기도 했어요."

김: "저도 지부장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어린 조합원이라고 함부로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진저리가 났어요. 사람의 민낯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 SNS를 비롯하여 여러 언론에 출연하여 부당함을 알리곤 하셨습니다. 이에 대한 효과 혹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이었을까요?

김: "주로 페이스북에 많이 올렸죠. 반응이 좋았어요. 그때 저희처럼 힘없이 아무 말 못하고 응어리로 간직하고 있는  젊은 치료사들이 많다는 걸 알았죠. 다른 재활 병원에서도 노조를 설립하고 싶다는 상담문의가 많이 와요. 자신들이 일하는 병원의 열악한 근무여건, 특히 지방의 소규모 병원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듣게 됩니다. 이렇게 공감대가 형성되는 거죠."

심:" 그렇죠, 결국은 공감과 소통인 것 같아요. 외로운 치료사들, 같이 힘을 모아야죠."

- 물리치료, 작업치료의 미래는 있다? 없다? 없다면 해결책은?

심: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대로 둔다면 미래는 없다고 봐요. 지금보다 더 안 좋아지겠죠.
노동자임을 인식하고 노동자의 시선으로 우리의 권리요구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또한 오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내야 해요. 이기적인 생각이 아니라 사회전반에 이로운거죠. 노동조합이 사회전반에 이롭다는 것은 이미 여러 연구에서 증명된 거 아닌가요?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많은 이들이 가입해야 합니다."

김: "학교에선 왜 노동법을 가르쳐주지 않을까 생각해봤어요. 분명 노동법을 가르쳐준다면 졸업하는 친구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학술적인 것만으론 미래가 있다고 얘기할 수 없어요. 모두가 이로운 방향으로 가야 미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노동조합을 하면서 정치에 눈을 뜨신 것 같습니다. 정치에 대한 느낌, 그리고 다음 정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심: "정치가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크죠. 사실 그리 어렵지 않은 것인데 경제학처럼 어렵게 만들어놓거나, 혹은 다가가지 못하게 해놓은 느낌이 듭니다. 예전엔 정치는 정치인이나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어요. 지금은 생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정치에 관심을 꼭 가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생활, 나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다음 정권에서는 이런 부분을 꼭 다뤄줬으면 좋겠어요.

0세~청소년까지의 장애인 비장애인들의 재활치료는 무료로 한다.
장애 아이들의 필요에 따라 작업치료사들을 배치하고 이는 정규직으로 한다 .
지역 인구에 비례하여 보건소마다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를 배치해 지역주민/노동자들의 재활과 예방치료에 힘쓴다.

즉 의료가 공공의 범주에 들어가는거에요. 공공의 범주에 들어가야 차별 없는 의료지원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재활치료는 장애인/비장애인 혹은 지역/빈부/학력/연령/병명에 상관없이 본인의 요구에 따라 차별 없이 지원해야 한다고 봅니다. 다음 정권에서는 이런 부분을 꼭 참고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김: " 예전엔 정치혐오에 빠져 있었죠. 노동조합을 만들기 전에는요. 그런데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보니, 이놈의 정치가 우리가 먹는 밥 한 숟가락과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적극적으로 공부하고 참여하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이걸 어떻게 쉽게 풀어내서 친구들과 공유할 수 있을지 고민해봅니다. 그리고 처음 집회 갔던 날을 기억해요. 내가 이 사회의 구성원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죠. 말이 길어졌네요. 다음 정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 그리고 일부 부패한 기업을 제재할 수 있는 법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직접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길도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정치는 먼 곳에 있지 않아요. 더 가깝게 만들어야죠."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심: "젊은 치료사들이 함께 연대해서 헤쳐 나갈 수 있는 플랫폼이 있었으면 합니다. 예전부터 생각한 게 있어요. 치료사들이 함께 뭉쳐 같이 고민하고 같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일이요. 예를 들어 '일하는 청년들의 모임' 같은 걸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인터뷰를 하는 내내 이들의 표정은 진지했다. 단지 자신이 일하는 환경에서 느낀 부당함으로 시작했을 뿐인데, 이들은 어느덧 나라를 걱정하고 있다. 그리고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고 있다. 인터뷰를 통해 '헬조선' 에 살고 있는 젊은 치료사들의 삶도 녹록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태그:##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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