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극장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문화계 블랙리스트 부역자 김세훈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서병수 부산시장 사퇴 및 구속수사 촉구 영화인 선언'에서 류승완 감독이 발언하고 있다.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극장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문화계 블랙리스트 부역자 김세훈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서병수 부산시장 사퇴 및 구속수사 촉구 영화인 선언'에서 류승완 감독이 발언하고 있다. ⓒ 성하훈


 7일 오전 서울 아트시네마에서 열린 '문화계 블랙리스트 부역자 김세훈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서병수 부산시장의 사퇴 및 구속수사를 촉구하는 영화인 1052명 선언'이 진행됐다.

7일 오전 서울 아트시네마에서 열린 '문화계 블랙리스트 부역자 김세훈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서병수 부산시장의 사퇴 및 구속수사를 촉구하는 영화인 1052명 선언'이 진행됐다. ⓒ 성하훈


"개인적으로 블랙리스트가 최근 일이 아니라는 걸 느낀다. 2010년에 <부당거래>를 만든 이후 해외영화제에 나가면 담당 프로그래머가 굉장히 곤란을 겪었다고 들었다. 그 이후 실체가 드러났지만 놀라진 않았다. 그렇다고 괜찮은 상황이란 건 아니다. 광화문에서 빨갱이 리스트를 관리하는 게 뭔 죄냐고 하는 분들이 몇 명 있던데 굉장히 큰 죄가 맞다! 국민의 주권을 빼앗고,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를 모두 훼손시키는 일이다. 학교에서 몇 사람 왕따 시키는 것도 큰일인데 하물며 이건 국가가 (국민을) 왕따 시키는 거잖나!"

류승완 감독의 말에서 결기가 느껴졌다. 어디 그뿐일까. 7일 오전 서울 아트시네마에서 가칭 블랙리스트 대응 영화인 행동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명부에 이름을 올린 영화인만 1052명, 상업영화 감독부터 독립영화감독, 제작자, 극장주, 배급사 관계자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이들의 목표는 분명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문화계 인사들의 전 방위적인 검열 및 배제 작업 책임자들의 사퇴 및 구속 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이미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아래 문체부) 장관, 조윤선 문체부 장관, 김종 전 문체부 2차관 등이 구속되거나 수사를 받았으나, 영화인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사실상 블랙리스트대로 정부에 부역한 김세훈 영화진흥위원회장(아래 영진위)과 서병수 부산시장의 사퇴 및 구속수사를 촉구했다.

박근혜 전부터 존재한 블랙리스트 

영화인들은 현존하는 블랙리스트를 국가가 주도한 명백한 주권 침탈 행위이자 검열 행위로 규정했다. 최근에야 그 실체가 드러나긴 했지만 이미 이명박 정부 때부터 알게 모르게 영화계 전반에 영향을 줬다는 게 이번 촉구 선언의 핵심이었다. 가칭 '블랙리스트 대응 영화인 행동' 임시공동대표인 고영재 한국독립영화협회 대표는 "영화인들 최소한의 자존심을 이 정권이 뭉갰다"며 "언론에 보도된 이들만 피해자가 아닌 모든 영화인이 블랙리스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언론에 이름 오르내린 분들 입장은 감히 상상하기 힘든 수준"이라 운을 뗐다.

고 대표는 김영한 전 민정수석 비망록, <변호인> <판도라> 등 일부 상업영화의 모태펀드 배제 사건, 그리고 세월호 참사 이후 대거 등장한 영화계 인사들의 블랙리스트 등록 사건을 들며 이런 검열과 압력이 하나의 주체가 아닌 문체부, 영진위, 부산시 등에서 전 방위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불안한 외출>의 김철민 감독, <자가당착>의 김선 감독 등은 영화인 블랙리스트가 수면 위로 떠오른 계기인 <다이빙벨> 이전부터 있었음을 설명했다. 해당 작품으로 이명박 정권을 풍자한 김선 감독은 영상물등급위원회(아래 영등위)로 부터 '정치적 불손함', '국가원수를 죽이려는 살인무기 같은 영화'라는 이유로 사실상 극장 상영 금지에 해당하는 제한상영가 등급을 두 차례나 받았고, 결국 완성 이후 6년이 지난 2015년에야 영화를 개봉시킬 수 있었다.  

"인형과 사진으로 만든 애니메이션 영환데 거기에 폭력성을 들이대니 황당했다. 제한상영등급을 받았을 땐 상영불가는 확실히 부당했지만, 스스로도 농담이 정말 과했는지에 대해선 반신반의했는데 블랙리스트 사건이 터지며 그것도 아니라는 걸 확신했다. 이 정권은 자신들에게 반하는 어떤 행동도 못하게 하려는 상식 밖의 존재라는 걸 알게 됐다. 사실 이 영화에 이명박은 거의 나오지 않으며 박근혜가 대선 후보였음에도 원수라 칭하는 공공기관이 참 이상하게 보였다." (김선 감독)

<천안함 프로젝트>(2013)의 백승우 감독 역시 "당시 개봉 직후 다양성 영화 부문 1위여서 주변에선 잘 풀릴 거란 얘길 했는데 갑자기 제작사로부터 전화가 와 극장에서 영화를 다 내릴 거란 얘길 들었다"며 "이해가 안 됐다. 상황이 이해돼야 화가 날 텐데, 지금도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다"라고 공식적으로 법적 대응 계획을 밝혔다. 

 7일 오전 서울 아트시네마에서 열린 '문화계 블랙리스트 부역자 김세훈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서병수 부산시장의 사퇴 및 구속수사를 촉구하는 영화인 1052명 선언'이 진행됐다.

7일 오전 서울 아트시네마에서 열린 '문화계 블랙리스트 부역자 김세훈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서병수 부산시장의 사퇴 및 구속수사를 촉구하는 영화인 1052명 선언'이 진행됐다. ⓒ 성하훈


극장까지 뻗은 마수

비단 독립영화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영진위는 2014년 이후 예술전용관지원 사업에서 심사위원들의 높은 점수를 받은 극장을 오히려 배제하고, 다른 극장을 지원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였다. 또한, 부산국제영화제는 <다이빙벨> 상영으로 서병수 부산시장과 갈등을 빚었으며, 예산 삭감과 집행위원장 등 전직 실무진의 고발로 파행 운영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안소현 인디스페이스 사무국장은 "<자가당착> <천안함 프로젝트> <불안한 외출> 등을 상영했는데 그 뒤로 휴관 위기를 겪었다"며 "영진위는 청와대 지시로 철저하게 독립영화관 지원 사업을 파행 운영했다"고 호소했다.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는 "2년이 넘게 싸웠는데 영진위와 부산시는 집요하게 보복했다"며 "이 과정을 겪으며 조폭들이 할 만한 보복을 그들이 한 것이다. 영화를 지킨다는 게 새삼 어려운 일임을 느끼고 있다"고 발언했다. 남 프로그래머는 "누가 어떤 식으로 영화제를 탄압했고, 보복했는지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며 "반대 세력을 누르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반헌법적이고 비상식적인지, 또 중대한 범죄인지 깨닫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최근 언론을 통해 폐업 위기가 알려진 독립 다큐멘터리 제작사 시네마달의 김일권 대표는 "예술영화관 탄압을 책임지고 집행한 이가 김세훈 영진위원장이다. 서병수 부산시장도 두말할 것 없다"며 "이들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문체부, 영진위 실무자들이 대거 좌천되거나 심지어 징계 이후 목숨을 잃기도 했다. 이용관 전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비롯해 억울하게 좌천된 사람들은 '영화인 쉰들러 리스트'라도 만들어 복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은 블랙리스트에 들어도 상관없다고 말한 이도 있었다. 독립예술영화 전용관 아트 나인과 독립영화 배급사 엣나인 필름의 정상진 대표는 "영진위의 지원 사업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아예 신청을 안 했었다"며 "난 괜찮지만, 우리 회사가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실이 충격이었다. 같이 일하고 있는 동료들과 그분들 가족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라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독립영화는 직접, 상업영화는 은밀하게 죽여"

 7일 오전 서울 아트시네마에서 열린 '문화계 블랙리스트 부역자 김세훈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서병수 부산시장의 사퇴 및 구속수사를 촉구하는 영화인 1052명 선언'이 진행됐다.
ⓒ 성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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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이 독립영화진영엔 관계 당국이 직접 압력을 행사한 정황이 분명했다. 같은 맥락에서 정권 비판적 영화를 제작한 상업영화엔 '은밀한 압력'이 있다는 사실이 관련자의 입을 통해 공개됐다. 앞서 언급한 모태 펀드 투자 배제가 이런 사례에 해당한다.

영화 <일급기밀>을 제작한 안영진 미인픽쳐스 대표는 "<변호인> <판도라> 등 정부에서 보기 불편할 영화들이 모두 모태 펀드 투자가 거부됐다"며 "독립영화 쪽과 달리 이쪽엔 증거도 남지 않는다. 펀드 심사를 한 사람은 있는데 의견서 등이 없기 때문"이라 안타까움을 표했다. "자본으로 하는 사전검열이 무서운 건 감독과 작가의 상상력을 초기 단계부터 발휘 못 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며 안 대표는 "상상력은 그 누구도 제한하면 안 된다. (관계자 처벌을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 각오를 다졌다.

기자회견 직후 여성영화인 모임, 한국영화감독조합, 한국독립영화협회, 전국영화산업노조 등 영화인 직능 단체 연합은 김세훈 영진위원장과 서병수 부산시장의 사퇴와 구속 수사를 촉구하는 선언문을 낭독했다. 프로그래머 개인 자격으로 이름을 올린 부산국제영화제 측도 추가 고발 때 공식적으로 연명할 예정이다.



블랙리스트 류승완 서병수 영화진흥위원회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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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영화(독립영화, 다큐멘터리, 주요 영화제, 정책 등등) 분야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각종 제보 환영합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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