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핥기 이슈만 쫓지 않습니다. '필인더스트리'는 영화, 가요, 방송 등 문화산업 전반에 걸친 구조 문제를 바라보고,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마블코믹스 캐릭터 중 하나인 블랙 팬서의 모습.

▲ <시빌 워> 속 블랙 팬서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 처음 등장했던 마블 코믹스 캐릭터 '블랙 팬서'. 그가 주인공으로 나선 단독 타이틀 영화가 제작되고 있는 중이다. 오는 2018년 2월 개봉 예정.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지난 1일 월트디즈니코리아와 부산시가 발표한대로 할리우드 마블 스튜디오가 제작하는 <블랙 팬서>의 국내 로케이션 촬영이 예정돼 있다. 발표에 따르면 오는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2주간, 약 700여 명의 인원이 부산 광안리 일대와 자갈치 시장 부근에서 영화의 일부 장면을 촬영하게 된다.

여러 언론에서 이를 다뤘다. 대체로 2014년 <어벤져스2>의 서울 로케이션을 상기시키며 필요 이상으로 호들갑을 떨어선 안 된다고 보도했다. 경제적 효과가 관계 당국의 예상에 훨씬 못 미친다는 이유다. 나아가 부산국제영화제를 망가뜨리고 현재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일부 연계 의혹을 받는 서병수 부산시장이 앞서 자랑스러워 할 일이냐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진짜 핵심은 따로 있다 

일견 타당한 지적이다. 지난해 말 부산시는 마블 스튜디오 스태프 일부를 초청해 부산 로케이션의 필요성을 전했고, 이달 말 일종의 <블랙 팬서> 간담회를 열 정도로 정성을 보이고 있다. 반면 부산시의 전반적인 문화 예산 및 정책은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있었다. 동시에 정권 입맛에 안 맞는 영화에 대해선 지원과 상영을 방해하는 '검열'이 횡행했다는 점에서 그 관련자 중 하나인 서병수 부산시장의 이런 행보는 충분히 낯뜨겁다.

동시에 이번 사안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 또 있다. 바로 해외영화의 국내 로케이션 유치에 우리의 준비가 철저히 돼 있는지 여부다. 여기엔 사업 선정을 비롯해 후 평가까지 포함된다. 다시 말하면 "<어벤져스2> 촬영으로 4000억 원의 직접 홍보 효과와 2조 원의 국가브랜드 가치 상승이 기대된다"던 한국관광공사 측 발언이 과연 맞았는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식의 유치 경쟁은 본말의 전도라는 뜻이다.

현재까지 진행된 외화의 국내 로케이션은 영화진흥위원회가 주체인 '외국 영상물 로케이션 인센티브 지원 사업'에 해당한다. 국내 촬영일수와 국내 집행비 수준에 따라 한국에서 쓴 총비용 중 최저 20%에서 최고 30%까지 해외영화사에 돌려준다. 국가 브랜드 이미지 제고와 관광객 유치 등이 목적이다. 외화뿐만 아니라 <도전! 슈퍼모델> 같은 미국 인기 예능 프로도 이 사업을 이용해 제작비 일부를 받아갔다. 해당 사업의 예산은 모두 극장에서 거둔 영화발전기금(아래 영발기금)이 아닌 문화체육관광부의 관광기금에서 출현한다.

영진위에 확인한 결과 현재 이 사업은 최저 20%에서 25%까지로 지급 단계가 바뀌었으며, 최대 지원금액도 20억 원으로 제한하는 쪽으로 수정된 상태다. "독립영화 제작지원 등엔 소극적이면서 오히려 해외영화의 예산을 보존해준다"며 일각에서 지적한 이른바 '역차별 논란' 등에 대한 반작용으로 보인다. 국내 로케이션의 첫 외화였던 <어벤져스2>가 당시 약 100억 원을 쓰고 26억 원을 돌려받았다면, <블랙 팬서>는 바뀐 기준이 적용돼 아무리 많이 받아도 20억 원까지만 환급받는다.

서로 다른 시선

카메라 보며 웃음짓는 크리스 에반스 4일 오전 서울 상암동 DMC 월드컵북로에서 '캡틴 아메리카' 복장을 한 할리우드 스타 크리스 에반스가 참여한 가운데 <어벤져스2> 촬영이 진행되고 있다. 이날 촬영은 언론에 전면 공개되었다.

▲ 카메라 보며 웃음짓는 크리스 에반스 지난 2014년 4월 서울 상암동 DMC 월드컵북로에서 '캡틴 아메리카' 복장을 한 할리우드 스타 크리스 에반스가 참여한 가운데 <어벤져스2> 촬영이 진행되던 모습. ⓒ 권우성


해당 사업에 대해 한 독립영화제작자는 "<어벤져스2> 이후 과연 관광 유치 효과가 있었는지에 대해 의문"이라며 "<반지의 제왕>을 유치한 뉴질랜드야 충분히 먹고 살 동력이 됐는데 같은 서구권이고 경관의 특징이 뚜렷한 그곳에 비해 한국은 그 특징을 (서양 작품엔) 담기기 쉽지 않다"고 운을 뗐다.

이 관계자는 "로케이션 이후 평가가 정확히 된 부분이 있나"라고 반문하며 "촬영 이후 정말 한국과 서울이 알려졌는지, 또 당시 촬영 장소는 지금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관광 상품으로써 그 근거가 미약했고, 평가 기준 역시 모호했다는 의미다.

이 관계자는 "한국영화가 지방으로 로케이션을 갈 때 각 영상위원회에 숙박, 음식, 인건비 등을 다 영수증 등으로 증빙하듯 외화 역시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다"며 "한국을 로케이션 장소로 정하고 대규모의 인원이 찾는 건 분명 긍정적이지만, 그것에 대한 세부적인 증빙 근거가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다소 다른 의견도 있다. 최현용 한국영화산업전략센터 소장은 "사업 자체는 적절하다고 본다"고 의견을 전했다. 최 소장은 "한국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국가에선 영상위원회(한국의 영화진흥위원회 격)가 관광청 소속"이라며 "영발기금이 아닌 관광 유치를 목적으로 한 관광기금을 쓰는 것이기에 목적에 맞고, 다만 여러 편을 유치해야 하고 예산도 지속적으로 증액돼야 한다. 지금은 초기라 가시적 성과는 안 보이겠지만 이런 것들이 하나씩 쌓여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 소장은 "오히려 관광 사업으로 하는 건 문제가 없는데 여기에 자꾸 국내 영화 쪽과 연계시키려 하는 시도가 문제 소지가 있다"며 "해당 외화의 후반 작업을 유치한다든가 하는 숟가락을 얻는 시도는 (규정과 사업 목적상) 문제가 될 것"이라 설명했다.

사업의지는 있으나 예산은 줄어

이러한 지적에 대해 사업 주관인 문화체육관광부(아래 문체부) 측은 "<어벤져스2> 촬영지가 대교 위나 지하철역 부근 등이라 관광 상품을 위해 보전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며 "정책 홍보 자료에 당시 유치에 대한 평가 일부가 나와 있다"고 밝혔다.

해당 자료 확인 결과 문체부는 "<어벤져스2>의 경제파급효과는 2010년 산업연관표 기준으로 국내 산업 생산 유발 효과 251억 원, 부가가치유발 효과는 약 107억 원"이라 분석했다. 비용 보전 기준에 대해서 문체부 측은 "(국내 영화 로케이션 지원과 마찬가지로) 인센티브 비용인정 기준에 따라 증빙 자료를 받고 있고 거기에 대한 감사까지 받고 있다"고 밝혔다. 관광 상품화에 대해 문체부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는 관광 자원화가 상대적으로 쉽지만, 액션, 스릴러 장르는 상품화하기 어렵다"며 "로케이션 지원 결정 시 제작사와 협의하지 못하고 있음을 이해하여 주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어벤져스2> 촬영중, 상암동 DMC도로 전면 통제 4일 오전 서울 상암동 DMC 월드컵북로를 통제한 채 3일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어벤져스2> 촬영이 진행되고 있다.

▲ <어벤져스2> 촬영중, 상암동 DMC도로 전면 통제 2014년 4월 진행된 영화 <어벤져스2>의 서울 상암동 촬영 모습. ⓒ 권우성


관광상품화 및 평가 여부를 더욱 정확히 듣기 위해 실무진인 한국영상위원회에 문의했다. 한국영상위원회 측은 "<어벤져스2> 관련 특별히 관광 상품화된 건 없는 거로 알고 있다. 그것보단 경제적 효과가 있는 셈"이라며 "이와 함께 해외 마켓에서 <어벤져스2> 촬영지로서 한국에 관해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늘었다"고 답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영국이나 프랑스는 해외 로케이션 유치 역사가 길기에 관광 상품 등 평가가 가능하지만 우린 이제 시작이라 경제적 효과 정도만 따질 수 있는 정도"라며 "관광 효과는 단기로 나오는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2014년에 비해 오히려 올해 예산이 줄어 어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라 덧붙였다.

문체부 문의 결과, 관광기금에서 로케이션 지원 사업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4년 51억 1700만 원(전체 기금 중 0.6% 수준)에서 2017년 19억 5200만 원(전체 기금 중 0.2% 수준)으로 약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사업에 대한 의지는 보이나 관련 예산 지원 및 관련 인프라는 아직 걸음마 수준인 셈이다.

블랙 팬서 어벤져스 문화체육관광부 영화진흥위원회 마블코믹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