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구청 앞에 설치된 광고판에는 "구청에 와서 생떼거리를 쓰는 사람은 민주시민 대우를 받지 못하니 자제해달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지난 2007년 10월, 용산구청 앞에 설치된 광고판에는 "구청에 와서 생떼거리를 쓰는 사람은 민주시민 대우를 받지 못하니 자제해달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 이경태


집을 나선다. 반듯하게 놓인 남부순환로 양쪽으로 부동산이 줄지어 있다. 아파트 단지에는 재건축과 관련된 펼침막이 곳곳에 펄럭인다. 길 건너 단지는 한창 공사 중이다. 이미 두 단지가 재건축을 마쳤다. 공사장을 둘러싼 펜스에는 새로운 아파트 조감도가 붙어있다. 고개를 돌린다. 매일 같이 오가는 지하철역 뒤로 타워팰리스가 높이 솟아 있다, 하늘을 찌를 듯이.

뉴스는 재건축과 부동산 이야기로 가득하다. 오르내리는 숫자에 입꼬리도 함께 올라갔다가 내려오길 반복한다. 더 높은 곳을 향한다. 부동산을 통한 계급상승은 모두의 꿈이 됐다. 욕망의 고공행진은 좀처럼 멈출 줄 모른다.

오래된 일이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늘에 닿고자 했다. 신은 이에 분노하여, 본래 하나였던 언어를 여럿으로 나누어버렸다. 서로의 언어가 달라진 탓에 인류 최초의 고층 건축물 바벨탑 건축은 오해와 불신 속에서 막을 내렸다.

그림자들의 섬, 영도

 85호 크레인에서 내려오는 김진숙.

85호 크레인에서 내려오는 김진숙. ⓒ (주)시네마달


모두가 하늘을 오를 때, 누군가는 땅을 그리워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소금꽃 나무>라는 책이었다. 절반 정도를 읽었을 때쯤, 그녀의 이름이 뉴스를 채웠다. 책 표지의 모습과 달리, 그녀의 머리는 하얗게 세 있었다. 역시 표지와 달리 밝게 웃는 모습이었다.

306일, 그녀가 홀로 하늘에 떠 있던 시간.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사용자 측에서 일방적으로 정리해고를 당했다. 땅에서는 목소리가 닿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은 모르거나, 모른 척했다. 굴뚝을 오른 이유다. 시간의 높이를 쌓자, 답이 돌아왔다. 그 후로도 둘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했다, 마치 다른 언어처럼.

영화 <그림자들의 섬>은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카메라는 농성장인 동시에 그들의 삶의 터전인 공간을 비춘다. 매일 매일을 스케치한다. 동료의 죽음에 침묵해야 했던 일상에서 햇볕에 몸을 누이는 작은 행복은 오래전 읽은 그녀의 문장 사이사이에 들어가 박혔다.

2009년, 용산

 그곳에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사람이 죽었다.

그곳에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사람이 죽었다. ⓒ (주)시네마달


권력도 돈도 없어서 하늘을 향한 사람도 있었다. 2009년, 용산구의 한 건물에서다. 도시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됐다. 땅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자리를 지키던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구청 측에서 제시한 보상액은이 턱없이 부족했다. 생계를 이어갈 수 없었다). 농성자들은 마지막 남은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옥상에 올랐다. 망루를 짓고 더 높이 올라가서 소리쳤다. 망루에 불이 붙었다. 어렵사리 하늘에 올랐지만, 돈도, 권력도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뜨거운 열기에 뛰어내렸다. 진압과정에서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했다. 남겨진 자들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했다, 마치 다른 언어처럼.

영화 <두 개의 문>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발언으로 문을 연다. 법과 질서를 지킴으로 경제성장을 이루겠다고 말한다.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행위는 '생떼'로 일축한다. 당시 용산 구청에는 '구청에 와서 생떼를 쓰는 사람은 민주 시민 대우를 받지 못하니 제발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렸었다.

이후 <두 개의 문>은 진압 전후 상황에 대해 농성자와 경찰 양쪽의 의견을 균등하게 다룬다. 진압 작전에 동원된 가해자의 진술에 주목한다. 짧은 작전 시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구조 등이 진술을 통해 드러난다. 법정 진술과 언론 보도를 통해, 경찰 대 농성자 구도를 벗어난다. 공권력의 폭력에 희생된 전경과 농성자 목소리를 담담하게 지켜본다.

그리고 오늘

시간이 흘렀다. 용산 개발은 돈 문제로 흐지부지되었다. 8년이 지난 지금, 6명이 목숨을 잃은 자리는 주차장으로 활용 중이다. 노동환경도 나아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여전히 목소리를 내기 위해 하늘을 오른다. 아이러니하게도, 더 높이 더 오래 올라야 한다. 그제야 주목한다. 이마저도 기록 경기가 되었다.

그림자들의 섬 두 개의 문 용산참사 한진중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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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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