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명절 연휴가 지나면 어떤 영화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나가 화제 된다. 온 가족이 다 함께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오락거리로 영화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이번 설에는 남북한 최초 공조 수사를 다룬 <공조>가 최후 승자가 되었다. 31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달 27일부터 29일까지 <공조>와 <더 킹>은 각각 193만3458명, 124만9861명의 설연휴 관객을 끌어 모았다.

그렇지만 내 마음 속의 승자로는 <위켄즈>를 꼽아본다. 영화 이름을 처음 들어본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럼 이 영화가 설 연휴기간 동원한 관객수는 얼마일까? 대략 300명 정도이며, 현재 누적 관객 수 4300명이다. 숫자로는 앞서 <공조>와 <더 킹> 두 영화의 한 관 관객수만도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작년 12월 22일 개봉했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5천 명이 넘지 않는 영화가 한 달 넘게 선전하면서, 무엇보다 설 연휴 기간을 넘기면서 상영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 주목하는 건 단지 치열한 시장 경쟁에서 한 틈새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이 영화에는 게이들의 이야기가 오롯이 담겼다. 4300명이라는 숫자가 이들의 삶을 이해하고 응원하는 숫자라는 점을 되새겨 본다면 큰 성과이다.

 위켄즈는 13년이 넘는 한국의 게이 코러스를 다룬 뮤지컬 다큐멘터리다.

위켄즈는 13년이 넘는 한국의 게이 코러스를 다룬 뮤지컬 다큐멘터리다. ⓒ 무브먼트


게이들의 사랑, 일 그리고 삶     

<위켄즈>는 게이 코러스 지보이스(G-voice)에 대한 다큐멘터리이다. 지보이스는 2003년 한국에서 처음 결성되어 현재까지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게이 합창단이다. 게이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들까? <마녀사냥>에 홍석천이 나와 '탑게이'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하고, 남자 출연진에게 '너 마음에 든다'라고 호감을 표시해도 되는 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이에겐 낯선 존재이다. 무엇보다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라는 정의 말고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가 많지 않다.

이는 게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사춘기가 되어 자신이 게이라고 깨닫게 된 이들이 자기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자원은 많지 않다. 영화와 드라마는 온통 이성애자들의 이야기만 있고 한편에서는 동성애는 질병이라고 얘기하는 이들도 있다. 남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자기 자신을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동성애자들에겐 그 무엇보다 어렵고 힘든 일인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살펴보면 이 게이 합창단은 단순히 취미 삼아 노래를 부르는 소모임이 아니다. 게이들을 위한 인생학교이다. 게이들이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일을 하고 무엇보다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를 알려준다. 게이 안내서를 주는 것도 게이학을 가르치는 것도 아니다. 스테레오 타입이 되지 않은 다양한 게이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좁은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동네 의사, 빵집 알바생, 변호사, 자영업자 등 제각기 다른 일을 하는 게이들을 만난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이야기가 오롯이 담긴 노래를 배우고 함께 웃고 떠든다. 이들에게 노래는 한 주를 마무리하고 시작하는 의식이면서 자신들을 긍정할 수 있는 복음서이다. 종교적 기능이다. 그렇게 게이로서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고, 다른 게이들과 연결된다.

<라라랜드>에 버금가는 현실적인 뮤지컬

그렇지만 이 과정이 무겁지 않게 그려진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이면서도 동시에 뮤지컬이다. 2013년 10월 지보이스의 10주년 공연에 담긴 노래를 중심으로 그 전후 3년간의 이야기가 담겨있지만 시간순이 아닌 노래를 중심으로 한 편집이다. 노래 가사의 주제에 맞춰 지보이스 단원들의 인터뷰와 지보이스가 겪은 사건들이 배치된다. 퀴어퍼레이드, 김조광수∙김승환 동성애자 부부의 공개결혼식, 서울시청 점거 등이 맞물린다.

이러한 이야기가 가사에 담겨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판타지처럼 뮤지컬로 승화되어 삽입된다. <라라랜드>를 보며 현실의 삶과 고통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판타지로서 뮤지컬을 결합했다며 매료되었던 이들이라면 또 다른 느낌의 무척이나 현실적인 뮤지컬 영화를 볼 수 있다.

'내 모습 그대로 세상 누구보다 멋진 사랑하는걸'('코러스보이')이라며 자긍심을 드러내고. '자고 싶은 남자는 많지만 손잡고픈 남자는 너뿐이야'('종로의 기적')라며 게이들의 사랑이야기를 솔직하고 발랄하게 이야기한다. '이백만 원짜리 사모님 백에 빵을 담다가 직장 떠나 잘나가는 친구 생각나'('쉽지 않아')라며 일터에서의 애환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세상아 너의 죄를 사하노니 사랑 또 사랑이었네'('세상아 너의 죄를 사하노니')라며 동성애 혐오에 대해 사랑으로 맞선다.

<쉽지않아> 뮤지컬 장면 일터의 애환을 노래한 <쉽지않아>의 뮤지컬 장면.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며 묵직한 이야기를 유쾌 발랄하게 풀어낸다.

▲ <쉽지않아> 뮤지컬 장면 일터의 애환을 노래한 <쉽지않아>의 뮤지컬 장면.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며 묵직한 이야기를 유쾌 발랄하게 풀어낸다. ⓒ 무브먼트


노래와 춤을 매개로 해서 세상을 만난다. 게이로서 아픔이 매개가 되어 또 다른 아픔을 지닌 사회의 약자들을 위로한다. 세월호 유가족, 쌍용차 해고노동자 등과 노래로서 만난다. 쌍용차 노조 노래패가 화답하여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IDAHOT) 기념행사 무대에 올라 답가를 하는 장면에서는 묘한 감동이 느껴지기도 한다.

관람으로 이들을 응원해주세요  

이 영화 한 편으로서 게이들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전히 나와 다른 사람이라 생각할 수도 있고, 뭔가 모를 불편함이 느껴지는 미지의 존재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흐르는 강물처럼> 대사처럼 우리는 "완전히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어도 완전히 사랑할 수는 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잘 어울려 살아가는데 나만 이상한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사람, 크든 작든 차별과 배제를 경험해본 이들이라면 이들의 노래와 이야기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우리나라에 앞서 해외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으며 베를린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 인디스페이스 등에서 상영중이며 지보이스가 소속되고 영화를 제작한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페이스북(www.facebook.com/chingusai)에서 영화관련 정보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사랑스럽고 좋은 영화는 며칠 지나면 극장에서 보기 힘들 수도 있다. 영화 속의 많은 게이들이 얼굴을 드러내며 사회적으로 커밍아웃을 했지만 이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다고 한다. 가족으로부터, 직장으로부터, 이웃으로부터 손가락질 받고 매장되지는 않을까 주저하면서도 얼굴을 드러낸 건 함께 용기를 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렵게 낸 용기에 보다 많은 이들이 응답하고 응원해줬으면 좋겠다.

위켄즈 게이 친구사이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협동조합 및 사회적경제 연구자, 청소년 교육 저자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