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웃긴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지난 28일 방영한 SBS <희극지왕>은 아무리 열린 마음으로 보려고 해도 재미있지 않았다. 물론 출연자들의 모든 개그가 '노잼'이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나름 내로라하는 개그맨들이 출연했음에도 즐겁지 않은 이 코미디 프로그램의 정체는 안타까움만 남긴다.

기대에 못 미쳤던 이유

 <희극지왕>은 시청자를 만족시켰을까?

<희극지왕>은 시청자를 만족시켰을까? ⓒ SBS


코미디 대부 이경규가 진행을 맡고, 정통 코미디와 서바이벌쇼가 결합한 콘셉트를 내세운 <희극지왕>은 가짓수는 많지만 볼거리는 많지 않았던 그만그만한 설 파일럿 프로그램들 중에서 그나마 눈에 띄는 대어였다. 정통 코미디 프로그램이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시점에서 코미디쇼의 부활의 신호탄을 쏠 것 같았던 <희극지왕>은 여러모로 기대되는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처럼 <희극지왕>은 실망감만 가득하다. <희극지왕>을 위해 열심히 개그를 준비한 개그맨들의 노력까지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그 노력이 가상 하다고 억지로 웃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아래 <웃찾사>)를 보지 않는 시청자들에게는 다소 낯선 안시우가 대결의 시작을 열었는데, 몸에서 나오는 소리를 활용한 개그는 큰 웃음을 유발하지는 않지만 소소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무대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 부터였다. <희극지왕>에서 출연 개그맨들이 선보인 무대를 총평해 보자면 노력한 흔적은 돋보이지만, 개그 아이디어는 대체적으로 평범했다. 이들 중에는 오랫동안 코미디 무대에 서지 않았던 희극인들도 수두룩했다.

시청자들이 <희극지왕>에 기대한 것은 박미선, 윤정수, 김영철, 김대희, 신봉선 등 한 때 코미디 프로그램을 휘어 잡았던 희극인들의 '왕의 귀환'이었다. 또한 <희극지왕>에서는 tvN <코미디 빅리그>에서 맹활약을 펼치는 장도연, 이상준도 출연했다.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기존의 코미디 프로그램보다 퀄리티 있는 웃음을 기대하는 화려한 라인업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희극지왕>은 그 기대감을 채우지 못했다. 박미선, 윤정수, 김수용은 오랫동안 개그맨으로서 코미디를 쉬었기 때문에 콩트에 대한 감이 다소 떨어졌다고 위안을 삼을 수 있겠지만, <코미디 빅리그>에서는 훨훨 나는 장도연과 이상준의 부진은 실망감을 주었다.

참신한 개그의 부족, 아쉬운 결과

 지난 28일 방영한 SBS <희극지왕>에 출연한 박미선

지난 28일 방영한 SBS <희극지왕>에 출연한 박미선 ⓒ SBS


설날 특집 프로그램 중 가장 기대작이었던 <희극지왕>이 왜 '노잼' 프로그램에 그치고 말았을까. 일단 <희극지왕>에는 새롭거나 참신한 개그가 없다. 그나마 안시우가 시도한 몸의 소리를 활용한 개그가 가장 눈에 들어왔는데, 이 마저도 어디서 보았던 희극쇼에 가깝다.

<희극지왕>에 출연한 개그맨들의 상당수는 과거 자신이 해서 인기를 끌었던 개그 스타일을 고집하는 듯하다. 박미선은 데뷔 초기 자신을 스타덤에 오르게 하였던 음치개그를 선보였고, 김대희는 2015년 1월 이후 KBS <개그콘서트>에서 막을 내린 코너 '쉰밀회'를 내세웠다. 그것이 자신이 가장 잘하고, 자신있는 코미디이기 때문에 계속 들고 나오는 이유는 잘 알겠지만, 보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더이상 새로운 것이 없으니까 지루하게 다가올 뿐이다. 그렇다고 <희극지왕>에 펼쳐진 코미디들이 현 시대를 간파하는 통찰력 있는 웃음을 선사 했느냐. 오직 슬랩 스틱과 몸개그, 말장난만 가득했던 <희극지왕>은 '코미디의 왕'이라는 타이틀과 무색하게 그 어떠한 품격도 찾을 수 없었다.

파일럿으로 제작 되었지만, 분명 <희극지왕>도 정규편성의 욕심이 있었을 것이다. 개그맨들이 서바이벌 대결 형식으로 코미디 대결을 펼치는 프로그램 컨셉 자체는 좋다. 문제는 그 그릇에 담긴 음식들이 맛이 없다는 것이다. 이제 막 데뷔한 신인들의 개그를 보는 것도 아니고, 데뷔 10년차 이상 베테랑들의 개그라는게 믿기 어려울 정도로 코미디 프로그램 <희극지왕>은 총체적 난국에 가깝다.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남을 작정하고 웃기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시청자들을 웃기기 위해 최선을 다한 <희극지왕> 출연 개그맨들의 노력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러나 파일럿에 그치지 않고 정규 편성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면 서바이벌 개그 대결 콘셉트 빼고는 모두 다 바뀌어야할 것 같다.

사실 서바이벌 개그 대결은 이미 tvN <코미디 빅리그>에서 적용하고 있는 시스템이다. <코미디 빅리그>에서는 무대 객석을 채운 관중들이 출연진들의 개그에 순위를 매기지만, <희극지왕>에서는 출연 개그맨들이 자신의 무대를 제외한 다른 출연자의 개그에 평가를 내린다. 개그맨들이 동료 개그맨들의 코미디를 평가하는 것도 의의가 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청자들이 그 개그를 보고 재미있어하고 웃어주는 것이 아닐까. 정통 코미디 프로그램의 부활을 꿈꾸며 선후배 개그맨들의 의기투합했던 화기애애한 모습은 보기 좋았지만, 그에 반해 재미는 떨어진 <희극지왕>이 두고두고 아쉽다.

희극지왕 코미디 이경규 예능 박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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