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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컬버스가 여인숙 수준이라면 에어컨 바람이 폭포수처럼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는 투어리스 버스는 호텔급이라 할 수 있다.
3개월 만에 다시 찾은 델리 빠하르간지. 사람과 동물, 자동차, 오토릭샤가 뒤섞여 있는 혼잡한 거리가 더이상 낯설게 다가오지 않았다.
 3개월 만에 다시 찾은 델리 빠하르간지. 사람과 동물, 자동차, 오토릭샤가 뒤섞여 있는 혼잡한 거리가 더이상 낯설게 다가오지 않았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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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살라 가는 버스 터미널은 따로 없다. 큰 도로 적당한 곳에서 버스가 출발한다. 출발 시간보다 30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길가에 인도 사람들과 외국인들이 뒤섞여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외국인들 보다 인도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찜통더위는 여전했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중년의 인도 여성이 맥없이 픽 쓰러졌다. 옆에 있던 딸이 어쩔 줄 몰라 하며 몸을 일으키는데 중년 여성의 눈에 흰자위가 보인다. 긴 나무 벤치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 그녀를 부축해 벤치에 눕혔다. 나 또한 뭔가를 해줘야 할 것 같아 생수를 얼굴에 뿌려 주고 내가 알고 있는 혈액 순환 지압법을 그녀의 딸에게 알려줬다.

잠시 후 그녀가 눈을 떴다. 델리의 이날 온도는 섭씨 40여도, 이 살인적인 무더위로 쓰러진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더위에 쓰러졌던 중년 여성이 내가 알려 줬던 지압법으로 기력을 회복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딸이 내게 거듭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녀의 딸에게 나마스테 합장으로 인사를 받으며 고락푸르에서 쓰러진 나를 지켜준 인도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보답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증막이나 다름없는 로컬버스가 여인숙이라면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투어리스 버스는 호텔수준이었다.
 한증막이나 다름없는 로컬버스가 여인숙이라면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투어리스 버스는 호텔수준이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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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리스트 버스는 좌석을 꽉 채울 때까지 기다려 예정시간보다 40분이나 늦게 출발했다. 내 자리는 좌석을 넉넉하게 뒤로 젖힐 수 있는 앞자리와 달리 공간 확보가 어려운 맨 뒷좌석이었다. 그동안 인도 여행지에서 종종 목격했는데 인도인들은 뒷좌석에 앉으려 하질 않았다. 내 옆 자리의 좌석번호를 확인하던 한 인도 사내가 버스 차장과 심한 말다툼 끝에 중간 부분으로 자리를 옮겼다.

앞좌석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좁긴 했지만 그동안 이용했던 로컬버스에 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 로컬버스가 여인숙 수준이라면 에어컨 바람이 폭포수처럼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는 투어리스 버스는 호텔급이라 할 수 있다. 하루아침에 카스트의 최하위 계급에서 최상위 계급으로 급 상승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내 몸은 땀띠로 엉망진창인 상태였다. 등허리, 배, 옆구리, 엉덩이, 목, 가슴 할 것 없이 온몸이 땀띠로 간지럽다가도 따끔거렸다. 갈빗대가 보일 정도로 살집이 쏙 빠져 있어 앉은 자리에 엉덩뼈가 닿아 고통스러웠다.

내 옆자리에는 불만 가득한 두 명의 서양 여성이 앉아 있었다. 알고 보니 맨 뒷좌석에 쪼르르 앉아 있는 우리 세 사람 모두 좌석번호가 똑같은 40번이었다. 맨 뒷좌석은 무조건 40번으로 지정한 모양이다. 두 서양 여자가 버스표 구입에 관해 얘기를 나누다가 내게 물었다.

"얼마 주고 구입했습니까?"
"버스표요? 1천 루피..."
"아, 역시 우리가 여행사에게 속았네요."

"당신들은 버스표를 얼마에 구입했습니까?"
"여기서 알아보니 괜찮은 여행사에서는 보통 700에서 800루피 정도면 구입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이 줬어요."

한 여성은 여행사를 통해 1500루피에 버스표를 구입했고 다른 여성은 인터넷을 통해 1300루피에 구입했다고 한다. 나 역시 한국인 식당을 통해 정가보다 200~300루피 비싼, 1000루피에 구입했다.

사람들은 함께 겪는 불만을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 좀 더 수위가 높은 불만을 가진 사람들과 비교해 위안을 삼곤 한다. 어리석게도 나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내 자신도 똑 같은 피해자이면서도 내 옆자리에 앉은 두 명의 서양 여성들보다 싸게 구입했다는 것에 위안을 삼고 있었다.

앞자리에 앉아 있는 아이의 눈망울이 어린 시절의 큰 아이를 떠올리게 했다. 녀석이 사진기를 꺼내들자 고개를 돌리고 있다.
 앞자리에 앉아 있는 아이의 눈망울이 어린 시절의 큰 아이를 떠올리게 했다. 녀석이 사진기를 꺼내들자 고개를 돌리고 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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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자리에 앉아 있는 서너 살 먹은 어린아이가 뒤를 힐끔 보다가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눈이 참 예쁜 아이다. 수줍은 듯 배시시 웃고 있는 녀석의 눈망울이 우리 집 큰 아이, 송인효의 어렸을 때 눈망울과 닮았다.

녀석이 두 살 무렵에 찍은 사진 중에 반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모습이 있는데 녀석은 그 사진속에서 배시시 웃고 있었다. 살아온 생활이력이나 성격이 전혀 다른 그녀와 수없는 다툼 속에서도 내가 20년 동안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은 녀석의 그 천지무구 했던 웃음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녀석이 그 웃음처럼 평화롭게 살기를 바랐다. 가난 속에서도 그 웃음을 잃지 않고 살기를 바랐다. 최소한의 자본으로 생활하는 소박한 삶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삶이라 여겼기에 녀석에게도 그런 삶을 물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녀석은 그 길을 가면서 수많은 걸림돌을 만나게 될 것이다. 때로는 지금처럼 부조리한 현실에 저항하는 싸움을 벌여야 한다.

그 싸움을 통해 자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탐욕스런 자본주의 세상에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사람살이를 살리고 불평등한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음을 깨달게 되길 바랐다. 녀석은 그 과정에서 순간순간 찾아오는 온갖 고통에 발버둥쳐야 할 것이다. 그 길은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이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 집 큰 아이를 생각하면서 어느 순간 까무룩 잠들었다. 눈을 떠보니 버스 안이 부산스럽다. 버스가 휴게소에 도착해 있었고 승객들은 늦은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하나 둘 하차하고 있었다. 투어리스트 버스 휴게소 또한 로컬버스의 휴게소와 비교가 안될 만큼 번듯했다.

화장실도 말끔했다. 로컬 버스는 아무데서나 적당히 세워 놓고 길거리에서 오줌을 갈기거나 시장바닥이나 다름없는 너저분하고 혼잡한 곳에서 저녁을 먹곤 했는데 투어리스트 버스는 호텔 주차장처럼 말끔했다.

휴게소 점포도 흠잡을 수 없을 만큼 깔끔했다. 하지만 물 값이 비쌌다. 보통 20루피 정도 하는데 30루피를 줘야 했다. 식당도 사치스런 레스토랑 못지않게 말끔했다. 분명 식비도 비쌀 것이었다. 한국인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푸짐하게 먹었기에 저녁 식사를 하지 않고 과자로 적당히 때우기로 했다.

투어리스 버스의 말끔한 휴게소 또한 너저분한 로컬버스 휴게소와 천지차이였다. 휴게소에서 배불뚝이 인도 사내가 남루한 옷차림의 내게 네팔 사람이냐고 물었다.
 투어리스 버스의 말끔한 휴게소 또한 너저분한 로컬버스 휴게소와 천지차이였다. 휴게소에서 배불뚝이 인도 사내가 남루한 옷차림의 내게 네팔 사람이냐고 물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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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수와 과자를 사들고 점포에서 나오는데 쓰레기를 정리하던 청년이 남루한 옷차림의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이 청년은 천 루피가 넘는 이런 호화스러운 냉방 버스를 타본 적이 없을 것 같았다. 그 청년에게 20개비 한 갑에 15루피 정도하는 인도의 서민 담배 비디를 내밀고 있는데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배불뚝이 인도 사내가 다가와 다짜고짜 물었다.

"당신, 네팔 사람 아니오?"

남루한 옷차림에 값싼 비디 담배를 피우는 네팔 사람이 어떻게 이런 고급스런 투어리스트 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가 라는 거만한 표정이었다. 네팔 포카라에서 값비싼 등산복 차림의 한국인 행락객들이 나를 거지처럼 취급했던 그 시선과 흡사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사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툭 쏘아 붙이듯이 대답했다.

"왜?"
"당신 네팔 사람이냐구."
"그렇다, 왜? 가난한 네팔 사람은 저런 투어리스트 버스를 이용하면 안 되냐?"

배불뚝이 사내는 내 눈빛을 피해 추레한 옷차림을 또다시 힐끔 훑어보더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버스에 오른다. 내가 만약 한국인이라고 말했다면 사내의 표정은 호의적으로 변했을지도 모른다. 인도 사람들 중에는 더러 자신들의 이웃사촌인 네팔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기도 한다. 네팔 사람들은 인도에서도 온갖 힘든 일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차별 받기 일쑤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 사람을 비롯한 서양 사람들은 환대하지만 자신들과 외모가 비슷한, 그것도 자신들을 대신해 힘든 일을 도맡아 하는 이웃사촌, 동양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들보다 가난한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는 그런 못된 습성들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박근혜 정부 같은 추악한 권력을 만들어낸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추악한 권력 또한 국민이 만들어 낸다. 또한 모든 권력을 가진 국민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겉모습이나 돈으로 사람을 차별 하고 억압하는 것은 몸과 마음이 권력과 자본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본으로 자유를 누리고 있다. 실상은 권력과 자본에 갇혀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탐욕스러운 권력과 자본의 울타리에서 벗어나면 그들은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권력과 돈이 없으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다. 자본과 권력의 욕망에서 멀어질수록 자유로울 수 있다는 성인들의 말씀, 진리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알아도 귀로만 듣고 참말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진리의 말씀들은 지식에 불과하다. 출세를 위한 과시용으로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다. 돼지들이 온갖 것들을 먹어 치우듯이 그들은 출세나 과시용으로 온갖 지식들을 먹어치운다. 나사렛 예수가 돼지에게는 진주 목걸이를 주지 말라 했듯이 그들에게 진리는 돼지에게 진주목걸이를 걸어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불교 경전인 중일아함경에 보면 고타마 붓다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모든 강물이 바다에 이르면 강으로서의 이름은 사라진다. 모든 사람도 마찬가지다. 진리라는 바다에 이르면 모두가 평등하다.'

버스는 다람살라를 향해 다시 출발했다. 버스는 승객들 간에 빈부를 따지건 말건 모두를 차별 없이 싣고 달렸다. 나는 안락한 좌석 등받이에 허리를 깊숙이 파묻고 잠을 청하다가 문득 만신창이가 된 몸을 치료하기 위해 안락한 병원 침상에 누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좀 더 안락한 공간을 누리고자 하는 것은 지금의 나처럼 몸과 마음 상태가 망가져 있기 때문이다. 내 몸과 마음상태가 건강했다면 더위를 피해 구태여 3개월 전에 들렸던 다람살라라는 안락한 공간을 다시 찾아가려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싯다르타가 안락한 왕자 생활에서 벗어나 진리를 찾아 고행 길을 택한 것은 그만큼 몸과 마음 상태가 건강했기 때문이었으리라.



태그:#투어리스 버스, #빈부, #자유와 평등, #진리, #다람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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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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