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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칭 '교통 오타쿠',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가 연재합니다.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교통, 그리고 대중교통에 대한 최신 소식을 전합니다. 가려운 부분은 시원하게 긁어주고, 속터지는 부분은 가차없이 분노하는, 그런 칼럼도 써내려갑니다. 여기는 <박장식의 환승센터>입니다. - 기자 말

지난 1월 21일 있었던 지평역 개통식
 지난 1월 21일 있었던 지평역 개통식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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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중앙선의 동단 구간이 조금 더 동쪽으로 이동한다. 더 이상의 광역철도 연장은 없으리라고 호언장담했'었'던 경의중앙선 용문-지평 구간이 지난달 21일 개통했기 때문이다. 중앙선의 양평-서원주 구간 복선전철화 공사가 완료되어 연장 요구가 끊이지 않고, 뒤이어 경강선(원주-강릉선) 구간 역시 올해 말 개통을 앞두고 있어 '원주로 가는 전철'의 교두보를 놓았다고 할 수 있다.

2017년 개통되는 철도, 고속도로 등의 국가교통망 중 가장 짧고 사업비도 적었지만, 가장 오랜 기간 주민들이 염원해왔던 사업이 이루어졌다는 데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는 지평역 경의중앙선 개통, 앞서 설명했듯 '원주로 가는 전철'의 첫 발걸음을 내디뎠지만, 하루 네 번이라는 충격적인 배차 간격이 코레일의 도시철도 운영 '트렌드'가 되어간다는 우려도 없잖아 있다.

지난달 21일 11시 열린 개통식에 다녀왔다. 지금까지의 개통식 모습과는 전혀 다른 '뜻밖의 개통식 풍경'이 펼쳐졌다. 개통식 풍경, 그리고 지평역으로의 연장에 대한 의의를 짚어보았다.

지평역 연장개통이 있던 날, '동네 잔치'가 열렸다.
 지평역 연장개통이 있던 날, '동네 잔치'가 열렸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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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잔치 된 개통식, 고기 굽고 술잔 기울이기도...

용문역에서 약 4km 떨어진 위치에 있는 지평역에 닿았다. 양평군수, 양평 지평면장, 공사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통식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달랐다. 개통식 때마다 '눈도장'을 찍는 국회의원, 고위 공직자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 단출한 단상 위에서 양평군수가 건설 유공자에게 포상하고, 축사를 하는 정도로 진행된 개통식은 20분여 만에 끝났다.

하지만 개통식은 '본행사' 이전의 '애피타이저'나 다름없었다. 의자가 바로 치워지더니 바로 바르게살기운동 양평군지평면위원회 회원들이 불판을 들고 그 자리를 채웠다. 면의 자율방범대와 함께였다. 이들이 상자에서 엄청난 양의 고기를 꺼내더니 망설임 없이 불판에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그랬다. 지평역 연장을 겸해 이루어진 '동네잔치'였다.

'식당'이라는 팻말 아래의 천막으로 들어가 보니 역시 지평 새마을부녀회가 요리를 내놓고 있었다. 최근 관광코스로 개발된 '지평 국밥 거리'를 만들어낸 장본인들인 부녀회에서 내놓은 요리는 바로 큼지막한 만두가 아낌없이 들어간 떡국. 개통식에 온 사람들도, 공사에 참여했던 사람들도, 지역 주민들도 너나없이 앉아 식사하고, 고기를 같이 구워 먹고 있었다.

지평역 광장 앞에는 '고기판'이 펼쳐졌다.
 지평역 광장 앞에는 '고기판'이 펼쳐졌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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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싸움'에서 이겼기에, 더욱 값졌던 개통식

테이블에는 지역 어르신들이 떡국을 받고 앉아 지역 명물인 '지평 막걸리'를 기울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건배사도 지역에 들어온 전철을 축하하는 '개통 축배'였다. 식당에 앉은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고기를 굽던 지역민들도 고기가 다 익을 즈음 불판 위에서 건배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개통식이 이렇게 '잔치'처럼 꾸며진 이유는 '눈물겹고 외로운' 싸움을 한 끝에 열차가 다니게 되었기 때문. 지난 2009년 12월 개통한 국수-용문 간 구간이 개통했는데, 겨우 3.6km 정도만 더 가면 되는 데 반해 수도권 전철의 혜택에서 아슬아슬하게 벗어난 지평면은 그때부터 외로운 싸움을 하게 되었다.

거진 5년 이상을 끌어온 싸움은 횡성군에 있던 육군 탄약고를 지평면으로 이전하면서 끝나게 되었다. 지평면으로 탄약고를 이전하는 대신 양평군의 예산을 이용해 수도권 전철을 연장하고 국비로 일부 적자를 보전한다는 일종의 '딜'이 이루어져 지평역까지 수도권 전철이 연장된 것이다.

'개통 축하 잔치'를 보면서 불현듯 영동선 양원역이 떠올랐다. 철도청이 개통 허가를 내주지 않아 직접 역사와 승강장을 만들었던 양원역은, 열차가 개통되던 날 지역주민들이 커다란 마을잔치를 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군비를 투입해 수도권 전철이 들어온 지평역과 마을주민의 '손'을 통해 기차가 멈춘 양원역이 일맥상통하는 셈이다.

지평면 읍내에 차례차례 걸린 개통 축하 플랜카드
 지평면 읍내에 차례차례 걸린 개통 축하 플랜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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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통식 '잔치'가 어느 정도 마무리 지어질 때쯤 지평면의 중심지로 나왔다. 읍내 곳곳에 개통을 축하하는 지역단체의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이전에 지평면 읍내에 '우리도 죽기 전에 지평면에서 수도권 전철 타고 싶다'라고 걸렸던 플래카드와는 달리 '행복한 지평 만들기에 앞장선 분들 감사합니다'와 같은 훈훈한 플래카드였다.

하루에 많은 열차가 들어오는 것은 아니지만, 개통에 지역 모두가 환호하는 모습을 보며 오지 지역에 하루 두 번 들어가는 버스 노선이 개통할 때 '고사'를 지냈던 여러 농어촌지역의 모습이 겹쳐져 보였다. 대도시의 교통 인프라가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아귀나 다름없는 모습, 필수적인 교통 인프라가 부족한 농어촌지역의 모습을 다시 겹쳐보았다. 버스노선 하나가 바뀔 때마다 '규탄 플래카드'가 붙는 신도시가 이곳에서 '한 수' 배워야 하지 않을까.

운행은 하루 네 번... 무궁화호보다 전철 운행횟수가 더 적어요

지평역에 수도권 전철이 들어오는 횟수는 하루 네 번. 청량리에서 지평으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가 하루 일곱 번, 지평에서 청량리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가 하루 여섯 번임을 생각하면 '무궁화호만도 못한' 운행횟수이다. 또 지평읍내에서 양평군내로 들어가는 버스의 수와는 비교조차 어려울 수준의 적은 운행횟수인데, 아침에 두 번, 오후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다닌다.

국내의 광역·도시철도역 중 가장 적은 수의 열차가 다니는 셈인데, 코레일에서는 이후 수요에 따라 열차의 운행 횟수를 늘린다고 발표했다. 그런데도 무궁화호보다 자주 다니지 않는 '전철'이라는 점은 개선이 필요하다. 너무 긴 배차 간격으로 인해 수요를 끌어오지 못하는 사례가 이미 있는데, 부산 동남선이 30분이라는 긴 배차 간격으로 인해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시민이 적잖기 때문이다.

아직 단장이 채 마무리되지 않은 지평역 승강장.
 아직 단장이 채 마무리되지 않은 지평역 승강장.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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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양동으로 가는 수도권 전철 '첫머리', 원주까지 '전철' 타고 갈 수 있을까

지평역에서 약 35km를 더 가면 원주역이 나온다. 더욱이 양동, 원주 일대에서 수도권 전철 연장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승강 인원이 워낙 많아 승하차 시간이 길어져 열차가 지연되는 경우가 많은 데다가, 양동면 일대, 양동-지평 사이의 간이역들 역시 수도권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교통의 혜택을 잘 받지 못하고 있다.

이미 경부선 병점-천안 구간의 개통, 중앙선의 회기-지평 구간이 개통됨에 따라 10~3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통일호와 무궁화호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또 이들 구간에서 급행 전동열차가 운행됨에 따라 출퇴근 시민, 나들이객의 편의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광역전철이 대표적인 서민 열차였던 '비둘기호'와 '통일호'를 대체하고 있다는 하나의 증거인 셈이다.

아산까지 수도권 전철이 연장되면서 수도권의 범위가 넓어졌고, 경춘선은 수도권 전철로 개량되면서 관광·통근·통학 수요를 모두 잡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중간의 간이역들이 일반 전철역으로 개업함에 따라 인근의 관광수요를 잡는 것과 동시에 지역민들의 편의 제공에 큰 도움을 주게 되었다. 통일호가 광역전철이 되면서, 지역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는 증거이다.

중간 수요처가 경부선이나 경춘선에 비해 크지 않다는 문제가 아직 남아있지만, 언젠가는 양동역까지, 원주역까지 수도권 전철이 연장되면서 '지하철 타고 서울 가는' 풍경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아담한 크기의 지평역 대합실.
 아담한 크기의 지평역 대합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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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에 광역전철 들어오는 것, 손해일까 - 지평역 연장이 남겨준 숙제

다시 지평역이 '눈물겨운' 싸움을 통해 수도권 전철을 연장한 것으로 되돌아와 본다. 지금까지 수요가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도권 전철의 연장이나 중간역 개통이 '반려'되었던 사례를 생각해본다. 비단 수도권뿐만이 아니다. 간이역에 멈춘 열차를 다시 세우기 위해, 또는 아무 이유 없이 관리비 절감을 이유로 '파괴'된 간이역을 다시 짓기 위해 들인 시민들의 노력을 다시 생각해본다.

2006년, 2009년의 여객열차 대개정 이후 간이역에 서는 무궁화호가 줄어들고, 2007년 이후 단거리 통일호를 계승한 '통근 열차'가 영호남권에서 대거 운행을 중단함에 따라 간이역을 이용하는 승객들이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철도 운행횟수가 대폭 축소되어 철도 수요가 모두 버스로 흡수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통근 열차의 역할을 광역전철이 대신하고 있다. 대도시권에 광역전철이 운행되는 의의에 '간이역의 화려한 부활'이라는 의의를 하나 더 붙여주고 싶다. 작은 간이역이었던 양수역에 도시철도가 들어오면서 관광객과 지역민의 편의를 증진시켰고, 백양리역에 도시철도가 들어오면서 값싸고 편리하게 '스키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간이역에 광역전철이 들어오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각 철도 노선들의 전철화율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원주, 대전, 계룡, 구미 등 다양한 지역에서 간이역이 부활하고 있다. 이미 지난 12월 동남권 광역전철의 개통과 함께 '동서 통근열차'가 화려하게 부활했고, 재송역, 남문구역, 일광역 등 버려지다시피 했던 간이역들도 승객을 맞이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오랜 싸움 끝에, 면 소재지 앞에 붙어있음에도 역무원 몇 명만이 역을 지키는 간이역인 지평역으로 열차가 연장되었다. 연장에 성공해 지금은 새벽 장 가는 어르신, 양평읍 내의 학교로 가는 학생들을 실은 전철이 매일매일 출발하고 있고, 출발할 것이다. 지평역은 우리에게 수도권 전철의 또 다른 의의를 질문한다. 답은 아마 '잊혔던 간이역의 화려한 부활'이 아닐까.


태그:#교통, #철도, #광역철도, #개통식, #인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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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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