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을 막론하고 신생 프로 구단이 창단되면 리그를 운영하는 연맹이나 협회에서는 우수 신인들을 우선적으로 선발할 수 있는 특혜를 준다. 하지만 야구처럼 한 경기에 최대 20명 이상의 선수가 투입되는 종목에서는 신인 선수 몇 명을 잘 뽑았다고 팀 성적이 순식간에 좋아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1군 진입 2년 만에 가을야구를 경험한 NC다이노스의 경우엔 신인보다는 FA와 외국인 선수 영입이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리베로를 포함해도 7명의 선수가 주전으로 뛰는 배구에서는 특정 년도의 우수 신인 몇 명을 우선적으로 뽑으면 빠른 시간 안에 전력 상승이 가능했다. V리그 여자부의 IBK기업은행 알토스는 김희진과 박정아가 나오는 2010년을 노렸고 남자부의 러시앤캐시(현 OK저축은행)는 경기대 3인방(송명근,송희채,이민규)이 3학년을 마치고 드래프트에 참가한 2013년을 겨냥했다.

2013-2014 시즌 6위로 출발했던 러시앤캐시는 OK저축은행으로 팀 명을 바꾼 2014-2015 시즌 이미 한 시즌 호흡을 맞춘 경기대 3인방과 '괴물' 로버트 랜디 시몬의 활약에 힘입어 창단 2년 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OK저축은행이 빠른 속도로 정상에 오르면서 V리그 남자부에서 봄배구를 경험하지 못한 팀은 우리카드 위비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카드 역시 2016-2017 시즌 지긋지긋하던 7년의 흑역사를 깨려 하고 있다.

창단 후 7년 연속 봄 배구 좌절, V리그의 승점 자판기?

 2011-2012 시즌 신인왕 출신의 최홍석은 우리카드의 외로운 에이스였다.

2011-2012 시즌 신인왕 출신의 최홍석은 우리카드의 외로운 에이스였다. ⓒ 한국배구연맹


지난 2008년 우리캐피탈 드림식스라는 이름으로 창단한 우리카드는 2013년의 OK저축은행이 그랬던 것처럼 시기를 잘 맞춰 창단했다. 그 해 최대어였던 경기대의 문성민(현대캐피탈)을 포기하는 대신 2순위부터 5순위까지의 신인 지명권을 얻은 것. 우리캐피탈은 4장의 지명권을 이용해 경기대의 신영석(현대캐피탈)과 황동일, 인하대의 최귀엽(이상 삼성화재), 경희대의 박상하를 지명하며 팀의 기틀을 마련했다(황동일은 입단하자마자 트레이드를 통해 LIG로 이적).

2009년에도 강영준(OK저축은행)을 비롯한 유망 신인들을 싹쓸이한 우리캐피탈은 2009-2010 시즌 외국인 세터 블라드 페트코비치(세르비아)를 영입하는 파격을 선보였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5위). 그리고 창단 3년 만에 자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우리캐피탈은 한국배구연맹의 지원금을 받아 운영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2011-2012 시즌 최홍석이 신인왕에 올랐을 때도 팀 승률은 4할을 갓 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2012-2013 시즌을 앞두고 러시앤캐시(지금의 OK저축은행이 창단되기 전)의 스폰서십을 받은 드림식스는 김호철 감독의 지도 속에 짧은 돌풍을 일으켰다. 외국인 선수 바카레 다미(득점 6위)의 활약도 나쁘지 않았고 센터 신영석과 박상하는 나란히 블로킹 부문 1,2위를 휩쓸었다. 하지만 승점3점이 부족해 드림식스의 창단 후 첫 봄배구는 무위에 그쳤다.

2013-2014 시즌을 앞두고 해체 위기의 팀을 우리카드가 인수했고 현역 시절 '아시아의 거포'로 이름을 날린 강만수 감독이 부임하며 기대를 갖게 했다. 여기에 현대캐피탈을 두 번이나 우승으로 이끈 숀 루니가 합류하면서 봄배구의 희망을 키웠다. 하지만 순위 싸움이 치열하던 4~5라운드에서 3승9패에 그치며 4위로 시즌을 마감하고 말았다.

2014-2015 시즌엔 외국인 선수 오스멜 카메호의 부진과 군입대한 신영석, 박상하의 부재 속에 3승33패라는 처참한 성적으로 최하위로 추락했다. 2015-2016 시즌을 앞두고 연고지를 다시 서울로 옮긴 우리카드는 외국인 선수 군다스 셀리탄스(라트비아)와 알렉산드로 부츠(러시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두 시즌 연속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32경기에서 196득점을 올린 나경복이 신인왕에 오른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최근 4연승으로 어느덧 선두권과 승점 3점차

 파다르가 없었다면 지금의 상승세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파다르가 없었다면 지금의 상승세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 한국배구연맹


우리카드는 2016-2017시즌을 앞두고 에이스 최홍석이 군면제를 받으며 한숨을 돌렸지만 여전히 약체라는 평가를 벗어나지 못했다. 남자부에서 처음 실시된 외국인 드래프트에서도 가장 높은 확률을 가지고도 5순위가 걸리는 불운을 겪었고 결국 트라이아웃 참가자 중 가장 어리고 신장이 작은 크리스티안 파다르(헝가리)를 지명했다. 하지만 우리카드는 4라운드가 진행되고 있는 현재 무서운 상승세를 타며 선두권을 위협하는 복병으로 떠올랐다.

작년 연말까지 우리카드의 성적은 9승10패 승점 28점에 불과했다. 외국인 선수 파다르와 레프트 최홍석, 그리고 센터 박상하가 그럭저럭 제 몫을 해줬지만 상위권을 넘보기엔 한계가 뚜렷해 보였다. 12월30일 대한항공 점보스와의 원정경기에서 0-3으로 패할 때만 해도 삼성화재 블루팡스와 4위 자리를 놓고 다투던 우리카드는 새해부터 시작된 홈4연전에서 전승을 거두며 승점 12점을 수확, 순식간에 승점40점 고지를 밟았다.

파다르는 4라운드 5경기에서 59.26%의 성공률로 152득점을 쓸어 담으며 타이스 덜 호스트(삼성화재)를 제치고 4라운드 득점과 공격성공률 1위로 올라섰다. 파다르는 15일 삼성화재전에서 7개의 블로킹을 잡아내는 등 블로킹 감각도 매우 뜨겁다. 부상을 극복한 토종 에이스 최홍석의 활약도 여전히 뛰어나고 박상하와 박진우로 구성된 센터진 역시 어느 팀에게도 뒤쳐지지 않는다.

이번 시즌 가장 놀라운 활약을 선보이고 있는 선수는 바로 수비형 레프트 신으뜸이다. 신으뜸은 이번 시즌 세트당 5.33개의 서브리시브(성공률 54.42%)와 1.63개의 디그(스파이크를 받아내는 수비)를 기록하며 수비 부문(리시브+디그)에서 당당히 1위(세트당 6.97개)에 올라있다. 신으뜸은 이번 시즌 리그에서 가장 많은 882번의 서브 리시브를 시도해 파다르, 최홍석, 나경복 등 동료들이 공격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있다.

우리카드의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지난 15일 장충체육관에는 시즌 개막 후 처음으로 만원관중(4010명)이 모이기도 했다. 꿀맛 같은 홈4연전은 끝났지만 1월의 남은 일정이 나쁘지 않아 우리카드의 상승세는 한 동안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한국전력을 제치고 팀 순위를 3위까지 끌어올린 우리카드는 선두권과의 승점 차이도 단 3점에 불과하다. V리그의 어둠을 담당하던 우리카드에게도 창단 9년 만에 드디어 빛이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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