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앞둔 한국 대표팀이 올해도 선수 차출 문제로 시작도 하기 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인식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대표팀은 최고의 선수들이 잇달아 부상에 시달리거나 불참을 선언하며 엔트리를 큰 폭으로 교체해야 했다. 메이저리거 류현진(LA 다저스)-박병호(미네소타)가 이미 부상으로 아예 처음부터 출전명단에서 배제됐고 강정호(피츠버그)는 최근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일으키며 낙마했다.

추신수(텍사스)와 김현수(볼티모어)는 소속 구단의 강력한 반대로 출전이 무산됐다. 추신수는 지난해 부상에 시달린 데다 텍사스로 FA 이적 이후 몇 년간 부진에 시달리며 구단에서 WBC 차출에 부정적이다. 올 시즌 치열한 주전 경쟁을 앞둔 김현수 역시 직접 WBC 출전에 대한 고사 의지를 밝혔는데, 배경에는 볼티모어 구단의 압박이 있었다는 분석이다. 

김인식 감독은 최근 해외원정도박 혐의로 구설수에 올랐던 오승환(세인트루이스)의 대표팀 발탁을 논란을 불사하고 강행했지만, 소속 구단과 메이저리그 선수노조 등의 동의가 남아있는 상황이라 아직은 합류를 장담할 수 없다. 만일 오승환마저 대표팀 합류가 무산된다면 김인식호는 메이저리거가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완전한 국내파 위주로만 전력을 꾸려야할 수도 있다.

설상가상 국내파 역시 상황이 좋은 편이 아니다. 김광현(SK)-윤석민(KIA)-강민호(롯데)-정근우(한화) 등 KBO 정상급으로 꼽히며 국제 경험이 풍부한 선수들이 대거 부상에 시달리며 대표팀에 낙마하거나 아직까지 합류 여부가 불투명하다.  한국은 벌써 '역대 최약체'라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선수구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무적 신분인 이대호의 거취도 유동적이다. 지난해 메이저리그 시애틀에서 뛰었던 이대호는 올해는 아직 새 소속팀을 구하지못한 상황이지만 만일 메이저리그행을 선택한다면 WBC 출전이 변수가 될 수도 있다. 이대호의 영입을 원하는 메이저리그 구단이 WBC 불참을 조건으로 내건다면 이대호로서도 난처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

설성가상 이미 뽑힌 선수단 구성에서도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올해도 벌써 3번째 WBC 지휘봉을 잡는 백전노장 김인식 감독의 오락가락하는 선수선발 기준과 원칙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김 감독은 2015년 해외원정도박 혐의로 구설수에 올랐던 오승환을 처음에는 여론을 감안하여 대표팀에서 제외했으나 최근 다시 발탁하며 원칙 파괴와 말바꾸기 논란을 자초했다.

오승환은 지난해 메이저리그에서 마무리투수로 최고의 활약을 보였기에 실력으로는 이견이 없지만 KBO에서 받은 징계를 아직 이수하지 못하며 국가대표 자격 논란에 휩싸였다. 김인식 감독은 선수가 없다며 어려움을 호소했지만 정작 다른 메이저리거들의 차출 문제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승환을 발탁한 것은 무리수였다는 평가가 많다.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일으키며 대표팀에서 제외된 강정호와의 형평성도 맞지 않다.

선수가 부족하다면서 정작 리그에서 꾸준히 실력을 인정받은 선수들을 발탁하지 않거나 젊은 선수들을 외면하는 보수적인 성향도 야구팬들이 아쉬워하는 부문이다. 최근 몇 년간 KBO에서 선발투수로 최고의 활약을 펼친 유희관(두산)같은 선수들은 이번에도 대표팀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국제경험을 강조하며 90년대생 이후의 젊은 선수들이 2~3명밖에 뽑지 않은 것도 대표팀의 세대교체를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잇다.

대표팀 선수구성에서 어려움을 겪고있는 것은 물론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이웃나라인 일본 역시 마에다 겐타(LA 다저스), 우에하라 고지(시카고 컵스), 다나카 마사히로(뉴욕 양키스), 다르빗슈 유(텍사스) 등 정상급 선수들이 소속구단의 반대와 부상 등으로 인하여 WBC 출전이 불투명하다. 하지만 일본 같이 선수층이 두터운 야구 강국들은 일부 메이저리거가 빠지더라도 언제든지 이를 대체할 만한 자원이 풍부하다는 게 한국과 가장 큰 차이다.

야구대표팀이 국제대회 때마다 선수 차출 문제로 잡음이 일고 있었던 것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WBC만 해도 2006년 초대 대회 때는 국내와 해외파를 망라한 최상의 라인업을 꾸릴 수 있었지만 2009년 2회 대회때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스프링캠프 기간에 열리는 WBC에 선수들의 부상우려를 들어 각 구단들의 반발이 심해졌다. 특히 국내파와 달리 국제 대회에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걸리지 않은 해외 구단들은 WBC 차출에 지극히 비협조적이었다.

당시 대표팀 투타의 주축이자 초대 대회 4강의 주역이었던 박찬호와 이승엽은 2회 WBC에서는 나란히 대표팀을 고사했다. 당시 노장이 된 박찬호는 2009년 필라델피아로 이적하며 메이저리그에서 치열한 생존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이승엽도 당시 일본 요미우미에서 주전경쟁에 밀려 고전하고 있던 시절이라 부득이하게 대표팀을 고사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이승엽은 KBO로 복귀하여 2013년 WBC에는 출전했다.

당시 클리블랜드 소속이던 추신수는 차출에는 응했지만 막상 대표팀 합류히에도 추신수의 컨디션 관리와 보직 기용 문제를 놓고 클리블랜드가 사사건건 간섭하며 대표팀 관계자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김병현의 여권 해프닝도 빼놓을수 없다. 김인식 감독은 대표팀 불펜 강화를 위하여 당시 소속팀을 구하지 못하여 무적 신분이던 김병현을 과감하 빌탁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하지만 김병현은 돌연 여권을 분실했다는 이유로 대표팀 합류 날짜를 지키지 못했고 결국 김 감독은 김병현을 교체할 수밖에 없었다.

2013년 3회 대회에서는 메이저리그 LA 다저스 입단을 눈앞에 둔 류현진과, FA 획득이 1년 앞으로 다가온 추신수가 잇달아 WBC 합류를 고사하며 한국은 최상의 전력을 꾸리는 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이번 대회의 경우에도 사정은 비슷하다. 추신수는 FA 대박으로 텍사스에 입단한 이후 몇 년간 잦은 부상과 부진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하며 구단의 반대를 무시하고 대표팀 합류를 고집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직접 대표팀 고사 의지를 밝힌 김현수 역시 여전히 플래툰 경쟁을 치러하야는  불안한 팀내 입지 속에서 구단의 공공연한 압박을 거절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편으로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같이 병역혜택이 걸린 대회에서는 선수와 구단이 앞장서서 대표팀 합류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WBC같이 실질적인 혜택이 없는 대회에서는 소극적인 선수와 구단들의 이중적인 행태도 아쉬움을 안겨준다. 냉정히 말해 병역혜택을 받고 난 이후 대표팀 합류를 꺼리는 선수들도 존재한다.

이처럼 WBC때마다 반복되는 메이저리거들의 합류 문제가 명확하게 해결되지 못하는 한, 한국은 앞으로도 최상의 전력을 꾸리는 것이 영원히 불가능하다. 이는 국내파 대표선수들과의 형평성에서도 문제가 될 수밖에 사안이다. 선수는 선수대로 부담이고, 대표팀은 대표팀대로 선수구성 단계에서부터 각종 잡음을 피할 수 없다.

한국야구가 WBC에 앞으로도 계속 출전한다면, 선수 차출 문제에 대한 확실한 원칙과 대안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 사실상 메이저리그가 주최하는 대회에서 한국인 메이저리거들의 차출이 소속구단의 반대로 불가능하다면 한국이 손해를 봐가면서 WBC에 나서야 할 이유가 없다.

KBO도 선수들의 대표 차출 거부에 대한 명확한 대안을 세워야 할 필요가 있다. 대표팀에서 병역혜택을 얻은 선수가 이후 대표팀 차출에 불응할 경우 실효성있는 제재를 가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니면 정부와 협조 하에 법을 바꿔서 아예 기존에 얻은 병역혜택조차 박탈이 가능할 정도의 확실한 카드가 있어야 한다.

국민들의 성원과 지지를 받아야 할 야구대표팀이 제대로 출범도 하기전에 구성 단계에서부터 수많은 잡음과 논란에 시달리며 흔들리는 모습은 안타까움을 전해준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국가대표라면 그에 걸맞는 자격과 과정이 필요하다. 성적 지상주의에 급급한 모습보다 국가대표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성찰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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