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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 틈 없이 2개월이 지났다. 박근혜-최순실-재벌 게이트를 통해 국민이 확인한 우리 사회의 비리와 모순, 그것을 뒷받침하는 구조가 드러났다. 이 모든 것을 바꾸어야 대한민국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바꾸어야 할 때, 그래야 박근혜 게이트도 온전하게 해결된다. 박근혜 정권이 강행한 정책을 바로잡는 것도 중요하다. 세월호 7시간 및 참사 전반 진상규명, 박근혜정권의 폭력살인 백남기 농민 특검 실시, 성과연봉제 중단, 언론장악 방지, 국정역사교과서 폐기 등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의 적폐청산특별위원회가 시급히 해결할 6대 현안의 실현방안을 연속 기고 한다. - 기자 말

정치적 반대자나 비판자들의 성향이나 동향 등을 몰래 파악하는 사찰(査察)이나 그러한 반대자들에 대해 형사처벌, 세무조사, 일방적인 여론적 고립과 명예훼손 등의 불이익을 주기 위해 몰래 일을 꾸미는 공작(工作) 등을 정부가 주도한다는 것은 현대 법치주의 행정이나 민주적 기본질서에서는 결코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후 30여년의 민주정치의 발전과정을 통해 공작정치는 사라진 유물이 되었으리라 우리는 믿고 있었다. 그러나 고 김영한 민정수석의 업무일지(비망록)는 이러한 독재정치의 상징이 다시 부활하여 우리 사회 곳곳을 옥죄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청와대가 그러한 공작정치를 직접 주도하였다는 점이 충격적이다.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분립은 권력을 나누어 견제와 균형을 통해 전제군주의 출현을 막고자 하는 현대 헌법의 기본원리이다. 청와대가 사법부와 판사들을 통제하고 길들이려고 했다면 그것은 민주공화제의 근본을 뒤흔드는 위헌적인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업무일지에서는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하는 내용이 나온다. "법원 지나치게 강대. 공룡화", "길을 들이도록(상고법원, or)", "법원 지도층의 現下 communication 강화" 등 특히 사법부를 통제나 길들이기의 대상으로 보는 부분은 충격적이다.

심지어 "000 판사-재임용 영장고려사유 사회적 제재-보수애국단체 SNS항의 사퇴요구" 부분은 보수단체의 여론제기를 통하여 특정 판사의 재임용을 막으려 한 공작도 나온다. 영장기각 사유에서 불법조업을 방지할 국가의 역할은 제대로 못하면서 세월호 사건처럼 배가 전복된 책임만 물어 선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느냐는 내용이 잠깐 언급한 것이 청와대의 화를 돋운 모양이다.       

국정원의 사찰공작에서의 역할도 등장한다. 경찰과 국정원이 팀을 구성하여 문제언론에 대해 "List 만들어 보고, 추적하여 처단토록 정보수집", "신부(神斧) 뒷조사"를 하라는 메모가 있다. 국정조사에서는 대법원장을 사찰한 국정원 문서가 있다는 전 세계일보 사장의 증언도 있었다. 박근혜 정권은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에 적극적으로 나서 눈에 났던 검찰총장을 혼외자 등의 사생활을 뒷조사한 후 언론을 통해 공격하는 방법으로 물러나게 한 전력이 있다.

언론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는 헌법이 보호하는 국민의 기본권일 뿐만 아니라, 여론의 형성을 통해 권력의 남용을 견제하고 대의제 민주주의를 보완하는 민주적 기본질서의 핵심을 이루는 기제이다. 국정원이 정보수집의 미명하에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이나 종교인, 심지어 대법원장과 판사 등에 대한 사찰을 하고 있다면, 그 자체로 법치행정의 영역을 벗어나 민주적 기본질서를 유린하는 위헌적인 행위이다.
 
'세월오월' 작품의 광주비엔날레 전시와, '세월호' 사건 다큐멘터리 영화인 '다이빙벨'의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을 막기 위해 보수단체를 통해 홍성담 작가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고, 영화제 예산지원을 제한하는 공작도 보인다. 심지어 진보적 성향의 문화인들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라는 메모도 있는데, 실제로 블랙리스트에 오른 문화인들에 대해 예산지원 차단이나 선정심사 탈락 등의 불이익이 가해졌다. 헌법 제22조는 예술의 자유를, 제21조 제2항에서는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을 금지하고 있는데,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예술작품을 사전에 검열하고 그 게시, 상영, 유포 등을 부당한 권력 행사를 통해 차단해 버린 것은 예술과 창작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고 문화국가의 전통을 유린한 것이다.

심지어 정치와 거리를 두어야 할 교육계 종교계와 관련하여 수십 차례 회의에서 전교조의 법외노조화 공작을 집요하게 챙기고, 신부님 사찰과 불교계 총무원 선거방식을 청와대에서 직접 점검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위로부터 불법행정이 만연되어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처럼 누구나 상식적으로 불법행위라고 아는 불법지시에도 말없이 복종하는 충성문화가 만들어져 있었다. 급기야 비선실세와 같은 행정조직 밖의 세력에 의해 국정이 농단당하는 상황에서도 청와대 비서실이나 행정조직이 침묵하였다. 이와 같은 법치주의의 위기가 어떻게 왜 오게 된 것일까?

비망록(備忘錄)은 어떤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적어둔 기록을 말한다. 민정수석이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시사항이나 논의내용을 업무일지로 기록해 둔 것은 나중에 이를 세상에 알리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유족들이 고인의 비망록을 세상에 알리기로 한 결심에는 민정수석에서 억울하게 물러난 고인의 한을 풀려는 해원(解寃)의 점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내용에 비추어 보면 박근혜 정권의 정치·행정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공작정치, 불법행정에 대한 경종(警鐘)을 울려야 하겠다는 뜻도 담겨져 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임금의 명령을 적어서 승지에게 전하는 문서를 비망기(備忘記)라 하였다. 핵심권력부에서 작성된 비망록은 때로는 당시의 정치상황을 이해하는 역사적 기록으로서 가치가 크다. 김영한 비망록은 후대에 교훈으로 남겨야 할 우리시대 민주주의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그래서 특검수사뿐만 아니라 진상을 조사하여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국회가 다시 한 번 국정조사의 칼을 빼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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