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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풍경.
 지난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풍경.
ⓒ 복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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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0일, 코로나19인권네트워크(아래 코인넷)는 '코로나19 대확산으로 인한 죽음 애도와 기억의 장 추모 문화제'를 진행하였다. 이를 위해 광화문 광장을 행진하고자 1월 24일에 옥외집회를 신고하였다. 그러나 서울특별시경찰청장은 '서울시로부터 공유재산 사용 승인을 받은 선순위 단체의 문화행사가 존재한다', '「서울특별시 광화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에 의거 광화문 광장의 관리 주체는 서울시이며, 관리주체의 사용 승인 신청 여부 등 기타 상황에 따라 금지 제한할 수 있다'는 이유로 광화문광장의 행진을 금지하고 우회하는 경로로 행진하라는 제한통고 처분을 하였다.

이에 코인넷은 서울행정법원에 옥외집회 제한통고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을 하였고, 법원은 '행진을 일정한 조건 하에서만 가능하도록 제한한 처분으로 인하여 신청인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고, 예방하기 위하여 긴급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였다. 다만 '행진을 전면적으로 허용하는 경우 선순위 신고 문화행사에 대한 방해 및 위험 발생 가능성이 있다'고 보아 신청 범위 중 일부만을 허용하였다.

법원의 결정에 따르면, 경찰의 '광화문 광장에서의 집회의 경우 조례에 의거하여 서울시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광화문 광장은 민중들이 다양한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론의 장으로 사용되어왔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고, 촛불집회 등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격동이 이루어진 장소이기도 하다. 이러한 과정에서 광화문 광장을 사용함에 있어 관할 경찰서에 사전 신고를 하는 절차 이외에, 단 한번도 서울시의 승인을 받아야 했던 적은 없다. 그럼에도 경찰은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집회결사의 자유를 임의로 제한하여 서울시의 '승인'을 사전에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법원은 이를 이유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편 법원은 선순위 행사와의 충돌 위험 등을 들어 광화문 광장 일부에 대한 행진만을 허용했다. 그러나 행진이 선순위 행사에 실질적인 방해나, 위험을 발생시킬 가능성을 법원이 면밀히 검토했는지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행진은 100명 정도의 인원이 30분 내외에 이루어질 예정이었고, 행사 장소 주변을 지나간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방해나 위협을 야기할 가능성은 사실상 전무했다.

뿐만 아니라 선순위 행사는 광장의 일부 구간만을 이용하여 설치물을 전시하는 행사였다. 따라서 법원이 진정 '공공복리'를 고려했다면, 집회시위자의 온전한 의사에 따라 집회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대한의 경로를 인정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부터, 경찰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들어 집회금지통고처분을 함으로써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하고 있다. 그럴 때마다 민변은 신속하게 집행정지 신청을 하여 유의미한 결정들을 이끌어내고 있으나, 경찰의 '사실상 허가제'를 운영하는 위법한 행위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은 지울 수 없다.

이번 행진은 2022년 광화문광장이 재개장된 이후 처음 집행정지 인용을 받아 진행된 집회였다. 이전보다 약 2배의 규모로 넓어졌지만, 서울시가 이 커다란 광장을 오로지 '시민의 건전한 여가선용과 문화활동을 위한 공간'으로 제한하였기 때문이다. '건전한' 여가와 문화 활동의 의미가 모호하기도 하지만, 민주주의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는 '광장'에 집회·시위의 권리를 제외시킨 것은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으로서 한편으론 자존심이 상하기도 한다.

정부와 수사기관은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어떻게든 집회·시위를 막으려고 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그 부당함을 적극적으로 피력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광장으로 나가 목소리를 내었으면 좋겠다. 잡초는 밟을수록 성장하고, 민주주의는 그 수많은 잡초들의 끈질김으로 실현될 수 있으니 말이다.
최새얀 변호사.
 최새얀 변호사.
ⓒ 최새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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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최새얀 변호사(월간변론 편집위원)입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는 2016년 4월 21일 민변 변호사들의 공익인권변론활동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자 설립되었습니다.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월간변론 편집팀의 '시선'은 민변 회원들에게 매월 발송되고 있는 '월간변론'에 편집위원들이 기고하는 글입니다. '시선'은 최근 판례와 주요 인권 현안에 대한 편집위원들의 단상을 담고 있습니다.


태그:#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월간변론, #공익인권변론센터,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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