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패신저스> 역시 '재난' 영화로 봐야 하지 않을까.

영화 <패신저스> 역시 '재난' 영화로 봐야 하지 않을까. ⓒ UPI코리아


재난영화는 일반적으로 자연 재해가 초래하는 스펙터클한 장면과 그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인간군상 이야기, 그리고 그런 재해에 인재를 더해 피해를 키우는 대기업 혹은 정치인들의 음모 등으로 구성되곤 한다.

최근 개봉한 영화 <패신저스>(Passengers, 모튼 틸덤 감독, 2016년 작품) 역시 그런 재난영화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배경이 우주이고 사실상 재난에 대처하는 등장인물이 세 명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이채를 띠긴 하지만, 앞서 언급한 재난영화의 세 요소를 두루 갖춘 작품이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다.

초호화 우주선 아발론 호는 5258명의 사람을 태우고 이들이 정착할 새로운 행성으로 운항하고 있다. 지구를 출발해서 그곳에 도착하기까지 소요 시간은 총 120년.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승객 중 한 명인 짐(크리스 프랫 분)이 도착시간을 90년 남긴 시점에서 홀로 '동면'에서 깨어난 것이다. 짐은 다시 동면에 들기 위해 애를 써보지만 방법을 찾지 못하고, 급기야 극심한 외로움 때문에 자살충동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짐은 다른 승객들의 프로필 영상을 찾아보다가 오로라(제니퍼 로렌스 분)라는 여성을 발견하게 되고 이내 사랑에 빠진다.

 영화 <패신저스> 포스터. 과연 시스템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영화 <패신저스> 포스터. 과연 시스템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 UPI코리아


이 영화에서 주인공 짐이 맞닥뜨리게 되는 재난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우주여행 중 만나게 된 일종의 대형 '교통사고' 상황이고, 다른 하나는 남은 인생을 꼼짝없이 홀로 살게 된 고립무원의 상황이다.

영화는 먼저 혼자 놀기의 진수를 보여주며 1년을 버틴 짐이 자살까지 생각한 끝에 오로라를 깨우면서 후자의 상황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묘사한다. 물론 오로라는 이에 대해 짐이 자신의 인생을 빼앗았다며 극렬히 반발하고, 이 영화를 언급한 많은 매체 역시 이 대목을 두고 짐의 선택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한 등장인물의 언급을 빌려 그건 결코 용서할 수 없는 행위지만 짐이 왜 그랬는지는 이해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한다. 과연 '내'가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해보자. 정말이지 이건 어려운 문제다.

이어서 영화는 짐과 오로라에게 또 다른 재난 상황을 던지고, 두 사람이 이를 극복하고 앞서 생긴 갈등까지 봉합하게 되는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이 영화의 세일즈 포인트랄 수 있는 스펙터클한 장면 대부분이 바로 그 과정에 집중된다.

여기서 이 글 서두에서 언급한 내용으로 돌아가 보자. 지금까지 스펙터클한 장면과 인간군상 이야기를 했고, 대기업 혹은 정치인들의 음모가 남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영화의 재난은 철저히 인재에서 기인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결과적으로 짐이 맞닥뜨린 재난이란 사전에 충분히 예상 가능했을 상황들이며, 따라서 아발론 호가 제대로 된 재난 매뉴얼을 준비했다면 이에 대한 대비가 있어야 하는 것이 상식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 것일까? 이와 관련해 주목해야 하는 건 아발론 호의 주인이자 해당 이주 프로젝트의 책임자가 이윤을 추구하는 대기업이라는 점일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가장 큰 혐의는 비용절감이라는 생리 그 자체다.

가증스러운 건 아발론 호 인공지능 시스템의 대응에서 엿볼 수 있는 대기업의 입장이다. 영화는 자신이 겪고 있는 재난 상황에 대해 어찌해야 하느냐는 짐의 질문에 그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라는 답변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인공지능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발론 호의 보안 시스템은 그 자체로 완벽하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다. 애당초 해당 위험이 없을 거라는 가정 하에 설계된 시스템이니 이에 대한 대비책이 없는 건 당연한 노릇이다.

이 지점에서 본 영화가 주는 교훈은 자명하다. 위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에 합당한 어떤 대비책도 있을 수 없다는 것. 이를 지금 한국 사회에 적용해보면, 핵발전소 안전 위험을 지적하는 목소리에 대해 안전하다는 말만 되뇌는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과 '원전 마피아'들이 뼈아프게 새겨들어야 할 교훈이 아닌가 싶다.

곰곰 생각해보면 인간이 지금 영화를 누리면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이런 교훈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인간이 자신의 미력함과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시행착오를 통해 끝없이 이를 보완해오지 않았다면 분명히 지금 같은 '전성기'에 이르지는 못했을 거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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