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에는 시대 별로 팀을 대표하는 뛰어난 1루수가 존재했다. 프로 초창기 롯데가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던 시절에는 김용철이 있었고 1992년 2번째 우승을 차지할 때는 '자갈치' 김민호가 있었다. 그리고 2000년대에는 롯데 유니폼을 입고 KBO리그를 지배하다가 일본 무대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메이저리그까지 진출한 '빅보이' 이대호가 있었다.

하지만 이대호가 일본으로 떠난 2011년 이후론 롯데의 1루수 계보가 맥이 끊어지고 말았다. 리그 최고 수준의 빈틈없는 수비력을 자랑하는 박종윤은 타격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결정적인 순간마다 부상으로 무너졌다. 광주일고 시절 초고교급 투수였던 김대우는 롯데 입단 후 이대호가 일본으로 떠난 해 운명처럼 타자로 전향했지만 퓨처스 리그에서 보여주는 장타력이 1군 무대까지 이어지지 않는다.

롯데는 2010년 1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던 최준석을 영입하기도 했고 2014년엔 외국인 선수 루이스 히메네스를 통해 1루 약점을 채워 보려 했지만 모두 해법이 되진 못했다. 그렇게 해마다 1루수 고민이 깊어지던 롯데에서 2016년 드디어 똘똘하고 젊은 1루수가 등장했다. 바로 풀타임 첫 시즌에 가능성을 보이며 롯데 타선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김상호가 그 주인공이다.

프로 입단 1년 만에 신고 선수로 전환됐던 무명 선수

 김상호의 발견은 2016년 롯데 팬들에게 몇 안되는 위안거리였다.

김상호의 발견은 2016년 롯데 팬들에게 몇 안되는 위안거리였다. ⓒ 롯데 자이언츠


서울 장충고 출신의 김상호는 고교 졸업 당시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다. 최원제(삼성 라이온즈), 백용환(KIA타이거즈), 박민석(NC다이노스) 등 장충고 동기들이 대거 프로에 지명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결국 김상호는 프로 대신 고려대 진학을 선택했고 대학 시절 타격에 재능을 보이면서 2012년 7라운드 전체 64순위로 롯데의 지명을 받았다. 낮은 지명순위와 3000만원의 계약금이 말해주듯 크게 주목 받는 유망주는 아니었다.

루키 시즌 1군에서 8경기에 출전해 타율 0.167(12타수 2안타) 1득점에 그친 김상호는 프로 입단 1년 만에 팀의 보류 선수 명단 65명 안에 포함되지 못하고 신고 선수로 밀려났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각오를 새롭게 다진 김상호는 2013년 퓨처스리그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끝에 반년 만에 다시 정식 선수가 되는 기쁨을 누렸다. 프로에서 파란만장한 2년을 보낸 김상호는 2013 시즌이 끝나고 상무에 입대했다.

김상호는 상무에서의 첫 해 구자욱(삼성)과 하주석(한화 이글스), 서상우(LG 트윈스) 등과 함께 뛰면서 타율 0.281 3홈런 20타점을 기록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김상호는 장타보다는 정확성에 기반을 둔 타자에 가까웠다. 김상호는 2015년에도 69경기에서 홈런은 4개에 불과했지만 타율을 0.336로 끌어올렸고 장타율도 0.508로 나쁘지 않았다.

2015 시즌이 끝난 후 다시 롯데로 복귀한 김상호는 2016년 2800만원에 연봉계약을 체결했다. KBO리그 최저연봉(2700만원)에서 단 100만원이 높은 금액이다. 나이는 20대 후반이었지만 군입대 전 1군에서의 실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더 높은 연봉을 요구할 입장도 아니었다. 하지만 상무에서 타격에 대한 자신감을 찾은 김상호는 2016년 무주공산이나 다름 없었던 롯데의 1루 자리를 차지하는데 성공했다.

김상호는 2016 시즌 시범경기에서 4타수 무안타에 그치며 롯데의 개막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했다(4월1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개막전에서 롯데의 주전 1루수로 출전한 선수는 손용석이었다). 비록 시작은 2군이었지만 김상호가 1군에 올라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개막전 1루수였던 손용석이 5월까지 4타점, 또 다른 1루수 후보 박종윤은 5월까지 5타점으로 부진했기 때문이다.

1군 첫 시즌에 106안타 7홈런 56타점 기록하며 주전 1루수 등극 

포지션 경쟁자들이 1군에서 동반 부진에 빠져 있을 때 김상호는 퓨처스리그에서 4월 한달 동안에만 17경기에서 무려 타율 0.491 7홈런27타점을 몰아치며 무력시위를 하고 있었다. 결국 조원우 감독은 4월의 마지막 날 김상호를 1군으로 불러 들였다. 그리고 김상호는 5월 한 달 동안 24경기에 출전해 타율 0.352(91타수 32안타)3홈런 19타점을 기록하며 롯데 타선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5월4일 KIA 타이거즈전에서는 임기준을 상대로 프로 데뷔 첫 홈런을 때려내기도 했다.

김상호는 2016년 1군에서만 7개의 홈런을 때려냈다. 퓨처스리그에서 친 홈런을 합치면 14개의 타구를 담장 밖으로 넘긴 셈이다. 이는 김상호가 상무 시절 2년 동안 기록한 홈런 수를 합친 것보다 정확히 2배가 많은 숫자다. 물론 타격을 중시하는 1루수라는 포지션에서 7개의 홈런이 결코 많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2군에서조차 장타자가 아니었던 김상호가 1군에서 7개의 홈런을 쳤다는 것은 그가 스프링캠프에서 장타력 향상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풀타임 첫 시즌이었던 만큼 김상호는 6월과 9월 2할 대 초,중반의 타율에 그치며 기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야구팬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무명 선수가 풀타임 첫 해 114경기에 출전해 타율 0.290 7홈런56타점을 기록했다는 점은 분명 의미가 있다. 물론 수비에서는 1루수로 다소 많은 5개의 실책을 저지르긴 했지만 이 역시 경험이 쌓이면 충분히 나아질 수 있는 부분이다.

김상호가 2016년 롯데의 새로운 주전 1루수로 급부상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꼭 2017 시즌의 주전 자리를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롯데엔 아직도 박종윤을 비롯해 1루 수비가 가능한 지명타자 최준석이 있고 멀티 플레이어 오승택도 황재균이 롯데에 잔류한다면 1루에 도전장을 내밀 가능성이 있다. 물론 아직 외국인 타자가 정해지지 않은 롯데가 새로운 외국인 선수로 거포형 1루수와 계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김상호가 2017 시즌에도 주전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또 한 번 업그레이드된 기량을 선보여야 한다. 2014년 상무에서 0.281의 타율을 기록했던 김상호는 이듬 해 타율을 0.336까지 끌어 올렸고 풀타임 첫 시즌에 1군 무대에서 0.290의 타율과 7개의 홈런을 때려냈다. 김상호가 이대호나 김민호, 김용철처럼 롯데를 대표하는 스타가 될 수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김상호가 롯데의 오랜 고민이었던 1루수 자리의 새 주인이 되기에 손색이 없는 발전 속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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