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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은 동지로 팥죽을 먹는 날이다. 동지에 팥죽을 먹으면 재액을 방지한다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다
▲ 동지팥죽 21일은 동지로 팥죽을 먹는 날이다. 동지에 팥죽을 먹으면 재액을 방지한다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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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제가 지금 익산에 행사가고 있는데요. 지동 노인정 회장님들이 전화를 안 받아요. 주민센터에 전화해서 내일(21일) 오전 11시에 집으로 팥죽 드시러 오시라고 좀 전해주세요'

20일 아침 동지팥죽 준비를 하던 고성주씨가 전라북도 익산으로 행사를 가면서 전화를 걸었다. 12월 21일은 일 년 중 밤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동지(冬至)이다. 동지는 24절기 중 스물두 번째 맞이하는 겨울의 절기 중 한 날로 음력으로는 동짓달(음력 11월) 23일이다. 사람들은 동짓날에는 무조건 팥죽을 끓여 먹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들 있지만 동지는 '애동지', '중동지', '노동지'로 구분을 한다.

음력의 날짜에 맞추어 동짓달 초순(초하루 ~ 10일)에 동지가 들었으면 애동지, 중순(음력 동짓당 11일 ~ 20일)에 들었으면 중동지, 하순(21일 ~ 말일)에 들어있으면 노동지라고 부른다. 올해는 노동지로 팥죽을 쑤는 해이다. 하지만 애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는다. 애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고 대신 수수팥떡을 해 먹는다.

20일 오후 팥죽을 쑤기 위해 팥을 삶고 있는 고성주씨
▲ 팥삶기 20일 오후 팥죽을 쑤기 위해 팥을 삶고 있는 고성주씨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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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노동지로 어른들이 조심해야 하는 해

"애동지에는 아이들이, 중동지에는 청장년들이, 노동지에는 어른들이 많은 해를 입어요. 그래서 올해는 어른들이 화를 당하는 해이기 때문에 어른들 드시라고 300명분의 팥죽을 준비하고 있어요."

수원시 팔달구 지동에 사는 고성주(남, 63세)씨는 매년 동지가 되면 팥죽을 끓인다. 동지가 가까워지면 마을 어른들은 고성주씨에게 전화를 걸어 "동지팥죽 먹으러 몇 시에 가면 되느냐?"고 질문들을 한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연례행사로 치르는 동지팥죽 나누기가 이젠 동짓날 누구나 고성주씨 집으로 찾아오게 만들었다.  

애동지에 팥죽을 쑤면 집안에 있는 아이들의 피부가 마치 팥죽을 쑬 때 일어나는 기포처럼 일어난다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어른들이 계신 집에서는 애동지 때 팥죽을 쑤지 않는다. 올해는 노동지로 팥죽을 쑤어 어른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해이다. 노동지가 드는 해에는 어른들이 화를 입기도 한다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다는 있기 때문이다. 붉은 팥으로 쑤는 팥죽은 집안에 드는 재액(災厄)을 물리친다고 한다.

팥죽에 등어갈 새알 옴심이도 다섯말이나 준비했다
▲ 새알옹심이 팥죽에 등어갈 새알 옴심이도 다섯말이나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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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를 '작은 설(=亞歲)'로 정해

동지를 흔히 작은설이라고 부른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의하면 동짓날 팥죽을 쑤게 된 유래는 중국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소개되어 전해진다. 공공씨의 망나니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서 역신이 되었는데 그 아들이 평상시에 팥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동짓날 팥죽을 쑤어 역신을 물리쳤다는 것이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동지를 '아세(亞歲)'라고 했다. 아세란 태양의 부활을 뜻하는 것으로 동지가 지나면 하루에 낮의 길이가 1분 정도 길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동지가 지나면 '해가 노루 꼬리만큼 길어진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 풍속에서는 동지를 음력 설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겼다. 동짓날 팥죽에 찹쌀로 빚은 새알 옹심이를 자신의 나이보다 한 알 더 먹는데 그렇게 팥죽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 것이라고도 했다.

동지팥죽은 이른 아침에 쑤어서 집안 대문서부터 곳곳에 뿌려준다. 이 모든 것은 모두 집안에 사악한 것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21일 아침부터 300인분의 팥죽을 쑤기 시작했다
▲ 팥죽 21일 아침부터 300인분의 팥죽을 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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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주씨가 팥죽에 옹심이를 넣고 았다
▲ 옹심이 넣기 고성주씨가 팥죽에 옹심이를 넣고 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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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인 분 팥죽을 쑤어 어른들 대접

동지 하루 전날, 팔달구 지동 창룡문로 56번길에 소재한 고려암(중요무형문화재 98호 경기도도당굿 이수자인 고성주씨의 굿당이자 집이다)에서는 팥죽 준비를 하느라 사람들이 바삐 움직인다.

"지난해는 팥을 여섯 말 쑤었는데 올해는 다섯 말 쑤었어요. 그 대신 찹쌀 옹심이를 많이 만들었죠. 내일 새벽에 일어나 팥죽을 쑤어서 10시부터 마을 어르신들을 집으로 모셔 대접을 하려고요. 매년 하고 있는 연중행사지만 올해는 더 많은 분들이 찾아오실 것 같아요. 어르신들께 대접을 할 음식이니 정성을 더 들여야죠."

전날부터 하루 종일 바쁘게 준비한 동지팥죽. 21일 아침 일찍부터 고성주씨와 그를 돕는 신도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날씨가 푸근하다고는 해도 오랜 시간 밖에서 작업을 하다 보면 몸이 움츠러들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고성주씨는 매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동짓날에는 팥죽을 준비한다. 집으로 찾아오는 어르신들만 해도 300여 명 가까이 된다.

고성주씨가 쑤는 팥죽은 맛이 남다르다고 한다. 이 집 팥죽을 먹어 본 사람들은 딴 곳에서 팥죽을 먹으면 제맛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통을 갖고 와 가족들을 먹을 것을 가져가기도 한다. 그래도 고성주씨는 군말 없이 팥죽을 떠 준다. 한 사람이라도 더 먹일 수 있으면 즐겁다는 것이 고성주씨의 말이다.

고성주씨 집 거실에서 팥죽을 들고 계신 마을어른들
▲ 대접 고성주씨 집 거실에서 팥죽을 들고 계신 마을어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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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부터 동지팥죽을 드시러 오시라고 연락을 드렸지만 10시가 조금 넘어서자 동네 어른들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늦게 오면 먹을 것이 없을 것 같아서"라고 웃으며 집안으로 들어오는 어른들이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팥죽 그릇을 내 놓는다. 늘 하는 일이기 때문인지 봉사를 하는 사람들도 일이 몸에 배어있다.

늘 주변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나누어주려고 하는 고성주씨. 내년에는 살기가 힘들 것이라면서 나쁜 일이라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팥죽을 먹고 사악한 기운을 제거해 평안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300명분이나 준비하는 그의 동지팥죽에는 정성이 가득하다.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그 아름다운 마음처럼 모든 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타워와 티스토리 블로그 ' 바람이 머무는 곳'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동지, #팥죽, #노동지, #고성주, #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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