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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타마 싯다르타 탄생지 룸비니
 고타마 싯다르타 탄생지 룸비니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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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보니 그는 영화 <황해>에서 연변 사내 '구남' 역을 열연한 영화배우 하정우와 닮았다. 갸름한 얼굴에 거뭇한 콧수염, 빡빡머리에 가까운 짧은 머리, 고개를 약간 치켜 올린 듯한 시선이며 애처로워 보이면서도 강렬한 인상의 네팔사내, 카트만두에서 룸비니로 가는 버스 차장인 그는 민소매 런닝 차림으로 차문을 열어놓은 채 부지런히 호객행위를 했다.

내가 탄 버스는 로컬버스가 아닌 정부에서 운영한다는 투어리스트 버스다. 목적지인 룸비니로 곧장 직행할 줄 알았는데 버스는 한 사람이라도 더 태우기 위해 수없이 정차했다. 시내버스처럼 곳곳에서 사람들이 내리고 올라탔다. 버스 터미널에서 출발하여 벌써 한 시간 넘게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혼잡한 도시, 카트만두를 벗어날 무렵, 버스 좌석은 이미 승객들로 꽉 들어찼다. 좌석 중간 통로에 간이식 의자를 놓고 앉아 있는 승객도 보인다. 그럼에도 호객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싯다르타가 태어난 곳, 룸비니는 언제 간단 말인가. 나는 뱃속에서 두어 달도 채 안 된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성질머리 급한 시어미처럼 조급증이 생겼다. 에어컨은 물론이고 그 흔한 선풍기조차 없는 버스 안의 후덥지근한 기운에 점점 평정심을 잃어가고 있었다. 버스 출입문 바로 앞좌석에 앉아 있던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어이구, 이제 그만 좀 태우지..."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버스 차장은 소리소리 질러가며 호객행위를 했다. 자신의 일을 즐기는 듯 보이는 그는 유머 감각도 있어 보인다. 버스 안을 꽉꽉 채우는 것에 한 승객이 불만을 토로하자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네팔어로 뭐라 뭐라 쏘아 붙이자 다른 승객들이 그의 말을 듣고 일제히 소리 내서 와하하 웃는다.

쫄바지를 무릎 위까지 걷어 올린 그는 입에 담배나 막대사탕을 물고는 움직이는 버스의 출입문 손잡이를 잡고 내리거나 올라타 가며 부지런히 승객들을 끌어 모은다. 거침없이 행동하는 사내의 겉모습이 아무리 봐도 하정우를 닮았다. 하정우가 버스 차장 연기를 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영화 <황해>에서 하정우가 열연한 '구남'이 그렇듯이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저 사내 역시 빚더미에 쌓여 살아가는 구질구질한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하거나 한국으로 돈 벌러 간 아내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 사내에게 있어서는 연기가 아니라 치열한 삶 그 자체였다.

가만보니 중간에 승차한 사람들은 버스표를 끊지 않고 즉석에서 현금으로 지불하고 있다. 사내는 부지런히 호객행위를 하여 쥐꼬리만한 차장 급여를 보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자 시간을 늦춰가며 호객행위를 하는 버스에 대한 불만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저 사내에게 호객행위는 먹고 살아야 할 절박한 생활인 것이다. 내가 만약 네팔에서 태어났다면 저 사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가 점점 살갑게 다가왔다.

이마에 주름이 잡힐 정도로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 하지만 밑바닥 인생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힘들게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편의를 봐줄 만큼 정이 많은 사내이기도 했다. 버스가 정차할 때마다 비좁은 버스 안을 헤집고 들어와 물이나 과일, 손질한 오이를 파는 아이들과 쪽지를 들고 구걸하는 남루한 차림의 여인이 들락거렸다. 그럼에도 사내는 그 누구도 제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볼일을 다 볼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자신보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저 사내의 배려심이 붓다가 말한 자비심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 와중에도 그가 손전화기를 받는다.

"어마?"

사내의 엄마로부터 전화가 걸려 온 모양이다. 네팔과 인도에서는 '엄마'를 '어마'로 발음하기도 한다. 부드럽게 전화를 받던 그의 목소리는 점점 다급해진다. 뭐라 뭐라 엄마에게 핀잔을 주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전화를 끊는다. 그리고는 거침없이 행동했던 그답지 않게 어둠이 짙게 깔린 창밖을 넋 놓고 바라본다. 엄마에게 큰소리 친 것을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정우를 닮은 네팔의 젊은이와 함께 룸비니로

혼잡한 카트만두를 벗어난 버스는 룸비니를 향해 한적한 시골길을 거침없이 달려가고 있다. 나는 고타마 싯다르타의 엄마, 마야 부인을 상상했다. 오랫동안 자식을 낳지 못하다가 40세가 넘는 나이로 임신을 한 마야 부인, 당시 인도의 관습에 따라 만삭의 몸으로 해산을 위해 친정으로 향하던 마야 부인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 힘겨운 길을 어떻게 버텨냈을까. 세상에 태어날 아기를 떠올리며 그 힘겨움을 견뎌냈을 싯다르타의 엄마, 그 사랑이 어디 싯다르타의 엄마에게만 있겠는가. 지금은 가난한 삶에 찌들려 있지만 어린시절 싯다르타처럼 해맑은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봤을 버스 차장, 그의 엄마를 비롯한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곧 태어날 아기에 대해 한없는 사랑으로 그 힘겨운 산고를 이겨냈을 것이다. 그 사랑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모두가 싯다르타인 것이었다.

버스는 카트만두를 벗어나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고 있다. 운전석 옆에 일렬로 쪼르르 앉아 있는 네 명의 네팔 사내들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먹어댄다. 늦은 밤차라서 그런지 승객 중에 네팔 여자는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버스 안의 여자는 쉼터에서 담배를 피워대던 노랑머리의 독일인 배낭여행자가 전부다. 외국인 또한 그녀와 내가 전부였다.

버스가 작은 도시에 몇몇 사람을 내려주고 다시 어둠을 뚫고 시골길을 달릴 무렵, 한가롭게 막대 사탕을 빨고 있는 버스 차장에게 참아왔던 말을 꺼냈다.

"당신은 한국의 유명 배우를 닮았어요."

그가 환하게 웃으며 짧은 영어로 내게 되물었다.

"그래요! 나도 한국 영화 좋아해요. 그 영화배우가 누굽니까?"
"하.정.우 라는 한국 영화배우 알아요?"
"모르겠는데요."
"당신 모습을 찍어도 될까요?"
"사진은 찍지 마세요."

얼마나 달렸을까. 버스는 작은 소도시에 들러 승객을 태우거나 내려놓고 쉬어 가기를 반복한다. 그 사이 사내는 버스 출입구 계단에 걸터앉아 졸고 있다. 곤한 잠을 자고 있는지 아니면 긴장감을 애써 풀어내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의 선잠이 안쓰럽게 다가온다.

카트만두에서 저녁 7시 40분에 출발한 버스는 룸비니에 아침 6시 50분 쯤에 도착했다. 장장 11시간이 걸린 셈이다. 룸비니는 한적한 시골마을이다. 룸비니는 유적지 구역과 국제사원구역으로 나눠져 있다.

박타푸르에서부터 카트만두를 거쳐 하루 종일 이동해 왔기에 버스에 내리자마자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싯다르타가 태어났다는 유적지를 찾아 나서기 전에 피곤한 몸부터 다스려야 했다.

세계 평화의 성지로 가꿔 나가고자하는 룸비니 국제사원 구역에는 한국 사원을 비롯해 미얀마, 태국, 스리랑카, 라오스, 일본 사원과 함께 티벳 계열의 프랑스, 독일 사원들이 들어서 있다. 룸비니 버스 종점에서 곧장 릭샤를 타고 한국 사원인 '대성 석가사'를 찾아갔다.

 룸비니 국제사원 구역에 자리한 한국사원 '대성 석가사'
 룸비니 국제사원 구역에 자리한 한국사원 '대성 석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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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원에서 저렴한 숙식비로 머물 수 있다하였지만 하필이면 300루피 하던 숙식비가 오늘부로 500루피로 인상했다고 한다. 거기다가 사원 한가운데 떡하니 들어서 있는 사찰 건축물이 무더위에 지쳐 있는 나를 더욱더 숨막히게 했다. 사원이 콘크리트 건물이었던 것이다.

한 일주일간 사원에 차분히 머물면서 그동안 못했던 여행 원고를 정리하고 싶었는데 계획을 수정해야 할 것 같았다. 친절한 한국인 스님의 안내로 간단한 숙박계를 쓰고 나오자 몇몇 외국인들이 그늘 밑에서 아침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사원에서 일하는 네팔 사람의 안내에 따라 숙소에 짐을 풀었다. 모기장과 작은 침대가 놓여진 숙소는 낡고 허름했다. 200루피 정도 하는 여느 여행지 숙소 수준이었다.

짐을 풀어 놓고 침대에 길게 늘어져 있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땀에 젖은 채로 눈을 떴다. 어느새 점심 공양 시간이었다. 숙소 밖으로 나오자 후덥지근한 더위가 숨을 막히게 했다. 뷔페식 공양간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밖으로 나왔다. 나무 그늘 밑에서 잠시 숨 고르기를 하고 있는데 대여섯 명의 인도 가족들이 다가왔다. 나는 그들 가족에게 환한 웃음으로 '나마스테' 인사를 건넸다. 이들 중에 콧수염을 기른 한 사내가 내게 묻는다.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한국 사람입니다."
"아 반갑습니다. 우리는 봄베이에서 온 불교 가족입니다."

콧수염을 기른 사내가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하얀 연꽃, 백련을 내게 내밀고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가족을 웃음으로 환대해줘서 고맙습니다. 부처님의 자비가 가득하길 바랍니다."

나는 얼떨결에 백련을 받아 들고 '나마스테' 인사로 화답했다. 그가 다시 내게 물었다.

"한국의 불교 사원들이 모두 저런 모습입니까?"
"아닙니다. 형태는 비슷하지만 한국의 전통 사원은 저것과 질적으로 다릅니다. 콘크리트가 아니라 나무로 지은 건축물입니다."

영어가 짧은 나는 이들 가족에게 한국의 전통 사원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나는 부처님 탄생지를 함께 가보자는 봄베이 가족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늘에서 한 발짝이라도 밖으로 나설라치면 숨이 턱턱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름비니 동산으로 수학여행 온 네팔 아이들. 한국 사원에 여장을 풀고 있다.
 름비니 동산으로 수학여행 온 네팔 아이들. 한국 사원에 여장을 풀고 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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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원에서 수학여행 온 아이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네팔 사람들
 한국 사원에서 수학여행 온 아이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네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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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불어오는 실낱같은 바람 한 점을 붙들고 쩔쩔매고 있는데 다 낡은 버스 한 대가 사원 안으로 들어섰다. 버스에서 아이들이 우르르 내린다. 네팔 아이들이다. 아이들을 인솔해온 선생에게 물었더니 룸비니 동산으로 수학여행을 왔는데 이곳 한국 사원에서 숙박을 하기로 했단다.

아이들은 제 물건들을 챙겨 숙소를 찾아 들어가고 함께 온 어른들은 버스에서 온갖 살림살이를 내린다. 솥에서부터 쌀, 하물며 불을 피울 마른 장작까지 포대에 담아 왔다. 거기에 온갖 채소들까지 한 살림을 챙겨왔다.

잠시 후 어른들이 수돗가에서 장작불을 피워 식사 준비를 한다. 대성 석가사는 인도, 네팔 사람들에게 캠핑장이나 다름없다. 조금 전에 내게 백련을 건네주고 떠난 봄베이 가족들은 승용차에 가스통까지 싣고 와 직접 식사를 만들어 먹었다.

이 무더위에 아이들을 먹이기 위해 장작불을 지피고 있는 네팔 사람들에게 사진기를 들고 가까이 다가가자 공연히 내게 미안해하는 눈치다. 그런 그들에게 내가 더 미안해 멀찌감치 피해줬다. 저들은 이 땅의 주인이다. 한국 스님들의 사려 깊은 배려로 사원을 이용하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마치 의붓살이라도 하는 사람들처럼 눈치를 봐가며 신세를 지고 있었던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한국 사원이 저들의 땅에서 의붓살이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네팔 아이들이 식사를 다 마친 저녁 무렵, 친구들을 위해 큼직한 주전자에 물을 받아가는 한 아이의 해맑은 눈빛과 마주쳤다. 녀석이 빙그레 웃어준다. 내게 환하게 웃어주는 그 찰나의 순간, 어린 싯다르타의 미소가 저리했을 것이라 여겨졌다.

인도와 네팔을 떠돌다가 만난 아이들은 가난하지만 환하게 웃는 어린 싯다르타들이었다. 따지고 보면 싯다르타가 태어난 이곳 룸비니에 오기 전 부터 나는 이미 수많은 어린 싯다르타를 만났던 것이다. 아이들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싯다르타를 함부로 대하는 것이고 아이들을 자비심으로 대하는 것은 싯다르타를 모시는 것이다. 이게 어디 인도와 네팔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겠는가.

네팔 바르디아 국립공원 주변에 자리한 정글마을에서 만난 아이들
 네팔 바르디아 국립공원 주변에 자리한 정글마을에서 만난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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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룸비니 가는 길, #룸비니 대성 석가사, #네팔 아이들, #어린 싯다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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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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