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엔지니어(존 브라이언스 분) 미국에 가려는 베트남인 엔지니어는 자본주의에 대한 욕망의 표상으로 풍자된다.

▲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엔지니어(존 브라이언스 분) 미국에 가려는 베트남인 엔지니어는 자본주의에 대한 욕망의 표상으로 풍자된다. ⓒ UPI코리아


카메론 매킨토시(Cameron Mackintosh)의 빅 뮤지컬 <미스 사이공> 

뮤지컬 <미스 사이공>은 흔히 세계 4대 뮤지컬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잘 알려진 작품이다. 1989년 영국에서 초연된 이래 미국의 브로드웨이에서도 공연되었고 2014년 25주년 기념 특별 공연이 열렸다. 영화는 바로 이 공연 실황을 재구성한 것이다. 이 작품은 푸치니의 <나비부인>을 각색한 것으로 직접적인 모티브가 된 것은 전쟁 후에 베트남 여인이 아이를 미국인 아버지에게 보내며 헤어지는 장면을 찍은 한 장의 사진이었다고 한다.

원작인 <나비부인>처럼 이 작품도 처음엔 서구우월주의 시각에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뮤지컬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기본 플롯은 전쟁 중에 생긴 사랑과 이별의 아픔을 전면에 내세우는 러브 스토리이지만 그 이면엔 베트남 전쟁이 남긴 상처와 반전 의식 등 인도주의적 관점을 유지하면서 크게는 자본주의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에 대한 비판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진부한 이야기를 극적인 플롯으로 바꾼 서사의 힘

크리스(앨리스테어 브라머 분)와 킴(에바 노블자다 분)의 결혼식에 나타난 투이(홍광호 분) 킴과 투이는 어릴 때 부모가 정혼해준 사이지만 고아가 된 킴은 크리스를 선택한다.

▲ 크리스(앨리스테어 브라머 분)와 킴(에바 노블자다 분)의 결혼식에 나타난 투이(홍광호 분) 킴과 투이는 어릴 때 부모가 정혼해준 사이지만 고아가 된 킴은 크리스를 선택한다. ⓒ UPI코리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미국 군인 크리스(앨리스테어 브라머 분)는 사이공의 한 클럽에서 전쟁 고아가 된 소녀 킴(에바 노블자다 분)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킴과 결혼하지만 갑자기 미군이 철수하게 되면서 서로 엇갈린 채 이별하게 된다. 킴은 월맹 치하에서 힘든 나날을 보내며 홀로 크리스의 아이 탬을 키우다 크리스와 극적으로 재회하지만 자신은 결국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다는 이야기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힘은 전쟁으로 생긴 사생아 문제의 불편한 진실을 고발하는 것이며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에 호소하는 인물들의 필연적인 행동의 인과관계를 치밀한 플롯을 통해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크리스와 대척점에 놓인 투이(홍광호 분)를 통해 전쟁으로 인해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베트남인의 분노와 슬픔을 잘 녹여낸 것이 인상적이었으며 그것을 절절하게 표현해 낸 한국 배우 홍광호의 역량이 돋보였다. 

화려하고 역동적인 뮤지컬의 힘

열연하는 투이(홍광호 분)와 킴(에바 노블자다) 킴은 크리스가 남긴 아들을 지키는 모성을 선택한다.

▲ 열연하는 투이(홍광호 분)와 킴(에바 노블자다) 킴은 크리스가 남긴 아들을 지키는 모성을 선택한다. ⓒ UPI코리아


유럽의 상류층이 즐기던 오페라를 영국이 희극과 가무, 미녀들을 동원한 오락물로 만든 것이 '뮤지컬 코메디'였으며 이것이 미국으로 건너가 오늘날 현대 뮤지컬의 뿌리가 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또한 오늘날 세계적인 걸작들은 동시에 공연되고 국경을 넘어 대중예술로서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런 만큼 뮤지컬은 배우들의 가창력과 연기에 춤을 핵심 구성 요소로 삼고 있다.

<미스 사이공>의 문학적 뼈대에 음악적 감정의 옷을 입힌 사람은 <레 미제라블>의 작곡가 미셸 손베르그(Claude-Michel Schonberg)다. 장중한 오케스트라의 선율 위에 킴과 크리스의 서정적이며 격정적인 아리아는 사랑의 환희와 애틋한 슬픔까지 오롯이 전해주며 거대한 호치민 흉상 아래 칼군무를 펼치는 소총부대의 퍼포먼스와 장중한 합창, 라스베가스 쇼를 연상시키는 존 브라이언스의 희극적 연기와 화려한 군무 등 최고 수준의 음악과 안무는 뮤지컬의 진가가 어디에 있는지 잘 알 수 있게 해준다.

뮤지컬의 장점을 충분히 수용한 영화

호치민 흉상 아래 군무를 펼치는 군인들 호치민의 치하에서 숨어살던 킴은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된다.

▲ 호치민 흉상 아래 군무를 펼치는 군인들 호치민의 치하에서 숨어살던 킴은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된다. ⓒ UPI코리아


탄탄한 서사를 바탕으로 박진감 넘치는 전개를 따라 펼쳐지는 배우들의 가창력과 연기 또한 일품이며 특히 무대 위에 헬리콥터가 나는 사이공 함락 직전의 긴박한 분위기를 사실감을 극대화하는 실감나는 연출 또한 극의 몰입도를 높여준다.

또한 이 뮤지컬은 '레아 살롱가' 등 오리지널 캐스트가 출연하는 갈라쇼까지 볼 수 있다는 것이 의외의 팁이라 할 수 있겠다. 감독 '브렛 설리반'은 갈라쇼에 이르기까지 등장인물의 격정적이면서도 섬세한 표정과 배우들의 동선, 입체적인 무대 등을 아쉬움 없이 다 담아냈다.

사이공 함락 직전의 대사관 장면 킴은 크리스와 엇갈린 채 결국 이별하게 된다.

▲ 사이공 함락 직전의 대사관 장면 킴은 크리스와 엇갈린 채 결국 이별하게 된다. ⓒ UPI코리아


<미스 사이공>은 인간의 보편적인 주제를 바탕으로 현실적인 문제와 사회적인 메시지까지 담을 수 있다는 점에서 뮤지컬의 영역을 더 확대한 계기가 된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이 25주년을 넘어 장기공연을 계속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런 수준을 계속 유지한다면 앞으로도 더 세련된 뮤지컬이 될 것이라고 예견해 본다.


미스 사이공 홍광호 에바 노블자다 뮤지컬 신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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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리뷰어. 2013년 계간 <문학들>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명왕성 소녀>(2023), <물 위의 현>(2015), 캘리그래피에세이 <캘리그래피 논어>(2018), <캘리그래피 노자와 장자>, <사랑으로 왔으니 사랑으로 흘러가라>(2016)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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