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조의 궁극기: 용의 일격 "류우오 와 카 테키오, 쿠라에!(용이여, 나의 적들을 삼켜라)"

▲ 한조의 궁극기: 용의 일격 "류우오 와 카 테키오, 쿠라에!(용이여, 나의 적들을 삼켜라)" ⓒ 블리자드 코리아


인기 FPS 게임 <오버워치> 유저들이 꼽은 기피 영웅 1위는 시마다 한조로 나타났다. 유저들의 신뢰를 받지 못해 '한조충'이라는 굴욕적인 별명까지 얻을 정도인 위태로운 입지가 자체 설문 조사 결과로도 확인된 것이다. <오버워치>의 메인 경기는 6대6 팀 매치로 승리에 덜 구애받으며 즐기는 '빠른 대전'과 높은 티어(등급) 달성을 목표로 진지하게 임하는 '경쟁전'으로 나뉜다.

경쟁전을 치르는 유저들은 팀 조합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최근 경쟁전 시즌3가 시작돼 유저들은 새로 출발할 티어를 배정받고자 배치 경기 10회를 한창 치르고 있다. 필자는 지난 시즌 플래티넘 티어였다. <오버워치>에는 8개의 티어가 있고 플래티넘은 점수 2500점 이상, 상위 8~38% 실력을 갖춘 중상위권 유저가 모인 구간인데 이 구간까지는 속칭 '심해'로도 불린다.

왜 심해라 불리냐 하면, 한 번 미끄러질수록 이길 생각을 거의 포기한 유저들, 게임 이해도가 아직 부족한 유저들, 팀워크를 저해하는 트롤링, 욕설, 책임 떠넘기기 등을 일삼는 비매너 유저들을 골고루 만날 수 있어서 도저히 헤어 나오려야 헤어 나오기 힘든 곳이기 때문. 이런 곳에 오래 머물다 보면 실력도 정체된다. 반면에 플래티넘의 상위 티어인 다이아몬드부터는 비교적 실력도 준수하고 매너 게임을 하는 유저가 많다는 소문에 '천상계'로 불린다.

'한조충'의 추억

 0~2%대 영웅들의 순위는 득표수 차이가 한 자리수 이내이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응답자 중 팀워크와 상관없이 자신이 해당 영웅 T.O를 차지하고자 동료 팀원의 자제를 유도하는 경우도 약간 반영됐을 수 있음에 주의하자. (블리자드 제공 사진 재가공)

0~2%대 영웅들의 순위는 득표수 차이가 한 자리수 이내이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응답자 중 팀워크와 상관없이 자신이 해당 영웅 T.O를 차지하고자 동료 팀원의 자제를 유도하는 경우도 약간 반영됐을 수 있음에 주의하자. (블리자드 제공 사진 재가공) ⓒ 블리자드 코리아


필자는 지난 2일 심해 탈출을 노리고 PC방을 찾았다. 다이아몬드 승급이 목표였다. 그런데 첫 배치 경기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반가워요, 잘 해봐요!"라고 인사하기 무섭게 동료 팀원 중 서로 친구로 보이는 두 명이 나란히 한조, 위도우를 픽(선택)했다. 저격수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갖고 배척해서는 물론 안 된다. 동시에 <오버워치>는 팀 게임이다. 배치 경기는 몇 개월 만에 다시 찾아온 중요한 순간이기에 서로 조합을 신경 써야 한다.

거점 수비에서 저격수가 둘이나 필요한 건 아니다. 유저들이 보통 안정적이라 평가하는 조합은 2탱2딜2힐, 2탱3딜1힐, 1탱3딜2힐 등이다. 우리 팀은 1탱4딜1힐(라인하르트(필자), 트레이서, 위도우메이커, 한조, 솔저, 루시우) 조합이라 수비에 취약했다. 저격수인 한조와 위도우가 '수비' 영웅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제 역할을 하려면 유저가 에임(조준) 실력이 특출나거나, 전방에서 적들과 맞붙는 딜러와 탱커들이 수적 열세를 압도할 만큼 특출나야 한다. (탱: 탱커, 강한 체력으로 수비를 담당하는 영웅 / 딜: 딜러, 높은 공격력을 보유한 영웅 / 힐: 힐러, 팀원의 체력을 회복하는 영웅)

한편 트레이서가 딜러이긴 하지만 메인 딜러가 아니라 빠르게 움직이며 적진을 흔드는 진형 붕괴형 딜러인 데다가 체력도 약하다. 결국, 옆에 솔저 한 명 낀 채 방패 한 장으로 적들을 막아야 할 탱커인 필자는 무척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정중하게 한조, 위도우를 픽한 팀원들에게 부탁했다. 저격수 두 명은 부담스러우니 한 분만 탱커나 메인 딜러로 바꿔주시면 안 되겠느냐고.

그러나 그들은 필자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고 경기 종료까지 픽을 안 바꿨다. 결과는? 역시 패배. 한조, 위도우의 에임은 안 좋았고 필자의 방패는 제대로 된 조합을 갖춘 적들의 화력 앞에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체력은 금방 깎였고 집중 힐이 아닌 광역 힐 전문인 루시우의 힐은 잘 들어오지 않았다. 액땜했다 치고 다시 치른 두 번째 경기. 또 한조를 만났다.

저격수가 둘은 아니니 최악은 면했다며 애써 자신을 위로했지만 이번에는 다른 팀원들이 나서서 한조를 픽한 팀원을 압박했다. 다행히 실제 경기에서는 팀원 모두 제 역할을 다했기에 분위기만 유지하면 무난히 이길 것 같았다. 다만 아직도 채팅창에서 팀원들이 한조 픽을 놓고 싸우고 있었다. 경기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국에 타자들을 치고 있으니 실수가 나오기 마련.

결국, 딜러들이 후방으로 침투하는 적을 놓쳤고 10초만 더 버티면 이길 상황에서 적의 궁극기(죽음의 꽃)에 몰살당했다. A 거점이 뚫려 B 거점 수비로 넘어가자 팀원들이 일제히 한조를 비난했고 한조는 "더러워서 안 한다"라는 한 마디를 남긴 채 경기에서 탈주했다. 졸지에 5대6으로 싸우게 됐으니 역시 패배. 남은 8경기 중 7경기는 이겨야 승급을 노릴 수 있게 된 필자는 속이 타들어 갔다. 그리고 8경기 중 5경기밖에 이기지 못했다.

패배한 세 경기 중 두 번은 한조 만큼 평이 나쁜 영웅인 위도우를 만났다. 팀원들은 위도우 때문에 졌다고 아우성쳤지만, 그들 역시 모두가 잘 싸운 것은 아니었다. 배치 경기가 모두 끝나고 필자가 받은 티어는 '실버'. 승급은커녕 두 단계나 강등됐다. 정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딜러도 아닌 라인하르트로 팟지(최고의 플레이)까지 따내며 열심히 싸웠는데….

게임 세계는 출발선이 다르고 구조적 불평등이 엄존하는 현실 세계와는 다른 곳이다. 공정한 실력 싸움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 그래서 필자는 '못 하는 놈들이 꼭 동료 픽만 탓한다'라는 말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 나 자신은 부족함이 없는가 진지하게 반성도 해봤다. 분명 필자에게도 아쉬운 순간들이 있었다. 그러나 실버는 억울했다. 이길 경기를 어이없게 졌기 때문이다.

문제의 중심에는 저격수들 특히 한조가 엮여 있었다. 그러나 유저들의 한조에 대한 평가는 온당한 비판과 책임 떠넘기기가 뒤죽박죽 섞여 있어 무엇이 진정한 한조의 모습인지 객관적 평가가 어렵다. 자신의 픽을 고집하는 한조 유저를 만났을 때 동료들은 어떻게 호흡을 맞출지 생산적 논의를 하는 경우가 드물다. 충격과 분노에 입각한 편견만 도시 괴담처럼 켜켜이 쌓여가는 이유다.

당사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오버워치>의 영웅 라인하르트의 방패는 적들의 투사체로 인한 아군 피해를 막아준다.

<오버워치>의 영웅 라인하르트의 방패는 적들의 투사체로 인한 아군 피해를 막아준다. ⓒ 블리자드 코리아


그렇다면 당사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플레이를 할까. 이제까지 필자가 만난 한조 유저들은 대부분 시크한데다가 다들 '즐겜'하기 바빠 입장을 직접 듣기가 어려웠다. 다만 이번 설문에서 흥미로운 점이 하나 발견됐다. 설문은 유저들에게 기피하는 영웅뿐만이 아니라 '팀에 가장 필요한 영웅'과 '가장 자주 픽하는 영웅'을 물었는데, 한조를 가장 자주 픽하는 영웅으로 꼽은 18명 중 11명이 '팀에 가장 필요한 영웅'도 한조를 꼽은 것이다.

다른 유저들이 그래도 '팀에 가장 필요한 영웅'으로 루시우, 아나, 자리야, 라인하르트 등 힐, 방벽 등 이타적 역할을 하는 영웅을 꼽는 편이라면, 한조 유저들은 자신을 팀에서 가장 필요한 존재로 보는 성향이 더 두드러지는 게 독특했다.

실제로 유튜브에는 천상계 한조 유저들의 탈 인간급 플레이 영상들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한조도 잘 쓰면 엄청난 이바지를 할 수 있는 영웅이다. 그러나 마음만큼 손가락이 못 쫓아오는 심해는 개개인의 역량을 뽐내려 들기보다는 조합과 팀워크를 잘 맞추는 훈련부터 하는 게 오히려 안정적인 승률을 보장하지 않을까 싶다. 서든 어택 같은 게임에서야 킬(kill)수 올리면 그만이지만 <오버워치> 같은 거점 점령, 화물 운송 등 임무 수행형 게임은 적을 많이 죽이는 것보다 어떻게 임무를 완수할지가 중요하다. 적을 죽이는 것은 그 임무의 일부일 뿐이다.

물론 필자도 심해 유저일 뿐이고 단지 한조 유저들과 보다 생산적으로 게임을 즐기고픈 마음에 이런 조사와 고민을 해봤다. 심해에도 팀플레이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는 한조 유저들은 있으니 기죽을 필요 없고 편견을 가질 필요도 없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한조도 나름 불쌍한 영웅이다. 암살자 집단인 시마다 가문의 계승자가 되어야 할 큰아들로 태어나 가문의 뜻을 거스르는 동생 겐지를 죽음 직전까지 몰아가야 했고 그 죄책감으로 가문을 떠나 방황한다.

살인미수범이라 취업도 어렵고 나이도 38세라 연애 시장에 진출도 어렵다. 물론 탈론 소속 암살자 위도우메이커가 가끔 추파를 던지지만, 그것은 한조의 말대로 대가가 따른다. 그런데도 한조는 사이보그로 살아 돌아온 동생 겐지와 함께 오늘도 꿋꿋이 전장을 메뚜기처럼 뛰어다닌다. 어쩌면 '한조충'과 '참한조'는 종이 한 장 차이일지 모른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본질은 <오버워치>는 팀 게임이라는 것. 한조 유저든 비한조 유저든 서로 존중해야 한다는 것. 그렇다. '한조충'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나 없는 것이다.

여러분, 제발 '한조 혐오'를 멈춰주세요!

 <오버워치>의 영웅 시마다 한조. 그는 '한조충'이라는 불명예를 언제쯤 벗을 수 있을까.

<오버워치>의 영웅 시마다 한조. 그는 '한조충'이라는 불명예를 언제쯤 벗을 수 있을까. ⓒ 블리자드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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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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