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방송을 마지막으로 MBC <진짜 사나이>가 종영했다. 아니, 종영이 아니라고 우긴다. 어쨌든 담당 PD가 시즌3으로 돌아오겠노라고 기약 없는 약속을 했으니. 게다가 마지막 시청률도 9%에 가까우니 그 정도면 선방이라고 표현해도 무리가 없지 않은가. 방송국의 입장에서는 여지를 주고 싶을 수밖에.

그러나 시청자의 입장으로 감히 <진짜 사나이>에게 고하고 싶다. 이제 그만 하라고. 3년이면 충분히 할 만큼 했다고. 떠날 때를 아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다지 않은가.

기대됐던 <진짜 사나이>의 시작

사실 처음 <진짜 사나이>가 방영될 때만 하더라도 MBC <일밤>은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비록 1부 <아빠! 어디가?>가 장안의 화제를 일으키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었지만, 다른 코너들이 지리멸렬하면서 전체적으로 다시 수렁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사람들의 의심을 자아내고 있었다.

 예비역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진짜 사나이>시즌1

예비역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진짜 사나이>시즌1 ⓒ MBC


그때 <진짜 사나이>가 등장했다. 이미 제대한 남성들을 다시 입대시켜 군 생활을 시킨다는 충격적인 설정의 프로그램. 시청자들은 요즘 예능이 아무리 리얼을 추구해도 군대는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진짜 사나이>는 그런 편견을 어느 정도 극복해냈고, 그만큼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특히 나와 같은 예비역들은 재입대를 현실화시킨 <진짜 사나이>의 설정에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은 과거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 속에는 흘러간 나의 청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과거는 아름답게 채색되는 법 아니던가.

프로그램에는 휴가 나와서 우리가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 못했던 그 많은 고충과 고뇌가 곳곳에 담겨있었다. 군대 이야기만 나오면 '폄훼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우리가 차마 언급하지 못했던 그 낯설고 서럽던 이야기들. <진짜 사나이>는 용케도 그것들을 담아냈고, 우리는 그것에서 위로를 받았다. 

가족들이 함께 <진짜 사나이>를 보면서 우리 아들이, 우리 남편이, 우리 아빠가 이리도 수고했는지 몰랐다며 위로를 하는데 어찌 감동적이지 않은가. 예비역 입장에서는 <진짜 사나이>가 고마울 수밖에 없다. 자신의 고생을 프로그램 덕분에 이제야 인정받는다는 보상심리가 더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진짜 사나이>는 그 뒤 결코 낮지 않은 시청률을 얻었지만, 처음처럼 화제를 몰고 다니지 못했다. 여성 출연자들이 나오거나 군대에서 연예인들이 의외의 모습을 보였을 때에만 언론에서 주목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왜 그랬을까?

군대에서는 무엇이 진짜 리얼인가?

<진짜 사나이>의 한계는 프로그램이 리얼을 추구했지만 결코 리얼이 될 수 없다는 역설에서부터 시작된다. 처음 <진짜 사나이>에 많은 이들이 열광했던 것은 프로그램이 생각 외로 군대에서의 생활을 리얼하게 그렸기 때문인데, 문제는 그 현실성이 방송에서 허용되는 선까지로 제한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군대 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인간관계다. 내 위의 선임이 누구냐에 따라 군 생활의 질이 결정된다. 아무리 훈련이 힘들더라도 나와 24시간 함께 있는 동료가 괜찮다면 그 사람의 군 생활은 풀린 것이고, 아무리 편한 보직이라도 선임이 고약하다면 그 사람의 군 생활은 시쳇말로 꼬인 것이다. 우리가 심심찮게 접하듯이 그것은 사람의 목숨까지도 좌지우지할만한 조건이다.

그러나 <진짜 사나이>에서는 이 부분이 빠져 있었다. 아니, 누락될 수밖에 없었다. 비록 그 안에 계급도 있고, 연예계 선후배 관계도 있는 만큼 흉내는 내지만 어디까지나 흉내일 뿐이다. 어떻게 방송에서 찰진 욕을 할 수 있으며, 말도 안 되는 것으로 갈굴(?) 수 있으며, 심지어 때릴 수 있겠는가.

ⓒ MBC


따라서 <진짜 사나이>는 군대 내 인간관계 역학 대신 다양한 훈련 모습과 병과, 그리고 연예인 섭외 등에만 집중했다. 국방부가 국민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부분만 카메라에 담고 그 안에서 쇼를 벌였다. <진짜 사나이>가 국방부 홍보대사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원인이다.

결국 이런 한계는 프로그램의 리얼리티를 떨어뜨렸다. 비록 연예인들은 온갖 훈련과 체력단련 등으로 고생을 했지만 우리는 그것을 가짜라고 인식했다. 정작 다른 부대에서는 아직도 많은 병사가 부대 내 구타 및 가혹 행위로 자살을 하고 있는데 <진짜 사나이>는 끝없이 아름다운 전우애만 주장하고 있지 않은가.

시대에 뒤떨어지는 프로그램

처음에는 리얼리티로 인기를 끌었지만 구조적으로 리얼을 담보할 수 없는 <진짜 사나이>의 한계. 그러나 그것만으로 이 프로그램의 종영을 주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차피 예능 프로그램이란 것이 아무리 리얼 버라이어티를 표방했어도 그것이 완벽하게 진짜가 될 수 없음은 시청자 역시 인지하고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나는 <진짜 사나이>의 폐지를 주장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이 프로그램이 확대재생산하고 있는 문화, 즉 군대 문화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 군대 문화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조직은 그 어떤 곳보다 수직적이고 권위적이며 남녀 차별적인데 이는 군대의 영향이 매우 크다. 분단으로 말미암아 대부분의 남성이 20대 초반 군 복무를 하면서 군대 문화를 습득하게 되고, 이것이 기존의 사회문화와 맞물려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비록 세월이 흘러 점차 변하고는 있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군대의 자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당장 우리네 학교와 직장을 떠올려보자. 그곳이 군대하고 뭐가 다른가. 까라면 까고, 안 되면 되게 하고,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그 숱한 '꼰대질'들. 우리는 아직도 그와 같은 말도 안 되는 충고를 원래 그러려니 받아들이고 있으며, 스스로 합리화하는 데 익숙하다. 전혀 자연스럽지 않은 논리들이 군대라는 기제를 거쳐 사회에 이식되고 있다.

그런데 <진짜 사나이>는 이런 군대 문화에 대한 사회의 비판의식을 무디게 만들었다. 그 징글맞은 군대 문화를 하나의 예능 거리로 만들어 그것의 위험성과 음험함을 거세하고, 군대에서 바라보는 시각으로 한 사람을, 더 나아가 사회를 재단하게 만들었다. 너무 과민반응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혹자들에게 <진짜 사나이>는 매우 불편하고 폭력적인 프로그램이었는지도 모른다.

 <진짜 사나이>의 여성은 '남자 같은' 이시영으로 소비된다.

<진짜 사나이>의 여성은 '남자 같은' 이시영으로 소비된다. ⓒ MBC


군대 문화에서 가장 소외되고 있는 여성을 보자. <진짜 사나이>는 비록 여군을 등장시키며 여권 향상 운운할 수도 있겠으나, 실제 여성을 소비하는 방식은 기존의 사회적 편견을 강화시키는 방향이었다.

대표적으로 프로그램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걸스데이의 혜리가 있다. 그녀는 남성들과 동등하게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조교한테 '앙탈'을 부리며 '애교'를 떨었기 때문에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진짜 사나이>가 소위 '사회적으로 합의된 여성성'을 더욱 강조하면서 시청률을 올린 것이다.

최근 이시영은 어떠한가. 그녀는 본디 아마추어 복싱 대회에서 챔피언에 올랐던 인물로서 군대 훈련에 적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진짜 사나이>는 남성들과 경쟁해서 절대 밀리지 않는 이시영을 가리키면서 그녀가 여성임을 특히 강조했다. 혜리와는 반대 방식으로 기존의 여성성을 강조했다.

이처럼 <진짜 사나이>가 강조하거나 자연스럽게 노출한 군대 문화는 더는 이 시대와 맞지 않다.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있었던 살인을 우리 사회가 반성해야 한다면 <진짜 사나이>는 스스로를 뒤돌아봐야 한다. 결국 <진짜 사나이>가 내포하고 있는 시대정신은 우리가 군대가 아닌 사회에서 극복해야 할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진짜 사나이>는 2013년 4월 첫 방송을 내보냈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돼 사회 전체를 제3공화국으로 되돌리려던 그 시점, 어쩌면 <진짜 사나이>는 그 선두에 서서 선진병영문화를 요란하게 홍보하던 홍위병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시대가 달라졌다. 아니 달라져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추구했던 추억팔이가 한낱 허상이었음이 밝혀진 이때, <진짜 사나이>도 떠날 때가 되지 않았을까? 그동안 수고했다만 더 이상의 복고는 노땡큐다.

진짜사나이 병영홍보프로그램 박근혜대통령 군대이야기 군대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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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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