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대표팀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한축구협회축구회관에서 대표팀 명단 발표 기자회견을 하기 전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축구대표팀은 다음달 11일 천안에서 캐나다와 친선 경기를 치른 뒤 1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우즈베키스탄과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5차전을 치른다.

축구대표팀 울리 슈틸리케 감독. ⓒ 연합뉴스


한때 나란히 경질 위기에 몰렸던 한일 축구의 두 외국인 사령탑이 나란히 재신임을 받으며 일단 한숨을 돌렸다.

<니칸스포츠> 등 일본 주요 언론들은 일본 축구협회가 지난 28일 2016년 각급 대표팀에 대한 기술위원회 내부 평가 자리를 열고 내년에도 일단 현행 체제를 유지하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이로써 일본 A대표팀은 바히드 할릴호지치 현 감독이 계속해서 지휘봉을 잡게 됐다.

할릴호지치 감독은 최근 일본 내에서 경질설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지난 15일 벌어진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B조 5라운드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2-1로 승리했지만 일각에서는 지금이 할릴호지치 감독을 교체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주장도 나왔다. 내년 월드컵 최종예선 후반 일정이 재개되기 전까지 약 4개월이라는 시간적 여유가 있는만큼 새로운 감독을 선임하고 팀을 재정비하려면 시기적으로 지금이 적기였기 때문이다.

할릴호지치 감독 재신임한 일본

하지만 일본 축구협회는 고심 끝에 할릴호지치 감독을 믿고 가는 것으로 결정했다. 일본은 UAE와의 최종예선 첫 경기를 패배하며 불안하게 출발했으나 이후 4경기 연속 무패를 기록하며 서서히 정상궤도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할릴호지치 감독과 일본의 행보는 묘하게 울리 슈틸리케 감독을 재신임한 한국축구의 행보와도 닮아있다. 슈틸리케 감독도 최종예선에 접어들며 부진한 모습으로 한때 경질설까지 거론되는 위기를 맞이했으나 지난 5차전서 우즈베키스탄을 2-1로 무너뜨리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한국축구협회는 슈틸리케 감독과 내년에도 계속 함께간다는 의지를 밝혔다.

A조의 한국과 B조의 일본은 나란히 3승 1무 1패(승점 10)로 조 2위를 달리고 있다. 한국은 선두 이란에 승점 1점 차로 뒤져있고, 3위 우즈벡에는 1점 차로 앞서있다. 일본은 선두 사우디와 승점은 같고 골득실로만 뒤져있지만 아래로 호주-UAE 2팀이 1점 차로 뒤를 추격하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일단 지휘봉은 지켰지만 슈틸리케-할릴호지치 두 감독의 리더십을 바라보는 불신의 시선은 한일축구 팬들 모두 비슷하다.

슈틸리케 감독은 부임 초기 호주 아시안컵과 2차 예선때 까지만 해도 승승장구했으나 최종예선에 접어들며 시리아 원정 무승부-이란전 패배와 연이은 책임회피성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신뢰도를 까먹었다. 특히 이란전 이후 나온 "한국에는 카타르의 소리아같은 공격수가 없어서 졌다"는 발언은 대표팀 감독으로서는 역대급 망언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슈틸리케 감독이 특히 대표팀 운영에서 비판받고 있는 이유는 특색 없는 전술과 아전인수식 언행 불일치가 꼽힌다. 부임 초기 다양한 선수들을 활용하며 건강한 경쟁 체제를 부활시켰던 슈틸리케호는 2차예선 이후 선수층과 전술에 변화없이 매너리즘을 드러냈다. 소속팀에서 꾸준히 활약하는 선수들을 중용하겠다는 초기의 원칙은 무색해진지 오래이고, 경기력이 좋은 K리거는 외면하면서 정작 부진한 해외파나 특정 선수 기용에는 이중잣대를 적용하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당초 점유율을 바탕으로 한 공격축구를 플랜 A로 내세웠지만 최종예선에서는 선제골을 내주고 끌려가다가 김신욱을 향한 롱볼축구로 꾸역꾸역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경우가 더 많았다. 장점으로 꼽히던 수비력은 5경기에서 벌써 6골을 내주며 오히려 최대 약점이 되어버렸다. 무엇보다 언론과 팬들의 합리적인 비판에 대해서도 감정적이고 자기방어적인 대응으로 일관하는 것도 불신을 부추겼다는 평가다.

슈틸리케호는 내년에 재개되는 최종예선 후반기 5경기 중 3경기가 원정이다. 전반기에 슈틸리케호는 홈에서만 전승(3승)을 거뒀지만 원정에서는 1무 1패로 아직 승리가 없다. 전력상 가장 부담스러운 이란(홈)-우즈벡(원정)과의 리턴매치가 모두 막바지에 몰려있다는 것도 부담스럽다. 수비라인의 안정감 회복과 함께 파괴력있는 선발 원톱의 발굴, 유럽파를 대체할수 있는 플랜 B의 확보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플랜 B가 필요한 일본 축구대표팀

할릴호지치 감독은 지난 브라질월드컵에서 알제리를 이끌고 홍명보호를 격파하며 16강이라는 성과를 올려 주목받았다. 일본은 멕시코 출신 하비에르 아기레 감독이 아시안컵에서의 부진과 스페인 시절의 승부조작 파문 등이 겹쳐 경질되면서 2015년부터 일본 대표팀의 지휘봉을 물려받았다.

할릴호지치 감독은 다혈질에 고집스러운 성격으로 이미 일본을 맡기전부터 여러 팀에서 구단-언론-선수-팬들과 돌아가며 불화를 빚었던 전력이 화려했다. 우려한대로 할릴호지치 감독은 일본 대표팀을 맡은지 얼마되지않아 과격한 언행으로 여러 차례 도마에 올랐다.

지난해 동아시안컵에서의 성적 부진 이후 뜬금없이 J리그의 수준을 비하하는가 하면 축구협회의 일정 관리와 일본 선수들의 피지컬 문제 등에 책임을 전가하며 일본 언론의 질타를 듣기도 했다. 혼다 케이스케나 카가와 신지처럼 경기력이 떨어진 유럽파에 대한 과도한 신뢰와 의존도로 비판받은 것은 최근 한국축구와도 유사한 장면이다.

할릴호지치 감독은 지난 사우디전에서는 변화의 조짐을 보였다. 대표팀의 기둥인 혼다와 카가와를 모두 선발에서 제외하고 선수단에 대폭 변화를 주고서도 조 선두를 달리던 사우디를 압도하며 승리를 차지한 것은 그간 할릴호지치 감독에게 쏟아지던 비판 여론을 바꾸는데 기여했다.

할릴호지치 감독은 과거에도 여러 클럽과 대표팀에서 종종 베스트 11을 큰 폭으로 바꾸는 등 파격적인 변화를 즐겨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기요타케 히로시, 오사코 유아, 하라구치 켄키 등 할릴호지치 감독이 최근 중용한 20대 젊은 피들이 좋은 활약을 선보이며 수년간 정체된 일본 대표팀에 경쟁 구도를 부활시켰다는 점은 긍정적인 요소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할릴호지치 감독의 불안요소는 역시 선수단 장악이다. 일본 대표팀 내에서 파벌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던 혼다는 최근 사우디전에서는 선발 출전 문제로 할릴호지치 감독과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일본 언론에서는 할릴호지치보다 혼다가 오히려 대표팀에서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일본 축구계나 J리그에서 할릴호지치의 리더십을 바라보는 시선도 여전히 곱지 않다. 할릴호지치 감독이 자신만의 방식을 고수하며 일본의 월드컵 진출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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