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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풍경
 지리산 풍경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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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전환의 연속이다. 새가 털갈이를 하고, 뱀이 허물을 벗고, 곤충이 변태를 하듯이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다. 때가 되면 익숙한 세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더 큰 만남을 위해 떠나야 한다. 이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 - 조셉 캠벨 <신화와 인생>

"강 언니, 팟캐스트 해봐요!"

지난 여름 폭염을 피해 지리산에 놀러온 나현씨가 뜬금없이 꺼낸 말이었다.

"언니, 목소리 좋잖아요..."

그때 문득, '때가 되면 익숙한 세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라는 조셉 캠벨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 이제 더 큰 만남을 위해 떠나야 할 땐가? 디지털 세상으로? 사실 나는 인터넷 세상에 한 발만 슬쩍 걸치고 있을 뿐 아날로그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 지리산 산촌마을의 농가로 귀촌한 후로는 더더욱.

그렇다고 21세기에 자동차나 인터넷, 휴대전화 같은 최신 기술 문명들을 거부하며 살고 있는, 미국의 아미시 사람들의 철학을 추종하는 건 아니었다. 소위 인터넷 회의주의자, 디지털 혐오자도 아니고. 물론 '문명의 이기'에 대한 반감은 갖고 있었다.

빠르게 변해가는 기술문명 세계에 나 나름의 템포로 늘 천천히 다가갔다. 그런데 느려도 너무 느리고, 쳐져도 너무 쳐졌나? 2016년도에 폴더폰을 쓰고 있으니. 어디 가서 꺼내놓으면, 사람들이 석기시대 유물을 보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는데. 

휴대전화는 받아들여야만 하는 신문명이었다

 명절에 만난 가족 스마트폰
 명절에 만난 가족 스마트폰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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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뇌리에서 맴돌고 있던 더글러스 애덤스의 말도 떠올랐다. 모든 기술 문명에 대한 두려움에 대처하는 세 가지 유형.

"첫째, 태어났을 때부터 이미 존재한 모든 것은 우리에게 일상적이다. 둘째, 출생에서부터 30세 이전에 발명된 것은 놀랍도록 흥분되고 창의적이며, 그것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행운이다. 셋째, 30세 이후에 발명된 것은 자연의 질서에 반하는 것이며, 우리가 알고 있는 문명의 종말을 뜻한다. 그것이 약 10년 이상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것과 천천히 친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랬다. 내 나이 서른 살 이후에 발명됐고, 10년 이상 일상에 존재하며, 아주 빨리 진화되고 있는 것들이 있었다. 내 상상력을 뛰어넘으며 놀랍도록 발전해 가는 문명. 그러나 나는 그 진화속도에 휩쓸리지 않았다. 그 속도에 맞춰 급히 뛸 이유가 없었다.

내가 첫 휴대전화를 구입한 때가 2002년이었다. 그때는 이미 휴대전화가 대중화돼 초등학생들까지 너도나도 들고 다니던 때였다. 필수품으로. 그런데도 내겐 필요 없는 문명 기기이다 싶었다.

그런데 당시 어쩌다보니 영화와 드라마 촬영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엑스트라 '행인1'에서 시작했는데, 한 줄씩 대사가 할당되더니, 어느 날은 긴 대사를 받아 외우고 있었다. 현장에 언제 불려나갈지 모르는 일이었다. 말 그대로 휴대전화기가 필요했다. 그나마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받아들여야 하는 신문명이었다.

 내가 그동안 사용한 휴대전화기(한 대가 더 있는데 못 찾겠다.)
 내가 그동안 사용한 휴대전화기(한 대가 더 있는데 못 찾겠다.)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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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지금까지 14년 동안 사용한 휴대전화가 4대. 전화통화와 문자만 주고받는 기기로 사용했다. 완전히 망가져 재생 불가한 폐기물이 될 때까지 쓰다가 새로운 기종으로 바꾸곤 했다. 원래 미니홈피, 싸이월드, 블로그 같은 온라인 공간은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그 후 페이스북,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같은 디지털 세상도, 그리 썩 입 맛 당기는 공간이 아니었다. 

사실, 나는 온라인 인맥은 그리 신뢰하지 않았다. 사방팔방에 대고 미주알고주알 사생활을 드러내거나, 타인의 그걸 들여다보는 일도 무의미하다 싶었다. 테크놀리지 공간 속에 종속되어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은근히 비하하기도 했다.

물론, 공중파 미디어가 권력자들에게 장악된 세상에서, 트위터와 유튜브 동영상, 문자메시지 등 SNS가 재스민 혁명, 이란의 시민 저항 등 시민들에게 긍정적인 연대의 에너지를 끌어모으는 기능도 했지만. 아무튼 유대감 끈끈한 오프라인 인맥만으로도 나의 '사회성'과 '관계망'은 충분히 촘촘했고, 만족스러웠다.   

자, 우선 스마트폰부터 샀다

그런데 '팟캐스트'를 제작한다는 건, 그렇게 뒷짐 지고 거부해오던 디지털 세상으로 두 발을 다 들여놓는다는 의미였다. 사실 나는 팟캐스트 애청자다. 2012년 <나는 꼼수다>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줄곧 팟캐스트의 그 풍부한 콘텐츠들을 즐겨 들어왔다.

그런데 팟캐스트('Ipod'과 'broadcast'의 합성어)는 유명인이나 방송인이 아니어도, 누구나 어디서나 만들어 올릴 수 있다. '1인 미디어' 시대였다. 중요한 건 양질의 콘텐츠. 그러니까 세상에 알리고 싶은 메시지와 얘기 거리가 내게 있나?

어쨌거나 나현씨가 던진 그 제의에 은근히 구미가 당겼다. 새로운 플랫폼에 도전해 볼만하다 싶었다. 실은 방송이 내게 생판 낯선 일은 아니었다. 20여 년 전이었나. 미국 LA의 한인 라디오 방송국에서 몇 달 일한 경험이 있었다. 어떨 결에 입사해 어리바리 굴다가 개편 때 가차 없이 잘렸지만.

결국, 지난 여름 끝 무렵 서울에 올라가 스마트폰부터 구입했다. 저렴한 보급형 기기로. 나는 무슨 대단한 삶의 전환점에 선 사람처럼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걸 느꼈다. 두려움과 설렘으로. 내 인생에 또 한번 찾아온 전환기(스마트폰 하나 사들고, 뭐 그리 의미를 붙여가며 호들갑을 떠는지 싶기도 하지만).

 지리산 산촌 우리마을 풍경
 지리산 산촌 우리마을 풍경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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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주저주저, 휘청휘청, 디지털 세계로 들어섰다. 이 친구 저 친구 손 꼭 붙들고, 돋보기 안경을 콧등에 눌러쓰고. 스마트폰을 다루는 방법부터 더듬더듬 배워갔다.

원래 기계치인 데다가 나이 쉰이 넘어서 부턴 부쩍부쩍 떨어지기 시작한 뇌의 용량 탓인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 등록하고, 첫 사진을 올리고... 그러는데 뇌에 과부화가 걸리는 것 같았다. 정수리에서 뿌옇게 뜨거운 김이 피어올랐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아으! 누가 이런 건 만든 거야?' 열심히 설명해주고 있는 애먼 친구들에게 짜증을 냈다.

"주영아, 이모 인기 짱이다! 역시 이모는 살아있어, 살아있어! 페북에서 친구하자고 사람들이 엄청 많이 신청해... 아니, 누군지 기억이 안 나는 사람들이 더 많아. 이모가 원래 기억력이 좀 흐리잖아. 아마 여행하다 만난 사람들이거나... 그럼, 다 '수락' 했지. SNS에 내가 입장하자마자 그렇게 다들 격하게 환영해주는데. 그리고 내가 기억 안 난다고 거절하면, 그 친구들 상처 받잖아. 그래서... 뭐어? 광고?"

정말 조카 말대로, 다음날 수백 건의 광고 스팸들이 전장에 떨어지는 폭탄처럼 투하되는데... 우씨이! 욕이 터져 나왔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단체 카톡방'에 초대 되었다는 매세지가 뜨고부터였다. '카톡! 카톡! 카톡! 카톡!.....' 쉬지 않고 울려대는 카톡, 카톡, 카톡... 이건 또 뭐지? 마침, 읽고 있던 <나는 농담이다>라는 소설 속으로 흥미진진 빠져드는 판이었는데... 열어보니 10여 년 전에 함께 활동했던 한 동아리 친구들이 모인 '단톡'이었다.

나는 다짜고짜 그들 대화에 끼어들었다. '와우! 반가워요! 강은경입니다. 최근 스마트폰 구입하고 SNS 입문했는데... 근데 계속 카톡! 대는 소리, 너무 피곤하네요. 독서 중인데 방해 받지 않을 방법 없나요? 무음요? 그럼, 전화도 못 받잖아요?' 이랬으니…. 오랜만에 다시 안면 트는 첫인사 치곤 참 '재수 없다' 싶었을 게다. 

팟캐스트를 위한 준비... 노트북과 4만원짜리 마이크

그렇게 우여곡절 겪으며, 그 기기는 내 손에서 조금씩 안정감을 찾아갔다. 그러면서 팟캐스트를 준비해갔다. '나 좀 도와줘어~!' 또 친구들에게 손 내밀며. 기타리스트이고 예술공연 작곡가인 진규씨가 인트로 음악과 배경 음악 등 음원 일체를 기꺼이 후원해줬다(곧 로고송도 만들어 주겠다며).

엔지니어 친구인 전은 사무실 구석에 짱 박혀 있던 대형 모니터랑 마이크를 들고 지리산으로 찾아왔다. 내 방에 스튜디오를 차렸다. 노트북과 4만 원짜리 마이크, 달랑 그거로. 값비싼 하드웨어 장비들이 필요 없다는 게 나는 놀랍기만 했다. 녹음과 편집 기술도 그에게 배웠다.

 지리산 집에 만든 팟캐스트 스튜디오.
 지리산 집에 만든 팟캐스트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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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현씨는 '팟빵'에 채널을 만들어주었고, 아이튠즈 스토어 등록을 도와줬다. 블로그도 개설해줬다. 기술적인 준비들을 끝낸 후, 마침내 에피소드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무엇을 어떻게 만들까? 그때부터는 순전히 혼자서 고민하며 헤쳐 갈 작업이었다. 나는 PD, 작가, 진행자, 엔지니어, 1인 다역을 소화해야 했다.

지리산에서 가볍고 단순하고 자유롭게 살고 있는 자유여행자의 얘기로 콘텐츠의 주제를 정했다. 배운 데로 녹음을 하고, 자르고, 붙이며 편집했다. 스마트폰을 들고 지리산 여기저기를 걸으며 야외 녹음도 했다. 게스트를 지리산에 초대했고, 마이크와 노트북을 들고 서울에 올라가 게스트를 만나 녹음하기도 했다. 기기 다루는 게 서툴러, 엔지니어 친구에게 시도 때도 없이 전화로 물어야 했다. 그렇게 새로운 뭔가를 만드는 재미에 푹 빠졌다.

마침내 10월 초, 에피소드 1화 파일을 서버에 올렸다. 혼자 룰루랄라 아날로그 세상에 남아있던 내가 그렇게 두어 달 만에 디지털 세상으로 점프해 들어갔다. 그것도 단번에 아주 깊숙이 들어간 것 같았다. '오, 대박!' 그 날 나는 지인들에게 문자로 팟캐스트를 시작했다고 통보했다. 페이스북과 블로그에도 올렸다.

<강누나의 깡여행! (강깡)>.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내용도 재미있지만 목소리가 좋다는 얘기가 많이 들려왔다. 내 귀엔 참 어색하고 낯선 목소린데(역시 목소리는 인간의 신체 기능 중에 가장 늦게 노화 된다더니...). 콘텐츠도 나름 신선한 구석이 있고... '자뻑' 하며 혼자 축하 맥주를 들이켰다. 나의 존재감과 자의식이 맥주 거품처럼 차고 넘치는 아름다운 밤! 

내 생애 큰 전환점... 팟캐스트는 '순항중'

 2015년도 아이슬란드 배낭여행
 2015년도 아이슬란드 배낭여행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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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나 유튜브 같은 1인 미디어를 만드는 이유가, '자기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서, 또 자기 자신을 확장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고용하기 위해서, 그냥 재미로 즐거워서'라는데.

아무튼 재밌다. 그런데 디지털 세상은 내겐 좀 시끄럽고 성가신 세상처럼 느껴졌다.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신호음들. 나는 한 달도 안 지나 그 모든 신호음들을 무음으로 돌려놨다. 그냥 하루에 두어 번 스마트폰을 열고 SNS를 들여다본다. 그러니 디지털 세상에 홀딱 빠져 길을 잃을 염려는 없겠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통제하며, 이용할 건 이용하고, 즐길 건 즐기는 거다.

초겨울에 들어선 지리산에서 벌써 일곱 번째 팟캐스트 에피소드를 준비하고 있다. 여하튼 내겐 생활의 큰 전환점을 맞은 기분이다. 그로인해 정말 새로운 세계에서 더 큰 만남들이 이뤄질까.

[바로가기] 강누나의 깡여행 팟빵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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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지리산으로 귀촌하였습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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