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막을 내린 2016년 K리그에서 가장 눈에 띄는 현상 중 하나는 바로 빈번한 감독교체였다.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서 최선봉에 선 수장이 책임을 지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지만, 프로축구는 타 프로스포츠와 비교해도 유독 감독들의 단명이 빈번하다.

포항의 최진철 감독, 성남의 김학범 감독, 인천의 김도훈 감독, 울산의 윤정환 감독 등이 올 시즌 팀을 떠난 사령탑들이다. 이중 윤정환 감독은 J리그 세레소 오사카행이 거론되고 있으며, 김도훈 감독은 윤 감독이 떠난 울산의 지휘봉을 잡았다.

최용수 감독은 시즌 중반 중국 장쑤 쑤닝의 제의를 받고 서울 떠나 중국리그로 진출한 경우다. 제주와 전남은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대비를 위해 지도자 라이선스를 갖추기 못한 감독을 수석코치로 강등시켜야하는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했다. 2부리그인 K리그 챌린지까지 범위를 넓히면 교체된 감독의 숫자는 더욱 늘어난다.

저마다 사정이야 어찌됐든 빈번한 감독교체는 팀운영의 연속성을 떨어뜨리고 여러 가지 혼선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감독은 시간을 두고 자신의 축구철학을 소신있게 펼쳐보이기보다는 눈앞의 성적에 급급할 수밖에 없다. 선수들도 감독이 바뀔 때마다 달라자는 축구철학과 전술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점점 사라지고 있는 장수 감독

 2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전북 현대와 FC서울의 4강 1차전. 전북 최강희 감독(오른쪽)과 서울 황선홍 감독이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지난 9월 2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전북 현대와 FC서울의 4강 1차전. 전북 최강희 감독(오른쪽)과 서울 황선홍 감독이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굳이 올해만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K리그는 한 팀에서 오랫동안 지휘봉을 잡는 장수 감독을 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현재 K리그 최장수 감독은 2005년부터 올해까지 전북 현대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최강희 감독이다.

2011년 12월부터 약 1년 반 동안 타의에 의하여 국가대표팀 사령탑으로 잠시 외도한 경험이 있기는 하지만 이 기간을 제외해도 최강희 감독보다 더 오래 한  팀에서 활약한 현역 지도자는 없다. 최 감독은 취임 당시만 해도 지방의 비인기 구단으로 꼽히는 전북을 K리그와 아시아를 호령하는 강팀으로 바꾸어놓았고 '닥공'으로 대표되는 확고한 공격축구 철학을 팀에 뿌리내린 장본인이다.

맨유하면 매트 버스비나 알렉스 퍼거슨이 떠오르고, 아스날하면 아르센 벵거를 떠올리듯이 한 팀에서 오랫동안 지휘봉을 잡은 명장은 그 팀의 철학과 비전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된다. 하지만 최 감독을 제외하면 K리그에서는 3~4년 이상 꾸준한 성적을 올리며 자신만의 축구철학을 인정받는 장수 감독들이 드물다. 현재 K리그 클래식에서 최 감독을 제외하고 가장 오래 지휘봉을 잡고 있는 인물이 올해 4년차인 서정원 수원 감독이다.

이러한 감독들의 단명 현상은 단지 지도자 개인 무능 탓이라기보다는, 인재를 소모품처럼 취급하는 프로축구계의 구조적인 한계이기도 하다. 울산의 경우에도 윤정환 감독은 리그 4위로 준수한 성적을 올렸지만 계약 연장에는 실패했다. 윤 감독은 팀운영과 축구철학에 대한 방향성에서 구단과 이견차이를 드러냈고 울산의 극성팬들과도 여러 차례 갈등을 빚어왔다.

김학범 성남 감독의 경질 역시 논란이 되었던 장면이다. 김 감독은 성남 일화 시절부터 팀의 전성기를 이끈 레전드이기도 하다. 시민 구단 전환 이후에도 성남을 꾸준히 좋은 성적으로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올 시즌 중반 성남이 중위권으로 추락하자 돌연 경질됐다. 하지만 아직 상하위 스플릿 진출도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라 너무 성급한 결정이 아니냐는 지적이 많았다.

우려한대로 성남은 오히려 김 감독 경질 이후 추락했다. 성남은 이후 구상범 감독대행마저 강원과의 승강PO를 앞두고 건강문제로 사임하며 변성환 코치가 팀을 이끄는 등, 감독이 두 번이나 바뀌는 혼란을 겪어야 했다. 성남은 결국 하위스플릿 추락에 이어 창단 첫 2부리그 강등이라는 충격적인 결과에 직면했다.

반면 K리그의 또다른 명가인 포항은 황선홍(서울)감독과의 결별 이후 올 시즌 최진철 감독을 새로 선임했다가 하위스플릿 추락이라는 쓴맛을 봤다. 최 감독은 올 시즌 프로 1군 지휘봉을 잡은 것이 처음인 초보 감독이었다. 포항은 최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사임하고 후반기 베테랑 최순호 감독을 구원투수로 영입하며 간신히 강등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성남의 김학범 감독 경질과 더불어 지도자의 경험을 과소평가한 것이나 축구에 대한 전문적인 이해가 부족한 구단의 주먹구구식 인사가 어떤 대가를 초래하는지 보여준 사건으로 꼽힌다.

팬들의 감독 흔들기는 과유불급

지나친 감독 흔들기는 구단만이 아니라 팬들의 책임도 있다. 올 시즌 K리그 일부 극성팬들의 경기후 버스 가로막기와 감독 청문회 등은 거의 일상적인 풍경이 됐다. 최진철, 윤정환, 서정원 등 많은 감독들이 성난 팬들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팀 운영과 성적에 대하여 해명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될수록 감독은 팀 운영에 대한 소신을 지키기가 어려워지고 여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경험이 부족한 젊은 감독들은 더욱 압박감을 느끼기 쉽다.

현대 스포츠에서는 팬들과의 직접적 소통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지는 추세다. 팀의 부진을 질타하고 분발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어느 정도는 물론 팬들의 권리라고 할수 있다. 하지만 팀의 상황이나 내부 사정을 고려하지않은 일부 팬들의 빈번한 집단행동은 오히려 부작용도 많다. 자칫 감독의 고유권한에 대한 침해를 넘어 지나친 인신모독이나 망신주기로 이어질 소지가 있는 월권 행위들은 득보다 실이 많다는 지적이다.

국내 축구의 트렌드에 변화를 가져올만한 참신한 전술가형 감독의 부재도 아쉽다. 최근 K리그 감독들을 보면 정작 자신만의 색깔을 찾기 어렵다는 지적도 많다. 국내 축구의 인재풀은 한정되어 있는데 외국인 지도자는 점점 찾기 드물다. 과거에는 세놀 귀네슈(터키)나 세르히오 파리아스(브라질)처럼 K리그에서도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외국인 감독들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비용상의 문제와 더불어 국내 구단들이 모험에 가까운 외국인 감독 영입을 꺼리는 추세다.

무엇보다 프로스포츠 감독은 결코 호락호락한 자리가 아니다. 특히 축구는 국내 프로리그에서 유일하게 우승 경쟁은 물론이고 잘못하면 하부리그 강등의 위험까지 이중고를 극복해야하는 종목이다. 성적과 내용을 모두 충족시키면서 팬들과 구단의 기대치까지 만족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전북을 제외하면 K리그의 전반적인 투자규모가 위축되면서 좋은 선수들을 확보하기도 예전보다 더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에서 기대만큼의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감독이 혼자 책임을 뒤집어 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잠재력을 지닌 젊은 지도자들이라고 해도 충분히 경험을 쌓거나 자신의 역량을 펼쳐보이기도 전에 위아래로 이리저리 치이다가 축구경력에 오점만 남기고 일찍 소모되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유능한 감독이 없다고만 한탄하기전에 감독들의 역량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힘을 실어주는 여유도 필요하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축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