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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굳은 표정으로 참석하고 있다. 오른쪽은 우상호 원내대표.
▲ 굳은 표정의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굳은 표정으로 참석하고 있다. 오른쪽은 우상호 원내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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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적힌 말로 오늘 할 말을 대신한다. 이상이다."

이례적이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남긴 말의 전부다. 추 대표 뒤에 걸린 대형 걸개에는 "헌법 제1조 2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적혀 있었다.

곧이어 발언권을 넘겨받은 우상호 원내대표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몇 초간 침묵하다가 "갑자기 말씀을 안 하시니까..."라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통상 최고위원회의가 열리면 당 대표는 가장 먼저 3,4분 분량의 메시지를 발표한다. 때문에 당 대표의 '한 줄 메시지'는 매우 특별한 경우로 기록됐다.

이례적인 일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당 대표·원내대표·일부 최고위원 발언이 이어진 뒤, 최고위원회의는 기자들을 내보낸 채 비공개로 진행된다. 이 자리에서 당 지도부는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공개적으로 할 수 없던 말을 주고받는다. 이를 통해 당론을 정하고, 당 전략을 세운다. 통상 비공개 회의는 30분 정도 진행한다.

그런데 이날 비공개회의는 10분 만에 마무리 됐다. 당 대표의 공개 발언도, 당 대표가 주재하는 비공개 회의도 속전속결로 마무리됐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별별 이야기가 나오니, 추미애가 헌법이라는 칼로 딱..."

야3당 대표들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정국 수습책 논의를 위해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만나 회동하고 있다. 왼쪽부터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정의당 심상정 상임대표.
▲ 머리 맞댄 야3당 대표들 야3당 대표들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정국 수습책 논의를 위해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만나 회동하고 있다. 왼쪽부터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정의당 심상정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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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에 참석한 복수의 당 관계자는 이날 추 대표가 심상치 않았다고 전했다. "크게 화를 냈다"는 얘기도 나왔다.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추 대표의 '버럭'은 두 곳을 향해 있었다. 하나는 박근혜 대통령, 다른 하나는 당 내부다.

박 대통령은 전날 정세균 국회의장을 찾아와 국회에 국무총리 임명 권한을 넘기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하지만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서는 한 마디도 남기지 않았다.

앞서 추 대표는 박 대통령을 상대로 몇 가지 조건을 제시하며, 그것들이 지켜지지 않으면 퇴진운동을 벌이겠다고 발표했다. 조건 중 하나가 "권력유지용 일방적 총리후보 지명을 철회하고, 대통령은 국정에서 손을 떼고, 국회가 추천하는 총리를 수용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국회가 총리를 추천하라'는 국회가 할 과제만 던진 채, '총리 지명 철회', '국정에서 손 뗄 것' 등의 자신의 과제는 어느 하나 풀지 않았다.

당장 야권에서는 박 대통령의 시간끌기, 국면전환용 카드라는 비판이 나왔다. 총리 추천을 위한 국회 합의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박 대통령이 자신에게 향해있던 시선과 국정 정상화 정체의 책임을 국회에 떠넘기려고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박 대통령의 행태가, 전적으로 추 대표의 이례적 행동을 이끌었다고 볼 순 없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실체가 수면 위로 드러났을 때도, 박 대통령의 거짓 사과 논란이 일었을 때도, 박 대통령이 국회에 통보도 없이 총리를 지명했을 때도 추 대표는 정상적으로 회의를 진행했다.

복수의 관계자는 이날 회의 분위기가 무거워진 이유로 당내 기류를 꼽았다. 박 대통령이 국회를 향해 공을 넘겼고 일종의 함정을 판 건데, 그 프레임 안에 갇힌 주장들이 당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즉, 야권의 제안을 무시한 박 대통령의 역제안은 논의의 대상도 될 수가 없다는 게 추 대표의 생각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국회에 다녀간 뒤 총리 하마평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당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권한, 총리의 권한과 관련된 논의가 진행됐다. 심지어 우상호 원내대표는 전날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외치는 대통령의 권한'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윤관석 수석대변인은 이날 비공개회의 직후 추 대표의 '한 줄 메시지'와 관련해 "총리 권한이 어떻게 되니, 2선 후퇴 어디까지 하니 등을 이야기 하니까 헌법과 국민만 보고 가겠다는 의미다"라며 "별별 이야기가 다 나오니 헌법이라는 칼로 딱 (자르려는 것이다)"이라고 설명했다.

한 핵심 관계자는 "추 대표가 비공개회의에서 이러한 점을 지적하며, '국민만 보고 간다. 내 말이 이제 당론이다'라고 말한 뒤 바로 회의를 끝냈다"라며 "그래서 비공개회의도 빨리 끝났고 분위기가 매우 무거웠다"라고 전했다.

박지원 "답답한 사람들이 총리 추천해달라고 문자나 보내고..."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정세균 국회의장 주재 3당 원내대표 회동에 참석한뒤 굳은 표정으로 의장실을 나서고 있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정세균 국회의장 주재 3당 원내대표 회동에 참석한뒤 굳은 표정으로 의장실을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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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야권을 향한 불만을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박 위원장의 전제도 "박 대통령의 덫"이 문제라는 것이지만, 야당의 안이한 생각은 역풍을 몰고 올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이날 오전 비대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국회에서 모든 것을 준비하지 않으면 촛불은 계속 타오를 것"이라며 "우리가 국회에서 총리 임명과 관련해 계속 왈가왈부할 때 그 촛불은 국회를 향해서, 야당을 향해서 타오를 수도 있다는 것을 말씀드린다"라고 강조했다.

총리 임명 등의 의제를 끌고 갈수록 박 대통령의 덫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박 위원장은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에도 "역시 대통령의 정치는 기가 막힌다"라고 역설적으로 표현하며 "정신을 바짝 가다듬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박 위원장은 자신에게 총리 추천을 요청한다는 야권 인사들이 있다며 한탄하기도 했다. 이날 박 위원장은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자천타천으로 총리 후보들이 10여 명, 그리고 뒤에서 거론되는 사람들까지 거의 20~30명이 거론되고 있다"라며 "이는 대단히 현실을 안이하게 판단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아래는 전날 박 위원장이 박 대통령의 국회 방문 후 기자간담회를 열어 한 말이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저와 가까운 인사에게 '박지원 대표가 추천하면 총리로 임명한다'라고 전화했대요. 이 대표가 그따위 전화를 한 걸, 그 전화를 받은 사람은 흥분해가지고 나한테 추천해달라고 그런다고. 그게 말이 되요? 내가 추천하면 민주당에서 들어줘요? 새누리당에서 들어줘요? (그래서 박 대통령의 전략이) 시간 버는 거예요. '국회 너희들 (총리 추천)하라고 해도, 못하는 놈들'이라고 바가지 씌우는 거예요. 그런데 이 답답한 친구들은 문자로, 전화로 자기를 (총리로) 추천해달라고, 아이고."


태그:#추미애, #박지원, #박근혜, #우상호,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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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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