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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 한눈에

  • 박근혜 대통령을 위시하여 국정을 문란케 하고, 나라의 각종 이권에 개입하여 이 나라를 혼란에 빠트린 이들은 이제라도 진실을 말해야 한다.
나는 50대 중반의 소시민이다. 허심탄회하게 나의 생각을 다 보여주면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는 8명이다. 어떤 주제를 놓고 대화를 나눌 때마다 이견이 있었지만, 그 '다른 관점'을 서로 포용할 줄 아는 사이기에 20대 청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친구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중에는 10대부터 우정을 간직해 온 친구도 셋이나 있다. 20~30대에 만난 친구들은 대체로 정치적인 성향이나 생각이 비슷하지만, 어릴 적부터 친구였던 경우에는 대학생활이나 군대생활 등 만남의 공백으로 시각차가 존재한다. 하지만 정치성향은 어릴 적부터 친구인 우리 사이에 걸림돌이 되지 못한다.

나이가 들면서 나이의 경계도 조금씩 넘나들다보니 허물없이 대화를 나누는 층도 다소 넓어졌다. 50대 초반에서 60대 초반까지, 소위 '보수적인 성향'으로 분류되는 세대다. 그러나 내가 만나는 모임 구성원의 자의식은 대다수가 자신을 '진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급진좌파'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고, 자칭 '꼴통보수(?)'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우리 모임의 장점은 정치적인 입장이 달라도 서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상반된 생각을 해도 그것 때문에 우정에 금이 가는 일은 아직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이견이 없었다.

급진좌파부터 보수까지, "대통령 하야 해야"

미르·K스포츠 재단의 강제 모금과 청와대 문건 유출 등 국정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씨가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도착,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소환조사를 받기 위해 청사로 향하고 있다.
▲ 손으로 얼굴 가친 채 검찰 조사실 향하는 최순실 미르·K스포츠 재단의 강제 모금과 청와대 문건 유출 등 국정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씨가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도착,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소환조사를 받기 위해 청사로 향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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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은 '최순실 게이트'가 아니라 '박근혜 게이트'다. 일반인인 최순실이 대통령의 권력을 등에 업고 국정을 농단한 초유의 사건이며, 대통령과 그 주변인들의 암묵과 협조속에서 가능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 하야와 새누리당 해체, 책임자 처벌과 부적절한 방법으로 축적한 재산을 국고로 환수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과거 정권의 비리 의혹까지 철저하게 수사해야 역사를 바로 잡을 수 있다."

지난 10월 27일 만난 친구 6명 모두가 한목소리로 주장한 내용을 정리하면 위와 같다. 그 외에도 우리의 시국토론은 계속 됐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사족 같지만, 사족이 더 재미있고, 사족 속에서 결론에 못지않은 내용을 볼 수도 있으니 그냥 편안하게 대화했던 내용을 정리해 본다. 필자의 판단에 따라 진보, 보수, 중도로 나누지만 사실, 이번 대화는 이견이 없었고, 분노를 표출하는 시간이었기에 그 나눔이 무의미하겠다.

진보(목사) : "일반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박 대통령에게 있어서 최순실은 거의 교주와 같은 게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가 있는 거지? 최태민과 인연을 맺은 사건부터 취임식 때 등장한 오방낭까지, 상당히 주술적이야."

진보(사업) : "지난 대선 때 대형교회 목사들 난리가 아니었지?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는 박근혜가 고레스 같은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극찬했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보수(사업) : "난 머릿속이 공황상태야. 이럴 줄 생각도 못했어. 차라리 박 대통령이 지시했고, 최순실이 따랐다면 위로나 되겠어. 그런데 주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권력 순위 1위가 최씨고, 박 대통령이 그의 지시에 따랐다고 하잖아. 이 와중에 일부 노인들은 '박근혜가 불쌍해 죽겠다'고... 아직도 상황파악을 못하는 거지."

중도(사업) : "아직도 상황 판단하지 못하는 이들은 박 대통령 불쌍하다고 눈물 흘릴 걸? 이런 상황이라고 야당 좋아할 것도 없어. 내년 대선에 눈이 멀어서 이번 기회에 권력이나 잡으려 하고... 다 한통속이야."

진보(교수) : "이번에 잘 정리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후진국으로 전락할 수도 있어. 보이지 않는 손이 이번 일을 기획한다는 이야기도 있어. 이놈들은 국민의 망각병을 아주 잘 알고 있어. 1987년 6월 항쟁 이후에 6.29선언은 '속이구 선언'이었지. 그리고 이명박 정권 때 세계적으로 망신살이 뻗쳤던 '명박산성'은 어떻고? 4대강 사업의 결과가 속속들이 드러나는데도 이명박은 건재하잖아?"

진보(사업) : "너무 많은 일이 연이어 터지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어. 이게 일주일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라는 것이 실감 나? 요즘 드라마보다 뉴스가 더 재미있다니까? 나는 보면 열 받으니까 TV 안 본 지가 꽤 오래됐는데, 요즘은 종편도 어떻게 보도하나 본다니까."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게 신기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최순실 의혹'에 관해 대국민 사과를 하기위해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 들어서고 있다. 2016.10.25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최순실 의혹'에 관해 대국민 사과를 하기위해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 들어서고 있다. 2016.10.25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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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초반에 태어나 박정희가 암살당하던 1970년 10월 26일까지, 나는 대통령은 오로지 박정희 한 사람뿐인 줄로만 알았다. 그가 암살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곧 나라가 망할 줄 알았다.

그리고 허수아비 대통령 최규하에 이어 전두환, 노태우를 겪으면서 좌절했고, 문민정부라 기대했던 김영삼을 보면서 실망했고, 처음으로 김대중 정권에서야 제대로 된 대통령을 가졌다고 자부했다. 노무현 정권 시절에는 인간적으로 그를 좋아했다. 그래서 그의 국민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에 이르러서 권력의 도덕적 타락을 목격했고, 박근혜 정권에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을 만난 것이다.

한 달 전만 해도,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 대통령이라고 할지라도 음식점이나 커피숍에서 대놓고 비판하는 일은 없었다.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이 있을 수 있기에 민감한 내용이 나오면 "쉬!"하며 주의를 시키곤 했었다. 그러나 이젠 우리뿐 아니라 옆 테이블의 사람들도 종편에서도 한결같이 혀를 찬다.

"저런 분을 대통령이라고 뽑아 놨으니…. 이런 꼴을 당해도 싸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자괴감이 든다.

이 일이 있기 전 나는 내가 선택하지 않았어도 선택된 대통령이기에 그가 임기를 잘 마치기를 바랐다. 무리한 정책 시행에 반대하면서도, 본인의 의지가 워낙 강해서 그렇다고 여겼다. 그런데 그 배후에 최순실이 있었다니. 그리고 권력 주변에 있는 이들도 그의 존재를 몰랐을 리 없다.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이 신기하지 않은가?

당장 하야하고, 국민의 심판을 받으시라

지난 10월 29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대통령 하야 촉구 집회 모습.
 지난 10월 29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대통령 하야 촉구 집회 모습.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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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목사) : "종교가 성립하려면 말이야,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이거나 초월적인 것, 신비한 것이 있어야 해. 물론, 내세에 대한 구원도 빼놓을 수 없지.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지금껏 언론보도를 보면 최순실이 박근혜 대통령의 완전한 교주가 아니었을까 싶어." 

중도(사업) : "박 대통령이 이상한 말들을 많이 했지. '우주의 기운이 도와준다', '혼이 비정상' 같은 말들. 그게 일상에서 사용되는 말도 아니지만,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할 말은 더더욱 아니지. 그런데 이번 사태를 보니까 대통령의 혼이 비정상인 것 같아. 최순실이 없으니 사과문 발표 이후에 아무 말도 못 하고 두문불출하는 것 아냐?"

진보(사업) : "순진들 하시긴. 지금 대포폰 아니면 영상으로 다 회의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입 맞추느라고 대책회의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검찰에서 조사하면 그게 다 우병우에게 보고되고(우병우 사퇴 전의 대화), 우병우는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대통령은 최순실에게 보고하고……."

보수(사업) : "그건 지나친 상상이고, 그러나 입 맞추기는 분명히 이뤄지겠지. 문제는 사태수습의 초점을 어디에 두느냐 인데, 정말 최순실이 권력 1순위라면 박근혜에게 책임을 묻는 식으로 진행되겠지. 그렇게 된다면 대통령은 하야하고, 주변인들은 감옥에서 몇 년 살고 보수 정권이 재창출되면 사면되는 수순으로 가는 거지."

진보(사업) : "너무 소설 쓰는 거 아니야? 하긴, 지금 현실을 봐. 소설도 이런 소설이 어딨고, 막장 드라마도 이런 막장 드라마가 어딨냐?"

중도(사업) : "그런데 말이야, 대통령 주변 사람들이 최순실의 존재를 모른다는 게 말이 돼? 대통령이 잘못하면 그걸 잡아줘야 충신인데, 이 사람들은 대통령이 말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 한단 말이야. 간신 나라 충신들이지. 그리고 새누리당은 그걸 지탱해주는 집단이고. 지난번 이정현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정세균 의장 사퇴를 요구하며 단식할 때도 웃겨 죽는 줄 알았는데, 이번에도 봐라. 대통령 연설문을 최순실씨가 미리 받아봤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나도 친구 얘기 듣고 쓴다"니. 정말 개념이 없는 거지."

진보(사업) : "오랜만에 친구들이 한마음 한뜻일세. 근데 문제는 말이야, 이제부터 잘 지켜봐야 해. 저들이 또 무슨 음모를 꾸미는지 몰라. 아무튼, 이번에 새롭게 나라를 변혁시키지 못하면 우리나라는 나락으로 떨어져. 후진국 대열에 서겠지."

진실을 밝히고 이제라도 용서받을 기회를 잡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을 위시하여 국정을 문란케 하고, 나라의 각종 이권에 개입하여 이 나라를 혼란에 빠트린 이들은 이제라도 진실을 말해야 한다. 검찰은 정치검찰이라는 딱지를 떼고 싶다면 이번에야말로 정말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철저하게 수사를 해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도 이미 검찰은 돌연 입국한 최순실씨를 공항에서 긴급 체포하지 않는 등 '봐주기 수사'라는 의심을 자아낼 수밖에 없는 행동을 자행했다. 이런 의구심들을 말끔히 씻어낼 수 있는 결과를 국민에게 보여주길 바란다.

무엇보다도 박 대통령이 이 사건에 책임을 지고 속히 하야해야 한다. 설령 본인이 권력의 실세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최측근이 각종 이권에 개입하도록 내버려두고,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제멋대로 넘겨 나라를 위기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공과 사를 구별할 줄 아는 지혜, 그것을 당신은 잃었다. 대한민국은 일가의 명예를 위해서 있는 것도 아니며, 대한민국의 역사도 일가의 역사가 아니다.

당신 덕분에 이번엔 친구들이 오랜만에 하나가 되었다.

식물대통령으로 남은 임기를 보내는 것은 본인에게도 절대로 유익하지 않다. 당장 하야하라. 그리고 국민의 심판을 받아라.


태그:#박근혜_하야, #최순실, #새누리당_해체, #탄핵,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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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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