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가대표 이지은 선수

전 국가대표 이지은 선수 ⓒ 이종득


스물여덟 살 이지은 선수는 전 국가대표 수영선수이다. 수영선수여서 행복했다는 그녀. 지금 은퇴를 생각하고 있다. 지난 21일 모교인 광양중마초등학교를 찾아와 은사인 오기준 수영 감독을 만나 앞으로의 진로 상담을 했다. 오기준 감독은 그녀를 수영선수로 입문시켜주고, 고등학교 때부터 외지로 나가 선수생활을 하면서 힘들 때마다 실질적인 보호자 역할을 해주었다고 한다.

이지은 선수는 광양을 떠나 운동을 시작한 고등학생 때부터 해마다 휴가 때면 모교를 찾아와 후배들과 어울려 수영을 했다. 기자는 지난 21일 오후 광영수영장으로 딸아이 운동 구경을 갔다가 그녀를 만났다.

이지은 선수는 전남 광양시 중마초등학교 3학년 때 수영을 시작했다. 동광양중학교와 전남제일고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2004년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대회, 그리고 2008년에는 꿈의 무대인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했다. 현재는 화성시청 소속 선수이다.

그녀에게 "아직도 현역에서 경쟁력이 있을 텐데, 은퇴를 생각하면 아쉽지 않나요"라고 물었다.

"저는 멀리 보고 목표를 정해 운동을 하지 않았어요. 그때그때 최선을 다했어요. 그래서인지 지금 은퇴를 해도 아쉽거나 후회 같은 건 없는 것 같아요. 매번 대회를 준비할 때도 그랬지만, 대회를 마치고도 행복했던 것 같아요."

"고마우신 분들이 참 많지만..."

 전 국가대표 이지은 선수와 은사인 중마초등학교 오기준 감독

전 국가대표 이지은 선수와 은사인 중마초등학교 오기준 감독 ⓒ 이종득


그녀와 마주보며 이야기를 하는 동안 느낀 것은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환하고 밝은 얼굴이라는 점이다. 대화를 하는 내내 하얀 이가 드러나도록 웃으면서 말하는 표정이 19년 동안이나 매일 물속에서 힘들게 운동한 선수 같지가 않았다.

- 어려서부터 운동해서 그동안 고마웠던 분들이 있을 텐데요?
"고마운 분이 참 많았어요. 그 중에서 먼저 생각나는 분은 저에게 아버지나 다름없는 오기준 감독님과 항상 언니같이 마음 열고 대화해주는 고지연(광양중마초등학교 코치) 코치님이 계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 거예요. 남과 다른 신체조건으로 운동을 하다보니 심적으로 힘들 때가 많았거든요. 그때마다 저에게 큰 힘이 되어 주신 두 분 선생님이십니다.

그리고 화성시청 서영수 감독님께 정말 고맙다는 말씀 전해드리고 싶어요. 사실은 이 년 전 울산시청과 계약이 끝나면서 은퇴를 해야 하나 고민했었거든요. 그때는 정말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는데, 어려서부터 운동만 하면서 살았는데, 스물여섯 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제 은퇴를 해야 하나 생각하니까 너무나 막연했었는데, 마침 저에게 손을 내밀어주셨어요.

지난 2년 동안 화성시청 소속으로 선수생활을 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고, 지금 은퇴를 마음속으로 결정하면서도 행복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선생님이십니다." 

환한 얼굴의 그녀는 특별한 선수였다

 전 국가대표 이지은 선수가 모교인 광양중마초등학교 후배들의 훈련 장면을 은사인 오기준 감독과 지켜보다가 카메라를 보고 웃고 있다

전 국가대표 이지은 선수가 모교인 광양중마초등학교 후배들의 훈련 장면을 은사인 오기준 감독과 지켜보다가 카메라를 보고 웃고 있다 ⓒ 이종득


지금까지 수영선수로 살아온 그녀에게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7살 때부터 원형탈모증세로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는데, 초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에 전신탈모증으로 악화되어 머리카락이 없기 때문이었다. 치료를 위해 약을 먹고 싶어도 도핑에 걸릴까봐 포기했다는 그녀. 초등학교 때부터 수많은 시상식(전국소년체전과 전국체전 등 수많은 대회에서 입상함)대에 올라간 그녀에게 수영모자는 그래서 남다른 사연을 담고 있다.

이지은 선수는 2006도하아시안게임에서 자유형 400m에 출전해서 한국신기록(4분14초95)을 수립하며 동메달을 목에 걸었고, 단체전 800m계영에서 중국와 일본에 이어 3위로 터치패드를 찍었다. 단체전 시상식 때 같이 출전한 정유진 이겨라 박나리 선수가 모두 수영 모자를 쓰고 시상대에 올라갔다. 동료선수들은 이지은 선수가 수영 모자를 벗을 수 없기에, 혼자만 수영 모자를 쓰게 할 수 없어서 함께 썼다는 것이다. 당시 많은 뉴스와 기사를 통해 그런 사연이 알려졌다.

솔직히 기자는 당시 수영에 큰 관심이 없어서 그런 사연을 몰랐다. 지난 여름 딸아이가 중마초등학교 수영부로 전학을 와서 선배인 이지은 선수를 검색해보니 당시 MBC 아홉시 뉴스에서 보도한 영상이 아직도 있어서 볼 수 있었다.

"그때 단체전보다 먼저 개인전 동메달을 땄는데, 모자를 쓰고 시상대에 올라가니까 안 된다고 해서 울었어요. 결국 수모를 쓰고 시상대에 올라갔어요. 그래서인지 단체전에 출전한 동료들이 함께 수모를 쓰고 시상대에 올라갔는데 저 때문에 예쁜 모습으로 메달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고, 정말 고마웠어요. 국내대회에서는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일이었으니까요."

"이제는 지도자로서 기초부터 배우겠다"

 전 국가대표 이지은 선수가 모교인 광양중마초등학교 후배들에게 은퇴를 발표하자 후배들이 박수로 그동안의 수고를 격려했다

전 국가대표 이지은 선수가 모교인 광양중마초등학교 후배들에게 은퇴를 발표하자 후배들이 박수로 그동안의 수고를 격려했다 ⓒ 이종득


초등학생 수영선수 활동을 하는 딸아이를 응원하는 아빠로서 이지은 선수는 부모님께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매번 대회를 준비할 때나 마치고나서 저보다 더 기뻐하거나 초조해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나름대로 더 열심히 할 수 있었고요. 그리고 제가 머리카락 때문에 속상해서 울 때마다 어머니는 저를 더 강하게 키워주셨어요. 항상 제 편이 되어서 함께 아파해주시고 응원해주신 것 고맙게 생각해요. 이제는 제가 어머니께서 즐겁게 살 수 있도록 더 응원해드리고 싶어요."

이지은 선수는 현재 소속팀인 화성시청과 12월30일까지 계약이 되어 있고, 이제는 후배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은퇴하기로 잠정 결정을 했다고 한다. 본인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후배들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면서 이제는 비켜주는 게 그동안 받은 사랑에 보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지난 이 년 동안 나름대로 지도자 공부를 했어요. 지도자 자격증도 땄고요. 하지만 선수와 지도자의 영역이 다른 만큼 기초부터 시작하려고요. 스포츠생리학이나 심리학 공부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선수가 아닌 지도자로서 경험하는 공부도 하고 싶어요. 그래서 이제부터 알아보려고요."

이지은 선수와 두 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눠보니 참 바르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남다른 신체조건을 극복하고 국가대표까지 오를 수 있었던 힘이 바로 긍정적인 성격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았다.

누구나 다 하고 싶은 국가대표, 그러나 누구나 다 할 수 없는 국가대표에 올랐던 그녀. 그녀가 2006도하아시안게임에서 목에 건 동메달 두 개는 그래서 남다른 감동이 아닐 수 없다.

이제부터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겠다는 이지은 선수의 지도자 길을 응원한다. 아마도 어린 수영 꿈나무들에게 어떤 보약보다 효과가 좋은 긍정의 힘을 보여주며 좋은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할 것이란 기대를 해본다. 분명 그녀가 걸어온 지난 시간들이 우리나라 수영발전에 큰 밑거름이 될 것이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이지은 수영선수 광양중마초등학교 화성시청 국가대표 수영선수 수영지도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춘천아재양념닭갈비를 가공 판매하는 소설 쓰는 노동자입니다. 두 딸을 키우는 아빠입니다. 서로가 신뢰하는 대한민국의 본래 모습을 찾는데, 미력이나마 보태고자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