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 경기에서 감독이 작전타임을 요청하는 대부분 이유는 바로 '범실' 때문이다. 범실은 팀의 공격 흐름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세트의 흐름, 그리고 경기의 흐름까지 상대방에게 내주곤 한다. 그러므로 한 세트가 소중한 배구 경기에서 단 하나의 범실이 경기를 좌지우지하는 경우도 종종 보곤 한다.

따라서 범실이 많은 팀이 우승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화려한 공격진과 좋은 외국인 선수를 보유하고 있으며, 서브 리시브 성공률이 팀 전체 1위임에도 우승권에 진입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범실이 그 팀의 발목을 잡아오곤 했기 때문이다. 이는 V-리그가 출범한 이래 단 한 번도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이뤄내지 못한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의 이야기다.

범실이 발목을 잡아온 리그 '무관'의 역사

 올 시즌에는 우승을 향한 이륙을 할 수 있을까?

올 시즌에는 우승을 향한 이륙을 할 수 있을까? ⓒ KOVO


대한항공은 한선수, 김학민, 신영수 등 화려한 스타 플레이어들과 늘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주는 외국인 선수를 더해 매년 우승경쟁에 뛰어들곤 했다. 신영수와 김학민이 모두 입단한 2006년 이후, 대한항공은 한 시즌을 제외(2014-2015시즌)하고는 최소 준플레이오프에는 진출했다. 심지어 2010~2011시즌은 정규리그 1위로 챔피언결정전에 직행하기도 했다. 그런데 대한항공은 중요한 경기일수록 나오지 말아야 할 범실들로 자신들의 장점을 상쇄시키곤 했다.

그렇게 매년 수준급 이상의 선수들과 좋은 공격력을 겸비해 항상 우승의 가능성을 두고 있는 좋은 팀이지만 대한항공은 10년째 '무관'이다. 우승하지 못한 이유를 꼭 범실로만 둘 수는 없다. 하지만 10년간 가지고 있는 이 문제점을 그들은 바꿔나가지 못했다.

그들이 무관인 이유(feat.범실)

2006-2007시즌 : 세트당 범실 6.37개 / 최다 1위
2007-2008시즌 : 세트당 범실 5.74개 / 최다 2위
2008-2009시즌 : 세트당 범실 6.31개 / 최다 1위
2009-2010시즌 : 세트당 범실 5.53개 / 최다 2위
2010-2011시즌 : 세트당 범실 5.50개 / 최다 5위 (정규리그 1위)
2011-2012시즌 : 세트당 범실 6.16개 / 최다 1위
2012-2013시즌 : 세트당 범실 6.40개 / 최다 1위
2013-2014시즌 : 세트당 범실 6.13개 / 최다 3위
2014-2015시즌 : 세트당 범실 6.38개 / 최다 2위
2015-2016시즌 : 세트당 범실 6.78개 / 최다 1위


대한항공은 지난 10년간 리그 최다 범실을 총 5차례 기록했다. 이 기록만 본다면 대한항공이 이 기간에 총 9번의 '봄 배구'를 했다는 것이 기적적으로 보일 정도다. 특히 지난 2015-2016시즌에는 V-리그 출범 사상 최악의 세트당 범실 개수를 기록했다. (134세트 909 범실, 세트당 범실 6.78개) 그런데도 그들은 준플레이오프에는 진출하며 어김없이 '봄 배구'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유일하게 팀 범실 상위권에 들지 않았던 2010~2011시즌은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한 때이다. 그렇다고 이 시즌에 팀에 특별히 다른 선수들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김학민과 신영수, 한선수, 장광균, 외국인 선수 에반이 주축이었던 라인업으로, 당시엔 수비형 레프트라고 볼 수 있는 장광균을 곽승석, 정지석으로 바꾼다면 지금과도 특별히 다를 것이 없는 라인업이다. 그런데도 2010~2011시즌은 대한항공 팀 역사상 가장 조직적인 배구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동안의 대한항공보다 '실수'가 적었기 때문이다.

범실이 많은 대한항공에 대한 오해

 이들의 수비가 불안해서였을까? 그것은 '오해'일 것이다.

이들의 수비가 불안해서였을까? 그것은 '오해'일 것이다. ⓒ KOVO


대한항공이 왜 범실이 많았던 팀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들의 장점이었던 공격력 지표를 따져보면 된다. 팀의 주포로 활약하는 신영수와 김학민, 그리고 리그에서 항상 수준급 이상의 활약을 해온 외국인 선수까지 매 시즌 오픈, 후위 공격, 서브에서 상대적으로 타 팀보다 우위를 지녔다.

그래서 대한항공의 많은 범실이 '필연'이라고도 한다. 기본적으로 배구에서 발생하는 범실의 절반 정도는 서브에서 기인하게 되는데, 당연히 강서브를 즐겨 사용하는 대한항공에 많은 범실은 어쩔 수 없이 따라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시즌 대한항공의 전체 범실 중 서브범실을 뺀 비율 역시도 리그 1위였다.

또 일각에서는 대한항공이 좋은 공격에 대비해 수비가 좋지 않아서 범실이 많은 것이라고도 지적한다. 하지만 이 역시도 공격력이 좋은 팀이기에 가질 수 있는 '오해'다. 지난 시즌 대한항공은 리그에서 가장 안정적인 서브 리시브와 세트를 보여줬다. 7개의 팀 중 유일하게 세트당 10개가 넘는 리시브 성공개수를 자랑하면서 범실은 리그 최소를 기록했다. 즉 수비적인 부분에서는 신영수, 곽승석, 정지석 등 리베로가 아닌 레프트 선수들의 능력도 좋았음이 증명됐다.

즉 대한항공의 많은 범실은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나오는 서브범실과 리시브범실이 아닌 공격범실에서 파생된 것이었다. 대한항공은 상대적으로 공격 시 비중이 낮은 센터진들 대신 레프트와 라이트가 많은 공격시도를 해왔다. 하지만 다양하지 못한 패턴이 결국엔 많은 공격범실을 낳게 된 것이다. 빈도수가 적은 속공과 시차의 경우 누적된 범실 자체는 적지만 그만큼 공격시도 역시 적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적은 범실 없이는 우승할 수 없다

 10년째 풀리지 않은 퍼즐, 박기원 감독이라면 풀 수 있을까.

10년째 풀리지 않은 퍼즐, 박기원 감독이라면 풀 수 있을까. ⓒ 대한항공 점보스


최근 V-리그에서는 과거 삼성화재와 같이 독주를 하는 팀이 사라졌지만, 당시 삼성화재의 독주를 두고는 '몰빵(몰방의 된소리 발음) 배구'라는 수식어가 붙는 등 여러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삼성화재는 좋은 공격력뿐만 아니라 범실이 적은 안정된 배구를 하는 팀이었다. 지난 시즌 서브범실을 제외한 팀 범실 수치에서 현대캐피탈이 유일하게 300개가 되지 않았던 것(위 표 참조)은 우승의 절대적 이유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우승을 하지 못할 이유 하나는 없앤 것이라 볼 수 있다.

대한항공 역시 리그에서 플레이오프 그 이상을 위해서는 반드시 범실을 줄여야 한다. 5년 전 정규리그 1위를 할 때처럼 리그 최소 범실은 아니더라도 리그 평균 정도만 한다면, 그들은 기존의 좋은 공격력과 함께 충분히 우승을 노릴 수 있는 전력이다. 하지만 얼마 전 있었던 KOVO컵 대회에서조차 그들은 세트당 8-10개의 범실을 꾸준히 생산해내며 4강 문턱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정답은 명확해 보인다. 리그 개막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지만, 아직 충분히 손발을 맞출 시간은 있다. 이미 컵 대회를 통해 팀에 새롭게 합류한 가스파리니는 기존의 대한항공 출신 외국인 선수들이 보여줬던 기량만큼은 충분히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이제 어느덧 30대 중반으로 접어든 팀의 주포들과 함께 '무관'을 탈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범실을 줄여내야 한다. 그리고 그 범실이라는 난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올 시즌 우승도, 그들의 밝은 미래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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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청춘스포츠>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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