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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대학 입학을 위한 시험,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40여 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매년 그래왔듯 수험생을 둔 학부모님들이 영험하다는 부처님 앞에서 절을 올리고 교회나 성당에서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들이 신문과 방송에 나올 겁니다. 자식들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느 부모나 비슷하겠기에 예사로이 보이지 않습니다만 그 표현방식이 다 똑같을 수는 없을 겁니다.

여기 "수능? 그게 뭐야?" "먹는 거냐?"고 되묻는 듯, 아들 딸 제쳐놓고 부모들끼리 모여 띵까띵까 놀러나 다니는 막 나가는(?) 양반들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자식들의 삶에 무관심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앞에서 말했듯 표현 방식이 조금 다른 것뿐입니다. 어차피 삶이란 스스로 살아가야 하는 것, 부모들은 그저 곁에서 지켜 봐주고 응원해주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강화에 있는 대안형 특성화학교 산마O 고등학교 3학년 학부모 10여 명은 지난 10월 초, 연휴를 맞아 남도여행을 떠났습니다. 한 학년이 20여 명뿐이니 많이 모인 셈이지요. 구례와 하동 순천을 돌아오는 2박 3일의 여정. 작년 1월, 2만 원짜리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다녀온 후 재미가 들었던 터라 들썩이는 엉덩이를 참아내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합니다.

첫날, 서울에서 11인승 승합차를 타고 한 팀이 출발했고 전주에서 한 분, 서울과 인천에서 각각 후발주자 한 분씩이 들뜬 마음을 안고 길을 떠났습니다. 목적지는 지리산 자락 구례. 일행 중 한 분의 집입니다. 덕분에 이 많은 사람의 숙박비는 공짜!

일단 맛있는 육회 비빔밥을 먹고 코스모스 만발한 강변에서 산책도 하고 사진도 찍고 운조루(雲鳥樓)에도 들렀습니다. 비오는 사성암(四聖庵) 구경도 했지요. 저녁에 숙소에 도착해서는 연로하신 어머님께 인사만 살짝 드리고 싸들고 온 술을 마시며 밤새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어머님은 아마 잠도 못 주무셨을 겁니다.

코스모스로 예쁘게 꽃밭을 만들어 놓았다.
▲ 구례 코스모스 꽃밭에서 코스모스로 예쁘게 꽃밭을 만들어 놓았다.
ⓒ 김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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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은 조선 영조 52년 (1776년)에 당시 삼수 부사를 지낸 류이주(柳爾胄)가 세운 것으로 99간 (현존73간)의 대규모 주택이다. 이 집터에서 거북이 모양을 한 돌이 출토되어 금귀몰니의 명당으로 남한의 3대 길지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나무로 된 쌀독의 마개에 <他人能解>라는 글귀를 써두어 가난한 이웃이 쌀을 꺼내 끼니를 이어 갈 수 있도록 해 가진 자의 도리임을 보여 주었던 것이 200년 넘게 류씨 문중이 번창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 구례 운조루(求禮 雲鳥樓) 이 집은 조선 영조 52년 (1776년)에 당시 삼수 부사를 지낸 류이주(柳爾胄)가 세운 것으로 99간 (현존73간)의 대규모 주택이다. 이 집터에서 거북이 모양을 한 돌이 출토되어 금귀몰니의 명당으로 남한의 3대 길지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나무로 된 쌀독의 마개에 <他人能解>라는 글귀를 써두어 가난한 이웃이 쌀을 꺼내 끼니를 이어 갈 수 있도록 해 가진 자의 도리임을 보여 주었던 것이 200년 넘게 류씨 문중이 번창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 김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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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맞으며 오르막을 오르고 있다.
▲ 사성암 가는 길 비를 맞으며 오르막을 오르고 있다.
ⓒ 김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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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성암(四聖庵)은 544년(성왕 22) 조사 연기(緣起)가 창건하여 오산사(鼇山寺)라고 했다. 그 뒤 신라의 원효와 의상, 도선, 고려의 진각이 이 절에서 수도했다 하여 사성암이라 고쳐 불렀다.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33호.
▲ 사성암 유리광전 사성암(四聖庵)은 544년(성왕 22) 조사 연기(緣起)가 창건하여 오산사(鼇山寺)라고 했다. 그 뒤 신라의 원효와 의상, 도선, 고려의 진각이 이 절에서 수도했다 하여 사성암이라 고쳐 불렀다.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33호.
ⓒ 김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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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날, 아름다운 '아침 섬진강'을 눈에 담으며 하동 화개장터로 향합니다. 생활한복도 한 벌 사서 입고 '뻔데기'도 집어 먹으며 여기저기 기웃거립니다. 하동 송림(河東 松林)을 산책하고 재첩국도 한 그릇 먹습니다.

최참판댁에 들러 악양 평사리 들녁을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학부모 한 분은 이곳을 원없이 걷고 싶다며 미친듯 들판 한가운데로 달려갑니다. 뭐 어떻습니까? 뭐라는 사람 하나 없는데 말입니다.

이제 뉘엿뉘엿 해가 지니 다시 잠 잘 곳을 찾아야 합니다. 정말 우연히도 이곳에도 역시 학부모 한 분이 살고 계십니다. 또다시 숙박비는 공짜. 감나무 주렁주렁 달린 마당에서 끝없이 술잔을 기울이고 이야기꽃이 이어집니다.

일정의 마지막 밤입니다. 아쉬움 때문인지 어느새 안주도 떨어지고 술도 바닥 났습니다. 끝났을까요? 술 안드시는 분들이 얼른 나가 다시 또 장을 봐왔습니다. 모기만 아니었으면 아마 밤을 꼴딱 세웠을 겁니다.

아침에 보니 "드르렁 드르렁" 저의 코 고는 소리를 녹음한 분도 계십니다. 잠 못 잤다 합니다. 그 옆에 계신 분은 "그래도 전날 보다는 견딜만 하던데 뭘 그러냐?"고 퉁을 놓기도 합니다.

"이 가는 사람도 있더라!"며 자신이 더 힘든 밤을 보냈음을 강변합니다. 저는 뭐 그러거나 말거나 별로 동요하지 않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먼저 주무시라!"고 최선을 다해 이미 해결책을 알려 드렸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그리 즐거울꼬.
▲ 하동 화개장터 무엇이 그리 즐거울꼬.
ⓒ 김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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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 제445호. 11745년(영조 2) 당시 도호부사였던 전천상(田天祥)이 강바람과 모래바람의 해를 막기 위해서 심었던 소나무숲으로 소나무 750여 그루가 서있다.
▲ 하동 송림(河東 松林) 산책 천연기념물 제445호. 11745년(영조 2) 당시 도호부사였던 전천상(田天祥)이 강바람과 모래바람의 해를 막기 위해서 심었던 소나무숲으로 소나무 750여 그루가 서있다.
ⓒ 김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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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양 최참판댁 가는 길에서 아버지들이 한껏 장난끼를 부렸다.
▲ 아버지들 악양 최참판댁 가는 길에서 아버지들이 한껏 장난끼를 부렸다.
ⓒ 김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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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인가 부터 악양 주민들은 이 두 그루의 부부송을 소설 속 주인공인 서희와 길상의 이름으로 불렀다 한다. 이름이야 어찌 부르던 무슨 상관이랴. 평사리 저 들녁을 보는 것 만으로 이미 만족스럽지 아니한가!
▲ 평사리 부부송 언제인가 부터 악양 주민들은 이 두 그루의 부부송을 소설 속 주인공인 서희와 길상의 이름으로 불렀다 한다. 이름이야 어찌 부르던 무슨 상관이랴. 평사리 저 들녁을 보는 것 만으로 이미 만족스럽지 아니한가!
ⓒ 김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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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이렇게 진지할 때도 있다.
▲ 술 익는다, 이야기 보따리 풀어라! 때론 이렇게 진지할 때도 있다.
ⓒ 김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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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북어국, 선지해장국을 끓여 먹고 순천으로 향합니다. 귀농해 농사를 업으로 삼고 계신 분입니다. 밭에서 열무를 쑥쑥 뽑아 와 점심상에 올려 주시네요. 맛있습니다. 직접 만든 도토리묵과 수수부꾸미, 무생채 등이 있습니다.

안 먹으려 했지만 이 반찬을 두고 그럴 수 없어 다시 또 한잔! 자랑스럽게 밭 구경도 시켜 주십니다. 큰 애와 작은애까지 꼬박 5년을 함께 보낸 사이인데 이렇게 오랫동안 이야기 나눠 보는 것은 처음입니다. 농사를 살펴보니 자연스럽게 이해가 됩니다. 시간 내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배추밭을 자랑스럽게 내 보이는 *수 아버님.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 밭 자랑 자신의 배추밭을 자랑스럽게 내 보이는 *수 아버님.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 김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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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손을 흔들며 아쉬움 속에 서울로 향합니다. 똑순이 총무님 덕에 삼일간 들인 돈은 하루치 여비밖에 안될 듯합니다. 이런 식이면 앞으로 다른 여행은 너무 비싸 보여 못 갈 것만 같습니다.

짧지 않은 2박 3일은 그렇게 흘러 갔습니다. 밤새도록 나누었던 수없이 많은 이야기 속에는 물론 아이들 문제도 있었습니다. 역시나 고3 학부모들이니 어디 가겠습니까? 대학 진학에 대한 각자의 고민들이 가감없이 흘러 나왔고 자연스럽고 신속하게 공감되고 정리되었습니다.

곁에 있어 주는 것, 지켜 봐 주는 것, 공감해 주는 것 정도가 부모의 할 일이라는 것이지요. 부모가 자기 자식들을 어찌 손에서 다 놓을 수 있겠습니까? 거듭 얘기 하지만 표현방식이 약간 다를 뿐입니다. 그리 생각하는 사람들이 함께 하는 것이 그저 고맙고 즐거울 뿐이지요. 이 사람들, 올 겨울에 또 놀러 가기로 했습니다.

고3 학부모들끼리의 여행! 즐겁습니다! 전국의 모든 고3생 여러분의 건투를 빕니다!


태그:#구례, #하동, #순천, #운조루, #사성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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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분야는 역사분야, 여행관련, 시사분야 등입니다. 참고로 저의 홈페이지를 소개합니다. http://www.refdol.co.kr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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