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레스 사우스게이트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대행이 약 2개월만에 대행 꼬리표를 떼고 '삼사자 군단'의 정식 사령탑으로 낙점됐다. 잉글랜드축구협회(FA)는 지난 30일 사우스게이트의 정식 감독 부임을 발표했다. 계약 기간은 4년이다.

잉글랜드 U-21 대표팀을 이끌었던 사우스게이트는 지난 9월 말 샘 앨러다이스 전 감독이 부패 스캔들로 경질되면서 임시로 A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잉글랜드 대표팀은 사우스게이트 체제에서 2018 러시아 월드컵 유럽 예선 및 평가전 등을 포함해 총 4경기에서 2승 2무를 기록 중이었다.

당초 임시 감독 정도로만 여겨졌으나 짧은 대행 기간 동안 준수한 성적을 올리며 유력한 차기 감독 후보로 급부상했다.  잉글랜드 선수단 내에서도 지지 여론이 형성됐다. BBC와 가디언등 영국 현지 주요 언론들은 이미 사우스게이트의 정식 감독 취임을 기정사실로 전망하고 있었다. 한때 외국인 감독 선임 등 다양한 시나리오도 거론되었으나 결국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최종적으로 사우스게이트를 선택했다. 이로써 잉글랜드는 사우스게이트 체제로 2018 월드컵과 유로 2020에 도전하게 됐다.

잡음 끊이지 않는 잉글랜드 축구대표팀 감독들

사우스게이트 신임 감독은 바닥에 떨어진 '축구 종가'의 위상을 회복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됐다. 잉글랜드는 올해에만 무려 2명의 자국 출신 감독이 잇달아 불명예스럽게 하차하는 흑역사를 겪었다. 앨러다이스의 전임자였던 로이 호지슨은 지난 유로 2016에서  최악의 졸전 끝에 16강에서 정식 프로 리그도 없는 아이슬란드에 패하는 수모를 당하고 탈락하자 지휘봉을 내려놓아야 했다.

호지슨의 뒤를 이은 샘 앨러다이스 감독은 '몰래카메라' 파문에 휩싸이며 잉글랜드 지휘봉을 잡은지 불과 67일 만에 낙마했다. 역대 잉글랜드 대표팀 사령탑 중 최단명 기록이다.

앨러다이스 감독은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의 함정 취재에 속아 국제축구연맹(FIFA)이 금지하고 있는 '서드파티 오너십'(구단과 선수를 제외한 제3자가 불법적으로 선수 소유권을 행사하는 것)같은 부정행위를 두고 거래를 시도한 사실이 폭로되어 불명예 사임했다. 앨러다이스 감독은 지난 9월 5일 치른 슬로바키아와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유럽 예선(1-0)전이 잉글랜드 감독으로서 처음이자 마지막 경기가 됐다. 자국 출신 감독들의 연이은 무능과 부패에 축구종가의 위상과 자부심은 땅바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직은 흔히 독이 든 성배로도 꼽힌다. 잉글랜드에서 대표팀 감독의 위상은 다른 국가와 비교해도 매우 특별하다. 부와 명예가 보장되고 일거일투족이 미디어의 관심을 받는다. 하지만 그만큼 성적에 대한 압박이 크고 극성스러운 언론과 여론의 집요한 비판에 시달려야하는 부담도 있다.

하지만 정작 잉글랜드 축구는 프리미어리그(EPL)로 대표되는 화려한 이미지와 달리, 정작 대표팀은 유로컵과 월드컵 등 메이저대회에서 늘 약한 면모를 보인다. 최근 20년간 메이저대회에서 4강 이상의 성적을 낸 적이 한 번도 없다. 선수와 지도자 모두 극소수를 제외하면 영국무대를 벗어나 해외에 진출하여 성공하는 경우도 드물다. 이러다보니 자국 리그의 높은 인기와 명성에 비하여 정작 잉글랜드 축구의 수준은 과대평가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성과와 별개로 대표팀에 대한 기대치는 한없이 높다. 여기에 전통과 명예를 중시하고 보수적인 영국 문화의 영향을 받아,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 역시 성적 외에도 항상 이리저리 까다로운 요구를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잉글랜드 감독이 영원히 극한 직업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98 프랑스월드컵 당시 잉글랜드를 이끌었던 글렌 호들 전 감독은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직이 영국 총리보다 더 어렵고 힘든 직업"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평탄치 못했던 역대 잉글랜드 감독들의 행보

잉글랜드 축구대표팀 역사상 최고의 감독을 거론하면 역시 알프 램지(1920~1999) 감독을 첫 손에 꼽을 것이다. 램지 감독은 1963년부터 74년까지 무려 11년이나 잉글랜드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으며 특히 자국에서 열린 1966년 월드컵에서 조국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우승 트로피를 선물했다. 2년 뒤인 UEFA 유로컵(1968)에서에도 3위를 기록하며 1996년 대회와 함께 잉글랜드의 역대 최고성적 타이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바비 롭슨(1982~1990, 이탈리아 월드컵 4강)이나 테리 베너블스(1994~96, 유로 96 4강)도 잉글랜드 사령탑으로서 준수한 성과를 올린 감독들로 기억된다. 하지만 이후 잉글랜드 축구의 본격적인 암흑기가 시작되는 90년대 후반부터 역대 잉글랜드 사령탑들의 운명은 대부분 평탄하지 못했다.

그레이엄 테일러(1990~1993), 케빈 키건(1999~2000), 스티브 맥클라렌(2006~2007), 로이 호지슨(2012~2016) 같이 성적 부진으로 경질된 케이스는 그나마 무난한(?) 편이다. 하지만 역대 잉글랜드 사령탑중에는 앨러다이스 감독처럼 경기 외적인 문제로 구설수에 휩싸이며 불미스럽게 지휘봉을 내려놓은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

잉글랜드 대표팀 최초의 외국인 감독으로 꼽히는 스벤 고란 에릭손(스웨덴) 감독은 '앨러다이스 사태'의 원조 격이다. 에릭손 감독은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한 타블로이드 매체의 함정취재에 속아 잉글랜드 축구와 선수단에 관한 뒷담화를 한 사실이 여과없이 드러나며 망신을 당했다. 에릭손 감독은 그해 열린 독일 월드컵 본선까지 지휘봉을 잡았지만,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월드컵이 끝나자마자 에릭손과 계약을 해지했다.

글렌 호들 감독은 유로 2000 예선이 진행 중이던 1999년 '장애인 비하'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르며 경질당했다. 이탈리아 출신의 파비오 카펠로 감독은, 유로 2012 개막을 코앞에 두고 리그에서의 인종차별 논란으로 도마에 오른 존 테리(첼시)의 주장 박탈을 놓고 잉글랜드 축구협회와 갈등을 빚다가 계약을 해지했다.

최근 잉글랜드 대표팀을 거쳐간 감독들이 이후 묘하게 지도자 경력의 하향세를 탄다는 것도 징크스다. 한때 유럽 최고의 명장으로 주가를 높이던 에릭손이나 카펠로는 잉글랜드를 떠난 이후 여러 클럽과 대표팀을 맡았으나 잇달아 저조한 성과에 그치며 어느새 한물간 감독 취급을 받고 있다. 호들과 키건, 맥클라렌 등도 이렇다할 업적을 남기지 못하고 주류에서 밀려났다. 호지슨이나 앨러다이스의 경우 이미 잉글랜드 사령탑을 맡기전에도 그다지 특출한 성과를 남긴 감독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최근 잉글랜드 지도자들의 수준 하락과 인재 고갈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흑역사로 남고 말았다.

사우스게이트, 축구 종가 위상 다시 세울까

사우스게이트는 이동국(전북)이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던 시절 소속팀인 미들스브로의 감독으로 국내 팬들에게도 친숙하다. 현역시절 크리스탈 팰리스와 미들스브로 등에서 활약했으며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도 A매치 57경기나 출전했다. 잉글랜드의 마지막 메이저대회 4강 진출로 남아있는 1996년 유로컵 준결승 독일전에서 승부차기 키커로 나섰다가 실축하여 조국의 결승진출을 무산시키기도 했다. 2002 한일 월드컵에도 발탁되었으나 경기에는 나서지 못했다.

지도자로서는 30대 중반의 비교적 이른 나이에 미들스브로의 지휘봉을 잡았지만 팀이 2부리그로 강등되는 걸 막지못했다. 2013년 이후로는 잉글랜드 연령대별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아 합리적인 인품으로 젊은 선수들의 육성과 소통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하지만 스타플레이어들이 넘쳐나는 삼사자 군단의 지휘봉을 잡기에는 큰 대회 경험과 연륜이 부족하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지난 유로컵 이후 한때 세계적인 명장을 데려와야 한다는 여론이 많았지만, 잉글랜드 축구계는 돌고돌아 결국 호지슨과 앨러다이스에 이어 또 다시 자국 감독을 선택했다. 심지어 사우스게이트는 전임자들보다도 경력이 일천한 40대의 젊은 감독이다. 어떤 면에서는 잉글랜드 축구협회가 또 한 번의 모험을 선택한 셈이다. 사우스게이트는 어느새 극한 직업이 되어비린 잉글랜드 감독직에서 무사히 생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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