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2월 초에 아는 분이 영화를 한 편 봤는데 참 재미있더라고 하면서 꼭 볼 것을 권했다. <천국에 있는 것처럼>이라는 제목의 그 영화는 아직 우리나라에 제대로 소개되지 못한 영화로 동검도 예술극장에서 상영 중이라고 했다. 동검도에 영화관이 들어섰다는 말은 진즉부터 들어 알고 있었지만, 특별히 내 마음을 끌지는 않았다. 35석 규모의 작은 영화관이라니 뭐 그리 대단할까 생각했다.

동쪽에 있는 검문소, 영화관으로 다시 나다

 두려움과 상처를 극복하고 자신만의 목소리를 낸 사람들. 내가 나답게 사는 것, 천국은 바로 그런 곳에 있다.

두려움과 상처를 극복하고 자신만의 목소리를 낸 사람들. 내가 나답게 사는 것, 천국은 바로 그런 곳에 있다. ⓒ TCO(주)더콘텐츠온


동검도는 강화에 딸린 작은 섬으로 조선 시대에는 검문소가 있던 곳이었다. 경상·전라·충청의 삼남 지방에서 올라오는 배들은 동검도를 거쳐야만 한강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름까지도 동쪽에 있는 검문하는 섬이라는 뜻의 '동검도'이다. 동검도에서 건너다보이는 곳에 세계로 드나드는 관문인 영종도 인천공항이 있다. 조선 시대에 동검도가 한 역할을 지금은 영종도가 대신해주고 있다.

썰물이 들어 물이 빠지면 동검도 앞바다는 드넓은 갯벌이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인 강화도 남단 갯벌의 연장이다. 그 갯벌을 마주 보고 작은 영화관이 하나 있다. 겉으로 봐서는 카페인지 영화관인지 잘 구별이 되지 않는 이곳은 시중에서는 만나기 힘든 고전 예술영화들을 주로 상영한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갯벌을 바라보며 정담을 나누노라면 이곳이 바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화관'임을 자각하게 된다. 좋은 영화들을 애써 찾아서 상영하니 동검도 영화관은 '최고로 아름다운' 영화관임이 분명하다.

아직 맵찬 바람이 불던 지난 2월 중순께 영화를 보러 동검도로 갔다. 물이 빠진 갯벌은 온통 검회색으로 번뜩였다. 일순 황량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것은 잠깐이었고 곧 광대무변한 갯벌의 넓이에 힘이 들어가 있던 어깨가 절로 내려왔다. 어디에서 저렇게 넓은 땅을 볼 수 있겠는가. 손바닥만 한 땅에도 건물이 들어서는 지금의 세태에 수십만 평에 달하는 넓은 땅이 그냥 그 존재 자체로 있다는 그것만으로도 벌써 마음이 풀어지고 넉넉했다.

<천국에 있는 것처럼>은 우리나라에서는 만나기 힘든 스웨덴 영화다. 2004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단번에 유럽 전 지역을 뒤흔들어 놓았다. 1년 2개월간 유럽 박스오피스의 상위 10위를 차지했다니, 실로 유럽인들이 사랑한 감동의 역작임이 틀림없다.

이 영화를 안 본 사람은 있겠지만 한 번만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너무나 좋은 영화이기 때문에 두 번 세 번 거푸 보게 된다. 나 역시 몇 번을 보았다. 좋은 것은 나누고 싶은 게 인지상정인지라 주변에도 두루 알렸다. 며칠 전에는 남편과 함께 또 보았다. 역시 감동으로 가슴이 벅차올라 영화가 끝나고도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순간 우리는 모두 천국에 있었다.

영화는 일렁이는 밀밭을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바람에 몸을 맡긴 밀밭은 춤을 추고 있다. 밀밭 한가운데에서 한 소년이 자연과 하나가 되어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다. 하늘과 바람, 그리고 태양까지도 소년과 함께 음악이 되었다. 바람을 따라서 온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음악, 소년의 얼굴은 기쁨으로 빛나는 듯하다.

세계적인 지휘자, 시골 교회 성가대를 맡다

 가브리엘라는 남편의 폭력에 눌려 산다.

가브리엘라는 남편의 폭력에 눌려 산다. ⓒ TCO(주)더콘텐츠온


그 평화를 깨는 사건이 벌어진다. 또래 아이들 몇이 소년을 때리고 짓밟는다. 소년의 천재성을 질투해서 그랬던 것이리라. 밀밭은 짓이겨지고 악보가 흩어진다. 엉망으로 두들겨 맞은 소년은 그 상처를 가슴에 안은 채 어머니와 함께 고향을 등지고 만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지휘자 '다니엘'은 더는 연주를 하면 심장이 정지되고 말 것이라는 의사의 충고를 듣는다. 더 이상의 치료가 소용이 없을 정도로 심각한 협심증을 그는 앓고 있었다. 성공의 길을 달리던 그는 음악을 접고 궁벽한 시골로 찾아 들어간다. 그곳은 어린 시절 그가 살았던 마을이었다.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이 마을은 햇빛이 많지 않은 북유럽의 기후 탓인지 사람들은 남의 일에는 관여하지 않고 무관심하다.

동네 교회의 목사는 성가대를 맡아 달라고 부탁한다. 세계적인 지휘자에게 시골 교회의 성가대가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에게는 정양(靜養)이 필요할 뿐, 또다시 세속적인 경쟁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러나 우연히 성가대원들의 노랫소리를 듣고 자원해서 그들을 지도해주기로 하는데, 그곳에서 영혼을 뒤흔드는 소리를 들은 것일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지만, 자신에게는 그런 재능이 없음을 알고 포기한 그였다. 사람을 사랑하는 게 밑바탕에 깔려있어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도 있는데 그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자신을 알고 지레 포기했다.

그의 내면에는 깊은 상처가 있다. 어린 시절 밀밭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그를 때리고 능멸했던 동무들로부터 받은 마음의 상처에다가 큰 무대에서 공연하는 아들을 보기 위해 서둘러 오다가 차 사고를 당해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모습을 목격한 기억은 그에게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람을 향한 시선을 거두었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음악의 시작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나만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나만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 TCO(주)더콘텐츠온


어떤 음악이든 이미 존재하고 있다. 우리 내면에 있는 그 소리를 찾아야 한다. 다니엘은 성가대원들에게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으라고 주문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그것은 내면 깊은 곳에 숨어있는 상처와 대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기 목소리를 내기까지에는 크고 작은 진통들이 따를 수밖에 없다.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자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변화는 항상 두려움을 동반한다. 그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고 나설 때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성가대원들을 조련하고 단련시키는 지휘자 다니엘을 비롯한 대원 모두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두려움을 극복하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자신을 변화시켜 나간다.

음악은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그것은 또 '들어주기'이기도 하다.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대면하고 내 속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타인의 아픔도 모른 척하지 않고 들어주는 것, 음악은 바로 그곳에서 출발한다고 이 영화는 이야기한다.

아내를 자신의 소유물로 인식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가브리엘라'의 남편은 힘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겁쟁이다. 그는 자신의 무력함을 감추기 위해 아내를 옥죄고 꼼짝 못 하게 한다. 진정으로 용기 있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아내의 성장을 돕고 성취를 함께 기뻐할 것이다. 그러나 가브리엘라의 남편인 '코니'는 그와 반대로 행동한다. 그것이 남자의 힘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겁쟁이일 뿐이다.

부부관계는 자전거 타기와 비슷하다. 조화롭게 밸런스를 유지하지 못하면 자전거는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마침내 넘어지고 만다. 부부가 각자 자기 목소리를 내지만 그것이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하모니를 이룰 때 그것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부부 사이다. 가브리엘라의 남편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아내와 아이를 잃고 만다.

천국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드는 것이다. 다니엘이 가브리엘라를 위해 만든 노래에 천국은 바로 내가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내 인생은 나의 것, 천국은 내가 만드는 것

 "내 인생은 나의 것,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어요. 더 강해지고 자유롭고 싶어요."

"내 인생은 나의 것,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어요. 더 강해지고 자유롭고 싶어요." ⓒ TCO(주)더콘텐츠온


"내 인생은 나의 것,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어요. 모든 순간마다 갈망하는 것들로 채울래요. 내가 누구인지 잃어버리지 않을래요. 삶의 한순간도 놓치지 않겠어요. 솔직한 내가 되어, 더 강해지고 자유로워지겠어요. 내 인생은 오직 나의 것, 천국은 바로 그런 곳에 있어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던 다니엘은 성가대원들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극복한다. 그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로부터 죽을 만큼 몰매를 당한 기억에다 자신을 위해 헌신한 어머니가 차에 치여 즉사하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더구나 그는 협심증을 앓고 있다. 강렬한 감정의 변화는 그를 죽음으로 내몰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레나'를 사랑하지만, 선뜻 다가서지 못한다. 그러나 '레나'가 하는 말을 듣고 그는 두려움을 극복한다. "죽음이란 없어요, 그냥 이 순간에 충실해요"라고 말하는 레나, 비로소 그는 내면의 깊은 상처와 화해를 하고 두려움 없이 레나를 사랑한다.

<천국에 있는 것처럼>은 두려움과 그것을 극복하는 용기에 대한 영화이다. 천국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진정한 나를 찾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행복이고 천국이리라.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으라는 다니엘의 주문은 성가대원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향한 말이기도 하다. 내가 나답게 사는 것, 천국은 바로 그런 곳에 있다는 것을 영화 <천국에 있는 것처럼>은 말한다.

 내 안의 나를 바라보고 두려움의 실체를 깨닫는 것, 그것이 바로 나만의 목소리를 내는 길이다.

내 안의 나를 바라보고 두려움의 실체를 깨닫는 것, 그것이 바로 나만의 목소리를 내는 길이다. ⓒ 이승숙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동검도 'DRFA 예술극장' 홈페이지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천국에 있는 것처럼 동검도 DRFA 예술극장 동검도 케이 폴락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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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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