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7시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6 AFC 챔피언스리그(이하 ACL) 8강 2차전 전북 현대와 상하이 상강과의 경기에서 김신욱(가운데)이 상대 수비를 제치려 하고 있다.

13일 오후 7시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6 AFC 챔피언스리그(이하 ACL) 8강 2차전 전북 현대와 상하이 상강과의 경기에서 김신욱(가운데)이 상대 수비를 제치려 하고 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경기는 압도했지만 전반이 0-0으로 마무리됐을 때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지난 9일(이하 한국 시각) 열린 2016 중국 슈퍼리그 24라운드 상하이 상강(이하 상하이)과 베이징 궈안의 경기에서 부상에서 복귀한 헐크(30, 브라질)가 멀티골을 터뜨린 사실과 '원정 다득점'이란 규칙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상 첫 K리그 클래식 무패우승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전북 현대(이하 전북)는 강했다.  

전북이 13일 오후 7시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6 AFC 챔피언스리그(이하 ACL) 8강 2차전 상하이 상강전에서 레오나르도(29, 브라질)와 이동국(37)의 멀티골, 상대 수비의 자책골을 포함해 후반에만 무려 5골을 터뜨리며 5-0 승리를 거뒀다.

과정과 결과 모두 너무나도 훌륭했다. 김신욱(28)과 이동국은 스트라이커란 무엇인지 경기력으로 보여줬고, 레오나르도와 로페즈(25, 브라질)는 축구는 이름값으로 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증명했다. 이재성(24)과 김보경(26)은 급이 다른 축구 실력과 센스를 뽐냈고, 투지와 열정을 보여준 수비진은 관중들의 박수를 불러일으켰다.  

승리의 숨은 공신, '진격의 거인' 김신욱

경기 전날인 12일 전북의 클럽하우스에서 진행된 팀 훈련이 끝난 뒤에도 훈련장에 남아 땀을 흘린 선수가 있었다. 이날 경기에 스트라이커로 선발 출전한 김신욱과 중앙 미드필드로 이재성과 호흡을 맞춘 김보경이었다. 두 선수는 모든 선수가 훈련장을 떠난 뒤에도 볼을 주고받았다. 김보경이 긴 패스를 하면 김신욱이 가슴이나 헤딩으로 볼을 정확하게 떨구는 연습을 했다.

레오나르도와 이동국이 멀티골을 기록했고, 한 차원 높은 수준의 경기력을 선보인 이재성과 김보경도 있어서 섣불리 최우수선수를 선택하기가 어렵다. 전북의 모든 선수가 너무나도 훌륭한 경기력을 선보였고, 전주월드컵경기장을 찾은 27,351명의 관중에게 최고의 명절 선물을 해줬다.

그럼에도 김신욱을 승리의 숨은 공신으로 뽑고 싶다. 전날 훈련장에서 열심히 해서가 아닌, 이날 경기 대승에 크게 이바지했기 때문이다. 김신욱은 전반 5분 다소 이해할 수 없는 판정으로 득점을 잃어버렸지만, 초반부터 상대수비와 거친 몸싸움을 피하지 않았고, 공중볼을 가슴과 헤딩을 통해 모두 따내면서 동료들에게 슈팅 기회를 만들어줬다.

전반 14분에는 박원재(32)가 올려준 크로스를 정확한 헤딩슛으로 연결하며, 상대 골문을 위협했다. 특히, 레오나르도는 전반전부터 왼쪽 측면에서 드리블을 치며 페널티박스 근처로 올라오는 방식으로 3차례의 슈팅을 시도했었는데, 김신욱이 중앙에서 수비수를 압박하고, 측면을 활용하는 연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김신욱은 상대 수비의 거친 반칙으로 수차례 넘어졌고, 유니폼이 늘어나길 반복했지만, 동료들을 위해 그 누구보다 열심히 경기에 임했다. 결국, 후반 7분 김신욱이 선제골에 크게 이바지했다. 이재성이 상대 페널티박스 오른쪽에서 패스한 것을 김신욱이 곧바로 레오나르도에게 연결하며 슈팅 기회를 만들어줬다. 이 공을 받은 레오나르도는 상대 수비 2명이 있었음에도 감각적인 슈팅을 통해 선제골을 만들어냈다.

두 번째 득점 역시 김신욱의 보이지 않는 공헌이 있었다. 이재성이 자신의 개인 능력과 로페즈와의 연계를 통해 페널티박스 안쪽으로 진입할 때, 김신욱은 이재성을 막으려는 수비를 역으로 막았다. 덕분에 이재성은 쉬커의 자책골을 유도해낼 수 있었고, 상대 수비의 집중력을 완벽하게 무너뜨릴 수 있었다.

후반 16분에도 전북 진영에서 길게 넘어온 볼을 김신욱이 다시 한 번 헤딩으로 레오나르도에게 연결했지만, 상대 키퍼의 슈퍼세이브에 막혔다. 후반 24분 이종호(24)와 교체되며 경기를 마무리한 김신욱은 이날 경기 선제 득점과 두 번째 득점에 모두 관여하면서 팀의 대승을 이끌었다. 김신욱은 경기 내내 상대 수비에 부담을 가하며 체력과 집중력을 점차 떨어뜨렸고,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상대 골문을 끊임없이 공략했다.                       

발전하는 '노망주' 이동국

     13일 오후 7시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6 AFC 챔피언스리그(이하 ACL) 8강 2차전 전북 현대와 상하이 상강과의 경기에서 이동국(오른쪽)이 헤딩슛을 준비하고 있다.

13일 오후 7시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6 AFC 챔피언스리그(이하 ACL) 8강 2차전 전북 현대와 상하이 상강과의 경기에서 이동국(오른쪽)이 헤딩슛을 준비하고 있다. ⓒ 전북 현대 공식 홈페이지


이동국은 지난달 23일 상하이와의 ACL 8강 1차전에서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선발 출전했었다. 당시 전북은 원정 경기임에도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줬지만, 아쉽게 득점에는 실패했다. 이동국 역시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후반 교체됐다.

그래서인지 최강희 감독의 선택은 이동국이 아닌 김신욱이었다. 김신욱의 높이를 활용한 전략으로 상대의 체력과 정신을 서서히 무너뜨리고, 후반 결정력이 좋은 이동국의 투입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작전이었다. 

이 전략은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김신욱이 선제골과 두 번째 골에 크게 이바지했다면, 이동국은 상하이에 남았던 마지막 희망을 없애버렸다. 이동국은 후반 17분 교체 투입되며 그라운드를 밟았다. 뛸 수 있는 시간은 30분 남짓했지만, 존재감은 굉장했다.

이동국은 후반 38분 이재성의 패스를 받아 슈팅을 시도했고, 이 공은 골키퍼가 손을 쓸 수 없는 상대 골문 구석에 정확히 들어갔다. 힘을 빼고, 가볍게 갖다 댄듯한 슈팅은 마치 후배들을 향해 '득점은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외치는 듯했다.

'슈퍼맨' 이동국은 30분을 뛰고 득점을 해낸 것도 대단한데 멀티 골까지 기록했다. 후반 42분 이동국은 순간적인 침투로 상대 수비를 무너뜨렸고, 레오나르도가 살짝 높게 넘겨준 패스를 받아 반 박자 빠른 슈팅으로 연결해 다시 한 번 상대 골망을 흔들었다.

올해 한국 나이 38세의 적잖은 나이지만, K리그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손꼽히는 이유를 단 30분 만에 증명했다. 대표팀이 '골 결정력' 문제에 시달릴 때마다 이동국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이 괜한 것이 아님을 보여줬다. 은퇴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나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더욱 완벽해져 가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일부 축구팬들은 그를 '노망주'(노장+유망주)라고 부르곤 한다.

유럽이 부럽지 않았던 전주월드컵경기장

이날 경기 승리의 주역은 선수들만이 아니었다. 추석을 하루 앞두기는 했지만, 평일임에도 경기장을 찾은 2만 7351명의 관중이 뿜어낸 함성과 열정이 어우러져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다. 전주월드컵경기장은 입장권 현장판매가 시작되는 경기 시작 2시간 전부터 수많은 축구팬들이 자리했고, 경기가 시작되자 축구에 굶주린 사람들처럼 엄청난 함성을 내뿜었다.

축구가 삶의 일부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독일 분데스리가의 관중들과 비교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만큼 이날 전주월드컵경기장의 분위기는 역대 최고였다.

경기 내내 멈추지 않았던 응원과 박수, 경기 막판 이루어진 파도타기 응원까지 장관을 이뤘다. 여기에 득점이 터졌을 때와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과 함께 합창한 '오오렐레'가 경기장을 감쌀 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전북은 10년 만에 아시아 챔피언 자리를 되찾을 좋은 기회를 맞이했다. 앞으로 ACL에서 4경기(준결승+결승)만 더 이기면 꿈에 그리던 우승이다. 이날과 같이 선수와 관중이 하나 된 모습을 보인다면, 그것은 꿈이 아닌 현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던 전주월드컵경기장이었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전북현대 ACL8강 2차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