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영화 <케빈에 대하여>가 화제이던 때, 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영화에 대한 감상을 들을 수 있었다. 영화에 대한 평가가 호의적인 점은 비슷했으나, 반응 중 내가 동의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다. 많은 이들이 이 영화가 '엄마가 아이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을 때 벌어지는 일' 정도로 해석했다. 이를테면 영화의 주인공인 에바는 아들 케빈을 낳은 뒤 변화한 일상에 적응하는 어려워하고 케빈을 낯설어한다. 그리고 그녀는 시끄러운 공사 현장 한복판에 서서 그 소음으로 케빈의 울음소리를 덮어버리기도 한다.

즉 사람들이 보기에 에바는 좋은 엄마가 아니었고, 그런 그녀의 행동이 결국 아들이 소시오패스가 되도록 만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가 그런 식의 교훈을 던진다는 것에 동의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영화는 에바의 시선에서 진행이 되며, 케빈보다는 에바에게 더 이입할 여지를 남겨놓는다. 또한 케빈이 끔찍한 사건을 저지른 이후, 에바는 회한이나 후회를 표하기보다는 혼란과 고통, 피로함을 보인다. 이 영화는 에바가 이 일의 원흉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사람들에게 뭐라 반박할 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게 긴 시간, 나는 어딘가 불편한 질문을 품고 살아갔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의 스틸컷

영화 <케빈에 대하여>의 스틸컷 ⓒ BBC Films


항상 행복하지 만은 않았던 모자 관계

불편했던 감정은 아마도 그 질문이 어느 정도는 나의 경험을 겨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케빈의 대하여>가 극단적인 결말로 치닫는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이 영화는 실로 어머니와 아이에 관한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 중 하나다. 사회는 엄마는 아이에게 헌신하고, 자식은 어머니를 사랑하는 가정을 안정적이고 이상적이라 찬양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것이 거짓임을 안다. 애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깊은 애정만큼이나 서로에 대한 불만과 미움, 때로는 분노도 강력하다. 가장 오랜 시간 유지되며 손쉽게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가족 관계 내부에서 흐르는 감정은 매우 강렬하다. 그리고 그 감정은 항상 부정적일 수 없는 것처럼, 항상 긍정적일 수도 없다.

나의 경우도 그랬다. 둘째는 딸이었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바람 덕분이었는지, 나는 성격도 생김새도 엄마를 빼닮은 아이로 태어났다. 형은 일찌감치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자기 방에서 도통 나올 생각을 안 했지만, 나는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가서 장을 보거나 함께 영화를 보러 다녔다. 그리고 그 시간이 즐거웠다. 그렇게 엄마와 나의 관계는 끈끈했지만, 그런 만큼 갈등이 발생했을 때 골은 깊게 패였다. 엄마를 사랑한 만큼, 엄마를 미워한 시간도 많았다. 가령 진로 문제를 놓고 다툰 때가 그랬다. 나는 대학에 가면 영화를 전공하고 싶었고, 엄마는 내가 갈 길이 험난할 것을 우려해 나의 선택에 반대했다. 당시 자신감에 넘쳤던 나는 왜 엄마는 해보지도 않고 나의 앞길을 막냐는 맹랑한 말을 하기도 했다.

엄마와 내가 가장 첨예하게 부딪힌 것은 제사와 차례에 관한 것이었다. 막내며느리였던 엄마는 항상 홀로 음식을 준비했고, 그렇게 한 음식을 큰아버지 집으로 들고 가 제사와 차례를 치렀다. 엄마는 전날 밤늦게 음식을 준비하고, 차례 날이면 새벽같이 일어나길 반복했다. 나는 왜 항상 음식은 엄마 혼자 준비하느냐고, 그리고 죽은 사람이 음식을 먹을 것도 아닌데 이 무의미한 노동을 왜 계속하느냐고 엄마를 타박했다. 어린 내게는, 그냥 하지 않겠다고 버티면 되는 일을 엄마가 꾸역꾸역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엄마는 그럴 때마다 어쩔 수 없다는 답으로 일관했다. 나는 엄마가 불쌍했다. 그리고 그만큼 엄마가 미웠다. 명절이 싫어지고, 죽은 할아버지조차 미워하게 하는 엄마가 미웠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엄마처럼은 살지 않을 거라고. 하고 싶은 일 하고, 싫은 건 싫다고 말할 거라고.

 영화 <케빈에 대하여>의 스틸컷

영화 <케빈에 대하여>의 스틸컷 ⓒ BBC Films


홀로 서기 이후에 알게된 것

그렇게 유년 시절이 끝나고, 나는 대학에 다니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10대 시절, 나는 20대의 생활에 대한 동경과 희망이 있었다. 갑갑한 집과 학교를 벗어나 자유를 얻으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마음대로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처음 시작한 홀로서기는 내 예상과 달랐다. 수업을 안 가고 과제를 안 한다고 때리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런 행동은 고스란히 학점으로 돌아왔다. 엄마와 살던 때야 몰랐지만 먹는 것, 마시는 것, 움직이는 것 모두 돈이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지만 아무리 쉬워 보이는 일도 막상 하면 달랐다. 돈을 받는 입장이 되자 무슨 소리를 들어도 가만히 있어야 했다. 무표정하게 일을 하다 집에 오면 우는 날들이 반복됐다.

그리고 깨달았다. 사회가 말하는 '성인'으로서 산다는 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는 사실을. 자유로움이 무엇이든 할 수 있음을 말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그리고 20대 이후에도, 어떤 관계 속에선 우리는 자유로울 수 없고 묵묵히 감내하기만 해야 한다는 것을.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이 더 많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며느리로서 사회가 여성들에게 요구하는 것들은 무수히 많다. 특히 일을 그만둔 기혼 여성의 경우, 그것들이 자신을 규정하는 거의 유일한 정체성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도리'를 다하라는 사회의 은근한 압력은 거부하기가 힘들다. 그 순간에 받을 비난도 비난이지만, 잃을 것도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지만 달라진 것은 크게 없다. 나는 여전히 일에 매여있고, 돈 앞에서는 항상 작아진다.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많지만, 항상 현실에 밀려 수첩 속에 메모로만 쌓여간다. 내가 뭘 잘하는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살아갈지도 막막하다. 변한 것이 있다면 내가 그런 상황에 적응한 것뿐이다. 그렇지만 내가 몰랐던, 삶의 새로운 것들이 나를 찾아온다면 나는 20대 초에 앓았던 홍역을 다시 치를지도 모른다. 사는 게 너무나 각박하던 날, 언젠가 엄마와 맥주를 마시며 이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엄마는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그래, 내가 너희들을 가졌을 때는 어땠겠니."

 영화 <케빈에 대하여>의 스틸컷

영화 <케빈에 대하여>의 스틸컷 ⓒ BBC Films


'애착'보다는 '분리'

나와 비슷한 나이, 엄마는 자기 몸에서 나왔지만 살면서 처음으로 보는 사람과 대면했다. 하지만 모든 다른 이들과 달리, 이 사람은 말도 통하지 않고 내내 먹거나 울기만 했다. 거기에 그는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것도 모르니, 상처 주는 말이나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존재를 사랑해야 한다. 그렇게 엄마는 나를 만났다. 지난 시간, 이런저런 갈등과 불화를 거칠 때마다 나도 엄마도 질문했다. 우리 가정은 왜 남들처럼 평온할 수 없을까. 하지만 낯선 두 사람이 서로에게 적응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그건 모자 관계라고 다르지 않다. 서로가 서로를 알고, 나도 조금씩 사회를 알아가며 충돌은 줄어들었다. 이제 엄마와 나는 목소리만 들어도 서로가 어떤지 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답할 수 있게 되었다. 케빈이 그렇게 된 건 에바가 그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시작은 누구나 어렵고 어색하다. 에바는 할 만큼 했다. 오히려 문제는 정반대의 지점에서 발생한다. 어린 시절, 케빈은 온종일을 에바와 단둘이서만 보냈다. 그에게는 에바가 세상의 전부였고, 그래서 그녀가 자신으로부터 관심을 돌리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어린 케빈이 에바가 사랑하는 지도로 꾸민 그녀만의 방을 훼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남편과 갈라서고, 이제는 영영 그녀와 떨어지게 되리란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케빈은 돌아올 수 없는 선택을 한다. 그는 에바가 사랑했던 가족들을 죽인다. 그리고 학교에서 학살극을 벌인다. 그녀가 세상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어 자신만 볼 수 있도록.

어쩌면 케빈에게 필요했던 건 에바의 더 많은 사랑이 아니라 그녀와의 분리였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관심만이 세상 전부가 아님을 받아들이고 독립적인 자아를 형성하는 것이다. 모성에 대한 선입견과 달리, 엄마와 아이의 관계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서로가 얼마나 밀착되느냐가 아니라 떨어질 수 있느냐이다. 관계는 두 명의 사람 사이에서 가능하다. 역설적으로 누군가와 충분히 거리를 둘 수 있을 때, 그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가능하고 이해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서울과 부산이라는 거리를 가지고 나서야, 홀로 세상 앞에 내던져지고 나서야, 내가 엄마를 이해하고 더 깊은 유대를 맺는 것이 가능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번 추석에도 부산에 내려간 나는 엄마와 전을 부칠 것이다.

케빈에 대하여 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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