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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부 조작 사건은 무소불위의 학교장만 아니었다면, 또 교사들 간 자유롭고 수평적인 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다면, 애초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학생부 조작 사건은 무소불위의 학교장만 아니었다면, 또 교사들 간 자유롭고 수평적인 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다면, 애초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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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 조사한 뒤 일벌백계? 그런다고 달라질까요? 편법이야 찾으면 얼마든지 있을 텐데요."
"핵심은 그게 아니란 뻔히 알면서도, 자꾸만 변죽만 울리며 여론을 떠보는 것 같아요."
"교육부의 호들갑이 얼마나 갈 것 같아요? 늘 그랬듯, 번득이는 칼로 허공만 가르다 말겠죠."

교육부가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학교생활기록부(이하 학생부) 기재 관련 전수 조사를 실시한다는 소식에 동료교사들끼리 나눈 대화다.

광주의 모 사립여고에서 발생한 학생부 조작사건을 계기로, 접속 권한과 수정 횟수 등 네이스(NEIS, 교육행정정보시스템) 운영 실태 전반에 대해 샅샅이 들여다보겠다며 엄포를 놨는데도 정작 학교는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새삼스럽지도 않은 익숙한 풍경이기 때문이다.

내용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거의 해마다 거르지 않고 학생부 기록이 조작됐다는 뉴스는 있어왔다. 차이라면 최근 학생부 종합전형이 대입전형의 대세로 자리를 잡게 되면서 좀더 '대담해졌다'고 보는 게 정확할 듯 싶다.

그때마다 교육자적 양심을 버렸다며 질타했고, 전가의 보도처럼 일벌백계만이 해답인 양 외쳐댔지만, 우리가 지금 목도하고 있는 것처럼 달라진 건 거의 없다.

이번엔 교장과 교사들이 공모하여 상위권 학생들의 성적과 학생부 기록을 조작하고, 심지어 한 교사는 학부모에게 돈을 받고 학생의 성적을 고쳐주었다는 사실까지 드러났다.

오로지 명문대에 많은 학생을 진학시키기 위해서,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아이들을 명문대에 보낼 수만 있다면, 학교와 가정 내에서 명백한 범죄조차 묵인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여전히 명문대 진학자 수로 고등학교의 '질'이 결정되고, 그 서열에 따라 우수한 중학생들의 지망 여부가 정해진다.

주지하다시피 특목고와 자사고가 최상위권 학생들을 싹쓸이해가는 바람에 일반계고의 슬럼화가 심각한 상태지만, '이삭줍기'일지언정 일반계고 사이의 진학 실적 경쟁은 아직도 치열하다. 특히 지방일수록 명문대 진학률은 교육의 모든 가치를 일거에 형해화시키는 '블랙홀'로 더욱 굳건하다.

이는 전수 조사와 일벌백계만이 능사가 아니란 걸 보여준다. 늘 그래왔듯 학생부 관리 체계를 엄격하게 하는 등의 개선책이 무슨 공식처럼 쏟아져 나올 테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 정도의 '대증요법'으로는 학생부와 대학입시전형 전반에 대한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불신을 해소할 순 없다. 더 늦기 전에 근본적인 방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학생부 조작사건,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까지 연루된 '공모 범죄'

최근 논란이 된 학생부 조작사건은 학교 현장에 만연해 있는 적폐를 속속들이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진학 실적에 눈 먼 교장과 교사들의 개인 비리쯤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교사, 학부모, 심지어 학생들까지 직간접으로 연루된 '공모 범죄'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더욱이 극소수 최상위권 학생들의 이익을 위해 나머지 대다수 학생들의 교육권을 내팽개친 총체적 부패 사건이다. 거칠게 말해서, 1%를 위해 99%는 자신도 모르게 '개돼지'가 된 사건이다.

같은 교사로서, 우선, 교사들 사이의 '침묵'이 무섭다. 모르긴 해도, 직접 연루된 이들 말고도 대부분의 교사들이 학생부 조작이 횡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대충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남의 일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 학교의 같은 교무실에 근무하고 있는 교사라면 이를 모를 리 없다. 교사들 간에 학생부의 오타나 누락되고 수정된 내용을 공유하고 교차 검토하는 과정에서도 몇 번은 드러났을 일이다.

그런데도 문제 삼지 못했던 이유는 뭘까. 당연한 말이지만, 일개 교사가 학교장의 지시를 거부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거기에 대고 훗날 문제가 되면 책임지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간 큰' 교사는 드물다.

더욱이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업무가 아니라면,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가 없다고 여기기 십상이다.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교사들 사이의 '침묵의 카르텔'은 결국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는 학교장의 비민주적 학교 운영행태에 기인한다. 전체 교직원 회의가 학교장의 '하교'를 수첩에 받아쓰는 모임으로 전락했다는 조롱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사립학교의 경우 학교장의 힘은 교사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을 만큼 막강하다. 지금까지 종종 있어온 학생부 조작 관련 사건들이 자사고를 비롯한 사립학교에서 주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사립학교에서는 교육감과 교육부 장관이 보낸 공문보다 학교장과 이사장이 내린 명령에 먼저 반응한다.

준장, 소장, 중장, 대장 그 위에 병장이 있다는 군 내무반 졸병들의 '생활 지침'처럼, 적어도 사립학교 교사들에게 학교 운영의 자율권을 보장한 사립학교법은 대한민국 헌법보다 더 힘이 세다. 이러한 현실엔 눈 감은 채, 학생부 관리의 허술함을 지적하고 '교육자적 양심' 운운하는 건 변죽만 울리는 꼴이다.

언젠가부터 자녀 문제 말곤 관심이 없는 이 땅 학부모들

일부 파렴치한 학부모들의 행태 또한 용납될 수 없는 범죄다. 성적 조작을 요구하며 돈을 건넨 이는 말할 것도 없고, 당신들의 자녀가 학교로부터 특혜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당연한 듯 누렸던 사실은 적어도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준다.

최상위권 아이들의 학생부를 교사가 1:1로 특별 관리해준다는 학교의 비교육적 처사에 저항하기는커녕 당연시하며 맞장구쳤으니 '공범'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부턴가 이 땅의 학부모들은 자녀 문제 외엔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는 듯하다. 자녀의 친구들을 모두 제 자식처럼 여겨달라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같은 학교 같은 교실에서 하루 종일 함께 생활하는 아이들의 권리와 미래에 대해 나 몰라라 하는 건 어른스럽지 못한 태도다.

하물며 성적 조작의 경우처럼 불법을 저질러서라도 특혜를 누리려는 그들의 모습은 '혼자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추잡한 이기주의의 단면이다.

'명문대 병'에 걸린 일부 교사와 학부모의 짬짜미 행태는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마저 더럽히고 있다. 인터넷 등을 통해 이번 사건을 꼼꼼하게 살펴본 아이들은 하나같이 그들을 '용서할 순 없지만, 이해할 순 있다'고 말했다.

학교로부터 최상위권 아이들이 '배려'를 받는 거야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고 보면, 분명 그 학교만의 문제는 아닐 거라고 덧붙였다. 나아가 한 아이는 자존감의 문제라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솔직히 최상위권 아이들에게 내신 몇%는 죽고 사는 문제이겠지만, 대다수 중하위권 아이들은 자신의 내신이 정확히 얼마인지도 모를 만큼 무관심해요. 성적 조작이라는 것도 그런 분위기 속에 암묵적으로 이뤄진 거죠. 최상위권 아이들의 수상실적을 올려주기 위해 경시대회에 참가해 들러리를 서고, 그들의 실수를 만회시키기 위해 시험 횟수를 늘려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며 체념하면서 순응하게 되죠.

그런 가운데 교과 성적도, 비교과 활동도 더욱더 양극화되고 있는 실정이에요. 설령 최상위권 아이들의 학생부가 조작됐다는 걸 알았다고 해도, 공부 못하는 아이들 중에 그걸 문제 삼는 경우는 없었을 걸요. 어차피 그들은 우리와 출발선부터 달랐으니까. 사실 선생님들도, 부모님들도 이런 현실을 결코 모르지 않을 텐데도, 무기력에 빠져 그냥 나 몰라라 하고 있는 거죠. 그거 아세요? 최상위권 아이들을 빼곤 학교에 뭔가를 기대하는 아이들이 거의 없다는 걸요."

예상대로 일각에서는 '현장 교사와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특별대책팀을 구성해서 네이스 무단 접속을 차단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그러나 거듭 강조하건대, 그것만으로는 어림도 없을 뿐만 아니라, 번지수도 틀렸다. 이는 대학입시전형의 변화로 인한 학생부의 문제라기보다는 학교의 비민주적 교육 환경에서 비롯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무소불위의 학교장만 아니었다면, 또 교사들 간 자유롭고 수평적인 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다면, 애초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최상위권 자녀를 둔 일부 학부모들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도 있었을 테고, 아이들 또한 민주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존감에 생채기가 나진 않았을 것이다. 요컨대, 애먼 학생부 관리 시스템을 탓하기 전에 차라리 사립학교법 개정에 힘을 쏟는 편이 낫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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