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초등학교를 다녔던 그 시절 학교를 마치고 동네에서 아이들이랑 노는 것은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피시방이 있을 리 만무하고 학원이라는 것도 읍내에 있어서 주산학원이나 웅변학원은 다른 세상에서 사는 아이들의 사치였던 시절.

대부분 놀이는 자연에 존재하는 나무나 돌 등을 이용한 칼싸움이나 비석치기였고 때로는 바닥에 선을 그어놓고 '오징어'나 '카세트' 등의 육체를 부딪치는 놀이를 했다. 용돈을 모아 문방구에 파는 제품으로 할 수 있는 놀이는 두 가지가 있었는데 축구와 야구였다. 말이 야구이지 테니스공 하나에 아카시아 나무를 잘라만든 방망이가 전부였고 투수가 없는 요즘 말로 '펑고'로 게임을 하는 수준이었다.

난 야구를 좋아했다. 그리고 삼성라이온즈 팬이었다. 과거형 어미를 사용했지만 지금도 야구를 좋아하고 삼성라이온즈 팬이다. 경상북도에 위치한 우리 마을 아이들은 모두 삼성라이온즈 팬이었다. 모태신앙이라는 말이 있듯이 경상도에 태어나면 무조건 삼성라이온즈 팬이 되어야 하는 줄 알았다. 이만수, 장효조, 김시진, 김일융, 오대석, 장태수, 배대웅, 박승호, 황규봉 등 프로야구 초기 삼성라이온즈의 선수들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삼성라이온즈를 응원하면 다른 구단의 스타플레이어들은 모두 우리 편이 아닌 '나쁜놈'이 되는 법. 그 가운데 최동원은 롯데자이언츠 소속의 '나쁜놈'이었다.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보유하고도 우승은 못하는 최강팀이 바로 삼성라이온즈였다. 84년도 삼성과 롯데가 만났던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4승을 기록했던 최동원은  '최강 나쁜놈'이었다.

불세출의 최고투수 최동원

최동원은 당대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도 정권의 보이지 않는 방해로 인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지 못했다. 1988년에는 선수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선수협의회 결성을 주도하다(그 당시 선수협 설립에 대해서 자문했던 부산의 변호사가 문재인이었다) 우리 편 삼성라이온즈 선수가 되었지만 이미 그는 야구에 대한 의욕을 잃은 상태였고 1990년 은퇴했다.

최동원 투수 당당하게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던 최동원이 그립다

▲ 최동원 투수 당당하게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던 최동원이 그립다 ⓒ 롯데자이언츠


은퇴 이후 지방의원으로, 그것도 야당 후보로 부산에 출마하기도 했으며 방송사 해설위원, 방송인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2001년에는 한화이글스 코치로 그라운드로 돌아와서 2007년에는 한화이글스 2군 감독이 되었고 이후 한국야구위원회 경기감독관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선수 시절 호리호리한 몸매로 금테 안경을 착용하고 더러운(?) 투구폼으로 마운드를 호령하던 그는 은퇴 이후 유쾌한 입담과 활기찬 모습으로 대중들과 팬들 앞에 섰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2007년 대장암 판정을 받았고 투병생활에 들어갔다. 이후 2011년 7월 22일 열린 경남고-군산상고 레전드 매치에서 병세가 완연한 모습으로 팬들을 안타깝게 했던 그는 그해 9월 14일 세상을 떠났다.

최고투수 최동원, 하지만 그도 '을'의 신세

최동원은 1981년 롯데자이언츠와 계약금 5000만 원에 구단과 계약했다. 롯데자이언츠 구단은 2100만 원을 현금으로 지급했지만 나머지 2900만 원은 약속어음으로 끊어주었다. 하지만 30년이 지나 최동원 선수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약속어음에 기록된 그 금액은 지급되지 않았다. 최동원 선수의 배번인 '11번'도 팬들과 부산시민들의 성화에 영구결번하는 뒤끝을 보였다.

야구 선수로서는 최고였던 최동원, 하지만 그 최고 선수도 국가와 재벌구단이라는 주류들의 갑질에는 언제나 외로운 '을'이었다.

오는 14일이 되면 최동원 선수가 팬들 곁을 떠난지 5년이 된다. 800만 관중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는 하지만 도박파문, 음주운전, 승부조작 등 툭하면 터져나오는 추문들로 한국 프로야구는 예전의 정정당당하고 다이내믹한 모습을 보기 힘들다.

선수시절 금테안경을 끼고 당당하게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고, 선수협 결성을 주도하다 구단에 밉보여 트레이드 당하며 조용히 은퇴했지만 은퇴 후 밝은 모습으로 팬들과 함께 하던 최동원. 오늘 문득 그 당당했던 '부산사나이' 최동원이 그립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최동원 9월 14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살아가는 이야기에 행복과 미소가 담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대구에 사는 시민기자입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