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반전 추가 시간이 무려 8분 55초까지 늘어졌다. 예상했던 것처럼 시리아는 승점 1점 획득이 지상 목표였던 것이다. 크리스토퍼 비트(호주) 주심의 종료 휘슬이 울리자 시리아 벤치는 극장골을 넣어 극적으로 이긴 팀처럼 기뻐했다.

동시에 한국 선수들의 표정은 일그러지고 말았다. 중국과의 1차전은 홈에서 이겼는데 진 기분이 들었고, 시리아와의 2차전은 비겼는데 역시 진 기분이 또 들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끌고 있는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이 6일 오후 9시 말레이시아 세렘방에 있는 투안쿠 압둘 라흐만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 A조 2차전 시리아와의 원정 경기에서 득점 없이 비기고 말았다.

시리아 골키퍼 이브라힘 알마의 침대축구 쇼

 6일 오후(현지시간) 말레이시아 세렘반 파로이 투안쿠 압둘 라흐만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시리아 대 대한민국 2차전. 대한민국 이청용이 슛이 안들어가자 아쉬워하고 있다.

6일 오후(현지시간) 말레이시아 세렘반 파로이 투안쿠 압둘 라흐만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시리아 대 대한민국 2차전. 대한민국 이청용이 슛이 안들어가자 아쉬워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결과적으로 가장 속상한 것은 한국 선수들일 것이다. 시리아 선수들의 시간 지연 행위를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이 정도로 노골적일 줄은 몰랐다. 그 중심에 서 있는 골키퍼 이브라힘 알마는 가장 고성능 침대를 펼치고 드러누웠다.

경기 시작 후 7분 만에 한국은 선취골 기회를 잡았다. 시리아 수비수 몸에 맞고 굴절된 공이 공격형 미드필더 구자철 앞으로 굴러온 것이다. 여기서 구자철이 오른발 끝을 뻗으며 밀어넣기를 시도했다. 하지만 각도를 줄이며 달려나온 시리아 골키퍼 이브라힘 알마가 다리로 그 슛을 막아냈다.

하지만 시리아의 노골적인 침대축구가 그 순간부터 시작됐다. 필드 플레이어도 아닌 골키퍼가 허벅지 근육 경련을 일으켜 드러누운 것이다. 습도가 높은 날씨에 준비운동이 부족했거니 하고 넘길 수 있는 장면이었지만 이브라힘 알마 골키퍼는 후반전에 기회만 되면 쓰러져 일어나지 않고 의료진을 불렀다.

54분에도 한국의 선취골 기회가 찾아왔다. 오른쪽 풀백 이용이 내준 공을 받은 공격형 미드필더 이청용이 회심의 오른발 강슛을 날렸다. 하지만 이 공도 시리아 골키퍼 이브라힘 알마가 왼쪽으로 몸을 날리며 기막히게 쳐냈다. 충분히 박수받을 수 있는 슈퍼 세이브였다. 하지만 곧바로 이브라힘 알마는 그라운드 위를 뒹굴었다. 재빠른 동작으로 골키퍼 글러브까지 벗어던지고 손가락 부상을 알렸다.

이청용의 오른발 슛이 그만큼 강했지만 누가 봐도 엄살이 심해 보였다. 다리 근육 경련을 일으켜 세 번이나 쓰러졌고, 이청용의 슛을 막다가 왼손을 다쳤다고 한 번 쓰러졌다. 그리고 높은 공을 쳐내기 위해 가벼운 접촉이 있었다고 해서 또 한 번 뒹굴었다. 한번은 축구화 끈이 풀어졌다고 해서 글러브까지 벗어던지고 다시 잡아매느라 시간이 흘렀다. 그래서 후반전 추가 시간이 공식적으로 6분이 이어진 것도 모자라 주심 재량으로 3분 정도가 더 주어졌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시리아가 이 경기로 얻어낸 1점 때문에 월드컵 본선에 나가는 것으로 착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처럼 얼굴 화끈거리는 여러 장면을 지켜본 한국 축구팬들도 화가 머리 끝까지 났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 선수들은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이는 고스란히 골 결정력 부족이라는 고질병으로 드러났다. 측면에서 올라오는 크로스가 부정확했고 공간을 열어주는 침투 패스도 정확성이 조금씩 모자랐다.

그렇기 때문에 승점 1점에 그친 이 경기 결과를 두고 시리아의 침대축구만을 탓해서는 곤란하다. 선수들이나 코칭 스태프 모두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결과를 받아들었지만 기술면이나 조직력 면에서 더욱 세밀하게 준비하지 못한 것을 먼저 탓해야 할 것이다. 최종 예선 A조 일정이 앞으로도 8경기나 더 남아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리그 일정 초반에 침대축구의 뼈아픈 교훈을 얻고 돌아오는 것을 고맙게 받아들여야 할 판이다.

승점 1점이라도 얻었으니 다행

시리아는 키다리 골잡이 모흐타디를 제외하고 필드 플레이어 9명이 끈질긴 수비벽을 세웠다. 공격형 미드필더 알 마와스와 주장 완장을 차고 나온 알 후세인이 역습 과정에서 날카로운 몸놀림을 보여주었지만 골키퍼 이브라힘 알마가 주연 배우가 되어 실점 없이 시간을 흘러보내는 것에 더 치중했다.

리그 초반 2연승을 거두며 비교적 여유 있게 선두 자리에 올라서고 싶었던 슈틸리케호는 전반전 구자철의 유효 슛(7분), 후반전 이청용의 유효 슛(54분)을 터뜨리며 득점 기회를 잡았지만 실제 결과물은 하나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시리아가 공격을 아예 포기한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알 마와스의 오른발 중거리슛(18분)은 한국 골키퍼 김승규가 왼쪽으로 날아올라 쳐내야 할 정도로 위력적이었고, 키다리 골잡이 모흐타디의 헤더 슛(78분)도 아찔했다. 김승규가 침착하게 왼쪽으로 몸을 날려 잡아내지 못했다면 침대축구를 펼친 시리아가 승점 3점을 몽땅 가져갈 수도 있었다.

여기서 한국 선수들은 시리아의 침대축구만 조목조목 따지며 억울하다고 하소연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기술적으로 더 완벽하게 준비하지 못한 것을 치열하게 반성해야 한다. 앞으로 만나게 될 카타르, 이란, 우즈베키스탄 선수들이 이보다 더 교묘하게 시간을 끌기도 할 것이며 신경전을 펼쳐 엉뚱한 징계(옐로 카드, 레드 카드, 출장 정지 처분)를 유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축구장 최악의 장면들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선수 개인의 평정심 유지는 물론 기술적으로 더 완벽한 준비와 팀 플레이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조직력을 갖추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6일 오후(현지시간) 말레이시아 세렘반 파로이 투안쿠 압둘 라흐만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시리아 대 대한민국 2차전. 대한민국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고개를 숙인 채 경기장을 걷고 있다.

6일 오후(현지시간) 말레이시아 세렘반 파로이 투안쿠 압둘 라흐만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시리아 대 대한민국 2차전. 대한민국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고개를 숙인 채 경기장을 걷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은 전후반 각각 한 차례의 유효 슛 기회 말고도 아쉬운 공격 장면이 더 있었다. 27분 세트 피스 기회에서 공격에 가담한 수비수 김영권은 자신을 밀어내는 시리아 수비수 없이 혼자서 떠올랐지만 헤더 슛을 크로스바 위로 넘겼다. 35분에는 구자철의 멋진 패스를 받은 기성용이 오른발 대각선 슛을 날렸지만 시리아 골문 오른쪽 옆 그물에 걸리고 말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후반전 중반에 황희찬(67분)과 권창훈(75분)을 차례로 들여보내며 발걸음이 느려진 시리아 수비수 흔들기를 주문했지만 그들이 뜻대로 끌려다니지 않았다. 황희찬과 권창훈은 리우 올림픽에서 좋은 연계 플레이를 보여줬지만 이 중요한 흐름에서는 자신의 장점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다.

황희찬의 스피드를 활용한 역습 전술이 마음대로 먹히지 않았고 권창훈의 패스는 조금 더 세밀함이 필요했다. 중앙 공격이 답답할 것을 예상하고 준비한 측면 공격도 시원하게 뚫리지는 않았다. 크로스 타이밍이 막힐 경우 창의적인 플랜 B가 필요했지만 시리아 수비수들이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 정도로 방향 전환이 느렸다.

그리고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의 대체 자원으로 데려간 성남 FC 간판 골잡이 황의조를 교체 카드가 1장 남아 있는 상황에서 끝내 들여보내지 않은 것도 이해하기 힘든 경기 운영이었다. 당장 1골이 아쉬운 상황에서 상대 수비수들을 끌고 다니며 공간을 확보할 줄 아는 황의조를 쓰지 않은 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또한 오재석이 뛴 왼쪽 풀백 자리는 슈틸리케호의 구멍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아찔한 순간을 경험했다. 전반전 종료 직전 시리아의 역습 패스가 오재석 쪽으로 날아왔다. 하지만 오재석은 공 흐름을 차단하지 못하자 노골적으로 손을 써서 시리아 미드필더 알 마와스를 넘어뜨렸다. 그 순간 그리스토퍼 비트 주심이 노란 딱지를 꺼내들었지만 그들의 결정적인 역습 흐름과 반칙의 고의성을 감안하면 단번에 빨간 딱지를 받고 쫓겨나도 할 말 없는 장면이었다.

결국 오재석은 중국과의 1차전에 이어 이번에도 경고를 받았으니 다음 경기에 나설 수 없게 되었다. 슈틸리케호의 가장 큰 구멍이 바로 그곳이었다.

큰 교훈을 안고 돌아오는 슈틸리케호의 최종 예선 3차전은 다음 달 6일 오후 8시 수원 빅 버드에서 열린다. 그 상대는 카타르이기 때문에 또 다른 침대 축구를 예상하고 더 지혜롭게 대비해야 한다. 더 큰 무대에 오르고 싶은 팀이라면 이 정도의 침대축구 앞에서 시원한 골을 터뜨리며 뒤통수를 때려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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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2차전 결과(6일 오후 9시, 말레이시아 세렘방)

★ 시리아 0-0 한국

◎ 한국 선수들
FW : 지동원
AMF : 이청용, 구자철(75분↔권창훈), 이재성(67분↔황희찬)
DMF : 한국영, 기성용
DF : 오재석, 김영권, 장현수, 이용
GK : 김승규
- 경고 : 김영권(4분), 오재석(45+1분), 한국영(71분)

◇ A조 현재 순위표
이란 4점 1승 1무 2득점 0실점 +2
한국 4점 1승 1무 3득점 2실점 +1
우즈베키스탄 3점 1승 1득점 0실점 +1
중국 1점 1무 1패 2득점 3실점 -1
시리아 1점 1무 1패 0득점 1실점 -1
카타르 0점 1패 0득점 2실점 -2

◇ 한국 선수들의 경고 누적 기록
오재석 2회
장현수 1회, 김영권 1회, 한국영 1회
축구 월드컵 슈틸리케 침대축구 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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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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