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 올림픽 한국-네덜란드전에서 김연경이 공격을 시도하고 있다.

리우 올림픽 한국-네덜란드전에서 김연경이 공격을 시도하고 있다. ⓒ 국제배구연맹(FIVB)


"이런 식이면 앞으로 누가 국가대표 감독과 선수를 하려고 할까요."
"모처럼 사재 출연을 공약한 신임 회장이 취임도 하기 전에 그만둔다고 할까 걱정입니다."

배구인의 한숨이 깊어 간다. 리우 올림픽은 막을 내렸지만, 여자배구 대표팀과 배구협회는 언론과 네티즌의 융단폭격에 가까운 비난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지난 16일 네덜란드에 패하면서 40년 만의 올림픽 메달 꿈이 죄절된 것이 발단이었다. 경기가 끝난 직후 특정 선수와 감독에 대한 집중 포화가 쏟아졌다. 시간이 지나자 표적은 대한민국배구협회(아래 협회)로 옮겨졌다.

비판이나 비난이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문제는 도가 지나치고, 본질이 아닌 문제를 과도하게 부각하면서 마녀사냥식 희생양 만들기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는 점이다. 돌아가면서 어느 한 대상만을 집중적으로 비난하고, 사실관계를 확인도 않고 추측성 단정으로 비난 거리를 창조해내는가 하면, 책임져야 할 당사자가 아님에도 싸잡아 인신공격성 비난을 퍼붓기도 한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고, 목욕물 버리려다 아기까지 버리는 건 아닌지 우려되고 있다.

8강 진출, 칭찬받아 마땅... 네덜란드전 패배도 '실력'

리우 올림픽 이후 벌어진 논란들을 자세히 되짚어 보기로 했다. 관점과 의견은 각자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생각을 말할 자유와 그것을 존중할 수 있을 때 보다 나은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한국 여자배구가 4강 진출에 실패한 것부터 비난 받을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8강까지 오른 것은 부끄럽지 않은 성과다. 올림픽 공동 5위 자격을 얻으면서 세계랭킹 점수도 두둑하게 받게 됐다. 이 점수는 4년 동안 유지되기 때문에 2020년 도쿄 올림픽 세계예선전 출전권을 획득하는 데 커다란 발판이 된다.

리우 올림픽에서 여자배구는 배구 역사상 가장 큰 국민적 관심을 받았다. 지상파 방송 3사는 한국 팀의 전 경기를 동시 생중계했다. 전 경기 3사 합계 평균시청률도 20%(닐슨코리아)에 달했다.

경기 내용도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국이 네덜란드에 패한 것은 결국 실력 부족 때문이다. 여기서 실력은 선수 개개인의 객관적인 실력뿐만 아니라 감독의 전략, 당일 컨디션과 멘탈, 운, 협회의 지원, 이 모든 것이 합쳐진 것이다.

선수들의 실력 면에서 한국은 네덜란드에 확실한 우위를 보이지 못했다. 경기력에서도 올림픽 세계예선전 완승 때와 정반대가 되었다. 김연경을 제외하고, 국내파 선수들이 이전 경기들보다 컨디션과 몸놀림이 좋지 못했다. 엄청난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감독은 리시브에서 흔들린 선수를 다른 선수로 교체해 봤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운도 실력이라는 말이 있다. 하필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경기력이 가장 안 좋았다. 선수들이 기계가 아닌 이상 전체적으로 경기가 안 풀리는 날이 있기 마련이다. 그 날이 8강전이 아니길 바랐지만 피해가지 못했다. 다른 선수도 못했으니 똑같이 비난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특정 선수나 감독 한 명만을 끄집어내 집중 비난하는 것이 온당하지 않음을 말하고자 함이다.

협회 부실 지원, 결국은 '돈' 때문

협회의 부실한 지원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4강 진출 실패의 원인이 협회의 지원 부족이 전부인 것처럼 몰아가는 건 본질을 흐리거나 또 다른 책임 회피가 될 수 있다.

협회의 지원만을 잣대로 이야기를 하면, 훨씬 더 열악했다고 비팓 받았던 런던 올림픽 때의 4강 기적을 설명할 수 없다. 협회의 지원 부분에서 단연 금메달감이었던 일본은 한국에도 패했고, 8강에서 더 맥없이 주저앉았다.

협회를 두둔하려는 게 아니다. 왜 협회의 지원이 부실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제대로 따지고, 책임자를 명확히 구분해서 잘못이 없는 사람까지 매도를 해선 안된다. 그래야 올바른 방향과 해결책을 세울 수 있다.

부실 지원은 뭐니 뭐니 해도 '돈' 때문이다. 의지가 없어서도 아니고, 방법을 몰라서도 아니다. 때문에 왜 재정을 튼튼하게 만들지 못했느냐고 질책한다면, 그 책임은 마땅히 협회에게 있다.

문제는 협회가 원래부터 가난한 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전임 회장과 전 집행부의 실책 때문에 재정을 탕진한 결과라는 점에서 배구인들의 분노를 사고 있는 것이다. 2005년 8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이어진 정치인 회장 시절이 발단이었다. 자기 돈 한 푼 출연금으로 내지 않은 정치인 출신 인사가 집권여당의 힘만 믿고 협회를 이끌어가면서 재정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재정 탕진 초래한 전임 배구협회 집행부

 대한민국배구협회 배구회관 건물

대한민국배구협회 배구회관 건물 ⓒ 박진철


특히 지난 2009년 무리하게 배구회관 건물을 매입한 것이 결정타였다. 수십 년 동안 알뜰살뜰 모아 놓은 배구발전기금 70억 원을 털어넣은 것도 모자라 113억 원의 은행 빚까지 얻어서, 당시 감정가보다 32억 원이나 비싸게 매입을 한 것이다. 결국 매입 과정에서 브로커인 친형을 통해 중개수수료 명목으로 1억32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부회장 1명은 올해 대법원으로부터 실형을 선고 받았다.

현재 시세대로 매각을 해도 매입 당시 협회가 지불했던 금액에서 33억 원은 고스란히 손실을 봐야 하는 상황이다. 겨울 리그 운영권을 프로배구를 주관하는 한국배구연맹(KOVO)에 넘겨준 상태에서 수십 억 원의 배구발전기금까지 건물에 꽁꽁 묶여 있으니 재정을 확충할 방도가 없게 된 것이다.

현 집행부는 전 집행부가 탕진해버린 재정과 적폐들을 그대로 물려받은 상태에서 지난 1년여 동안 사실상 비상대책위원회의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대표팀을 스피드 배구로 혁신하기 위해 노력했고, 없는 살림에 올림픽 세계예선전 때부터 여자배구 대표팀 지원에도 애를 썼다. 이정철 감독과 김연경 선수도 현 집행부의 그런 노력에 대해 언론 인터뷰에서 감사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9일 새 회장 선거를 끝으로 전임 집행부의 임기가 종료된 상황이다. 그런 와중에 네덜란드전 패배 이후 비난의 표적이 돼버렸다.

취임식도 하지 않은 신임 회장을 향한 인신공격

문제는 앞으로다. 협회가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서는 회장부터 사재 출연금 등을 내놓고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것을 시발점으로 혁신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차근차근 실천해 가야 한다.

37대 회장 선거와 38대 회장 선거가 극명한 차이를 보였던 것도 그 때문이다. 2014년 12월과 2015년 2월에 치러진 제37대 회장 선거는 후보가 단독으로 출마를 했음에도 과반수 득표를 얻지 못해 두 번 연속 부결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후보자들이 재정 능력 부분에서 배구인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고, 당시 집행부와 가깝다는 의혹을 샀기 때문이다.

지난 9일 치러진 제38대 회장 선거는 이전 선거와 양상이 크게 달랐다. 대의원 구성부터 배구계 전체를 대변할 수 있도록 참여의 폭을 크게 확대했다. 그럼에도 100%에 가까운 투표율을 기록했다.

다양한 의견과 처지를 대변하는 배구계의 각 세력이 모두 자신들을 대변할 후보를 출마시킨 데다, 후보자들도 사재 출연 등 재정 확충에 대해 의욕적으로 공약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새 회장에 대한 배구계 전체의 관심과 기대감이 높았던 것이다.

과반수에 가까운 득표로 당선된 서병문 신임 회장은 1960년대에 영광고등학교와 경희대에서 배구 선수로 활동했다. 이후 중견기업의 CEO로 변신해 경영 능력을 인정 받으면서 경제 4단체 중 하나인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과 수석부회장직을 14년 간 역임했다. 배구협회에 발을 담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현 재정난과 적폐와는 관련이 없는 인사이다. 더군다나 아직 취임식도 하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서 회장도 네덜란드전 패배 이후 네티즌으로부터 융단폭격을 맞았다. 선수단이 귀국하는 공항에 마중 나갔다가 "무슨 낯짝으로 갔느냐"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일부는 인신공격성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이번에는 회식도 없었다?... 귀국 후 회식 예정돼 있었다

비난은 사실관계를 확인도 하지 않고 매도에 가까운 양상으로도 이어졌다. 23일 또 다시 서 회장과 현 집행부는 네티즌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들어야 했다. "이번 리우 올림픽에는 회식도 안 시켜줬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이정철 대표팀 감독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23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경기 끝나자마자 귀국 항공편을 알아보고 바로 다음날부터 귀국이 시작되는데, 지카 바이러스와 치안 문제로 선수촌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사고의 위험성이 큰 상황에서 무슨 회식을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회식을 하더라고 귀국해서 안전하고 편안한 상태에서 회포를 푸는 게 옳은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 감독의 말을 듣고 협회 관계자에 회식 계획 여부를 물었다. 이 관계자는 "이미 회식 날짜와 장소까지 예약을 마친 상태"라며 "서병문 신임 회장이 사비로 마련한 자리"라고 말했다.

해당 음식점 등에 확인한 결과, 네덜란드전이 끝나고 대표팀의 조기 귀국이 결정된 지난 17일 날짜로 서울에 있는 고급 음식점에 리우 올림픽 여자배구 선수단 회식 예약이 잡혀 있었다. 선수단은 25일 오후 회식 겸 해단식을 했다. 회식 논란이 발생하기 훨씬 전에 회식 일정이 정해져 있었다는 뜻이다.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쏟아낸 비난 때문에 서 회장은 졸지에 '회식도 안 시켜준 매정한 회장'이 돼버렸다.

서 회장은 자신의 공약대로 매년 수 억 원의 사재 출연금을 협회에 낼 계획을 갖고 있다. 그런데 취임도 하기 전에 자신과 아무 관련이 없는 일까지 덤터기를 쓰고, 인신공격성 비난까지 받으면서 큰 상처를 입었다.

이정철 감독 "비난 감수하겠지만..."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이 16일 오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지뉴 경기장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여자배구 8강전 네덜란드와 경기에서 세트스코어 1-3으로 패해 4강진출이 좌절됐다. 김연경이 경기가 끝난 뒤 김해란을 끌어안고 있다.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이 16일 오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지뉴 경기장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여자배구 8강전 네덜란드와 경기에서 세트스코어 1-3으로 패해 4강진출이 좌절됐다. 김연경이 경기가 끝난 뒤 김해란을 끌어안고 있다. ⓒ 연합뉴스


이정철 감독은 23일 전화통화에서 리우 올림픽 이후 논란과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는 사안들에 대해서 긴 시간을 할애해 설명을 했다. 그러면서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사안 중에는 사실관계가 다르거나 과도한 비난도 있다고 토로했다.

특히 대표팀 선수들이 따로따로 귀국하는 문제로 협회가 맹비난을 받은 부분에 대해 "현지 상황에 따른 불가피한 결정이지 협회의 잘못이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네덜란드전이 끝난 이후 대한체육회 전세기를 타고 귀국하려면 일주일이나 기다려야 했다"면서 "지카 바이러스와 치안 문제 때문에 선수촌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내가 귀국 항공편을 빨리 알아보라고 지시를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8강전 탈락 직후 급하게 구하다 보니 대표팀 전원이 탑승할 수 있는 항공편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8강에서 떨어질 걸 예상해서 미리 표를 끊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배구도 핸드볼과 마찬가지로 4개 조로 나뉘어서 귀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그 항공편도 아주 어렵게 확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역 문제에 대해서도 "(김)연경이가 순간 순간 통역을 한 것은 맞다. 그렇지만 전부 통역을 한 게 아니다"라며 "한국에서 별도로 통역을 데리고 갔다 해도 AD카드가 없기 때문에 경기장 내에서 통역 임무를 수행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팀 닥터 문제는 협회가 다음 올림픽에서는 반드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감독이나 협회는 대표팀의 총괄 책임자이기 때문에 메달 획득 실패라는 결과에 대해서 책임감을 가져야 하고, 비판을 받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라며 다만  "배구 발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그 에너지가 모아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배구계 전체의 과제... KOVO·프로구단 예외 아니다

한국 배구의 국제경쟁력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당사자가 대표팀 감독과 선수, 그리고 협회만 있는 것도 아니다. 배구계 전체가 자신의 위치에서 냉정하게 돌아보고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개선해야 할 점은 개선하면서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프로배구연맹(KOVO)과 프로 구단들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특히 네덜란드전에서 가장 큰 패인으로 지적된  레프트 공격수의 리시브 불안과 라이트 공격수의 결정력 부족은 KOVO와 프로 구단들에게 더 근원적인 책임이 있다.

프로 팀이나 학교 팀에서 공격을 잘하는 선수에게는 리시브와 수비를 거의 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어린 선수에게까지 공격에 집중하라고 아예 수비를 면제시키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 대신 또 다른 레프트 한 명은 수비형 레프트라는 이름으로 공격은 거의 하지 않고 리시브와 수비에만 치중한다. 여기에는 외국인 선수 위주로 돌아가는 프로배구 V리그의 풍토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트라이아웃(공개 선발 드래프트) 이상의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과연 프로 구단들은 도쿄 올림픽 메달을 위해 일부 프로 선수와 장신의 어린 유망주들을 과감하게 해외 리그로 진출시켜 줄 용의는 있는가. 유망주 발굴과 육성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프로 구단의 연고제와 클럽 시스템을 하루라도 빨리 도입할 수는 없는가. 이런 고민과 논쟁들이야말로 올림픽 메달로 가는 훨씬 중요하고 본질적인 부분이다.

그러나 비난을 위한 희생양 찾기에 몰두하는 사이, 본질적인 문제들은 공론의 장에 오르지도 못하고 더 수면 아래로 잠복해 버리는 결과를 낳고 있다.

어떤 경우이든, 대상자가 누구이든 사실관계가 다른 내용까지 동원해서 과도한 비난을 퍼붓는 건 온당한 일이 아니다. 그것이 용인된다면, 다음 국제대회에서 또 다른 대상자가 그 희생양이 될 것이다. 이는 감독, 선수, 배구 관계자 모두의 의욕 상실로 이어진다. 그것이 배구 발전에 도움이 될지 독이 될지는 긴 설명을 요하지 않는다. 비난만으로는 창조를 이끌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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