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 21일부터 2011년 11월 6일까지 KBS Cool FM에서 방송된 <라디오 천국>

2008년 4월 21일부터 2011년 11월 6일까지 KBS Cool FM에서 방송된 <라디오 천국> ⓒ KBS


"라디오천국에 오셨습니다."

분명히 기억하건대,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첫 방송, 첫 곡은 '라디오 천국'이었다. 100회를 맞이하며 'The Musician'이라는 주제를 특집으로 꾸민, 방송의 첫 곡도 역시 '라디오 천국'이었다. '라디오천국'은 그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의 이름이기도 하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라디오 천국'은 <FM 음악도시>의 3부 시그널 음악이기도 했다. 그는 99년, '익숙한 그 집 앞'이라는 제목의 첫 번째 소품집에서 이 시그널음악을 하나의 곡으로 완성했다. 그가 그토록 오래 또 많이 언급하던 팻 매스니(Pat Metheny)에 대한 오마주였다. 팻 매스니를 이야기하고 조동익을 이야기하던 그의 목소리가 마치 가로등 불빛처럼 방을 채우곤 했다.

그리고 유희열은 라디오를 하차했다. 4년 반 전 일이다. <스케치북>과 <라디오천국> 중 하나를 선택하는 기로에 있었다고 말했다. 다음 앨범을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해, 라고 말하고는 눈물을 보였다. 그렇게 유희열은 <라디오천국> 마지막 방송을 했다. 2014년 11월 발매된, 토이의 7집 앨범의 '우리'라는 곡은 그 날, 그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떠올리게 했다. 라디오를 듣는 기분이다. 그래서인지 말하듯 들린다.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머문다.

종종 드라이브를 즐기곤 할 때, 무슨 멋에 들렸는지 집에 오는 길목에서 항상 같은 곡을 듣곤 했다. 몬도 그로소(Mondo Grosso)의 '1974 way home'이라는 연주곡이었다. <라디오천국>에서는 '그녀가 말했다'라는 코너에 이 곡이 사용됐다. 목소리가 없이 멜로디만 흐르는 곡은 어색했지만, 그런대로 차창 밖을 스치는 가로등,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풍경들과 어울렸다.

7년 만에 다시 찾아온 '토이'

 TOY 7집 < DA capo >. 유희열은 변했을까. 어쩌면 그만큼 나도 변했다.

TOY 7집 < DA capo >. 유희열은 변했을까. 어쩌면 그만큼 나도 변했다. ⓒ 안테나뮤직


맥심 CF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면서 선 공개된 곡의 제목은 '그녀가 말했다'였다. 오래전, 이른바 '토이 감성'이라고 불리는 느낌이 가득해서 벅찼다. 그리고 2년 전인 2014년 11월 18일 12시 자정, 라디오 천국의 시그널 음악이 흐르던 그 시간에 토이 7집이 공개됐다. 라디오에서 하차한 지 3년 만에 그리고 6집이 발매된 지 7년 만의 일이었다. 술에 취한 채, 집으로 오는 버스 안, 7년 만에 그를 만났다. 다시는 못 볼 것만 같던.

조금 낯설기도 했다. 피아노 멜로디 대신 전자음이 먼저 들렸다. 더불어 CD를 구매하는 일도 낯설어졌다. 꽤나 오랜만이다. 선반에 놓인 음반들을 위로는 먼지가 소복이 쌓였다. 음반 매장에서 음악을 듣고, 앨범을 사던 일은 옛일이 되어버렸다. 변해버린 환경을 탓하기에는 내가 더 변했다.

혹자는 토이가, 유희열이 변했다고 평하기도 했다.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분명 그리워하던 음악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완성도와 별개로, 조금 아쉽기는 했다. 그러고 보면 <음악도시>, <All that music>, <라디오천국> 그리고 토이 7집, 다시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지지지직' 하는 소리 넘어, 목소리를 찾아 주파수를 맞추던 밤 12시는 휴대폰의 애플리케이션으로 대체됐다.

중학교 3학년, 익숙한 그 집 앞, 벤치에 앉아 이어폰을 나눠 끼고 함께 '거짓말 같은 시간'을 듣던 그 친구는 얼마 전, 시집을 갔다. 그 날, 손에 들려있던, 토이의 라이브앨범은 표지가 너덜너덜해졌다. 시간은 무덤덤하지만 감출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딱 그동안, 옆을 지켜주던, 그들과 함께 나도 변했다.

그래서일까 안테나뮤직 워리어즈의 콘서트 제목이던, 유희열이 무한도전에서 부르던 곡, 그리고 앨범 <DA capo>의 재킷 마지막 장의 문구. '그래, 우리 함께'라는 이 세 단어는 손글씨로 옮겨 쓸 때마다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해야만 했다. 아무튼, 이적은 조금 부드러워졌다. JP는 나긋나긋해졌고, 정순용은 맑아졌다, 윤종신은 꾸준해졌고, 윤상은 친근해졌다. 유희열도 단지 그럴 뿐이다.

그리고 마왕은 세상을 떠났다. 취한 밤, 그의 말처럼 정말이지 시간은 멋대로 흘렀다.

덧붙이는 글 '내가 사랑한 OOO' 응모작입니다.
토이 유희열 라디오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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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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