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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고유종으로 알려진 '금송'은 상록성 바늘잎나무다. 그런데 이러한 금송이 임진왜란 때 왜적과 맞서 싸운 의병들의 위패 앞에 버티고 서 있다.

종용사 뒤편에 있는 '칠백의총'
▲ 칠백의총 종용사 뒤편에 있는 '칠백의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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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금산싸움에서 순절하신 선열들의 영혼을 모신 21위의 위패가 안치돼 있는 종용사
▲ 종용사 임진왜란 당시 금산싸움에서 순절하신 선열들의 영혼을 모신 21위의 위패가 안치돼 있는 종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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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을 하루 앞둔 지난 14일에 충남 금산에 있는 칠백의총을 찾았다. 금송은 임진왜란 때 금산싸움에서 전사한 선열들의 영혼을 모신, 21위(位)의 위패가 안치된 칠백의총 경내 종용사 앞에 있었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심었다고 하는 금송
▲ 금송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심었다고 하는 금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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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금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심었다. 표지석에는 '이 나무는 박정희 대통령각하께서 청와대 집무실 앞에 심어 아끼시던 금송(錦松)으로서 칠백의총 경내를 더욱 빛내기 위해 손수 옮겨 심으신 것입니다 1971. 4. 13.'이라고 적혀 있었다.

물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본산인 금송을 왜적과 맞서 싸운 의병들을 기리고자 만든 칠백의총에 일부로 옮겨 심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일본 원산지인 금송이 이곳에 떡하니 서 있다는 것은 참으로 어색해 보인다.

 금송 앞에 있는 표지석
▲ 표지석 금송 앞에 있는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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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백의총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조헌 선생과 의승장 영규 대사가 이끄는 700여 명 의병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곳이다.

나무는 나무로만 봐야 한다고 하는 이들도 있고, 이미 오래전에 심은 나무이기에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금송은 일본 왕실에 심는 나무라고 한다. 단순한 나무로만 여기기에는 상징성이 강하다. 이러한 나무가 왜적과 맞서 싸운 의병 위패 앞에 심어져 있다는 것은 선조들 앞에 죄스러울 따름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2011년에도 금송 관련 논란이 일었다. 당시 '문화재제자리찾기 운동'은 이순신 장군의 사당이 있는 충남 아산 현충사에 금송이 식수된 것은 맞지 않다며 문화재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문화재위원회는 "금송이 외래종인 것은 맞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0년 식수한 나무로 시대성과 역사성이 있는 만큼 이전할 수 없다"고 밝혔고, 법원은 문화재위원회의 손을 들어줬다.

종용사를 정면으로 왼쪽에 금송이 있다. 사진은 금송 뒤에서 바라본 종용사의 모습
▲ 금송과 종용사 종용사를 정면으로 왼쪽에 금송이 있다. 사진은 금송 뒤에서 바라본 종용사의 모습
ⓒ 오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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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백의총 종용사 앞에 있는 금송을 없애기 힘들다면, 의총 경내 밖으로 옮겨 놓는 것은 어떨까 싶다. 또한 국립 현충원에 있는 금송도 처리할 방법을 찾았으면 한다. 목숨을 걸고 일본과 맞서 싸운 선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익산시민뉴스에 보도됐습니다.



태그:#칠백의총, #칠백의총 금송, #금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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