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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 '흙수저' 가족의 제주국제학교 입학기

아이를 국제학교에 보낸 또 다른 가족의 이야기는 좀 더 현실적이다. 40대 초반 C씨는 대기업에 재직 중이며, C씨의 남편은 중소기업에 재직 중이다. 결혼시기가 조금 늦었던 부부는 내년 초등학교에 입학할 아이를 위해 일찌감치 제주 영어교육도시 내 신축빌라를 분양 받아놓고 국제학교 입학준비에 한창이다. 분양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부부는 서울의 아파트를 매매하고 현재 집에서는 월세로 살고 있다.

"서울 집을 팔고 영어교육도시에 집을 분양받을 때만 해도 양가 부모님을 포함해 주변에서 다 만류했어요. 굳이 아이를 제주까지 보낼 필요가 있냐고 말이죠. 저희 생각은 조금 달랐어요. 남편이나 저나 현재는 괜찮은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이런 안정적인 상황이 한 달을 갈지 일년을 갈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거든요. 당장 내일이라도 권고 사직을 당할 수 있는 게 대한민국 직장인의 현실이니까요."

국제학교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영어교육도시에 일반분양이 아닌 공공임대 주택까지 건설되고 있다. 현재 해당 주택은 임대가 모두 완료된 상황이다.
 국제학교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영어교육도시에 일반분양이 아닌 공공임대 주택까지 건설되고 있다. 현재 해당 주택은 임대가 모두 완료된 상황이다.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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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에 접어들면서 주변의 능력 있는 선배와 동료들이 타의에 의해 하나 둘 회사를 떠나는 걸 지켜본 C씨 부부는 더 이상 회사가 자신을 지켜주리란 믿음을 완전히 버렸다.

"남편과 아주 오랫동안 상의를 했어요. 이 때문에 부부싸움도 많이 했고요. 그래서 내린 결론은 이제 수명이 다해가는 허울뿐인 직함에, 가진 거라고는 25평 아파트 한 채뿐인 저희 부부가 아이를 대학교에 보내고, 졸업시키고, 취직시키고, 결혼할 때 조금이나 보태주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거예요. 그 때가 되면 저희 나이가 70대예요(웃음). 설사 정말 운이 좋아 아이가 결혼할 때까지 도와줄 수 있는 행운이 찾아온다 해도 저 아이는 우리 세대보다 훨씬 어려운 환경에서 외롭게 싸워야 할 거예요. 그래서 우리 가족은 모험을 걸어보려 해요."

영어교육도시 내 국제학교의 시설은 왠만한 대학 캠퍼스에 못지 않다.
 영어교육도시 내 국제학교의 시설은 왠만한 대학 캠퍼스에 못지 않다.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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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초중반, 서울 강북에 4억 내외의 25평 아파트 보유, 대기업과 중소기업에서 맞벌이, 겉으로 보기에는 행복할 것 같던 이 부부는 왜 모험을 선택한 것일까.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12년 동안 엄청난 사교육비를 견뎌내고, 그때쯤이면 얼마나 올라있을지 상상도 안 되는 대학 등록금을 또 4년간 감당하더라도 졸업 후 안정적인 직장에 취직하리란 기대감이 별로 없어요. 설사 취직을 한다 해도 지금보다 고용안정성이 나아졌으리란 보장도 없고요.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우리가 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단 하나의 무기는 캐나다 본교와 동일한 학력을 인정해주는 국제학교 졸업장이라고 생각해요.

그 졸업장을 발판 삼아 국내가 아닌 외국 대학을 졸업하고 외국 회사에 취직하는 게 유일한 탈출구라고 봐요. 국제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캐나다에 이민 가 살고 있는 언니에게 아이를 보낼 생각이에요. 그때 우리 부부에게 경제적 능력이 부족하다면 대학등록금 문제로 좌절하게 될 수도 있죠. 등록금 문제는 국내에 있든 외국에 나가든 마찬가지니 어쩔 수 없어요. 어쨌든 이 쪽이 더 생존 확률이 높은 게임이라고 생각해요."

이 부부는 국제학교의 학비를 감당하기 위해 보다 구체적인 계획까지 짜놓은 상태였다.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는 내년에는 권고사직이든 명예퇴직이든 저희 부부 중 퇴직금이 더 많은 쪽이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와 제주에 내려가 학교에 보낼 거예요. 서울에 남은 사람은 정말 죄송스럽게도 부모님 댁에 신세를 지면서 버는 돈 대부분을 제주로 보낼 거고요. 제주로 내려간 사람도 아르바이트든 자영업이든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겠죠.

졸업 때까지 부족한 돈은 서울 아파트를 팔고 제주 빌라를 분양 받으면서 남은 차액과 퇴직금으로 버텨보려 해요. 남들에게는 무모한 행동으로 비쳐질 수도 있겠지만 저희 부부는 알고 있어요. 타고난 금수저가 아닌 이상 대한민국에서 평범하게 졸업하고, 평범하게 취직하고, 평범하게 결혼해봐야 안정적인 삶은 찾아오지 않는다는 걸요. 저희 부부가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아주 잘 알지요."

국가의 교육정책과 일자리 정책에 대해 불신을 갖는 이런 가정이 늘어남에 따라 유학과 이민, 혹은 전국 각지의 국제학교를 통한 해외 진출을 노리는 학생들도 그만큼 증가하고 있다. 예전에는 상류층을 위한 특권으로만 여겨지던 해외유학과 국제학교에 이제는 평범한 중산층까지 도전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런 중산층들이 기존에 누리던 여러가지 혜택을 포기하고, 연봉과 집, 모든 것을 다운사이징하고, 그것도 모자라 가진 돈을 모두 털어 넣으면서까지 아이를 해외로 보내려는 것은 결코 남들보다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다. 앞선 C씨의 말처럼 평범하게 살아서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부모들이 깨달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들 스스로가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이니까.

방학시즌을 맞아 인적이 드문 영어교육도시에 안개가 내렸다.
 방학시즌을 맞아 인적이 드문 영어교육도시에 안개가 내렸다.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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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는 백화점이 없다는 걸 아시나요

육지에서 이주해 온, 혹은 여행 온 사람들이 가장 놀라는 것 중 하나가 당연히 있으리라 생각한 백화점이 제주도에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현재 제주에는 해외 관광객을 타깃으로 하는 면세점만 존재할 뿐 백화점은 없다. 통상 백화점 업계에서 인구 50만명을 백화점 설립 기준으로 잡는데, 제주도 인구가 60만을 넘어 70만으로 향해가는 것을 생각하면 쉽사리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휴가인파가 절정으로 치달으며 제주도 내 해수욕장들이 야간개장을 시작했다. 위 함덕서우봉해변, 아래 삼양검은모래해변
 휴가인파가 절정으로 치달으며 제주도 내 해수욕장들이 야간개장을 시작했다. 위 함덕서우봉해변, 아래 삼양검은모래해변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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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도 백화점이 영업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신한백화점과 롯데참피온백화점, 동명백화점 등 중소규모 백화점들이 존재했으나 이들 모두 영업 부진과 부도, 부지확보 실패 등 사유로 모두 영업을 중단한 지 오래다. 이처럼 제주도에서 백화점이 고전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분석이 있으나, 그 중 제주도 사람들의 소비문화에 초점을 맞춘 의견이 힘을 받고 있다.

간단히 얘기하면 대부분의 제주도 사람들이 제품 브랜드에 별로 민감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돈이 많든 적든 식재료는 오일장과 농협, 옷과 공산품은 대형마트에서 구입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 제주도 토착민들의 의견이다.

하지만 이런 소비 성향도 이주민들의 증가와 함께 점점 희석되어가는 듯하다. 급속한 이주민 증가에 부정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는 초등학교 교사 D씨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초등학교 아이들의 학용품과 옷, 간식 등 소비품 대부분이 평준화되어 있었어요. 마트 아니면 오일장에서 구입한 물건이라 판박이처럼 똑같았고, 그 때문에 아이들 간에 위화감이 조성될 일이 거의 없었죠. 그런데 육지에서 넘어온 아이들이 증가하고, 이 아이들이 육지에서 하던 대로 비싼 학용품, 명품 옷 등을 자랑하면서 기존 제주 아이들과의 사이에서 위화감이 조성되는 일이 발생하고 있어요. 아이들을 탓할 문제는 아니에요. 어차피 각자 지내온 환경이 다르고, 어른들에게 배운 대로 행동하는 거니까요."

종달리에 이어 조개잡이 명소로 떠오른 오조리 체험장. 제주 내 다른 해변에서 주로 비단조개가 잡히는 것과 달리 바지락을 채취할 수 있는 곳이다
 종달리에 이어 조개잡이 명소로 떠오른 오조리 체험장. 제주 내 다른 해변에서 주로 비단조개가 잡히는 것과 달리 바지락을 채취할 수 있는 곳이다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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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폭등으로 인한 주민 간 빈부격차의 증가, 이주민 증가로 인한 소비형태의 변화 등으로 인해 제주만의 순수성이 희석되고 조금씩 육지화가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 국제학교와 헬스케어타운 등 외부인들을 유입하기 위한 정책들이 계속됨에 따라 특정지역에서는 토착민과 이주민 사이의 집단 분쟁까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제주도정에서는 인구 70만을 넘어 100만명 시대를 맞이하리란 부푼 기대감을 갖고 지속적인 인구 유입 및 개발정책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외형적인 증가와는 별도로 이런 세세한 문제에 대해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갖는 자세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태그:#제주이주, #국제학교, #영어교육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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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 : 제주, 교통, 전기차, 복지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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