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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다고 무작정 참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까

도시 생활을 힘들어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힘든 일이 있어도, 슬픈 일이 있어도 내색하지 말고 참고 견디라고만 배웠다. 이런 가르침이 각인된 탓에 가족들에게조차 힘들다는 하소연도 못하고 그저 참기만 하다가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는 점이다.
 
서우봉 산책로에서 한참 동안 일몰을 바라보며 생각해본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서우봉 산책로에서 한참 동안 일몰을 바라보며 생각해본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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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묵묵히 참고 견디며 일만 열심히 하면 자신과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었던 시대의 종말이 옴에 따라 '힘들어도 참아라'는 가르침 역시 그 수명을 다했다. 이제 힘들면 무작정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내가 힘든 이유는 무엇인지, 이것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지를 판단하고 현명한 대응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몇몇 선택 받은 이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매일 매일 힘들어 죽겠다고 하소연하고, 이를 억지로 풀어내고(대부분 술이다), 다시 또 죽겠다고 하소연하는 패턴을 되풀이한다. 그러면서 이것이 내 가족을 위한 삶이라고 애써 자위하곤 한다.

애초에 그 힘든 이유를 직시하지 않고 덮어둔 채 알코올로 신경을 마비시킨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또한 그렇게 사는 것이 나와 내 가족을 위한 삶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의 단서조항이 붙는다. 이 힘든 삶의 패턴이 타의에 의해 끊어지지 않고 계속돼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나만 꾹 참고 견디면 회사에서는 절대 해고되지 않는다는, 직장인이 일회용품 취급을 받는 현 구조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전제조건이 붙어야 한다. 9급 공무원 시험에 현직 변호사가 응시하는 촌극이 이래서 벌어지는 것이다.

서울을 떠난 후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묻는다. 잘 지내고 있냐고. 이 질문에는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직장인이 절망적이지만 입에 풀칠은 하게 해주는 도시생활의 끈을 놓았을 때 과연 어떤 일이 생기는 지에 대한 궁금함이 담겨있다.

내가 잘 지내고 있는 건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현실적인 고민과 여기서 비롯되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도시에서나 제주에서나 마찬가지다. 다만 서울에서보다 웃을 일이 많아졌다는 점과 산책을 걷다가, 밥을 먹다가, 잠을 자다가 문득문득 내가 살아있구나 하는 충만감을 느끼곤 한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다.

그래서 나는 제주 이주 후의 삶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한결 같은 답변을 해주곤 한다.

"잡고 있는 그 끈이 놓아도 되는 것인지, 꽉 잡고 있어야 하는 끈인지는 본인만 알 수 있습니다."
 
절물오름 전망대에서 서쪽 표지판을 따라가니 저 멀리서 백록담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절물오름 전망대에서 서쪽 표지판을 따라가니 저 멀리서 백록담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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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학교는 정말 상류층만을 위한 전유물일까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제주도로 이주하는 가정은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뉜다.

첫 번째 그룹은 아이들을 한적한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어 놀게 하고 싶어 제주를 선택한 이들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제주 초등학교의 교육환경과 커리큘럼이 웬만한 도시 학교보다 낫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아이들의 초등학교 시절을 제주에서 보내게 하려는 가정이 점점 더 늘고 있다.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워킹맘 A씨는 큰 아이를 서울 사립 초등학교에서 가르치고 둘째 아이는 제주 초등학교에서 가르친 독특한 케이스다.

"첫째 아이가 다닌 초등학교는 등록금이 웬만한 대학만큼 비싼 곳이었어요. 저희가 특별히 여유 있는 형편은 아니었지만 부부가 맞벌이를 하다 보니 힘들게나마 버티는 게 가능했죠. 그러다가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 남편이 제주로 발령을 받아 내려오게 됐어요. 저는 자의 반, 타의 반 쉬게 되었고요. 

첫째 아이가 서울에서 사립학교를 다니면서 영어몰입교육 때문에 힘들어하는 걸 보고 '둘째 아이는 좀 편하게 놔두자'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그냥 집 앞에 있는 공립학교를 보냈어요.

결론만 말하자면 서울 사립초등학교를 다닌 첫째와 제주에서 공립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둘째가 누리는 교육적 혜택은 별다른 차이가 안 나는 것 같아요. 일단 학생수가 적어 교육 몰입도도 높고 현지인 선생님이 담당하는 영어교육도 훌륭해요. 

바이올린이나 클라리넷, 골프나 수상스포츠까지 방과 후 예체능 프로그램의 종류도 다양하고 비용도 5만 원 내외로 저렴하죠. 수업이 끝난 후에는 친구들과 매일매일 산과 바다에서 마음껏 놀 수 있고요. 초등학생을 키우기에는 제주만한 곳이 없는 거 같아요"

실제 대흘초등학교 등 제주 이주 희망자들 사이에 인기가 높은 학교의 경우, 위탁교육이나 전학을 희망하는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수업 도중 불쑥불쑥 찾아오는 외부인들이 많은 탓에 학교 정문에 '외부인 출입금지' 안내판이 붙는 등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다.
 
초등학교 운동장이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캠핑장으로 변신하였다
 초등학교 운동장이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캠핑장으로 변신하였다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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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그룹은 서귀포시 영어교육도시 내 국제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이 그 대상이다.

평화로를 타고 애월읍을 지나 중문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영어교육도시로 향하는 길을 만나게 된다. 서귀포시 대정읍 오설록 근처에 115만평 규모로 조성된 이 신도시에는 NCLS(North London Collegiate School Jeju), BRANKSOME HALL ASIA, KIS(Korea International School Jeju) 등 3개 학교가 운영 중이며, 미국계 St. Johnsbury Academy Jeju가 2017년 9월 개교를 앞두고 준비에 한창이다.

영어교육도시 내에는 4층 규모의 빌라로 이뤄진 대규모 공동주택이 공사중인 단지 포함 총 2000세대 내외가 자리잡고 있으며, 이 곳에는 대부분 국제학교에 아이들을 보낸 학부모들이나 학교 관계자 등 국제학교와 관련된 인원들이 거주하고 있다.
 
영어교육도시 내 위치한 빌라 단지들의 모습
 영어교육도시 내 위치한 빌라 단지들의 모습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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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주 국제학교가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이세돌, 최수종, 김남주, 김희애 등 유명인들이 자녀들을 입학시키면서부터다. 초등학교 과정부터 학비가 수천 만원에 달해 일반 사람들과는 상관없는, 상류층만을 위한 전유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최근 자녀의 국제학교 입학을 준비중인 두 가족을 만나면서 국제학교에 대한 인식이 조금 달라지는 계기가 되었다.

경기도 신도시에서 3억 원가량의 전세 아파트에 거주하며 맞벌이를 하다가 자녀의 국제학교 입학을 위해 제주로 이주한 B씨 부부는 국제학교에 대해 조금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4살 때부터 시작된 사교육비 부담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한계점에 임박해서 영어, 수학, 피아노, 수영을 배우는 데 매월 100만 원 이상이 학원비로 지출되고 있었어요. 공교육 비용과 방과후 활동 등에 필요한 비용까지 합치면 1년에 1500만 원 정도를 교육비로 지출했던 거 같아요. 부부가 맞벌이를 하다 보니 우리 아이만이라도 남들에게 뒤쳐지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강박관념이 강했어요. "

전세금 대출을 다 갚을 즈음 부부는 큰 결심을 하게 된다. 이대로는 평생 부부가 밤낮 없이 맞벌이를 해서 아이 교육비와 전세금을 모으는데 다 바치게 되리란 걸 깨달은 것이다. 부부는 제주에 일자리를 구하자마자 3억 원의 전세금을 빼서 영어교육도시 내 신축빌라를 분양 받았다. 분양금액은 2억 원.

"제주 국제학교의 수업료가 수천만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저희가 선택한 학교의 경우 정부지원을 받는 공립이라 그나마 제일 저렴한 편이에요. 여기에 가족이 모두 학교 앞에 살고 있으니 기숙사비 등이 필요 없어 연간 1500만 원 정도가 절약되죠. 

이렇게 다 제하고 나니 실제 들어가는 교육비는 연간 2000만 원이 좀 안되더군요. 육지에서 학원투어를 다닐 때와 비교하면 연간 400만 원 정도가 추가로 지출될 것 같아요. 우리 둘 다 월급도 줄어서 여유도 더 줄어들 것 같고요. 전세금 3억 원에서 빌라를 분양 받은 2억 원을 제외한 여유 돈 1억 원은 생활비가 부족할 때 보충할 정말 비상금으로 쓸 생각이에요."

이렇게까지 힘들게 국제학교에 입학을 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어차피 우리 가족은 돈하고는 인연이 없는 흙수저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큰 돈을 벌겠다는 욕심은 애당초 버린 지 오래죠. 아이가 학원 투어를 다니면서 힘들어해도 남들에게 뒤쳐질까 그만두게 하지도 못했어요. 

이렇게 돈은 돈대로 쓰고 애는 애대로 힘들게 하느니 차라리 국제학교에 보내면 학원이나마 안 보내도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 거죠. 저희가 악착같이 모은 여윳돈 1억 원으로 아이에게 방과 후 시간을 선물한 셈이에요. 나중에는 몰라도 이 결정, 후회하지 않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학부모들에게 인기가 높은 영국계 NLCS
 학부모들에게 인기가 높은 영국계 NLCS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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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거주, 아파트 전세, 맞벌이,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가족의 국제학교 도전은 그 평범함에 비례해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 다음 글에서 계속)
 

태그:#제주이주, #영어교육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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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 : 제주, 교통, 전기차, 복지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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