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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편백나무 얘기를 할까 한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새끼 지네가 한 마리씩 보였다. 지난해에는 별채에 어마어마하게 큰 지네가 나타나서 한바탕 난리가 났었기에 올해는 초여름부터 집 둘레에 지네 약을 뿌리고 틈이란 틈은 다 메웠는데도 어디로 들어왔는지 모를 일이다.

지네나 모기 등 벌레들이 편백 향을 싫어한다고 해서 안방에는 편백 가구를 몇 개 들여 놓고 베개는 방마다 편백나무베개를 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거실이나 화장실에서 지네가 발견된 적은 몇 번 있어도 안방에서 발견되기는 처음이다. 그것도 두 마리씩이나. 침입한 지네는 맥을 못 추고 축 늘어져 있었다. 새끼지만 징그럽기 짝이 없었다.

독자들도 아시다시피 장성은 편백으로 유명한 고장이다. 축령산 편백림은 몸이 아픈 사람뿐만 아니라 건강한 사람들도 요양과 휴양을 겸해서 찾는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편백가구 공장이나 전시장도 있다.

이참에 편백에 대한 공부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누구를 만나면 좋을까 알아보던 차에 장성 기로협회 오윤석 회장 소개로 편백가구를 전문으로 만드는 문일태(58)씨를 만나게 됐다.

에이스침대 경력 29년... "사람을 이롭게 하는 가구 만들고 싶다"

남은 여생을 편백가구와 함께 하겠다는 문일태 장성 편백가구 기술이사
▲ 문일태 기술이사와 상패 남은 여생을 편백가구와 함께 하겠다는 문일태 장성 편백가구 기술이사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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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태씨는 모든 가구를 다 만들지만 특히 침대를 전문으로 만든다. 침대에 대한 상식이나 만드는 기술이 뛰어나 보였다. 마침 집에 침대가 필요하던 차에 이것저것 질문을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취재가 돼버렸다.

어떤 계기로 침대에 관심을 가지게 됐느냐는 질문에 그는 1983년도에 에이스침대에 입사해 29년을 근무하고 여주공장 공장장 직을 마지막으로 퇴직했단다. 그는 퇴직 후 2013년도에 장성으로 귀향했다. 기왕 근 30년을 가구만 만들고 살았으니 고향에서 나는 편백나무를 이용해서 사람을 이롭게 하는 가구를 만들고 싶었단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본다.

그는 에이스침대 근무시절 설계에서 디자인·제작까지 두루 섭렵하면서 꾸준히 실력을 키워나갔다. 그러나 전직 육상선수(성남시 소속)였던 그에게 침대를 만드는 일은 처음부터 즐겁거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구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던 그는 한계에 부딪혔다. 침대를 잘 만들고 싶은 생각에 급기야 오래된 도면을 훔치기에 이르렀다. 훔친 도면을 가슴에 품고 나오다가 경비원에게 들켰다. 그 일은 회장에게 알려졌고 회장 앞에 서게 됐다. 그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다.

침대를 잘 만들고 싶어서 훔쳤노라고. 침대 만드는 공부를 하고 싶어서였노라고. 멋진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나중에 제자리에 갖다 놓을 생각이었다고.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의 진심이 통했다. 에이스침대 회장은 그에게 그 도면을 기꺼이 내어 주며 '가져가라, 그런 자세로 열심히 일해달라'고 했단다. 반전이 아닐 수 없었다. 머나먼 남의 얘기로 듣기에도 가슴 조마조마한 얘기였다. 마치 스릴 넘치는 영화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그 뒷얘기가 궁금했다.

"그래서요?"
"회장님 말씀대로 열심히 일했지요, 아니, 목숨 걸고 일했어요."
"그래서요?"
"노력한 결과는 거짓말을 안 해요.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다 보니 좋은 일이 따라 오더라고요. 노력의 결과라면 결과랄까,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책상도 만들고, 대우 김우중 회장의 책상도 만들었어요. 제가 출장 나가서 했던 일 중에 잊지 못할 일이 두 가지가 있어요."

"가구를 만들러 출장도 가시나요?"
"그럼요, 입주해서 실내 인테리어를 하기도 하는걸요. 그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댁은 새한미디어 회장님(고 이병철 회장 둘째 아들) 댁이었어요. 가구를 다 만들어서 세팅이 끝나면 회장님이 반바지 차림으로 나와서 '밥 잡수시고 가세요'라는 거예요. 사모님은 또 어떻고요, 손수 된장찌개를 끓여서 상을 차려 주셨어요. 참 좋은 분들이었는데!"

의자의 등받이를 들어가게 파서 앉으면 아주 편안하다.
▲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씨가 고안했다는 탁자와 의자 의자의 등받이를 들어가게 파서 앉으면 아주 편안하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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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한쪽으로 나를 안내했다. 그곳에는 조그만 탁자와 특이한 디자인의 의자가 있었다. 한 번 앉아보라고 권하기에 앉아 보았더니 의자가 무척 편안했다.

"이게요, 침대와 더불어 제가 만드는 가구 중에서 자신 있고 인기 있는 상품이에요. 디자인도 특이하지만 무척 편안하지요? 사실은 이 디자인은 제가 고안한 게 아니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씨께서 고안하신 거예요. 1989년도에 연희동 사가의 리모델링을 할 때 양식 가구를 에이스가 맡게 됐어요. 100일 이상을 연희동으로 출근을 했었지요. 그때 그 덕을 이제 제가 보고 있네요."

"과연 목숨 걸고 일한 보람이 있었네요. 침대 도면을 훔쳐서까지 공부하고 연구한 결과가 그렇게 나타났군요."
"에이, 훔친 게 아니고 잠시 빌렸던 거지요. 하하!"
"그럼 그때 에이스에서 공부한 실력으로 지금 편백 가구를 만드는 건가요?"
"그렇기도 하지만, 해외근무도 꽤 했어요. 이태리의 GMA(크레식가구)에서 1년간 디자인과 제작자로 근무했고, 우즈베키스탄 후와이도 메벨에서 수석 디자이너로 1년 근무했어요."

편백의 장점 그리고 오해

꽃말 : 변치 않는 사랑
▲ 편백나무 꽃 꽃말 : 변치 않는 사랑
ⓒ 사진 제공:장성편백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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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도 재미있는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이제 진짜 편백에 대해서 알아봐야겠다. 아래 내용은 문일태씨가 들려준 편백이 사람에게 미치는 좋은 점과 편백 자체의 장점들이다.

편백의 원산지는 일본이란다. 편백나무는 측백나무과이고, 황백과 편백으로 나눈다. 직경 3m, 높이가 70m까지 자라는 것도 있어서 일본에서는 황궁을 지을 때나 고관대작의 저택을 지을 때 실내목재로 썼다.

편백의 꽃말은 '변치 않는 사랑'이란다. 듣고 보니 변치 않는 사랑이라는 꽃말이 무색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에 몸 아픈 사람, 마음 아픈 사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살아서도 죽어서도 사람은 이롭게 하고, 벌레는 근접 못하게 한다니 과연 훌륭한 나무라고 할 만하다.

또, 편백이 칭송을 받는 것은, 모든 나무에서 피톤치드가 생성되지만 특히 편백나무에 더 많고, 항암물질까지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 사람을 이롭게 하는 나무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항암물질을 함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 입증이 됐다고 한다. 그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이영돈 PD의 '논리로 푼다'는 프로그램에 방영된 바 있다니 참고로 하면 좋을 것 같다.

또한 편백은 목재뿐만 아니라 톱밥, 잎사귀까지 버릴 것이 없다. 목재로는 집안 인테리어도 하고 다양한 가구를 만들기도 한다. 잎은 고열로 끓여서 비누와 화장수를 비롯한 화장품을 만든다. 톱밥은 베개 속을 넣기도 하고 편백 효소를 만들어서 목욕할 때 쓰면 아토피 치료에도 효능이 있단다. 가축 막사에 깔아주면 벌레가 꼬이지 않는 등 요소요소에 쓰임이 아주 많다.

그리고 편백의 진실과 오해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편백은 못을 박으면 갈라진다. 사람들은 편백의 갈라짐이 약해서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오해다. 편백이 약해서가 아니라 강해서다. 그래서 편백가구는 모두 짜맞춤을 한다. 그리고 도색을 하지 않아도 기품과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목재다. 하여, 화장대와 콘솔, 책상, 장식장, 서랍장, 심지어 와인 보관대까지 그윽한 향과 은은한 아름다움이 돋보였다.

"나무는 죽어 천 년, 살아 천 년이다, 나무의 생명은 타버려야 비로소 생명이 끝나는 것"이라며 특히 편백은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는 특이한 나무라고도 했다.

"종아리에 피가 나니 넓적다리를 때리더라고요"

대패를 잡은 영화 감독, 그 모습이 멋있다.
▲ 문인철 감독 대패를 잡은 영화 감독, 그 모습이 멋있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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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내려와서 고향나무 편백으로 가구를 만들며 여생을 살고 싶다는 그에게 올해 아주 좋은 일이 있었다. 2016년 대한민국국제기로미술대전에서 작품명 '편백 콘솔 보석함'으로 공예부문 대상을 받았다. 상금이 얼마였느냐는 농담 섞인 질문에 "얼마인지 몰라요, 물어보지도 않고 좋은 일에 써달라고 기탁했어요"라고 한다.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옆방에서는 대패 소리, 센드페이퍼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저쪽에서는 누가 일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큰아들이라고 했다. 옆방으로 가 봤다. 그곳은 공장이었다. 훤칠하고 잘 생긴 청년이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문일태씨의 장남 문인철씨는 뜻밖에도, 베를린 국제 청소년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2010)한 영화감독이었다.

하도 대견한 마음에 "영화 만들던 사람이 대패를 잡았네요, 어떻게 해요"라고 말했더니, "먹고사는 게 먼저지요"란다. 안타까웠다. 그가 얼른 영화 현장에서 메가폰을 잡을 날을 가만히 빌어본다. 사진 몇 장을 찍고 다시 사무실로 와서 마무리 질문을 했다.

"지금 앞에 편백 가구 만드는 일을 포함해서 100가지 좋은 일거리가 있다면 어떤 것을 택하겠어요? 그리고 지금 이 일에 만족하시는지요?"

"그야 당연히 편백 가구 만드는 일이지요. 가구 만드는 일 자체도 좋지만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지금 가족이 함께 산다는 거예요. 제가 직장을 다닐 때는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있었어요. 큰 아들은 영화를 한다고 나다니고, 작은 아들은 축구를 한다고 브라질로 유학을 갔었지요.

그런데 제가 고향 장성으로 내려오면서 아들들과 작은 며느리와 함께 이 일을 하고 있어요. 자식들을 끼고 살아보니 비로소 저희 어머님의 마음을 이해하겠더라고요. 제가 나쁜 친구들과 어울릴 때 어머니께서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셨는데, 종아리에서 피가 나면 넓적다리를 때리시더라고요. 그때는 미련스럽게 도망도 안 가고 그 매를 다 맞았어요. 외출에서 돌아오지 않을 때는 식사도 거르시고 잠도 안 주무시고 기다리던 마음이 그렇게 아름다운 사랑인 줄 그때는 몰랐어요. 제가 자식을 기다려 보니 그 마음이 사랑이었음을 이제 알겠더라고요."

내가 말할 틈도 안 주고 쏟아내는 문일태씨의 말과 얼굴이 더 없이 행복해 보였다. 그의 입에서도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는 말이 나왔다.

편백나무 침대 하나 사러 갔다가 뜻밖에도 좋은 얘기를 듣고 유익한 정보도 얻었다. 소품을 제외한 가구들은 국내라면 어디든 직접 가서 시공해주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하자가 있으면 언제든 달려간다는 그의 말에는 제품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이 엿보였다.

덧붙이는 글 | 장성축령산 산소축제는 8월 13일(8월 6일~8월 7일에 하려던 행사가 군청사정으로 변경 되었음).



태그:#편백나무, #편백가구, #에이스가구, #가족,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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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시원한 청량제, 겨울에는 따뜻한 화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쓴 책 : 김경내 산문집<덧칠하지 말자> 김경내 동시집<난리 날 만하더라고> 김경내 단편 동화집<별이 된 까치밥> e-mail : ok_0926@daum.net 글을 써야 숨을 쉬는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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