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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제승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이 13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브리핑실에서 미국의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경북 성주 배치 선정 배경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류제승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이 13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브리핑실에서 미국의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경북 성주 배치 선정 배경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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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양국 정부가 사드 배치를 강행키로 했다. 하지만 그 파장은 한미 간에 너무나도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에선 '사드 대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극심한 혼란과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이에 반해 사드 배치의 주체이자 통제권을 갖고 있는 미국은 상대적으로 고요하기만 하다.

이는 언론의 보도를 보면 뚜렷이 나타난다. 한국 언론은 연일 사드 문제를 대서특필하면서 대다수 한국 국민이 사드에 대해 대략적으로나마 알게 되었다. 반면에 미국 언론은 이 소식을 단신으로 취급하고 있어, 과연 미국 국민이 사드를 한국에 배치키로 했다는 뉴스를 얼마나 알고 있을지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한국은 '사드 겨울'에 접어들었다

사드배치 지역으로 경북 성주군 확정을 앞두고 김항곤 성주군수가 혈서를 들고 있다. 이 혈서는 지난 13일 오전 경북 성주 성밖숲공원에서 군민 3천여 명이 참석해 열린 사드성주배치반대 범국민궐기 대회에서 쓴 것이다.
▲ 사드반대 혈서 쓴 김항곤 성주군수 사드배치 지역으로 경북 성주군 확정을 앞두고 김항곤 성주군수가 혈서를 들고 있다. 이 혈서는 지난 13일 오전 경북 성주 성밖숲공원에서 군민 3천여 명이 참석해 열린 사드성주배치반대 범국민궐기 대회에서 쓴 것이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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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도 잘 알고 있듯이 사드 배치 결정은 한국의 안보, 정치, 외교, 경제, 사회 전반에 엄청난 한파를 몰고 오고 있다. 기어코 배치가 강행된다면 사안의 성격상 이 한파는 일시적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핵겨울'(핵이 폭발할 때 발생하는 그을음과 먼지 등이 대기권에 두꺼운 구름층을 형성해 지구가 몇 달 동안 암흑으로 변하고 기온이 떨어지는 현상)이라는 표현에 빗댄다면, '사드 겨울'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또한 마땅히 주목받고 해결을 모색해야 할 많은 문제들이 '사드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특히 부지로 거론되었거나 결정된 지역 주민들은 30도가 넘는 무더위와 오존 주의보가 내려진 상황에서도 '사드 반대'라고 적힌 머리띠를 묶고 거리로 나서고 있다. 사드는 주민들의 건강과 생존권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미 '발표'만으로도 많은 주민들이 고통 받고 있는 것이다.

또한 중국을 상대로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는 많은 한국인들이 경제적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은 억제 가능하지만 사드가 초래하는 유무형의 위협에는 마땅한 대책이 없다는 점에서 많은 한국인들이 불안에 떨고 있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미국 정부는 사드가 없으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처할 수 없는 것처럼 말한다. 그래서 묻는다. 미국은 최대 4만 개의 핵무기를 갖고 있었던 소련을 미사일방어체제(MD)가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성공적으로 억제했는가? 아니, 사드와 같은 MD가 그토록 중요했다면, 미국은 왜 소련과 1972년에 탄도미사일방어(ABM) 조약을 체결해 이렇게 좋은 무기의 개발·배치를 포기했는가? 그리고 그 이후 30년 동안 미국 정부는 "ABM 조약이 국제 평화와 전략적 안정의 초석"이라고 말해왔던가?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ABM 조약 탈퇴를 선언했을 때, 미국 민주당은 왜 이를 비판했는가?

미국은 내년 말까지 경북 성주에 사드 배치를 완료해 작전 태세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했다. 앞으로도 1년 여의 시간이 남아 있다. 미국 정부의 논리를 뒤집어보면, 사드가 없는 이 시기야말로 북한엔 미사일 공격을 가할 수 있는 최적의 기회가 된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미국 정부의 대책은 무엇인가?

한국 내 사드 배치는 한국 국민들의 생존권과 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바로 오바마 대통령이 주창한 '핵무기 없는 세계' 구상에 치명타를 가하게 된다. 프라하에서 멋진 연설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고 해서, 미국 대통령 역사상 처음으로 히로시마를 방문한다고 해서 핵무기 없는 세계가 저절로 오는 게 아니다. 미국부터 핵무기에 의존해온 정책을 하나둘씩 줄여 나가고 다른 나라도 이에 동참할 수 있는 솔선수범의 자세를 보여야 비로소 그 길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언행불일치'는 실망 그 자체이다.(이에 대해서는 일전에 보낸 '오바마 대통령께 보내는 공개 편지'를 참고하길 바란다.)

미국 정부는 기어코 사드 배치를 강행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해보았는가? 중국과 러시아는 이미 강력한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전략적 협력"을 다짐하고 있다.

기어코 사드를 배치한 결과

사드배치 지역으로 경북 성주군 확정을 앞두고 지난 13일 오전 경북 성주 성밖숲공원에서 군민 3천여명이 참석해 사드성주배치반대 범국민궐기 대회가 열리고 있다.
 사드배치 지역으로 경북 성주군 확정을 앞두고 지난 13일 오전 경북 성주 성밖숲공원에서 군민 3천여명이 참석해 사드성주배치반대 범국민궐기 대회가 열리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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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핵전략의 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최소억제이론'이고, 또 하나는 '핵 선제 불사용(No First Use) 정책'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드가 한국에 배치되면, 중국은 자신의 핵 전략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게 될 것이다. 핵미사일을 늘리고 핵 선제 불사용 정책에 대해 모호한 태도로 돌아섬으로써 사드를 비롯한 MD를 무력화시키려고 할 것이다.

이미 상당한 기술력을 축적한 러시아와의 전략 무기 협력은 중국이 군사비를 크게 늘리지 않고도 핵 능력 증강을 가능케 할 것이다. 러시아가 미국 주도의 MD를 무력화하기 위해 핵미사일 현대화에 나선 것은 미국 정부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국 내 사드 배치는 러시아의 이러한 추세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그 결과는 오바마 대통령이 천명한 '핵무기 없는 세계'가 아니라 '21세기 최악의 핵 군비경쟁의 문'을 열어주는 것이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중국과 러시아와는 무관하다"는 사드를 비롯한 미국 주도의 MD는 이들 나라를 겨냥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미국 군산복합체에겐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겠지만, 먹고 사는 문제로 허덕이고 있는 평범한 미국 시민에겐 '돈 먹는 하마'가 될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을 '공동의 적'으로 삼아 사실상의 동맹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고, 세계 지정학은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이게 과연 미국 정부가 원하는 바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정부는 "한국 내 사드 배치가 중국 및 러시아와는 무관하고 그래서 이들 나라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요구한다. 미국 정부는 이들 정부와 협상에 나서 어떤 방식으로든 '사드가 당신들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납득시켜야 한다. 그래서 한국 내 사드가 배치되어도 중국과 러시아가 한국에게 어떠한 형태로도 대응에 나서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와야 한다. 이 약속을 받을 때까지 사드 배치는 유보해야 한다.

중국과 러시아의 유무형 보복 및 대응에 따라 가장 큰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은 사드 문제에 아무런 책임이 없는, 그래서 무고한 한국 국민들이다. 하여 이러한 요구를 하는 건 전적으로 정당하다.

'사드 대란'을 일으킨 1차적인 책임은 미국 정부에게 있다. 그렇다면 이를 해결해야 할 책임도 미국 정부에 있다. 미국 정부는 부디 백해무익한 사드 배치를 철회하길 바란다. 그래서 고령의 한국 노인들이 다시 논밭과 과수원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길 바란다. 한국인들이 강대국들의 경제적·외교적·군사적 보복에 대한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해주길 바란다. 미래의 미국 정부와 국민들에게도 엄청난 전략적, 경제적 부담을 떠넘기지 않길 바란다.

끝으로 한 가지만 덧붙이고자 한다. 미국 정부가 사드 배치를 자발적으로 철회하거나 최소한 다음 정부로 넘길 생각이 없다면, 한국 정부의 뒤에 숨어 있지 말고 앞으로 나오길 바란다. 사드에 대해 걱정하고 반대하는 많은 한국 시민들과 직접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이 글은 미 대사관측에도 전달한 것입니다. 이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입장을 듣고 싶습니다. 


태그:#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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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좋은 사람'이 '좋은 기자'가 된다고 믿습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에디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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