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마이 프렌즈> 최종화의 한 장면.

<디어 마이 프렌즈> 14화에서 박완(고현정)이 내뱉는 대사는, 이 작품을 바라보는 많은 시청자의 마음을 울렸다. 사실은 우리도,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 tvN


엄마의 간암 소식을 전해들은 박완(고현정)은 난희(고두심)와 함께 여행을 떠나 모녀만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엄마에게 즐거운 추억을 선물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평소에 그러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자책이었을까. 숙소에 들어간 완은 엄마에게 노래를 불러달라고 한 후 화장실에 들어간다. 그리고 거울로 자신을 응시하며 뺨을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한다.

"엄마의 암 소식을 처음으로 영원 이모에게 전해 들으며 나는 그때 분명 내 이기심을 보았다. 암 걸린 엄마 걱정은 나중이고, 나는 이제 어떻게 사나. 그리고 연하는, 어쩌나. 나는 오직 내 걱정뿐이었다. 그러니까, 장난희 딸, 나 박완은, 그러니까, 우리 세상 모든 자식들은 눈물을 흘릴 자격도 없다. 우리 다 너무나 염치없으므로."

tvN <디어 마이 프렌즈>(아래 <디마프>)의 열혈 시청자인 우리 엄마는 이 장면을 보고 눈물을 흘리셨다. 그리고 말씀하시더라. '나도 그랬다'고. 그랬던 자신이 생각나서 눈물이 났다고 말이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엄마는 박완처럼, 자신을 걱정했다고. 이 나이가 돼보니 지금은 세상에 안 계신 외할머니가 이해가 된다며, 그리고 너희들도 나처럼 그럴 수밖에 없다며,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그 이기심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거라며 눈물을 흘리셨다.

우리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최종화의 한 장면.

<디어 마이 프렌즈> 최종화의 한 장면. 언뜻 훈훈하고 따뜻한 엔딩이다. 하지만 조금 돌아보면, 그렇게 마냥 밝지만은 않다. ⓒ tvN


'우리 세상 모든 자식'을 대변(代辯)하는 완의 가슴 아픈 '자기 고백'은 드라마 속 모든 장면이 '명장면'으로 꼽히는 <디마프>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하이라이트'였다. 그리고 노희경 작가가 스스로 <디마프>를 통해 하고 싶었던, 담담한 '자기 고백'이자, 절절한 '자기반성'이었다. 그것이 어디 노희경만의 고백이자 반성일까. 우리는 '엄마(아빠)'가 되지 않을 수는 있지만, 누군가의 '아들, 딸'이 아닌 적은 없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참 '부끄러운' 아들, 딸이다.

지난 2일 <디마프>가 16회를 끝으로 (너무 빨리) 종영했다. 이 드라마 영원히 계속되길 바랐던 사람이 비단 필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일상으로 돌아간 조희자(김혜자), 문정아(나문희), 오충남(윤여정), 장난희, 이영원(박원숙), 김석균(신구), 이성재(주현)는 함께 '번번히' 여행을 떠났다. 비 오는 밤 여관방에서 옹기종기 누워 잠을 청했고, 바닷가에서 나란히 앉아 '저녁노을'을 바라봤다. 삶의 여정이 그 어떤 길 위의 일보다 험난했던 그들은 웃으며 '노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박완은 서연하(조인성)에게로 돌아갔다. 슬로베니아에서 두 사람은 멈췄던 사랑을, 잃어버렸던 사랑을 다시 시작했다. '비극성(悲劇性)'을 강조해 현대적 의미의 '희극(喜劇)'으로 치닫는 (최근의) 노희경식 드라마다운 아름답고 따뜻한 '해피 엔딩'이었다. 시청자들은 이 결말에서 위로를 느끼고 행복과 평온을 경험했던 모양이다. 기분 좋게 TV를 껐을 사람들은 깊은 여운 속에서 "아, 모두에게 참 좋은 결말이다"라고 읊조렸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노희경 작가는 '잔인한 결말'이라 말한다. "작가가 되어서 이렇게 잔인해도 되나. 드라마의 결말을 쓰며, 내 잔인함에 내가 소름이 돋았다"라니? 무엇이 그리도 잔인하다는 것일까? 노년들은 일상으로 돌아가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냈고,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수십 년 지기(知己)들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 '청춘'인 박완과 서연하는 '현실의 벽'을 뛰어넘어 결국 '사랑'을 선택했다. 그들은 어렵지만, 진득한 사랑을 이어갈 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잔인하다는 것일까?

"아무리 포장해도 이 드라마의 결론은, 부모님들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마세요. 우리 살기 바빠요. 그러니 당신들은 당신들끼리 알아서 행복하세요. 우리는 이제 헤어질 시간이에요. 정 떼세요. 서운해하지 마세요. 어쩔 수 없잖아요. 그것 아닌가 싶었다." (노희경)

뒤통수를 한 대 제대로 맞은 느낌이다. 속았다. 모두에게 '행복'한 것만 같았던, 이 결말은 사실 부모님들에게 보내는 자식들의 '비겁한 작별 인사'였다. 자식들인 우리는 부모들이 당신들끼리 어울려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에 안도하고, 이제 마음껏 나 자신의 이기심을 정당화한다. "엄마(아빠)는 이모들(아저씨)이랑 재밌게 살고 계시잖아, 마음 맞는 친구들이랑 지내도록 하는 게 진짜 효도야"라고. 그러나 우리의 부모님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죽음을 앞둔 그 순간에조차 자식들은 마음에 품는다는 것을 희자 이모를 통해 알게 된다.

앞으로도 계속될 '내리사랑'

 <디어 마이 프렌즈> 최종화의 한 장면.

<디어 마이 프렌즈> 최종화의 한 장면. 희자의 대사가 마음을 후벼파는 건 왜일까. 이 드라마, 잔인하다. ⓒ tvN


"나 안 가. 민호랑 하늘이 나랑 살면 힘들어. 애기랑 지들끼리 잘 살게 냅두고 싶어. 충남아, 언니 여기 냅둬. 평생 남한테 피해 안 주고 살았는데, 언니 도도하게 여기 있다가, 여기 꼭 마음에 들어. 정아랑 난희 어머니 데리고 놀러와. 우리 다 같이 살음 좋았을 텐데. 이제 정말 그건 꿈이네." (희자)

치매에 걸린 희자는 자나 깨나 아들 민호(이광수) 걱정뿐이다. 노양원을 찾은 희자는 충남에게 '여기 있겠다'고 말한다. 아들에게 짐이 되는 것이 죽기보다 싫어서다. 그 소식을 들은 '아들들'은 엄마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두고 목소리를 높여 격론을 벌인다. 그 모습이 왜 그리도 씁쓸하던지. 그 낯뜨거운 변명들 속에 '엄마'가 있긴 있었던 걸까. 혹시 거기에도 어김없이 자식들의 이기심이 자리 잡고 있진 않았을까.

그런데 어찌하겠는가. 누군가의 자식이었던 당신들이 '부모'가 되고, 당신들이 당신들의 부모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그 한없는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고 응석을 부릴 수밖에 없는 것을. 그 가슴 아픈 '내리사랑'은 앞으로도 계속될 텐데. 그 끝없는 대물림이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의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인 것을. 드라마의 결말이 아름다운 판타지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결국 '자식'이었던 노희경의, 그리고 우리의 자기 고백이었음을 조금, 얼핏, 이제야, 알겠다.

"결국, 아픈 엄마를 혼자 두고, 나는 기어이 내 살길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인생이란 게 참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날은 그렇게 모든 걸 하나라도 더 가지라고, 놓치지 말라고, 악착같이 살라고 내 어머니의 등을 떠밀더니, 이제 늙어선 자신이 부여잡은 모든 걸, 그게 목숨보다 귀한 자식이라고 해도, 결국엔 다 놓고 가라고, 미련도 기대도, 다 놓고, 훌훌 가라고, 등을 떠밀고 있으니, 인생은 그들에게 얼마나 잔인한가. 게다가 인생은 언제 끝날지, 그 끝도 알려주지 않지 않던가. 올 때도 갈 때도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 인생에, 어른들을 대신해 묻고 싶었다. '인생아, 너 대체 우리보다 어쩌라고 그러느냐고.'" - <디마프> 16회, 박완의 대사 중에서

디어 마이 프렌즈 디마프 노희경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너의 길을 가라. 사람들이 떠들도록 내버려두라.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