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밀은 없다>는 갖출 건 다 갖추고 있지만 뭔가 아쉬운 영화다. 배우들의 열연과 연출, 좋은 시나리오와 반전, 장르적 요소와 퀴어는 스릴러 영화가 갖추어야 할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비밀은 없다>는 모자람이 없다.

하지만 올여름을 강타할 <정글북>이나 <타잔> 같은 영화들과 대결하기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특히 이경미 감독의 전작 <미쓰 홍당무>(2008)가 보여준 안면홍조증 같은 기발함과 짝사랑이 유발하는 탄산수 같은 청량감은 맛볼 수가 없다. 관객들의 갈증을 해소해주었던 영화적 묘미가 <비밀은 없다>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감독의 전작이 보여준 기발함 없어

딸을 잃은 연홍역의 손혜진 <비밀은 없다>는 전형적인 스릴러의 구도를 유지하면서 퀴어적 요소를 가미했다.

▲ 딸을 잃은 연홍역의 손혜진 <비밀은 없다>는 전형적인 스릴러의 구도를 유지하면서 퀴어적 요소를 가미했다. ⓒ 영화사 거미 , 필름트레인


우선 손예진(김연홍 역)과 김주혁(김종찬)의 연기는 손색이 없다. 딸을 잃어버린 엄마로서 연홍은 자신이 무얼, 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몸으로 알고 앓는다. 딸이 돌아오길, 살아있길 기다리는 마음과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들 앞에서 그녀가 지켜야 할 본분을 잊지 않는다. 그 본분이란 딸을 사랑하고 믿는 마음이다. 신예 정치인으로 보수 정당의 개혁을 위해서 출마한 종찬은 정치적으로 비범하다. 딸을 잃어버렸지만 자기 일에 소홀함이 없으며 솔직한 면모도 갖추고 있다. 김주혁이 연기한 종찬 역시 매우 잘 어울린다.

이외에 종찬의 경쟁 후부 역 노재순으로 분 한 김의성이나 박 사무국장으로 나온 김민재, 최 기사로 나온 박진우 등은 영화를 이끄는 또 다른 힘이다. 영화의 열쇠를 쥐고 있는, 중학생 역할로 나온 신지훈(김민진 역)이나 김소희(최미옥 역)의 연기 역시 일품이다. 그런데 뭐가 아쉬울까?

영화는 <추적자> 같은 정치 스릴러인지, <여고괴담> 류의 퀴어 영화인지, 그냥 <용의자 X> 같은 서스펜스 드라마인지 갈피를 못 잡는다. 선거전이 영화의 외연을 장악하고 있다면, 그 내면은 여학생들의 우정 너머 사랑을 얘기한다. 왕따와 소외감 등 전형적인 요소가 가미되는 건 물론이다. 거기에 연홍의 친구가 무당으로 나온다. 특히 중요한 순간에 무서운 눈빛으로 분하는 연홍은 마치 이 영화가 <친절한 금자씨>로 흘러갈 것 같은 기시감을 드러낸다. 경찰서와 학교, 도시 외곽을 오가며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딱 영화의 형국을 말해주는 듯하다.

갈팡질팡하는 영화의 형국

 영화 <비밀은 없다>의 스틸컷

시나리오는 나쁘지 않았으나, 스릴러로서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갈팡질팡한 채 끝나버리고 만다. ⓒ CJ엔터테인먼트


시나리오는 괜찮다. 특히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결말 부분은 스릴러로서 부족함이 없다. 그런데 감독은 정치 스릴러의 긴장감과 퀴어적 요소를 뒤섞고 마지막에 서스펜스까지 가미하는 바람에 한 마디로 '잡탕'을 만들어버렸다. 영화의 모티브가 되는 민진과 미옥의 관계가 중요한 건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비밀은 없다>는 마치 저글링을 하듯 무게중심을 분산시킨다.

이런 기법이 제법 성공을 하는 경우가 물론 있다. <곡성>만 보더라도 스릴러와 종교(미신)라는 장르적 요소를 혼합하면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그런데도 <곡성>은 분명 스릴러에 더욱 가깝다. 스릴러에 기반을 두면서 장르적 요소를 적용했다. <비밀은 없다>가 성공하기 위해선 정치 혹은 퀴어 혹은 학원물 중 하나에 무게 중심을 두었어야 했다. 그렇지 못해서 어정쩡한 영화가 되어 버렸다.

물론 <비밀은 없다> 같은 시도가 의미 없는 건 아니다. 새로운 영화적 시도야말로 영화의 존재 이유 자체다. 특히 연홍과 종찬, 민진과 미옥의 관계는 일란성 쌍둥이 같이 닮았으며 각각의 관계가 전복된다. 그 중심엔 인력과 척력 같은 자기성(磁氣性)이 있다. 다음의 각 관계는 애초의 자리에서 저마다 영화의 결말 단계로 치닫는다. 연홍과 종찬은 부부로서, 연홍과 민진은 엄마와 딸로서, 민진과 미옥은 친구로서, 민진과 미옥은 의심하는 사이로서의 관계가 전복된다.

<비밀은 없다>는 시종일관 스릴러로서의 면모를 지켰어야 한다. 그래야 관객들이 몰입하며 집중할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여고괴담2>와 마찬가지로 퀴어적 요소를 전면에 드러냈어야 한다. 영화로서 진가를 발휘하기엔 장면과 장르가 너무 흐트러져 있는 것이다. 다 있는데 뭔가 아쉬운 느낌이 드는 이유다.

비밀은없다 손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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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문화, 과학 및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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