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살의 나는 체육시간에 피구를 할 때면 무서웠다. 선생님은 항상 반장과 부반장에게 가위바위보로 팀원을 뽑으라고 말했다. 가장 처음 불리는 이름은 주로 반에서 예쁘거나 잘생기고,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이었고 그다음은 그들의 친구들, 친구의 친구들…. 나는 그들의 선택 후에 남겨지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잘 알고 있었다.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고,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챘을 때의 비참함. 열한 살은 수치심이라는 감정을 알아가는 나이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예쁘지도 않고, 체육과 공부 모두 어중간하게밖에 하지 못하는 내가 사랑받을 수 있을까. 그래서 열한 살의 김민지는 자신 있었던 말발로 학교의 소문들을 모두에게 전하기 시작했다. 그때의 나는 겨우 다섯 번째쯤 불리게 될 내 이름을 위해 남을 팔아 사랑을 얻었다. 우리에게 체육 시간의 '뽑기'는 반에서의 내 위치를 알게 해주는 시간과도 같았다. 그렇기에 모두가 두려워했고 또 한편으로는 몰래 기대를 품곤 했다.

인간관계, 그 끊임없는 약육강식의 세계

 열한 살이라는 나이는 그 자체로 참 싱숭생숭하다. 저학년도, 고학년도 아닌 어중간한 단계이면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시간이다.

열한 살이라는 나이는 그 자체로 참 싱숭생숭하다. 저학년도, 고학년도 아닌 어중간한 단계이면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시간이다. ⓒ 엣나인필름


영화 <우리들>의 첫 장면은 그래서 '뽑기'로부터 시작한다. 윤가은 감독은 겨우 그런 것에 울고 웃던, 유치하고 지질하며 부끄럽기까지 한 우리의 열한 살을 주인공 '이선'과 '한지아'를 통해 떠올리게 해준다.

누군가는 이 영화에 대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이들은 다 싸우면서 커가고, 이 영화는 그러한 성장과 추억을 담고 있기에 아름답다고.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 한편에서 느껴지는 서글픔은, 이것이 '아이들'의 이야기만이 아님을 깨닫게 해준다. 더 교묘해지고, 더 영악해졌을 뿐 우리는 어쩌면 여전히 열한 살을 살고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인간관계조차 스펙이 되는 시대이다. 반장은 인기 많거나 똑똑한 누군가의 전유물이고, 부반장은 끼가 넘치는 또 다른 이들의 차지이며, 그 외의 보이지 않는 서열조차 그 아이의 평판에 따라 계단처럼 쭉 펼쳐지는 학교. 이곳에서 어떤 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낙오'시키고 싶겠는가. 그래서 부모들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강조한다. 인기가 많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선생님께는 예의 바른 학생이 되고, 친구들에게는 착해 보이는 아이가 되어야 한다고. 그렇게 만들기 위해 부모들은 자녀를 전문 학원에 보내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게 키워진, 아니 그렇게 '만들어진' 아이들은 어떻게든 사랑받아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본능적으로 약육강식을 이해하고 살아남으려고 촉각을 곤두세운다. 강자가 되자, 또는 강자가 될 수 없다면 그들에게 잡아먹히지는 말자고 되뇐다. 나름대로 내린 판단 속에 강자는 자리를 유지하려고 남을 깎아내리고, 약자는 약자대로 내가 타깃이 되지 않기만을 바라며 누군가를 공격한다. 그렇게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고, 어른이 된다.

아직도 우리는 흔들리고 있다

 우리가 이 영화를 보고 위로를 받는 것은 열한 살 그때와 다를 것 없이 지금도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영화를 보고 위로를 받는 것은 열한 살 그때와 다를 것 없이 지금도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 엣나인필름


"친구가 때리고, 나도 때리고, 친구가 때리고…. 그럼 언제 놀아?"

그렇기에 선이의 동생 윤이의 이 대사는 어린아이의 순진한 질문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결국 모두가 상처를 가지고 있고, 그래서 그 상처를 덧나게 하는 말 하나하나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면서도 우리는 서로를 끊임없이 공격한다. 결국 그렇게 해서 얻은 권력이 내 손에 오래 머물지 않을 것이란 것 또한 뻔히 알면서 말이다. 더 이상 아무에게도 내 고민을 마음 놓고 털어놓을 수 없고, 아무도 믿을 수 없다.

열한 살이라는 나이는 그 자체로 참 싱숭생숭하다. 저학년도, 고학년도 아닌 어중간한 단계이면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시간이고, 나를 둘러싼 세상이 어떤 곳인지 알아가는 때이며, 내가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해 눈치채기 시작하는 나이다.

이 불안정한 색깔의 소녀들을 감독은 있는 그대로 담아냈다. 그렇기에 그녀는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이 영화를 보고 위로를 받는 것은 열한 살 그때와 다를 것 없이 지금도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봤는데 한지아 금 안 밟았어."

내가 가장 외로웠을 때 듣고 싶었던 그 말을, 지금 외로운 '너'에게 해주면서 그렇게 소녀들은 '우리'가 되어 간다. 피구 시간이 고통스러웠던 열한 살 선이는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을 열한 살 지아에게 자신이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을 건넸다. 마지막 이 한 장면을 위해, 우리는 이 영화를 봐야 한다. 이제는 커버린 내가 그때의 나에게,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 끊임없이 속삭여줄 수 있도록. 지금, 사랑받지 않아도 괜찮아.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 한편에서 느껴지는 서글픔은, 이것이 '아이들'의 이야기만이 아님을 깨닫게 해준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 한편에서 느껴지는 서글픔은, 이것이 '아이들'의 이야기만이 아님을 깨닫게 해준다. ⓒ 엣나인필름



우리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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