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영 선수는 '포스트 김연경'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선수이다.

정호영 선수는 '포스트 김연경'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선수이다. ⓒ 광주체육중


'김연경 시대'를 사는 배구팬들은 행복하다. 대한민국도 보통 행운아가 아니다. 동시에 김연경은 한국 배구에 너무도 큰 숙제다. '김연경 이후'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김연경 같은 선수가 한국에 다시 나오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우선 192cm의 장신 레프트 자체가 드문 일이다. 더군다나 공격은 물론 수비력과 강서브까지 완벽하게 갖춘 세계 최정상급 선수다. 지금도 주요 국제대회 때마다 득점왕과 공격 상을 밥 먹듯이 한다. 남들은 평생 한 번 하기도 어려운 일들을 자꾸 해낸다.

오죽하면 일본 언론은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라고 극찬했다. 이정철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은 한술 더 떠 "100년이 아니라 200년이 지나도 김연경 같은 선수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상렬 남자배구 청소년 대표팀 감독은 "김연경은 한국이 배출한 게 아니라 하늘이 점지해준 선수"라고 말했다. 배구팬들은 아예 연경신(神), 갓연경(God+김연경)으로 부른다.

하지만 김연경은 엄연히 대한민국 선수다. 한국 V리그에서 프로 데뷔를 했고, 현재도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국내 선수들과 함께 먹고 자며 훈련을 하고 있다. 대표팀의 동료든 자라나는 어린 선수든, 김연경이 전성기인 지금 옆에서 열심히 보고 배워야 한다는 뜻이다.

누군가는 김연경 아랫급이라도 성장을 해줘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김연경의 역할을 이어받을 '김연경의 후예'가 나와야 한다. 그것이 한국 여자배구가 세계 강호들과 계속해서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혜성처럼 등장한 중학생, '국내 최장신' 가능성

또다시 대한민국에 행운이 찾아온 것일까. 여자배구에 장신의 중학생 유망주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여고 배구의 강호들이 너도나도 스카우트 경쟁에 나서면서 과열 조짐까지 보인다.
광주체육중학교 3학년의 정호영 선수다. 2001년생으로 올해 16세인 정호영은 신장부터 예사롭지 않다. 현재 189cm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여자배구 선수를 통틀어 단연 최장신이다. 프로 선수는 물론 성인 국가대표팀까지 포함해도 김연경(192cm), 양효진(190cm)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더 클 가능성도 높다.

추요한 광주체육중학교 코치는 22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정)호영이가 아직 성장판이 열려 있으므로 190cm는 너끈히 넘길 것"이라고 말했다. 부모가 운동선수 출신으로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도 복이다. 어머니는 배구 선수, 아버지는 농구 선수 출신이다.

정호영은 중학교 1년 때부터 배구를 시작했지만, 실제 경기에 투입된 것은 2015년 4월 태백산배 전국남녀중고배구대회 때부터다. 그런데 불과 1년 사이에 배구 실력이 급격하게 늘면서 많은 배구인을 깜짝 놀라게 했다.

추요한 코치 "주팅처럼 대형 공격수로 키워야"

 정호영 선수의 최고 특기는 바로 '고공 타점'이다.

정호영 선수의 최고 특기는 바로 '고공 타점'이다. ⓒ 광주체육중


정호영이 배구인들을 흥분시키고 있는 건 단지 장신 때문만은 아니다. 김연경처럼 공격수로 활약하고 있다는 게 더 크다.

추 코치는 "현재의 플레이 스타일로 볼 때 중국의 주팅처럼 레프트나 라이트로 키우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며 "키가 크다고 센터로 돌리기엔 너무 아까운 선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호영이에게 백어택과 리시브 등 수비 연습을 많이 시키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선수 개인의 장래로 보나 김연경 이후를 준비해야 하는 한국 배구의 미래로 보나 호영이는 대형 공격수로 키우는 게 맞다"며 "센터는 이미 양효진, 김주향, 박은진 등 좋은 자원이 많다"고 말했다.

추 코치가 예로 든 주팅(23세·195cm)은 현재 여자배구 세계 최강팀인 중국의 레프트 주 공격수이다. 높은 점프력과 강력한 파워가 인상적인 선수로 김연경과 자주 비교되기도 한다. 다만, 리시브 등 수비력에서는 김연경보다 약하다는 평이 많다.

정호영의 가장 큰 장점도 점프력과 체공력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공격 타점은 프로 선수까지 포함해도 국내에선 김연경 다음으로 최고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따라서 향후 성장 과정에서 공격 빠르기와 힘을 어느 정도까지 끌어올리느냐가 관건이다. 그 수준에 따라 초대형 선수가 될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리시브와 수비력도 장신 선수에게서 보이는 어설픔이 1년 전보다 많이 사라졌다.

여고배구 감독들 "김연경 이후 최고의 선수 될 것"

정호영은 기량 면에서도 중학교에는 경쟁 상대가 없다는 평가가 많다. 정호영이 맹활약한 광주체육중학교는 올해 출전한 춘계 전국남녀중고배구연맹전, 태백산배 전국남녀중고배구대회, 전국남녀종별배구선수권대회, 전국소년체육대회 등 4개 대회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하며 4관왕을 기록 중이다. 그리고 정호영은 2번에 걸쳐 대회 MVP에 선정됐다.

여고 배구 감독들의 평가는 더욱 기대를 하게 한다. 정호영의 경기를 누구보다 관심 있게 지켜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여고 최강팀으로 꼽히는 선명여고의 김양수 감독은 22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현재 중학교 선수 중에는 실력이나 장래성 모두 독보적"이라며 "점프력과 공격 타점만 보면 국내에선 최고다. 웬만한 남자 선수의 점프"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정호영이 이대로 부상 없이 잘 성장한다면, 고등학교를 거쳐 프로에 갈 때쯤 되면 김연경 이후 최고의 선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연경의 중학교 시절 스승인 김동렬 원곡고 감독은 "수비력 때문에 김연경 선수까지 올라가기는 어렵겠지만, 양효진 선수급이나 그 이상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호영이 배구를 늦게 시작한 것치고는 기본기가 잘 되어 있다"면서 "체력을 강화하고 공격 스피드와 파워만 키우면 아주 좋은 대형 선수가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김우재 강릉여고 감독도 "정호영은 팔이 기므로 키는 189cm이지만 실제 공격 높이는 195cm대 선수나 마찬가지"라며 "프로 갈 때쯤엔 공격이나 블로킹 높이만큼은 김연경 못지않은 선수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랜만에 아주 훌륭한 선수가 하나 나온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호영이 대형 선수가 되기 위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또 있다. 영양 보충과 체력 관리, 그리고 혹사 금지다. 특히 부상이나 재활 관리를 잘해야 한다. 혹사는 가장 큰 적이다. 따라서 열악한 학교 시스템에만 맡겨놓을 게 아니라, 조기에 국가대표 시스템에 끌어들여 체계적으로 관리를 해줘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더 좋은 조건이냐 vs. 배구 균형 발전이냐

 정호영 선수의 미래에 여자배구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호영 선수의 미래에 여자배구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광주체육중


정호영의 성장 가능성이 높게 평가되면서 현재 고교 팀들로부터 스카우트 표적이 되고 있다. 추 코치도 "모든 고등학교에서 호영이 때문에 난리"라고 실토했다.

하지만 정호영이 다른 시·도로 진학을 하기 위해서는 난관도 만만치 않다. 대한배구협회가 지난해 선수가 다른 시도로 전학 또는 진학을 할 경우 학교장의 이적 동의서를 받았다 하더라도 1년 동안 국내 경기에 뛸 수 없도록 하는 등 관련 규정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현재 규정대로라면 정호영은 광주체육고등학교로 진학해야 아무런 제재 없이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다.

그러나 1년간 선수 활동 중단을 감수하고, 부모가 실제로 이사를 하게 되면 다른 시도로의 이적은 문제가 없게 된다. 생계를 위해서 가족이 이주할 경우에는 예외 규정에 따라 이적 동의서를 발급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일부 고등학교에서는 그런 조건을 모두 갖춰서라도 정호영을 영입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반면, 광주체육중학교와 광주체육고등학교 측은 다른 시도로의 이적은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이다. 자칫 큰 갈등이 발생할 우려도 나오고 있다.

우수한 선수를 영입하겠다는 일부 학교와 더 좋은 조건의 학교로 보내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한 편에 있고, 고교 배구의 불균형과 해체 위기를 막아야 한다는 대한배구협회와 지방 학교의 명분이 엇갈리고 있다.

한 여고배구팀의 감독은 "제일 좋은 건 광주체육중학교와 광주체육고등학교에서 정호영 부모님과 선수를 잘 설득해서 광주에서 배구를 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학교 측이 부모가 왜 다른 시도로 가려고 하는지를 잘 파악해서 선수 보충 등의 요구를 수용해주고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든 협회든 부모든, 또한 현실과 명분이 어떻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어떤 경우에도 어린 선수를 희생양 삼아 상처를 입혀선 안 된다는 점이다. 또한, 주목받는 선수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자만심이고, 놓지 말아야 할 것은 좋은 선수가 되겠다는 열정이다.

제2의 김연경이 될 재목감이 출현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그런 기대를 현실로 만드는 것은 모든 배구인의 몫이다. 정호영은 김연경의 후예가 될 수 있을까.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프로배구 정호영 여자배구 올림픽 김연경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