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당 1억 원의 고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진 김수현 작가의 굴욕이라고 할 수도 있는 일이 벌어졌다.

애초에 60부작으로 기획되었던 김수현 작가의 <그래 그런 거야>가 54부작으로 축소 방영이 결정되었다. 제작진은 리우 올림픽 때문이라는 설명을 덧붙이며 "조기 종영이 아니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시청률이 잘 나오는 드라마의 경우, 결방은 있어도 축소 방영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대문에 아무래도 시청률 문제라는 인상을 지우기는 힘들게 되었다.

그동안 김수현의 가족드라마 만큼은 시청률 불패 신화를 써내려왔다. 가장 최근에 집필한 가족드라마인 <무자식 상팔자>만 보아도 JTBC라는 채널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1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김수현이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해낼 정도였다.

 김수현의 <그래, 그런거야>, 보편적 가족의 정서를 그리는 데 실패하다.

김수현의 <그래, 그런거야>, 보편적 가족의 정서를 그리는 데 실패하다. ⓒ SBS


그러나 <그래, 그런 거야>는 김수현 가족드라마 최초의 실패라는 아픈 기록으로 남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시청률면에서도 경쟁작 <가화만사성>에 완전히 밀린 것은 물론, 화제성과 호평 모두 놓치고 말았다. 여러모로 아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반면, 노희경 작가가 집필한 <디어 마이 프렌즈>(아래 <디마프>)는 호평과 인기를 동시에 잡았다. 시청률은 5%를 넘겼고, 매회 눈물을 흘리게 만들 정도로 따뜻한 감성을 보여주며 '노인들의 이야기'라는 핸디캡을 극복했다.

가족의 차이, 관점의 차이

<그래, 그런 거야>와 <디마프>에는 각각 새로운 가족의 형태가 등장한다. <그래, 그런 거야> 속의 이지선(서지혜 분)은 시아버지인 유민호(노주현 분)와 함께 살고 있다. 그러나 그 설정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자아내지 못했다. 오히려 시청자들의 공감대는 드라마 속에서 그들의 관계를 이상하게 생각하며 수군거리는 주변 사람들의 입장과 닮아있다. 남편이 없는 상황에서 시아버지와의 동거는 좀처럼 상식적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관계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극복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했다.

<디마프>에는 혼자 살아가는 70대 노인들이 대거 등장한다. 65살이 되도록 결혼을 하지 않은 오충남(윤여정 분), 남편과 사별한 조희자(김혜자 분) 등 그들의 삶은 일반적인 가족드라마가 그리는 '집안 어른'과는 동떨어져있다. <그래, 그런 거야>가 여전히 3대가 함께 살아가며 '어른의 역할'을 강조하는 집안을 그리는 것에 비해 <디마프>는 오히려 나이를 먹었으나 여전히 흔들리는 노인들의 감정을 포착해낸다.

주인공 박완(고현정 분)의 엄마도 싱글맘이다. 이 드라마의 설정은 '화목하고 일반적인' 가족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마프>속 이야기는 전세대의 공감을 자아낸다. <그래, 그런 거야>가 놓치고 <디마프>가 잡은 것은 무엇일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주고받는 상처를 포착해 낸 <디마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주고받는 상처를 포착해 낸 <디마프> ⓒ tvN


<디마프>의 인물들은 제각기 상처가 있다. 그것이 30대든, 70대든 삶의 무게는 여전히 그들을 짓누르고 있다. 오래 살았다고 초연하지도 않고, 적게 살았다고 마냥 원기왕성하지만도 않다. 삶 속에서 그들은 치열하다. 그 안에서 가족은 의지가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짐이 된다. 생각하면 애틋하지만 막상 보면 생채기를 내고 마는, 그런 존재다. 혼자 사는 집에 엄마의 방문은 마냥 좋지만은 않고, 간섭은 때때로 너무 지나치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선을 넘나드는 것 또한 부지기수다.

가족이라는 존재에 대하여

아버지라는 존재도 그러하다. 무뚝뚝한 것은 물론, 상처만 주는 존재다. 따뜻한 말 한마디 제대로 해주지 않는 아버지라는 존재는 기댈 수 있는 듬직한 어깨를 가진 가장의 모습이 아니다. 뒤로는 가족을 나름대로 생각해 왔다는 정황이 드러나며 감동을 주지만, 그래도 <디마프>는 아버지의 행동을 절대 정당화하지도 않는다.

<디마프>는 보편적이지 않는 가족 속에서 보편적인 가족의 정서를 포착해 낸다. 다가가기 어려운 아버지, 사랑하지만 귀찮을 때도 있는 어머니. 그런 가족의 모습은 지극히도 현실적으로 가슴 속에 다가온다. 그 과정에서 여전히 힘든 삶을 살아가는 70대의 모습을 그리며 한 쪽에 치우친 입장이 아닌, 서로의 입장을 이해해 보자고 넌지시 제안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흘리는 눈물은 의미가 있고, 시청자들의 감정은 동화된다.

<그래, 그런 거야>는 그 포인트를 놓쳤다. 가족의 울타리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는 점은 동일하지만 보편적인 정서는 놓쳤다. <그래 그런 거야>속에서는 어른은 이래야 하고 자식은 이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느껴진다. 아무리 화가 나도 어른한테 대드는 자식은 용납할 수 없고 어른은 그만큼의 포용력과 관용으로 아랫사람을 감싸야 한다.

물론 이 전제 자체가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실과 부대끼며 여러 감정이 섞여 있는 가족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드라마가 제대로 고찰했는지 알 수가 없다. 요즘 세상에는 삼대가 함께 사는 집도 찾기 힘들고,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그렇게 든든하지만은 않을 때도 많다. 그런 현실을 반영하지 않고, 설정만을 비틀어 온 김수현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호응을 더 이상 얻지 못한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우동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디마프 노희경 김수현 그래 그런거야
댓글1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