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만의 세계인 줄 알았던 카레이싱 대회에 작은 여자선수 한 명이 나타났다. 힘으로 보나 체력으로 보나 모든 면에서 남자선수에 비해 뒤쳐질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 주인공은 문혜민(27)씨다. 문혜민씨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데뷔 첫 무대에서 1등을 거머쥐었다. 카레이싱 대회는 남자, 여자 구분 없이 진행된다. 문씨의 등장 이후 카레이싱 선수들 사이에선 문혜민보다 못하면 안 된다는 모종의 기준점 같은 게 생겨 버렸다.

그가 카레이싱을 선택한 이유는 남자와의 경쟁에서 이기고 싶어서가 아니다. 단지 차가 좋고, 도로 위를 달릴 때의 스피드가 좋아서다. 좋아하는 일에 대한 열정은 실력으로 이어졌다. 첫 데뷔 무대에서 1위를 한 것도 모자라, 여성 드라이버 최초로 한국 대표로 국제대회에 나가게 됐다. 경기를 한 달 앞둔 지난 1일에 어린이대공원에서 그를 만났다.

"여자라고 봐주는 건 없어요"

 인터뷰 하고 있는 문혜민 선수

인터뷰 하고 있는 문혜민 선수 ⓒ 김광섭


- 국내 카레이싱 대회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국내에선 거의 1년에 6번 정도가 열려요. 겨울엔 눈도 오고 노면도 미끄러워서 대회가 열리지 않고, 봄부터 초겨울 전까지 한 달에 한 번꼴로 열린다고 보면 돼요. 경기할 때 차종마다 다르지만, 최고속도가 시속 200km 정도 나가는 차가 있어요. 서킷이 국내에 별로 없어서 주로 영암이나 인제에서 경기가 이뤄져요. 한 경기에 34명 정도 출전하는데 남녀 구분 없이 진행합니다."

- 카레이서 첫 데뷔 무대에서 여자선수 최초로 1등을 거머쥐셨죠?
"작년에 '핸즈 모터스포츠 페스티벌' 토요타 86 원메이크에서 운이 좋아서 1등을 하게 됐어요. 남자랑 여자가 같이 하다보니 여자라서 봐주는 건 없어요. 거기 들어가면 다 적이 되거든요.(웃음)

여자여서 남자 분들이 도움을 주는 부분도 있지만, 넌 여자여서 안 될 거라며 배제하는 부분도 없지 않아요. 어떻게 보면 이건 남자를 위한 스포츠라고도 할 수 있잖아요. 여자라서 열심히 안 할 거고 성적도 못 낼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었어요. 전 그런 편견을 깨고 싶어서 더 열심히 했거든요. 제가 1등을 하면서 선수 분들 사이에서 기준점이 생겼다고 하더라고요. 문혜민보다 못하면 큰일 난다고.(웃음)"

- 7월에 카레이싱 국제대회 '2016 TCSA'에 참가하신다고 들었어요.
"우연히 기회가 닿아서 올해부터 국제대회에 나가게 됐어요. 한국 국적을 달고 나가는 거고, 또 여성 드라이버 중 최초여서 부담이 돼요. 태국에서 7월 23일이 개막전이거든요. 태국, 일본, 말레이시아, 마지막전은 한국에서 해요. 한국은 제 홈그라운드니까 1등은 해야 되지 않나 싶어요."

- 처음 카레이싱은 어떻게 접하게 됐나요?
"원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는데 지인이랑 우연히 경주장 놀러갔다가 경기 보고 나도 너무 해보고 싶다고 느꼈어요. 지인이 '너도 나가 볼래'라고 해서 바로 나가야겠다 했어요. 다 운이라고 생각합니다."

- 경기 출발선에 섰을 때 기분이 어떤가요?
"시작하기 전엔 신호등만 보고 있어요. 심장이 엄청 두근두근하고 긴장돼요. 빨간불이 5개인데 그 불이 꺼지는 순간, 그 희열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그 긴장감이 너무 좋더라고요. 무섭긴 한데 제 한계점을 테스트해보는 거죠.

주로 여름에 경기가 열리는데 차를 경량화시키기 위해 레이스와 관련 없는 에어컨, 오디오를 다 빼요. 방염슈트를 입고 헬맷을 쓰고 경기를 해야 해서 엄청 힘들어요. 실제로 어떤 분은 탈수로 쓰러지신 분도 계세요. 사고가 날 수도 있고, 차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그런 문제들을 다 이기고 완주하는 거라 레이스 끝나고 나서 오는 희열이 대단해요."

- 위험하진 않나요?
"안전장비가 잘 돼 있어요. 방염슈트를 입어 화재가 났을 때 불이 옷에 붙지 않아요. 헬맷, 목보호대 등 도 모두 착용하기 때문에 안전해요. 또 차체를 트는 걸 방지해주는 장치도 있어서 아무리 차가 굴르더라도 드라이버는 멀쩡하죠. 그만큼 안전해요."

어릴 때부터 자동차를 좋아했던 소녀

 문혜민 선수는 모터스포츠 전체에 대한 관심을 부탁했다.

문혜민 선수는 모터스포츠 전체에 대한 관심을 부탁했다. ⓒ 문혜민


- '얼짱' 카레이서로 인기가 많은데 기분이 어떠세요?
"예쁘지도 않은데 그런 말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하지만 카레이서는 헬맷을 쓰는 직업이라 얼굴이 보이지도 않고 경기 끝나고 나면 얼굴에 열이 올라 예쁜 모습도 없어요. 아무래도 레이싱의 꽃이라 하면 레이싱걸이기 때문에 저는 뭐….(웃음)"

- 어렸을 때도 차를 좋아했나요?
"특이하게 저는 일반 여자아이들처럼 인형놀이를 좋아하고 그러진 않았어요. 어릴 때부터 자동차를 좋아했어요. 놀이동산 가면 범퍼카를 꼭 타고, 아버지도 차를 좋아해서 영향이 있지 않았나 싶어요. 또 초등학교 때 문구점 앞에 미니카로 경주하는 게 있었는데 저는 꼭 그 앞에서 남자아이들이랑 같이 경기하고, 지면 울면서 집에 오고 이랬어요. 어릴 때부터 승부욕이 있어서 지는 걸 되게 싫어했어요."

- 평상시엔 무얼 하며 쉬나요?
"제가 먹는 걸 되게 좋아해서 집에서 요리하는 걸 좋아해요. 잘하는 건 아니고 했을 때 좋아하는 요리는 김치볶음밥이요. 요리를 배우러 가고 싶은데 시간이 안 맞아서 집에서 가끔 레시피 보고 만들어서 친구들 초대해서 먹으라고 해요. 아니면 좋은 데 드라이브 가서 경치 구경하면서 맛있는 거 먹고."

- 다른 여자 카레이서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전난희 선수라고 예전에 포디움(시상대)에 오르셨어요. <더 벙커>에 나왔던 MC 권봄이씨는 이번에 오르셨더라고요. 너무 멋있어요. 워낙 두 분 다 실력이 좋아서, 너무 멋있습니다."

- '2013 포뮬러 1 코리아 그랑프리'가 흥행에 실패했는데 현장에 있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많이 아쉽죠. 제일 큰 대회가 흥행을 했다면 모터스포츠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도 바뀌고 관심도 생겼을 텐데 그 부분이 너무 아쉽죠. 큰 대회도 그랬는데, 타 대회가 흥행하기란 더 쉽지 않죠. 저는 선수들이 방송, 잡지, 뉴스 여러 매개체를 통해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SNS 통해서 직접 홍보하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후기나 영상을 공개하면 많은 분들이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요."

- 카레이서를 꿈꾼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직접 저한테 질문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카레이서 어떻게 시작해야 되냐', '돈이 많이 들지는 않냐' 등 궁궁하신 점들이 많은 것 같아요. 금전적인 부분 등 여러 가지 부담이 된다면 카트로 시작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카트 경기를 나가보신다거나 카트 체험을 해보신다거나 트랙데이가 열릴 때 체험을 해보신다거나. 그럼 많은 분들도 알게 되고 기회가 오면 대회에 나갈 수도 있고요. 프로 선수들도 평상시 카트를 많이 타시거든요."

- 모터스포츠 발전을 위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를 응원해 주시는 것도 감사하지만, 무엇보다 모터스포츠를 관심 있게 바라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국내 모터스포츠도 더 발전하고 선수들도 빛나서 더 큰 국제무대에 나갈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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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http://snsmedia.wix.com/snsmedia) 7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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